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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행(四川行) 33
당현은 물끄러미 무정을 바라보았다. 긴 머리, 우뚝 선 콧날, 굳게 다물어
진 입술, 오른쪽의 검상, 엄청난 근육과 갑주들......
완벽한 무인이었다.
이게 바로 무인의 모습이었다. 문득 그의 눈에 무정의 오른손이 들어왔다.
“ ........... ”
분명히 보였다. 오른손 중지가 조금 까딱였다. 멀리서 볼 때 혹시 죽지 않
았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지만 긴가민가 했었다. 알 수 없는 기운이 이 친구에게서 흘러 왔기 때문이었다. 그는 입가에 웃음을 머금으며 뒤로 돌았다. 멍하게 떨고 있는 색랍사의 승려가 보였다.
“못된 것들........그냥 조용히 살라고 그리 말했는데 여기는 또 왜 기어왔나 그래....”
혀를 차며 그의 오른손이 어깨 높이로 지면과 수평으로 올라갔다. 그의 손목이 뒤로 젖혀졌다. 그러자 겐단타가 던진 비도가 빙글 돌았다. 칼끝이 겐단타를 향하고 있었다.
“돌아가라!”
나직한 목소리와 함께 그의 손목이 앞으로 내려갔다. 그와 함께 겐단타의 비도가 던질 때의 속도보다 세배 이상 빠르게 튕겨져 나갔다.
“파팍.....”
“카아아악....”
겐단타의 신형이 뒤로 오장이나 나가 떨어졌다. 그의 양쪽 어깨부근 견정혈에 단검이 깊숙이 박혀 있었다. 과연 대단한 신위였다. 청백지강호와 어깨를 나란히 한다는 것은 과언이 아니었던 것이었다.
상황이 급변했다. 명각은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저기 색랍사의 중
들도 더 이상 움직이고 있지 않았다. 뒤로 멀찍이 물어서 있었다. 그의 입
에서 안도의 소리가 흘러 나왔다.
“아미타불.....감사합니다. 세존이시여...”
묘한 상황이었다. 처음에는 대 혼전이었다. 아군도 적군도 엄청난 피해를 입고 있었다. 허나 사실 일방적으로 자신들이 몰리기도 했었다. 장창병들이 속절없이 쓰러져 버린 것이었다.
궁격은 예상대로 소용이 없었다. 허나 그들의 진형은 무너뜨릴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집단전보다는 개인전에 더 강했다. 오히려 악수를 둔 것이었다. 지금 양측은 뒤로 물러 오십여 장의 거리를 두고 있었다. 아군측 철갑병이 합류하면서 대열이 정비되었던 것이었다. 누가 뭐래도 숫자는 자신들이 유리했다.
“쿠파 장군님..... 공격명령을 내려 주십시오.
“..........”
“ ?......”
부관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젠 기마대를 필두로 밀기 시작하면 될 것 같았다. 아무리 무림인이라도 저들은 집단전에는 약한 것이 좀 전에 증명되었다. 헌데 쿠파 장군이 명령을 내리고 있지 않았다. 그는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 부관의 눈이 그쪽으로 돌아갔다.
“!”
쿠파장군의 말에 은색기갑을 입은 자가 처참한 모습으로 올려져 있었다.
그도 잘 아는 사람이었다. 서장군을 이끄는 두 사람의 대장군 중 하나인 료직장군이었다. 그는 고개를 떨구었다. 두 사람이 절친한 친구라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그였다.
쿠파는 가슴이 아려왔다 왜 이곳에서 자신이 있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왜 료직은 여기서 저렇게 처참한 모습으로 죽어 있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왜 같은 사람끼리 이렇게 독랄하게 싸워야만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는 고개를 들었다.
“쏴아아아아아”
장대비는 여전했다. 땅바닥은 이젠 흙탕물이나 다름없었다. 전투를 시작한지 얼마나 되는지도 모르겠다. 꽤 시간이 흐른 것 같은데 아침부터 날이 어두웠으니 알 수가 없었다.
“부관.........지금 시간이 어떻게 되나?”
“...? ..... 아 네..... 한 신시(申時:오후 3~5시정도) 중반쯤 되는 것 같습니다. ”
그렇다면 지금 여기에 도착해서 싸운 지, 세 시진쯤 흘렀다는 말이었다.
그 세 시진안에......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다. 이윽고 그의 고개가 앞
을 향했다. 그의 눈이 맑게 빛나고 있었다.
“부관 삼십 장 뒤로 진영을 물려라...”
“?....옛! 장군님”
부관은 기수를 불러 진영을 조절했다. 순식간에 삼십 여장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장창병에게 창대를 땅에 박으라고 해라...”
“ ! 장군님! 그게 무슨 말입니까 무기를 땅에 박으라니요!”
“시키는 대로 해라! 부관!”
쿠파의 눈에서 불길이 일고 있었다. 찔끔한 부관은 뒤로 물러나며 지시를
이행했다.
“저게 뭐하는 짓이야?”
누군가의 입에서 이상한 말이 나왔다. 대치상태에서 저들이 뒤로 삼십여 장을 물러선 것이었다. 기마부대의 공격이 나올 것인가? 허나 그럴 것 같지는 않았다. 돌연 그들의 장창이 땅바닥에 박혀 있는 것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당패성은 그 모습에 눈살을 찌푸렸다.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었다. 정확히 뭐라고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
“허허.... 저쪽의 지휘자가 누군지 모르지만 정말 대단한 자로구나......허튼 목숨을 버리지 않겠다라.....”
묵직하고 창노한 음성이 그의 귀에 들렸다. 청음검성(淸音劍星) 경세진인(經世眞人)이었다. 장문인이 이곳이 직접 온 것이었다.
“아미타불.... 진인께서 좀 쉽게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지금 상황이
어떤지.....”
팔에 면포를 감은 채, 아미의 조일사태가 말문을 열었다. 그녀는 이 상황이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마도 거의 대부분의 무림인들이 같은 생각일 것이었다.
“삼십 여장을 무르고 창대를 땅에 꽂는 다는 것은 싸울 의사가 없다는 뜻이오..... 혹은 적장끼리의 일대일 대결을 원할 수도 있지만 그런 것은 아닐 것 같소...”
전투 의사가 없다? 그럼 지금까지 싸운 것은 도대체 뭐란 말인가? 어쨌든 전투의사가 없다면 그들로써는 잘된 일이었다. 무정의 투혼에 자극받아 뛰어 나온 그들이었다. 실제 전투를 겪으면서 팔이 튀고 피가 흐르는 광경에 모골이 송연해 질 지경이었다. 벌써 몇몇의 사람들은 후미에 박혀서 나오지 않는 사람이 보였다.
“허면, 진인께서는 어떤 생각이십니까?”
조일사태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이곳의 실질적인 책임자는 그였다. 다른 문
파의 장문인들은 이곳으로 오지 않았던 것이었다.
“살생을 막자는데 당연히 그리 해야지요.......... 사태 아미파를 삼십 장 후방으로 물려주시겠습니까? 저희 청성은 바로 뒤로 물러나겠습니다. ............ 그리고 당욱소협, 당문은 어쩌시겠소?”
당패성의 옆에 있던 당욱은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암기도 거의 다 써가는 상황이었다.
“저희 당문도 장문인의 말씀에 따르겠습니다. 당문제자들은 뒤로 삼십 여장을 물러서라!”
당욱의 말을 시작으로 사람들이 썰물처럼 뒤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어느덧 그들은 적군처럼 삼십 여장 뒤로 물러서고 있었다.
당패성의 눈에 저기 적군의 뒤쪽에 멀리 보이는 망루가 눈에 들어왔다. 그 안에 공주가 있을 것이었다. 어느 순간 그의 눈에 체념의 빛이 감돌고 있었다. 못내 아쉬워하는 그였다.
쿠파의 눈에 무림인들이 뒤로 삼십 여장이 물러서져 있는 것이 보였다. 그는 작은 한숨을 쉬었다. 적장도 자신과 같은 생각이 있는 것 같았다. 오래가지 못할 평화라는 것은 그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잠시만이라도 이 어이없는 전투를 멈추고 싶은 그였다.
“아미타불..... 세존이시여......”
명경의 입에서 당혹스런 말이 떠올랐다. 당현과 그의 가신들인 암영이 사라진 것이었다. 또다시 저들의 공격이 시작될 것이었다. 그는 침통한 안색을 굳이 감추려 하지 않았다.
암격제와 암영이 나타났을 때 한줄기 빛이 보이는 듯했다. 그만큼 그들의 무위는 대단했다. 허나 저쪽에서 네 명의 노인이 나타나자 암영들이 그들에게 짓쳐 나가 버렸다. 눈에 살기를 가득 담고서.....
원래 암영은 다섯이었다. 암격제와 색랍사를 칠 때 암영은 사노와 보이지 않는 접전을 벌였었다. 그 와중에 한사람이 죽었던 것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사노를 보자마자 달려 나간 것이었다.
당현은 좀 다른 이유였다. 그는 무정을 지켜줄 생각이었다. 헌데 자신의 눈을 끄는 이상한 느낌이 적의 마차 맨 후위에 있었다. 왠지 위험한 느낌이었다. 그는 문득 뒤를 흘깃 돌아보더니, 그것을 확인하러 달려 나갔다.
무정일행을 놔두고..........
“카악...튓..니기미......”
상귀가 으르렁댔다. 살려줄려면 끝까지 살려 줄 것이지 왜 중간에 그만두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는 장창을 꼭 쥐고 있었다. 이미 저들은 또다시 돌고 있었다. 다른 게 있다면 살기가 장난이 아니었다. 아까와는 비교도 안 되는 살기가 그들의 주위에서 폭사하고 있었다.
겐단타는 서서히 일어났다. 부시독을 바른 그의 비도였다. 허나 그는 중독되지 않았다. 부시독이 아니라 더한 것이라도 중독되지 않았다. 그의 몸이 완전히 일으켜 졌다 양쪽의 견정혈에서 비도가 저절로 뽑혀 나왔다. 그의 몸에서는 피한방울 나지 않았다. 일순 그의 살기가 폭발했다. 그의 입에서 괴성이 들리기 시작했다.
“크아아아아아! 다 죽여버렷!”
그 소리와 함께 이십 여명의 색랍사 승려들이 무정일행을 덮쳐갔다. 상귀와 하귀, 명경은 아찔했다. 더 이상 싸울 힘도 없었다. 이젠...끝이었다.
명각은 최후의 힘을 끌어올렸다. 이마저 쓴다면 자신도 탈진해 버릴 것이었다. 허나 이미 자신들의 일행은 운이 다했다. 그럴 바에는 한명이라도 죽이고 만다는 그의 생각이었다. 그의 내공이 한곳으로 모였다. 장심에서 허연 기류가 형성되면서 앞으로 쏘아질 찰나였다.
“물럿거라!”
“저리 비켜! 이놈들아!”
두 줄기 음성과 함께 두 사람이 무정의 앞뒤에 내려섰다. 그들이 손에서 장력이 줄기줄기 뻗어 나갔다.
“복호장!”
“청음성권(靑音星拳)!”
두 명의 남녀였다. 그들의 손에 짓쳐들던 자들이 뒤로 튕겨져 나가고 있었다. 명각은 눈을 가다듬과 기세를 바꾸었다. 그의 나한권이 다시 한 번 터져 나갔다.
“빠바방”
각기 삼방향을 책임진 그들의 권에 무정일행은 무사할 수 있었다. 명경은 그들을 바라보았다. 청성의 대제자 예음검 유정봉과 아미의 소신니 간명이었다. 그리고 그들을 필두로 아미와 청성의 일대 제자들이 잇달아 도착하고 있었다.
“아미타불.....아아....세존이시여...”
또다시 세존을 찾는 명경이었다. 허나 이번에는 원망스런 목소리가 아니었다. 고마움의 감정이 물씬 묻어나는 그의 목소리였다.
무정은 온몸을 비틀어대었다. 허나 그것은 생각에서였다. 몸은 움직이지 않았다. 다른 힘....무언가 다른 힘이 필요 했다. 그의 동료들이 목숨바쳐 자신을 지키려 하고 있었다. 이젠 ...자신이 움직일 차례였다. 그의 머릿속에서 끊임없는 해결책이 돌고 있었다. 결론은 하나, 다른 힘이 필요했다.
아주 작은, 정말 작은 힘이 필요했다. 그 힘만 있었어도 어떻게든 해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는 힘을 구했다. 몸의 구석구석에서 어떻게든 힘을 짜내려고 했다. 허나....소용이 없었다.
하지만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건 무정이 아니었다. 끝까지 살펴본 곳을 또 살펴보고 또 살펴봤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그러다 그의 정신이 찾아 간 곳은 발바닥까지 훓어 갔다.
‘ ! ’
있었다! 무언가 있었다. 그의 발바닥 밑에서 무언가 있었다. 아주 작은 힘이었다. 구태어 따지자면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 정도...... 그의 정신은 망설임없이 그 힘을 끌어 올렸다. 발바닥에서 발목, 무릎, 허리, 등, 가슴을 휘돌아 오른 어깨, 오른팔, 그리고 손가락...
‘!...’
움직였다. 조금이지만 손가락이 움직였다. 그는 다시 발바닥쪽을 훑었다.
아까만큼의 힘이 다시 있었다. 다시 끌어 올렸다. 그리고는 하단전 쪽으로 보냈다. 놀랍게도 하단전으로 통하는 길이 열렸다. 그의 하단전이 그 힘을 받아 서서히 돌리고 있었다.
갑자기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하단전에서 나오는 힘이 다시 밑으로 스스로 내려갔다. 정신의 통제를 벗어난 것이었다, 무정은 흠칫했다. 이대로 놓쳐 버리는 것은 아닌지 불안했다. 허나 그 힘은 사라지지 않았다
발목부근이 시원해졌다. 그의 힘이 발목부근의 피를 돌리고 있었다. 서서히, 아주 서서히 그러다 점점 속도가 빨라지기 시작했다. 어느새 그의 하단전 부근으로 치달아 오는 힘은 미약하기는 했으나 분명히 살아있는 힘이었다. 더구나 하체가 시원해지면서 그 뒤를 따라 양쪽의 발바닥에서 엄청난 힘이 올라오고 있었다. 삽시간에 그 힘은 단전을 거쳐 가슴어림으로 쳐 올라갔다. 이어 양 어깨에 양 팔에... 그리고는 목을 거쳐 머리까지 쳐올라갔다.
그의 인중이 시원해졌다. 흐르는 빗물에 시원한 것이 아니었다. 지끈한 고통도 사라졌다. 허나 기운이 머리 꼭대기에서 좌충우돌하고 있었다. 엄청나게 뜨워지면서 머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헛헛....무시주, 힘을 찾으셨군요........대단하외다......양 발바닥의 용천혈이라...결국 또 하나의 문을 여셨구료....’
단박에 알아들을 수 있는 목소리였다. 구여신니였다. 그의 머릿속에서 울리는 듯한 목소리였다.
구여신니는 백여장 너머에 있는 무정을 보며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천음전성, 혹은 육합전성이라고도 하는 초 고도의 전음이었다. 그만큼 엄청난 내력이 소모되는 것이었다.
‘무시주, 하지만 백회혈을 열지 못하면 이번에 정말 그대는 죽게 될
것이오....나라도 도와주지 못하오.......’
신니의 목소리가 울렸다. 무정의 정신은 곤두섰다. 누구보다도 자신을 잘 아는 신니였다.
‘지금 보니....바로 열기는 힘들 것 같고........ 이대로는 무시주도 위험하니......백회혈을 잠시 막아 드리리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 것 뿐입니다. 무시주....... 부디 선행을 바랍니다....’
나지막한 목소리와 함께 그의 머리 꼭대기 안쪽에서 무언가 단단한 막이 생겨 나고 있었다. 신니가 내력으로 혈을 막은 기판을 만들어 버린 것이었다. 아주 작은 판이지만 그것으로도 충분했다.
머리위로 치달아 올라가던 그의 힘은 단단한 막이 막아지자 그대로 돌아 내려 오기 시작했다. 똑같은 경로를 거쳐 땅바닥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새로운 내력과 온몸을 돌아 나온 내력이 끊임없이 순환되고 있었다. 머리가 맑은 것이 느껴졌다. 이젠 아프지 않았다.
전보다 몸에 더 힘이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어떤 힘인지 모르겠지만 상당한 힘이 생긴 것을 감지하는 무정이었다.
무정은 눈에 힘을 주었다. 그의 눈이 ......서서히 떠지고 있었다.
신니는 바닥에 주저앉았다. 이것이 최선이었다. 더 이상은 무리였다. 이
미 아홉 개의 문을 열어버린 무정이었다. 이제 하나의 문만 남은 그였다.
자신의 생각이 맞는 지 틀리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으로써는 이게 옳은
선택이라 생각했다. 어쩌면 이 상태로 영원히 평생을 지내게 될지도 모른
다. 그러나 더 이상 그의 신형이 불안에 떨지 않아도 될 것이었다. 스스로
의 힘으로 저 백회혈을 열지 않는 한 그녀의 내기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었다. 온몸이 늘어지고 있었다.
한사람의 불자로서 그는 한인간의 고통을 구했다. 허나 아미의 장문이라는 신분이 그녀로 하여금 아무도 모르게 하기 위해 지금이같은 고통을 감수하게 하고 있었다.
“...........”
저멀리 하늘이 번쩍거리고 있었다. 은은한 뇌성이 귓가에 들렸다. 세찬 빗
줄기는 여전했다. 허나 어두운 하늘과 대조적으로 그녀의 얼굴은 온화하
고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커억....”
“큭...”
상귀와 하귀는 고통을 참지 못하고 짧은 비명을 질렀다. 혈인(血人)이었다. 온몸에 크고 작은 상처가 나 있었다. 다른 문파의 사람들이 도와주기는 했지만 장창을 쓰는 그들에게는 오히려 방해가 되었다. 전혀 호흡이 맞지 않았다. 지금도 창을 놀리다가 한 승려에게 가슴과 배를 얻어맞고 무정의 앞으로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크윽.....니기미...쓰벌.....쓰벌...”
상귀의 입에서 상소리만 튀어나왔다. 절망적이었다. 아미와 청성사람들도 그들의 수장격인 사람들만 제 구실을 하고 있었다. 이미 바닥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다. 다시 수세에 몰리는 것은 .....
시간 문제였다.
하귀는 땅바닥에 얼굴을 쳐 박고 엎드려 있었다.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추접하게 흐르는 눈물을 상귀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다. 대장에게도.....
그는 마음을 독하게 먹었다. 울음을 삼키며 진흙에 묻은 얼굴을 들었다.
흐르는 빗물이 서서히 그의 얼굴을 씻었다.
그의 눈에 무정의 발이 보였다. 철갑을 씌운 오른발이었다. 이젠 죽은 듯....미동도 하지 않는 발이었다. 하귀의 눈이 그 옆의 참마도로 향했다.
바닥에 꽂혀있는 주인 없는 참마..........도?
“ ! ”
하귀의 두눈이 크게 떠졌다. 손을 들어 눈을 비볐다. 참마도의 도 끝에서 빗물이 흘러 밑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참마도가 공중으로 들려있는 것이었다. 반사적으로 일어나면서 대장의 오른손이 보였다. 참마도를 꽉 쥐고있었다. 그는 고개를 더 올렸다. 그리고는 그의 눈이 무정의 눈과 마주쳤다. 무정의 맑고 따뜻한 눈이 하귀의 눈을 부드럽게 바라보고 있었다.
대장의 눈이....... 떠진 것 이었다!...........헌데 갑자기 하귀의 눈이 잘 보이지 않았다. 그는 연신 눈물과 빗물을 빠르게 훔쳐내며 보고 또 보았다.
흡사 빨리 안하면 대장의 눈이 감겨만 있을 것 같았다. 몇 번을 다시 해 봐
도.........대장의 눈은 계속 떠져 있었다.
“엉~엉~.....대에~자~앙”
하귀의 외침이 대지를 울렸다. 고죽노인도, 상귀도, 명각도, 명경도 그리고 전투에 참여하고 있는 청성과 아미의 사람들도, 심지어는 공격하는 적들도 모든 동작을 순간적으로 멈추고 있었다.
명경은 하귀의 외침에 가슴이 덜컹했다. 무정이 죽은 것 같았다. 허나 뒤에 서 있던 그도 무정의 도를 보았다. 굳건히 오른손에 쥐여 있고 이미 땅에서 두 치 정도 떨어져 있었다. 무정이....살아난 것이었다.
“세존이시여...세존이시여....”
명경은 그대로 땅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그 역시 무정의 동료였다. 붉어진 눈시울이 진흙바닥만 쳐다보고 있었다.
상귀는 하귀의 외침에 가슴이 무너졌다. 하귀는 지금 대장의 가슴에 찰싹달라붙어 엉엉 울고 있었다.
대장이 ....... 죽은 건가.......
“ ! ”
상귀의 눈이 부릅떠졌다. 태어나서 이렇게 크게 떠 본적이 없을 것이었다. 대장의 왼손이 하귀의 뒷머리를 쓰다듬고 있었다. 문득 대장의 고개가 약간 움직이는 것 같았다.
대장의 눈이 보였다. 맑고 따뜻한 온기를 담고 있는 그의 눈길과 정면으로 부딪쳤다. 그의 눈에서도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행여나 보일세라 그는 재빨리 뒤로 돌아섰다. 그리고는 아직도 멍하고 서서 있는 적들을 보며 고래고래 소리쳤다.
“크읍....니미....크읍.....쓰벌 이 씨커먼 씁새들아!...크읍.....니들은 다 죽었어! .......크읍....니미...”
울먹이는 목소리로 부르짖는 상귀였다. 그의 오른팔이 두 눈 가에서 주억거리고 있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