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빛
시인 이해리
못다한 말은 눈으로 간다
눈으로 가서 눈빛이 된다
이상하다 눈빛이 슬픈 것들을 지나치지 못한다
사시사철 축축한 주산지 버들의 눈도 그렇지만
불에 봉대를 싸맨 채 배회하는 사슴의 눈,
사슴이 왔다 호박 넝쿨 저 켠에서
연갈색 등허리 털에 흰 눈송이 점점 찍힌 사슴이,
몸은 철망까지만 오고 눈빛은 철망 밖
내 눈 속까지 흘려보내 가슴을 적신다
그 눈빛에서 나오는 슬픈 말을 들으려 귀를 세웠다
아무리 귀 세워도 들을 수 없고
우리 농장에서는 마취제를 안쓴다
주인의 녹용판촉소리만 들려왔다
마취제도 없이 뿔을 자르고 마취제도 없이
마음도 뺏기고 머언 먼 순록의 나라에 내리는
그리움도 빼앗긴 사슴이
철망 하나를 사이로 나를 바라본다
내 눈빛에 사슴은 무엇을 듣는가
서로 바라보며 젖을 뿐 한 마디 말을 못한다.
이해리 시집 『감잎에 쓰다 』, 《시와 사람 》에서
눈빛은 말로 말한다면 묵음(默音)이다. 소리를 내어 발음하지 않고, 마음으로 바라보는 언어다. 그 마음의 소리를 이해리 시인은 사슴농장에 갔다가 사슴의 눈을 보며 나누고 있다. 사슴 농장의 주인은 녹용이라든지 사슴에 대한 여러 이야기를 한다. 특히 우리가 키우는 사슴은 마취제를 쓰지 않고 사슴의 뿔을 자른다는 말에 섬특한 마음을 가졌다. 사람을 위해 사슴은 괴로운 고통을 가져도 되고, 사람을 위해 사슴은 온갖 슬픔을 참아야 한다는 절규로 들렸다. 이 고통과 슬픔을 참고 얼룩무늬 점을 온몸에 찍고 순하디 순한 눈빛 하나를 지니고 산다. 서러움이라는 게, 고통이라는 게, 누군가의 이런 완력의 길들여지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사는 사람 세상도 이 사슴 농장의 처지와 다를 바 없다. 세상 사람이 다 왕이 거나, 잘 살면 일할 사람이 없다. 개미나 벌들이 사는 집단의 모습을 보면 자연스럽게 살아가고 생존을 위해 70%는 일을 하게 되어 있다고 한다. 병정개미만 모아 살아가게 하였더니 이 병정개미 속에서 다시 일을 하는 일개미가 되는 것을 발견했다고 한다. 사람의 세상에서도 누군가는 왕이 되고 총을 들고 그리고 나머지는 일을 하는 집단으로 살아가게 되어 있다. 이 질서에 충돌이 생기면 그 세상은 무너진다. 눈빛도 그 아프고 고통스러운 자들의 마음에 새기지는 삶의 얼룩무늬일 것이다. 사슴의 얼룩무늬 점처럼 찍힌 사슴의 눈빛, 어떤 말도 하지 않았지만, 어떤 말도 주고받지 못했지만, 오래오래 남는 마음의 말을 들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