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캄한 동굴을 빠져나와 살아남은 자들은
창백한 얼굴로 땅 속의 검은 색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탄가루 거뭇거뭇 날리던 태백의 비탈 아래 흰꽃을 피우며 줄기줄기 뻗어갔던 어두운 이야기를
그날도 채탄공인 아버지는 흔들리는 화차를 밀며 깊은 갱도로 내려갔다
아버지의 눈엔 온통 검은색이 보였고
이명속 암반을 뚫고온 기계음
무너진 동굴을 밝히는 손전등
머리통 옆이 찌그러진 안전모가 있었다
절반이 잘려나간 병창 아래 석탄가루가 날렸고
그 색은 감자꽃이 하얗게 펴도 가려지지가 않았다
나비처럼 지워진 폐사진 속에는
'딩신을 따르겠습니다 '
감자의 꽃말이 숨어 있었다 아버지는 그 진폐의 검은 색을 가슴에 품고
평생을 숨죽여 살았다
어둠도 태백에 이르러서야 둥근 줄기가
되었다 감자는 땅 속 면적을 넝쿨져 늘리며
소문을 덮고 사라진 욕망을 땅위로 피어내었다
반쯤 헤쳐진 감자밭엔 호미자루가 나뒹굴고
폐광을 알리는 칡덩쿨은
녹슨 곡괭이 자루를 끌고 말없이 산등성을 기어 오른다
이곳 태백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이야기는 제법
알이 굵다
소문으로 무성한 말들을
한 입 베어 물어 이야기로 뱉어내면
돌돌 구르는 감자들이 하얗고 퍽퍽하게 목이 메어온다
카페 게시글
우리들의 이야기
감자의 색상
보들레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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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9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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