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로카시아
손진숙
안방 창문 곁에 놓인 알로카시아에 눈길을 준다. 도깨비방망이를 세운 것처럼 뭉툭한 밑둥치에서 길게 벋은 줄기마다 넓적한 잎을 받치고 있어 여러 개의 우산을 펼친 것 같다. 줄기 끝에 달린 잎은 먼 조상이 토란잎과 형제였을까, 아니면 연잎과 배다른 형제였을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가엾게도 줄기들이 묶여 있다. 바닥으로 잎이 쳐지는 것을 막으려고 남편이 취한 처방이다. 끈에 매여 있는 모습이 마치 결박당한 죄인 같다. 알로카시아를 입양해 오던 날의 몇 장면이 눈앞에 또렷하게 나타난다.
여름이 끝날 즈음의 주말이었다. 햇감자를 깎아 삶고 있는데 여느 때보다 일찍 귀가한 남편이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처음 보는 화초 묘목苗木 하나를 내게 내밀면서 빨리 화분에 심으라고 했다. 그러고는 막걸리 한 잔하고 오겠다며 외출했다. 집 안에는 마땅한 화분이 없어 하는 수 없이 묘목을 들고 동네 꽃집으로 달려갔다.
꽃집 주인이 묘목에 비해 꽤 큰 화분을 골라 주었다. 왜 이렇게 커야 하느냐고 묻자 이 정도는 돼야 밑둥치와 균형을 이룬다고 했다. 실속이 없는 균형도 나름대로 필요한 법이었다. 뿌리나 잎은 볼품없어도 화분의 흙 밖으로 솟은 둥치는 배와 등이 볼록한 다듬이 꼴이었다. 계산을 치르며 이름을 묻자 알로카시아라 알려 주었다.
밑둥치가 제법 굵은 묘목을 심은 화분은 꽤 묵직했다. 우선 거실 한쪽에 놓고 그새 식어 맛이 없어진 감자를 먹으며 새로 가족이 된 알로카시아와 호기심 어린 눈빛을 주고받았다. 키우기 까다롭다던 꽃집 주인의 말이 사뭇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 뒤 뜻밖의 상황이 벌어졌다. 결혼해 삼십 년 동안 화초에 신경을 쓴 적이라곤 없던 남편인데 알로카시아한테는 달랐다. 거실의 베란다 쪽에 놓아둔 화분을 그날 밤 외출에서 돌아오자 안방 머리맡에 가져다 두는 것이었다. 다음날도 또 그다음 날도 내가 거실에 내다 놓으면 남편은 밤마다 다시 안방에 들였다.
남편에게 알로카시아를 준 노파가 공기정화제니 방에 두고 자라고 했단다. 그러면 건강에 좋을 거라고 하면서. 그 말을 들은 남편은 알로카시아를 방에 두면 공기정화 효과가 있다고 믿었다. 알로카시아가 있는 방에서 자고 일어나면 온몸이 개운하다고까지 했다. 낮에는 거실에 내놓고, 밤에는 안방에 들여놓다가 나중에는 그것도 번거로워 한자리에 두었다. 그로부터 알로카시아는 안방의 공기정화를 책임지게 되었다.
알로카시아는 놀랍게도 성장이 빨랐다. 우리 집에 처음 올 때는 줄기 하나가 겨우 나와 그 끄트머리에 새의 부리처럼 뾰족한 속잎을 달고 있던 것이, 며칠 지나지 않아 죽 벋어간 줄기 끝에 추석날 밤하늘에 떠오른 보름달 만해졌다. 잇달아 새로 나온 줄기가 반대편에도 벋어 두 팔을 벌리고 만세를 부르고 있는 형상이 되었다.
알로카시아는 차츰 제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 잎을 단 줄기를 바닥으로 구부렸다. 문제는 그에서 그치지 않았다. 잎이 넉 장이나 되자 빈약한 뿌리에 비해 줄기와 잎의 기세가 월등해졌다. 마침 물을 주는 날이라서 알로카시아를 베란다로 데려갔다. 물뿌리개로 잎과 줄기에 물을 뿌려 주었다. 줄기가 물뿌리개에서 쏟아내는 물방울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잎이 땅에 닿을락 말락 너풀거렸다. 난파되기 전의 선박 같았으나 설마하니 어떠랴 싶었다. 그런데 그만, 뿌리가 휘청 뽑혀 줄기가 누워버리는 게 아닌가.
깜짝 놀라 수습에 나섰다. 뿌리를 바로 세우고 흙을 북돋아 눌러 다졌다. 불안하지만 가까스로 바로 서기는 했다. 아직 잎에서 물방울이 떨어지는데도 응급환자를 호송하듯이 안방 창문가에 데려다 놓았다. 기울어질 염려가 있는 쪽을 창문에 의지할 수 있도록 가까이 붙여 놓았다.
그날부터 물을 줄 날이 돌아와도 베란다로 나들이시키지 않는다. 그 자리에 둔 채 뿌리를 감싼 흙에다 조심스럽게 물을 부어 준다. 알로카시아는 언제 또 쓰러질지도 모를 불안한 삶을 연명하고 있다. 튼튼한 기반을 갖추지 못해 혼자 힘으로 당당하게 서지 못하고 누군가에게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는 내 모습과도 닮은 성싶다.
비스듬히 유리창에 얼굴을 기대고 있는 알로카시아를 바라본다. 뿌리가 허약해 놓으니 안방의 공기정화를 도맡기에 힘겨운 모양이다.
사람의 뿌리는 영혼일 것이다.
《수필미학》 2015 겨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