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을 준비합시다.
제목에 놀랐나요?
우리가 잘 아는 행 1;8은 그런 말이기도 합니다.
1. 내가 어느 편인지 확실히 알고 (아이덴티티, 가치관)
2. 사단의 역사를 이길 힘을 가지고 (영적 존재를 이길 힘은)
- 보이지 않는 상대와 싸워야 한다.
3. 그리고 사명감을 가지고 그 싸움에 임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 어떤 자세여야 하는가?
성령에 매여
스티브 도나휴는 20대 젊은 나이에 세계 최대 사막인 사하라
사막을 횡단했던 사람입니다.
그가 [사막을 건너는 여섯 가지 방법]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그는 그 책에서 인생을 산이 아니라 사막으로 볼 것을
제시했습니다.
“인생은 산이다”가 아니라 “인생은 사막이다.”라는 것입니다.
산을 오르는 사람에게는 분명한 목표가 있습니다.
산꼭대기 정상이라는 목표가 분명합니다. 목표가 분명하니까
소요되는 시간, 정상에 오르기 위한 방법도 예측이 가능합니다.
그러나 그는 사막을 횡단하는 것은 이와 전혀 다르다고 말한다.
사막은 모든 것이 예측 불가능하고 불확실하답니다.
사막에서는 지도가 없습니다.
설사 정확한 지도를 가지고 출발하더라도 사막에 모래 바람이
불어 닥치면 순식간에 모든 지형이 바뀌고 맙니다.
그래서 때로는 길을 잃기도 하고, 신기루를 쫓아가기도 합니다. 이런 점에서 인생은 사막을 횡단하는 것처럼, 아무리 계획을
세우고, 방향을 잡고, 목표를 세워도 예측하기 어려운 일들을
만나기도 하고, 순식간에 상황이 바뀌어 목표가 사라지기도
하고, 길을 잃기도 하기 때문에, “인생은 사막이다.”라고 그는
말했습니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점은 바로 이것입니다.
산을 오를 때는 등산화를 신습니다. 등산화를 신고 힘차게 발을
디디어 오릅니다.
그렇지만 사막을 지날 때는 등산화를 신고 힘차게 걷게 되면,
모래가 끝없이 쌓인 뜨거운 사막을 걸으며 발에 물집만 생길 뿐
아니라, 쉽게 지쳐 버리고 만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막을 걸을 때에는 발걸음에 힘을 빼야 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사막의 지형은 변화무쌍하기 때문에 지도가 아닌
정확한 방향을 가르쳐 주는 나침반을 봐야 한다고 합니다.
이런 의미로 볼 때, 우리는 우리 인생을 살아가면서 목표를
세우고, 그 정상에 이르기 위해서 열심히 걷습니다.
힘차게 걷습니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목표만을 향해 나아갑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목표가 시야에서 사라지고,
내 힘만으로 도무지 지쳐서 걸을 수조차 없을 때가 있습니다.
산을 오르는 것처럼 가야하는 길이 일정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인생은 사막을 지나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나침반이 필요하듯 성령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보지 못한 것,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
우리가 분별할 수 없는 것, 우리의 힘만으로는 안 되는 것이
우리 인생에 분명히 있음을 깨닫고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의 계획과 준비만으로는 도달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고
인정해야 합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
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 잠언 16장 9절 말씀입니다.
그리고 발에 힘을 빼야 합니다.
내 힘과 능력으로만이 아니라 우리를 도우시기 위해 오신
보혜사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의지하여 걸어가야 합니다.
초대 교회의 모습이다.
오늘 본문은
43절 - 사도들로 말미암아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44절 - 믿는 사람이 함께 있고 물건을 같이 사용하니
45절 - 재산을 깍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주고
46절 -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는 떡을 떼고
-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47절 - 하나님을 찬미하니
예) 프로포즈를 한 신부에게 군복을 입혀주시는 신랑 예수님
(환상)
나와 가정과 나라를 지키기 위해 싸워야 합니다.
영적 군사가 되어야 합니다.
왜 지금 전쟁을 준비하여야 하는지
언제 이런 일이 우리에게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이다.
예) 아브라함의 롯을 구출하는 사건
영적 존재인 사단과 싸우는 것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베드로 전서5;8)
진자는 이긴 자의 종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놓치지 말아야 하기에
싸움을 준비하여야 합니다.
내가 영적으로 성장하면 할수록 사단은 우리에게 더 교묘하게
다가온다.
무엇을 위해 싸워야 하는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나의 나라를 지키기 위하여
(내 백성, 내 나라를 지키는 것이다.)
내 가정을 지키는 일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사랑과 평강의 공기를 가졌다.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진 곳의 증거는 이런 모습이다.
사랑하고, 어떤 어려움에 처한다 할지라도 두려워하지 않는
정의와 긍휼 이라는 두 기둥으로 세워졌다.
무엇으로 싸움을 준비하여야 하는가?
엡 6;10 이하의 준비
전신갑주를 입으라. - 하나님이 해 주시는 무장을 하여야 한다.
사 59;17
여호와께서 이를 살피시고 그 정의가 없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시고
사람이 없음을 보시며 중재자가 없음을 이상히 여기셨으므로
자기 팔로 스스로 구원을 베푸시며 자기의 공의를 스스로
의지하사 공의를 갑옷으로 삼으시며 구원을 자기의 머리에 써서
투구로 삼으시며 보복을 속옷으로 삼으시며 열심을 입어
겉옷으로 삼으시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입혀 주시는 것이다.
내가 입는 것이 아니다.
예) 삼상 17;31절 이하
1. 너는 소년이다. - 싸울 수 없다.
사자와 곰과 싸움 - 저는 짐승이다. (타인에게 맹수)
2. 38절 갑옷을 입히매 (익숙하지 않았다.)
40절 - 손에 막대기, 매끄러운 돌
다른 사람들에게는 장난감으로 보일지 모르나 그에게는
익숙한 무기이다.
진리, 의, 평안, 믿음, 구원(대한 소망이다.)
공격용 무기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예) 퇴거 명령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인가?
증인이 되는 것이다.
목숨을 걸고 싸우는 것이다.
예) 아직도 희망이 있다. - 숫자가 줄어들지만 역사적으로
최윤식 박사의 책 (미래학자)
갤럽의 통계 (사회학자)
숫자는 줄지만 헌신된 용사가 많다.
기드온의 이야기
여기에서 다시 일어서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