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07월 02일
인국공 사태, ‘과정의 공정’ 훼손… 反시장적 ‘결과의 평등’만 외쳐
文정부, ‘대통령 찬스’로 비정규직 문제 인기영합적 접근… 경쟁 따른 차이 외면 ‘평등·공정·정의’ 가치 부정
공공부문 무분별한 정규직화는 ‘방만경영 통제의 원칙’ 깨는 것… 철밥통 보호 아닌 노동유연성 강화할 때
인천국제공항공사(인국공)가 용역회사 직원들을 정규직으로 직고용하기로 한 데 대해 청년들이 분노하는 것은 가뜩이나 좁아지는 취업난에 가로막힌 그들에게 이런 결정이 극도의 ‘불공정’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워야 한다’고 얘기했지만, 청년들에게 기회는 평등하지 않고 과정은 공정하지 않으며 결과는 정의롭지 않았다. 인국공 사태는 문재인 정부의 인기영합적이고 반(反)시장적인 정책이 낳은 결과다.
◇ ‘대통령 찬스’가 부른 불공정
조국 사태가 ‘아빠 찬스’로 불공정의 분노를 자아낸 경우라면 ‘인국공’ 사태는 ‘대통령 찬스’로 불공정의 분노를 자아낸 경우다. 사태의 시작은 문 대통령이 취임 직후인 2017년 5월 공사를 방문해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화를 약속하면서 비롯됐다. 공사가 3년이 지난 지금 이를 기습적으로 이행하겠다고 결정함으로써 문 대통령의 공약이 이행됐는지는 모르지만, 문 정부가 내세웠던 평등·공정·정의의 가치는 자기부정으로 귀결됐다.
우리나라의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처우 차이 및 분절화는 노동시장의 구조적 문제였지만, 문 정부는 비정규직의 철폐와 보호에 대해 인기영합주의적 관점으로 접근해 왔다. 사실 세계 어디도 비정규직 제로의 나라는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의 공공부문과 대기업 정규직은 사실상 해고가 불가능한 종신직이라는 점에서 선진국에서는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이들은 노동시장에서 절대적인 협상력을 갖는 우월적 지위를 누리는 ‘언터처블’한 존재다. 이들이 하청기업이나 영세기업 종사자에 비해 우월한 지위를 누려온 건 당연한 일이었다. 따라서 비정규직의 문제를 논하기에 앞서 과보호된 공공부문과 대기업의 정규직 지위 자체가 원천적으로 불공정하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규제 과잉으로 노동시장의 자유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하위 수준으로 평가된다. OECD, 국제통화기금(IMF), 국제노동기구(ILO) 등 국제기구가 일관되게 우리나라에 정규직 보호를 줄이고 유연성을 도입해 격차를 줄이는 것을 골자로 하는 노동개혁을 권고해온 이유다. 하지만 문 정부는 정규직 과보호를 줄이고 실직자 재교육과 보호 강화를 골자로 하는 ‘유연안전성(flexicurity : flexibility + security)’ 정책을 채택하는 것과는 반대로 기존 근로자 보호 강화라는 길을 걸어 왔다. 과거 노동시장의 경직성으로 경제가 어려웠던 독일, 스웨덴 등 유럽 선진국이 일제히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도입하면서 경제 개혁에 성공한 것과는 달리 문 정부는 반대의 길로 질주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인국공 사태는 문 정부 노동개혁의 부재와 일자리 정책의 실패를 상징하고 있다.
◇ 사라진 기회의 평등·과정의 공정
인국공 사태가 보여주는 가장 큰 문제는 문 대통령의 현장 방문과 ‘비정규직 제로’라는 말 한마디로 파견업체 직원들을 직고용 형태로 전환해 정규직화함으로써 다른 청년들의 취업 기회를 빼앗았다는 것이다. 이는 ‘기회의 평등’ 원칙을 위배한 것이다. 공개적으로 정립된 채용 절차를 무시했다는 점에서 ‘과정의 공정’도 무너트렸다. 이것이 청년들의 분노와 허탈감의 대상이 된 직접적인 이유다.
이는 공공부문 취업을 준비하던 청년들에게 상실감을 안겨주는 것은 물론이고 기존 공사 직원들과도 갈등을 일으켰다. 현재 공사 노조원은 1400명, 정규직으로 직고용된 수는 무려 1902명이다. 기존 공사 직원들은 비정규직으로 근무하다 손쉬운 편승으로 정규직이 되는 과정이 불공정할 뿐 아니라, 직고용으로 늘어난 직원들의 처우를 개선하다 보면 인건비 등이 증가해 기존 직원들의 처우가 나빠지고 회사 수익성도 악화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는 노·노 갈등의 원인을 제공하게 된다. 결국 정치적 인기영합주의에 따른 ‘대통령 찬스’가 정의와 공정의 역방향으로 안내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결과적 평등 = 정의’라는 문 정부의 오도된 철학이 빚어낸 문제이기도 하다.
시장의 다양한 고용 형태는 자율적인 계약의 결과이자 경쟁을 통한 결과여야 한다. 노동시장의 경쟁은 다른 시장의 경쟁과 마찬가지로, 노동의 질을 높이고 경제를 전진시키는 동인이다. 경쟁과 그 결과에 따른 차이가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건 자유시장과 경제의 원리이기도 하다. 이를 무시하고 정치적 논리와 정부의 개입이 판치는 결과적 평등주의는 정의롭지도, 공정하지도 않다.
▲ 인국공’ 사태는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 후 약속을 3년 후 기습적으로 밀어붙인 인천국제공항공사의 용역직원 직고용 조치에 공사 직원들과 청년 취업 준비생들이 반발하면서 발생했다. 공사 노조원들이 지난달 25일 청와대 인근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인국공 사태에 대한 입장과 함께 항의의 뜻을 밝히고 있다. / 뉴시스
◇ 노동시장 갈등과 공기업 부실
인국공 사태는 다른 한편으로는 노동시장 전체의 불확실성과 갈등을 조장할 수 있다. 자신보다 더 좋은 처우를 받는 집단이나 비교 대상이 있으면 모두 직고용 혹은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겠다는 인식을 심어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식이라면 공공부문은 핵심 역량과 무관하게 모든 서비스를 자체 고용으로 해결하게 돼 외부 용역·하청업체는 존재할 수가 없다. 이런 점에서 인국공 사태는 다른 공공부문과 민간 시장에서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원청사업자에게 직고용 과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도록 하는 갈등의 시작일 수 있다.
이번 사태가 확산할 경우 그러잖아도 힘든 공기업의 경영이 더 악화할 가능성도 있다. 공공부문은 인원이 늘어난다고 수입이 덩달아 증가하는 조직이 아니다. 특히 공사의 주 수입원은 면세점 임대료인데,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수입이 급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 사태 회복이 가장 늦을 수밖에 없는 산업으로 해외여행 분야를 꼽고 있다. 공사가 민간기업이라면 생존을 위한 구조조정에 돌입해야 하는 처지인 셈이다. 그런데도 정규직 직원을 두 배 이상으로 늘리는 어이없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공사의 추가 인건비와 복리후생 증가에도 불구, 국가 경제의 부가가치 생산의 증가는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런 조치가 반복된다면 공기업 부실화는 가속화되고 공적 부채는 증가할 수밖에 없다.
◇‘ 방만 경영 통제 원칙’ 폐기
정규직의 과보호로 노동시장이 재편되지도 않을 뿐 아니라 그런 경제정책은 성공할 수도 없다. 우리나라의 공공부문과 대기업의 정규직은 10% 남짓이다. 어느 사회도 해고되지도 않고 성과와 상관없이 처우 받는 철밥통 정규직만으로 구성된 노동시장을 감내할 수는 없다. 특히 글로벌 차원의 4차 산업혁명 등 기술 변화로 노동시장 수요가 급격한 변화를 일으키는 시대가 오고 있다. 이런 변화를 경직된 노동시장으로는 대응할 수는 없다. 시장의 자율과 경쟁이 없는 환경에서는 우리 기업이 고용을 해외에서 일으키는 불행한 선택만 가능해진다. 시장경제에서는 고용의 기회 확대가 노동정책의 근간이 돼야 한다. 기회의 확대가 없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는 로또 당첨과 같은 극히 일부의 행운일 수는 있어도 대다수의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한다.
본말이 전도된 채 정치적으로 진행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는 공사에 대한 ‘방만 경영 통제의 원칙’을 폐기한 것이기도 하다. 정부가 인기영합주의를 통해 국민 부담으로 공공부문 정규직을 무분별하게 늘리는 정책을 쓰는 동안 다음 세대의 일자리는 더욱 불투명해지고 국가의 지속 가능성은 더욱 훼손되고 있다.
이병태 / 카이스트 교수·경제지식네트워크 대표
문화일보
■ 세줄 요약
‘대통령 찬스’와 불공정 : ‘인국공’ 사태는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직후인 2017년 5월 인천국제공항공사를 방문해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화를 약속하면서 비롯. ‘대통령 찬스’에 따른 反시장적 결정은 문 정부가 내세워온 평등·공정·정의 가치에 대한 자기부정임.
경쟁의 원리와 시장경제 : 시장의 다양한 고용 형태는 자율적 계약의 결과이자 경쟁을 통한 결과여야 함. 경쟁과 그 결과에 따른 차이가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건 자유시장경제의 원리임. 정치적 논리에 따른 ‘결과적 평등주의’는 정의롭지도 공정하지도 않음.
인국공과 공기업 부실 : 정치적으로 진행된 인국공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는 ‘방만 경영 통제의 원칙’을 폐기한 것. ‘언터처블’ 철밥통 정규직에 대한 과보호를 줄이고 실직자들의 재교육과 안전성을 강화하는 ‘유연안전성(flexicurity)’ 정책을 채택해야 함.
■ 용어 설명
‘유연안전성(flexicurity)’은 고용의 유연성(flexibility)과 안전성(security)을 조합한 것. 기업에는 해고를 쉽게 하도록 해 경쟁력을 키우고, 근로자에게는 실업급여와 재취업 등 안전망을 제공하는 것.
‘직고용’은 자회사나 용역업체 등을 통하지 않고 직접 채용하는 것. 인천국제공항공사 사태는 용역회사의 파견직원 신분이던 보안검색 요원들을 공사가 ‘청원경찰’ 정규직으로 직고용하기로 결정하면서 문제가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