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성산(980m) ~ 금원산(1,353m) ~ 기백산(1,331m) 산행길잡이
자연휴양림 -(1시간)- 현성산 -(10분)- 서문가바위 -(50분)- 첫 갈림목 -
-(1시간30분)- 금원산 -(30분)- 임도 -(20분)- 시흥골 갈림목 -(40분)- 기백산 - (1시간30분)- 임도 -(20분)- 자연휴양림 약6시간20분 소요
현성산(980m)은 금원산에 딸린 부속산으로 1,200m 대의 어깨를 나란히 하는 기백산(1,331m)이나 금원산(1,353m)과는 높이에서 확연히 구분된다.
현성산은 산 전체가 검은 빛깔을 띤 화강암반을 띤다. 지재미골 농가에서 바라보면 마치 한송이 고운 연꽃봉오리가 산정에 피어올라 하늘을 떠받치는 듯한 모습이다.
경남 거창군 위천면에 위치한 현성산(980m)은 금원산(1,353m)을 모산으로 한다. 금원산 정상에서 북동으로 가지를 치는 능선이 있다. 이 능선은 약 10km 거리인 수승대에 이르러 그 여맥을 위천(渭川)에다 모두 가라앉힌다. 이 능선 상의 976m봉이 남동쪽으로 가지를 치는 암릉 상의 최고봉이 바로 현성산이다.
금원산(1,353m)은 거창군 북상면과 함양군 안의면 사이에 걸쳐 있는 산으로, 남덕유산(1,507m)에서 동남쪽으로 갈라진 능선이 월봉산(1,279m)을 일으킨 후 다시 두 갈래로 나뉘어 동쪽으로 금원산, 남쪽으로 거망산, 황석산을 일으키고 있다.
금원산에서 기백산까지는 4km가 조금 넘는 유순한 능선길, 신작로나 다름없는 부드러운 길을 30분쯤 지나 수망령에서 올라오는 임도의 끝에 잠시 내려섰다 곧 용추사로 향하는 갈림목에 닿는다. '시흥골 입구 2.9km, 기백산 1.5km'. 이곳에서 기백산까지는 40분 거리.
전망 좋은 바위 쉼터가 있고 기백산 정상 앞 화강암 지반을 마치 주정을 빚는 누룩더미 같이 생긴 바위들이 탑을 샇아 올린 듯 포개진 바위봉을 지난다. 속칭 누룩이라 부르는 봉우리다. 누룩덤을 지나 거창군과 함양군의 경계를 이루며 일명 지우산이라고도 불리는 기백산에 닿는다.
예로부터 기백산 산정(山頂)에 뜬 구름, 눈, 비, 바람은 덕유산으로부터 중계(中繼)되어 기백산 주위 거창의 들녘에 날씨를 만든다.
기백산(1,331m) 장쾌한 능선과 넓은 품 자랑
금원산 남릉 상에 솟아 있는 기백산은 남덕유산에서 백두대간과 갈라져 월봉산, 금원산, 황매산, 자굴산 등을 일으킨 다음 남강댐에 잠기는, 도상거리 약 160km 길이의 진양기맥의 주축을 이루는 산봉이다.
'비의 징조를 안다'는 뜻의 '지우산(知雨山)' 이란 옛 이름을 지닌 기백산은 장쾌하고도 조망 뛰어난 능선이자 동서남북 품을 넓게 펼친 장산(壯山)으로도 이름 높지만, 수려하고 자연미 넘치는 골짜기를 여럿 지니고 있다.
용추계곡 지(支)계곡을 이루는 도숫골과 시흥골이 그러하고, 능선 반대편의 한수동계곡은 기백산 북록에서 샘솟는 물을 사철 위천천으로 흘려 거창과 합천의 젖줄 역할을 하고, 금원산계곡으로만 알고 있는 유안청계곡 역시 기백산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여러 가닥 모여들고 있는 것이다.
특히 기백~금원산과 황석~거망산 사이에 형성된 용추계곡은 경치가 아름다워 예로부터 안의삼동 중에서도 으뜸으로 꼽힌 골짜기다. '계곡이 아름다워 진리삼경에 빠진다'는 뜻의 심진동이 본래 이름이었으나, 20여m 높이의 용추폭포 명성 때문에 용추계곡으로 이름이 굳어져 버렸다.
▣ 산과 들의 고향인 거창과 함양을 두루 조망하면서 현성산에서 시작해 금원산을 거쳐 기백산까지 종주산행은 금원산자연휴양림을 기점으로 원점회귀산행을 하는 것이 가장 적합하다.
반대로 기백산을 들머리로 금원산과 현성산을 이으면 조금 더 수월하게 종주할 수 있다. 봄철 당일 산행으로 아침 일찍 산행을 시작하면 시간적 여유를 가지면서 큰 어려움 없이 산행을 즐길 수 있다.
현성산까지는 관리사무소에서 문바위와 마애삼존불을 끼고 곧장 북쪽 능선으로 오르는 길과 지재미골 입구에서 농가 위쪽 밭을 지나 동쪽 능선으로 오르는 길이 있다. 어느 곳으로 올라도 1시간이면 닿는다.
현성산에서 금원산까지는 줄곧 오름길로 중간 중간 세 곳에 자연휴양림으로 내려서는 하산길이 있다.
금원산과 기백산을 이어 다시 자연휴양림으로 내려서는 길은 다소 가파르다.
능선에서는 물을 구할 수가 없기 때문에 계곡이 끝나기 전 넉넉하게 물을 준비해야 한다.
▣ 개념도
▣ 현성산(玄城山•거무시)과 서문가 바위(西門家 바위)
'玄城山(거무시)'는 성스럽고 높음을 뜻한 '감'의 한문표기로 '검을 현'이 되었다. 곧 '검다'의 한문식 이름을 '현성산'이 된 것. 속설에 의하면 현성산 거무시가 검게 보이면 평화롭게, 희게 보이면 난시(亂時)가 된다고 한다.
정상석이 있는 봉우리에서 암릉지대를 지나 북서쪽으로 마주보며 10분 거리에 있는 서문가바위는 재미있는 전설을 전한다.
'옛날 서씨 남자와 문씨 남자 두 사람이 한 여인을 데리고 현성산에 올라 난리를 피해 숨어 살았다. 여자는 두 남자와 살면서 아이를 얻었으나 두 남자 가운데 누구의 아이인지 알 수가 없었다. 할 수 없이 의논 끝에 두 남자의 성을 합친 서문씨(西門氏)로 부르기로 했다. 훗날 사람들은 이곳을 서문씨가 태어난 곳이라 하여 서문가바위라 불렀다.'
전설은 어디까지나 전설, <거창군지>에 따르면 옛날 원나라에서 온 공민왕비 노국대장공주를 따라와서 감음현(지금의 위천면)을 식읍으로 받아 살았던 이정공(理政公 西門記)의 유허지로 그 자손들이 공부하던 곳이다. 소문씨의 관향은 안음으로 지금의 함안군 안의면과 북상, 위천, 마리면을 포함한 옛 고을 이름이다.
▣ 금원산은 옛날 금빛 나는 원숭이가 하도 날뛰는 바람에 마을에 피해를 줘, 한 도승이 그를 잡아 가두었다는 금원암 바위에서 비롯된 전설이 내려온다.
또 그 유명한 유안청폭포는 조선조 유생들이 지방 향시를 목표로 수련했던 공부방 격인 유안청이 자리잡고 있던 곳인데, 이태가 쓴 <남부군>에는 '기백산 북쪽 기슭 어느 무명골짜기에 이르러 오백여명의 남부군들이 남녀 모두 부끄럼도 모르고 옥 같은 물속에 몸을 담그고 알몸으로 목욕하였다'는 곳이기도 하다.
* 드라이브 코스
※ 거창 현성산으로 가는 코스는 대전~통영간 고속도로를 이용, 무주나들목을 빠져나가는 길을 이용하면 된다. 무주나들목을 빠져나와 무주공설운동장 앞을 지나 30번 국도를 따라 설천을 지나 나제통문을 빠져나간 다음, 무풍에 이르러 30번 국도를 버리고, 오른쪽 1089번 지방도를 타고 대덕산과 삼봉산 사이 백두대간을 넘어 12km 거리인 고제면 소재지에 이르면 된다.
※ 또는 설천에서 나제통문을 빠져나가기 전 삼거리에서 오른쪽 덕유산으로 들어가는 37번 도로를 타고 신풍령을 넘어 고제면에 이르는 코스도 괜찮다. 고제면에서는 면사무소 앞을 지나 약 2분 거리인 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갈라지는 37번 국도를 타고 마리면 율리 장풍 삼거리에서 오른쪽길로 위천에 이르면 된다.
※ 또는 대전~통영 고속국도 육십령터널을 빠져나가 15분 거리인 지곡나들목을 빠져나와 거창, 안의 방면 24번 국도를 탄다. 약 20분 거리인 마리파출소가 보이는 마리삼거리에 닿는다.
마리삼거리에서 왼쪽 37번 국도로 들어가 6~7분 거리에 이르면 장풍삼거리에 닿는다. 장풍삼거리에서 왼쪽 길로 들어가 3분 거리에 이르면 위천 SK주유소 앞 삼거리가 나온다.
여기서 '금원산 자연휴양림 4.5km' 라고 쓰인 안내판이 있는 왼쪽 길로 들어가 5분 가량 주행하면 금원산 자연휴양림 매표소에 닿는다.
주차는 매표소를 지나 다리 건너 왼쪽 주차장을 이용하면 된다.
* 주변 볼거리
▣ 정온선생 고택 :
위천면 소재지 면사무소를 지나서 200m 지점, 수승대 가는 다리 직전 왼쪽으로 강동마을 입구에 있다. 이 집은 정온(1569~1632) 선생의 생가로 그의 후손들이 그의 생가를 1820년애 중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집에서 주목되는 점은 두 줄로 된 겹집이며 전퇴를 두었다는 것과 내루에 눈썹지붕이 따로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안채도 남향인데, 정명 8칸, 측면 3칸 반의 전후퇴 있는 두 줄의 겹집으로 사랑채의 명면구성과 함께 주목된다. 게다가 거창은 남쪽 지방인데도 북쪽 지방에서 많이 보이는 겹집의 형태를 갖추고 있지만 안채나 사랑채는 기단이 낮은 반면 툇마루가 높게 설치되어 남쪽 지방의 특색에서 벗어나지는 않았다. 학술적 가치는 집 전체의 평면구성에 있다.
▣ 황산마을 돌담길 :
위천면 수승대 매표소 맞은편 황산전통가옥 민박마을 내에 위치한다. 18세기 중엽에 황고 신수이가 입향하면서 번성한 거창신씨 씨족마을로, 마을의 생성은 16세기 초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조선시대 영조 이후 인물이 연이어 배출되었다고 전해진다.
마을 어귀에는 군 보호수로 지정된 폭 5m, 높이 15m 이상의 수령 600년에 달하는 고목이 있어 마을의 역사를 증언하고 있으며, 마을 내 주택들은 대개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건립된 것으로 한말과 일제강점기 지방 반가의 건축양식을 잘 보여준다. 규모와 형식면에서 월등함을 보여주는 전통마을로서 가치를 더해주고 있다.
마을 전체는 약 50여 호로 이 마을의 담장은 하부가 돌담구조인 토석담으로 이 길은 1200m에 이른다. 대부분 자연석으로 메쌓기 방식으로, 담 안팎으로 진흙과 교대로 쌓아 올렸고, 대부분 담장 상부에는 한식기와를 이었다. 또한 근년에 쌓은 담장은 기존 담장과 달리 엇쌓기를 하였다. 전반적으로 전통고가와 어우러진 활처럼 휘어진 전통 담장길은 매우 고즈넉하고 아늑한 느낌을 주고 있다.
▣ 가섭사지 문바위와 마애삼존불 :
상천리 점터마을 지나 지재미계곡 삼거리에서 10분 거리인 가섭사지의 문바위는 높이 20m, 폭 20m가 넘는 거대한 바위로 사람이 오를 수 없는 바위 위에 돌탑이 십여 개 있어 눈길을 끈다.
문바위에서 북쪽의 돌계단을 따라 50m 거리에 위치한 마애삼존불상은 자연석국 안에 조각되어 특이하다. 보물 530호인 마애삼존불은 흘러내리는 빗물이 양쪽으로 피해서 흐르도록 조각된 고려초 불상이다.
▣ 수승대 국민관광지 :
덕유산국립공원이 빚어놓은 거창 제일의 유서 깊은 명소인 수승대는 삼국시대 백제에서 신라로 사신을 보낼 때 이곳에서 송별하여 수송대라 하였다. 그후 조선 중종 때 퇴계 선생이 산자수려함을 격찬하며 수승대로 고칠 것을 권하는 시 한 수를 보내자 바위에 수승대라 새김으로 오늘날 수승대라 부르게 되었다.
서원과 정자들이 주변의 수려한 경관과 한데 어울려 선경을 연출하고 있으며, 특히 가족 단위 관광객에게 인기를 끄는 야외수영장과 야영장 그리고 각종 놀이시설이 완비되어 있으며 매년 8월 초 '거창 국제연극제'를 개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