성보문화재 10 - 경주 구황동 금제여래좌상
경주 구황동 금제여래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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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보(불상) 10 - 경주 구황동 금제여래좌상
慶州九黃洞金製如來坐像
경주 구황동 금제여래입상
慶州九黃洞金製如來立像
경주 구황동 [금제여래좌상]과 [금제여래입상]은
국보 제 79호, 80호로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불상입니다.
두 불상은 경주 황복사지 삼층석탑을 해체ㆍ복원할 때
나온 사리함에서 함께 발견되었습니다.
먼저 [금제여래좌상]의 경우,
사리함의 명문에 기록된바 통일신라 성덕왕 5년(706)에
불사리佛舍利 네과와 함께 순금으로 된 아미타불상 등을
사리함 속에 넣었다고 하는데, 바로 [금제여래좌상]으로
추측됩니다.
불신佛身과 광배, 연꽃 무늬 대좌의 세 부분으로 되어
있으며, 각 부분은 분리되도록 만들었습니다.
미소 띤 얼굴에 뚜렷한 이목구비,
사실적이고 균형잡힌 신체 표현,
유려하고 자연스러운 옷 주름, 손 모양 표현 등에서
8세기 초 신라의 사실주의 양식이 싹트고 있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금제여래입상]은,
광배와 대좌를 모두 갖추고 있으며, 미소를 띠고 있는
얼굴에 육계肉䯻를 큼직하게 표현하였습니다.
약간 좁은 어깨에는 두껍게 표현된 옷을 걸치고 있는데,
앞면에는 U자형의 옷 주름을 새기고 있습니다.
치마는 좌우로 약간 퍼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서
삼국시대의 불상 양식이 아직 남아 있는 모습입니다.
오른손은 들어 손바닥을 보이고, 왼손은 옷자락을 잡고
있는데 특히 이러한 옷 주름과 왼손의 표현은 중국에서
인도의 간다라 불상을 모방한 양식에 나타나며 인도
아쇼카왕이 중국으로 보낸 불상의 모습으로 알려져
있기도 했습니다.
머리 뒤에는 보주형寶珠形 광배가 꽂혀 있는데,
한가운데 연꽃을 중심으로 불꽃 모양을 정교하게
투각하였습니다.
[금제여래입상]은 [금제여래좌상]보다 양식적인 면에서
고식古式을 보이므로, 아마도 692년 석탑을 세울 당시에
안치되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한 탑에서 시차를 두고 봉안된 두 불상을 통해 그간의
불상 양식의 변화를 직접 비교할 수 있어 중요한
발견으로 꼽힙니다.
--- 2567. 9. 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