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해 출신인 김탁환 소설가가 그의 엄마와 함께 진해의 골목들을 걸으며 써내려간 에세이집이다.
송성일씨가 최만억씨 부인인 해숙씨와 나, 진해가 고향인 사람들과 함께 읽자고 건네 주었다.
진해에 별다른 추억이 없는 사람들에게 진해에 가보고 싶은 충동을 일으킬만큼 자극적인 이야기도 신기한 이야기도 없다.
나는 잠오지 않는 밤 새벽녘까지 단숨에 읽었다. 내용에 집중하기보다는 나의 기억들을 떠 올리며
18년 동안 진해에 살았지만 말 잘듣고 호기심마저 없는 나는 진해를 속속이 다녀본 기억이 없다.
흑백다방도 나중에 진해를 배경으로 한 영화를 보면서 알았고, 고급 빵집이었던 백장미는 부러움에 찬 시선으로 가게 앞을 지나가기만 했지 아주 가쁨 여고 때 백장미 곰보빵을 한 입 얻어 먹고는 고급스러운 미감이 오래 남았던 기억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진해를 떠나 온 뒤 군항제 기간엔 복잡하다는 이유로 한번도 진해를 방문하지도 못했다.
군항제 기간 중에는 여고생들에게 진해 전체가 우범지역이라 부모님 동행없이 외출 금지 구역이었다. 나는 말 잘듣는 여고생이었기 때문에 교칙을 어기면서 친구들과 거리를 방황하는 일이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군항제 기간에 한복을 입고 강강수월래 행사에 참여했고, 의장대 총검술을 보면서 굳어있는 군인 아저씨의 표정과 긴장된 분위기 때문에 저거 하려고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런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난다.
늘 친정인 진해 방문은 하룻밤 자고 다시 돌아오기 바빴다. 작년이었던가 남편과 이틀 여행 계획을 잡고 진해 여고도 둘러보고, 해상공원, 웅천요, 김달진 생가 이런 관광지로 새롭게 개발된 진해를 둘러보았다. 내가 어렸을 때 기억이 많이 있는 웅천은 바다가 메워지고 전혀 다른 지형으로 바뀌버렸다.
토요일 저녁에 '라이언'이란 제목의 영화를 봤다. 실화를 바탕으로 호주로 입양된 인도 소년이 20년 전의 고향찾는 이야기이다. 구글 지도를 통해 집을 찾게 되었지만 내가 느낀 건 변하지 않은 고향 덕분이라고 생각했다.
전에 시부모님께서 사시던 집에 오면 과거가 그대로 멈춰버린 듯했다. 남편이 자취할 때 쓰던 깨어진 작은 거울도 늘 그자리에 걸려있고, 쓰레기통에서 주워와서 쓰던 시계도 계속 그 자리에 걸려있었다. 이제 그 집은 흔적도 없이 없어졌지만 지금 사는 집으로 옮겨와서 자리를 지키는 물건들이 아직도 시아버님을 기억에서 떠올리게 한다. 화장실에 걸려있는 수건 밑에 아주 오래 전 칠순잔치 기념으로 이름이 새겨진 글자와 숫자를 보면서 아버님께서 그 날 잔치에 다녀오셨겠지. 이제는 아버님도 잔치의 주인이었던 그 분도 이 세상에 안 계신데 수건만 남아서 매일 우리의 살갖을 만져준다. 그래서 발전과 개발도 좋지만 추억이 오래 남아있었음 좋겠다.
엄마의 골목을 읽으면 내가 갖고 있는 진해에 대한 추억, 나는 우리 아들들에게 어떤 엄마로 기억될까?, 우리 부모는 나에게 어떤 기억으로 남아 있는가? 나의 삶의 궤적들 진해에서 서울로 화곡동에서 회기동으로 오간 시간들, 부천에서 자리잡고 살던 때, 의정부로 옮겨와서 아이들을 기르면 그 곳을 아이들의 추억이 가장 많은 곳으로 살았고, 이제는 춘양 서동으로 와서 낯선 사람들과 이 거리들을 오가며 살아가는 나의 골목들은 어떤 모습들일까?
이런 생각들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