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05. 03.
결국 열흘 만에 해프닝으로 끝났다. 지난 달 21일 미 CNN방송이 김 위원장의 수술가능성을 보도한 이후 김 위원장의 식물 인간설, 사망설까지 나돌았다. 하지만 지난 1일 김 위원장이 평안남도 순천의 인비료공장 준공식에 참석, 기념테이프를 끊는 사진과 영상이 공개되면서 김 위원장의 건강을 둘러싼 그간 논란은 끝이 났다. 이번 김 위원장과 북한에 대한 다양한 소문 확산 과정은 북한의 폐쇄성과 가짜뉴스에 취약한 인간 심리를 그대로 보여줬다.
김정은 위원장의 건강 위중설은 지난 달 21일 미국 CNN방송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최근 수술을 받고 위중한 상태"라고 보도하면서 촉발됐다. 이에 앞서 북한 전문매체 데일리 NK는 "김정은 위원장이 심혈관계 시술을 받았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이후 미 블룸버그 통신은 "김 위원장이 심혈관 수술을 받던 중 중태에 빠졌다는 첩보가 입수되어 미국 정부가 세부 사항을 분석하는 중"이라고 덧붙이면서 파장은 커졌다. 일본의 주간지, 슈칸겐다이(週刊現代)에서는 "심장질환으로 갑자기 쓰러져 수술도중 식물인간이 되었다"고 보도했다. 국내에서도 건강이상설을 넘어 사망설이 확산됐다. 장성민 세계와동북아평화포럼 이사장은 김 위원장이 '의식불명 상태'라고 주장했다. 또 "스스로 일어서거나 제대로 걷지 못하는 상태"(태영호 강남갑 국회의원 당선자), "지난 주말 사망한 것으로 99% 확신"(지성호 미래한국당 비례대표 당선인) 등의 발언이 이어지기도 했다. 이에 대해 북한에서는 인정도, 부인도 하지 않으면서 불확실성을 키웠다.
외신들과 대북 전문가들이 김 위원장의 건강 이상설을 주장한 것은 몇 가지 신호들이 겹쳤기 때문이다. 먼저 그가 김일성 주석 생일인 4월 15일 '태양절' 이라는 북한의 가장 중요한 행사에 불참했다. 김 위원장의 불참은 건강의 이상 신호로 읽혀졌다. 지난 2008년에도 김정일 위원장이 북한의 60주년 기념 열병식에 불참하면서 건강이상설이 돌았다. 이후 김정일 위원장은 뇌졸중으로 판명되었고, 건강이 계속 악화돼 2011년 사망했다. 김 위원장이 '태양절' 행사에 9년째 참여해왔다는 것은 하나의 경험적 관찰에 불과했으나 이를 지나치게 확대 해석한 것이다. 김 위원장의 건강 이상에 대한 그럴 듯한 신호들도 덧붙여졌다. 김 위원장이 평소에 고혈압과 당뇨증, 심혈관 질환을 앓고 있다는 설명들이다. 특히 심혈관 질환은 가족력으로 알려지면서 가장 큰 위험요소로 뽑혀왔다. 여기에 과도한 흡연과 스트레스도 원인으로 지적되었다. 신호에는 해석을 방해하는 잡음이 섞여 있을 수도 있지만, 사람들은 익숙한 것, 있을 법한 것에 대한 믿음으로 그 가능성을 애써 외면했다.
청와대와 정부는 그동안 "김 위원장 신변에 특이 동향은 없다"고 밝혀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 위원장에 대한 건강 이상설이 확산된 것은 정부의 대북정보와 설명에 대해 국민들의 신뢰도가 그리 높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부가 판단 근거에 대해 충분한 설명을 하지 않으면서 오히려 정부가 알고도 중요 정보를 밝히지 않고 있다는 의심마저 생겼다. 그렇기에 야당 측 인사들의 건강 이상설 발언은 강도를 더해가며 확산됐다. 특히 현 정부를 신뢰하지 않는 사람들일수록, 김 위원장의 사망설을 기정사실화하기도 했다. 미 뉴욕대의 반 바벨(van Bavel)교수는 "사람들은 사실이 아니라 정치적 편향성에 따라 뉴스를 소비하는 경향이 있다"며 "특히 정치적 입장과 어긋나는 가짜뉴스에 대한 오류 수정은 매우 힘들다"고 지적한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김 위원장의 사망보도는 오보이지만 가짜뉴스는 아니다. 가짜뉴스(fake news)는 누군가를 속이기 위해 의도적으로 사실이 아닌 내용을 뉴스 형식으로 유포하는 것을 말한다. 의도적 속임수가 아니라, 제한된 신호를 갖고 북한의 상황을 예측하려다 발생한 해프닝인 셈이다. 하지만 이번 해프닝은 국가 안위와 관련된 정보를 자의적으로 해석해거나 정파적으로 이용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일을 계기로 정부의 대북정보수집 및 안보능력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가 높아지길 바란다. 다만 정부 역시 "특이사항 없으니 그냥 믿어라"가 아니라, 그에 대한 충분한 근거 설명과 함께 만일의 상황에 어떠한 대비를 하고 있는 지에 대해 국민들에게 알릴 필요가 있다. 그래야 국민들이 불안해하지 않고, 잘못된 정보에 현혹되지 않는다.
홍성철 / 경기대 미디어영상학과 교수
디지털타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