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읽은 책에서 저자는 자신의 이야기를 이렇게 적었다.
내 경험을 나누고자 한다. 오래 전 내가 젊은 시절, 재림교회의 한 대학에서 교수로 있을 때였다. 어느 이른 아침 다른 사람이 출근하기도 전, 나는 연구를 위하여 내 집무실로 갔다. 그런데 액자에 적힌 엘렌 G. 화잇의 글귀가 눈에 확 들어오는 게 아닌가. 마치 나를 위한 그림을 그리듯 예수님의 희생을 그렇게 그려낸 글이었다. 나를 위해 잔인한 고난도 마다않으신 그리스도를 묘사하고 있었다. 그분의 머리와 손발은 다름 아닌 나를 위해 상하신 것이었다. 엘렌 화잇은 나의 시선을 “아버지께서 얼굴을 숨기심으로 그분의 영혼에 가득한 말할 수 없는 고뇌”로 향하게 하였고, 나는 그것은 내 죄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마침내 그 고통이 점점 세게 현실로 다가오더니 화잇 여사는 그 글을 읽고 있는 나를 향하여 이렇게 외치는 것 같았다. “하나님의 아들이 이와 같은 죄악의 짐을 지기로 동의하신 것은 다 그대를 위함이다. 그대를 위하여 그분은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시고, 낙원의 문을 여신다”(소망, 755~756).
그때 나는 그 자리에서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그 문단을 끝까지 읽으려 했으나 더 이상 보이지가 않았다. 눈물은 고통과 슬픔의 바다가 되고 말았다. 하지만 거기에는 위로가 있었다. 나는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격하게 들썩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고는 큰 소리로 외쳤다. “왜죠, 주님? 왜 주님은 나를 이토록 사랑하시는 건가요? 내가 도대체 누구기에 주님은 나를 위해 자신을 포기하셨단 말입니까?”
나는 그날 아침 눈물샘이 마를 정도로 울고 또 울었다. 그제야 내 구주, 내 주인, 내 하나님의 사랑을 온전히 이해하게 되었다. 나는 과거 수년 동안 목회자였고 성경을 가르치는 교사였다. 교회 안에서 자랐기에 죄인을 위한 그리스도의 사역에 대해 늘 접하였다. 수백 명의 사람들을 십자가 아래로 인도하였다. 게다가 그 문장은 전에 몇 번이나 읽었던 그런 문장이었다. 그러나 그날 아침, 하늘은 창문을 열어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하는 빛을 홍수처럼 쏟아 부었고, 나는 압도당하고 말았다.
나는 한 시간은 족히 사무실 바닥에 그대로 주저앉아 있었다. 다름 아닌 나의 죄가 예수님의 죽음의 원인이라는 사실, 그 죄가 주님께 무엇을 행했는지 전혀 개의치 않고 제멋대로 죄를 짓고 있었다는 사실,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하신 것을 온전히 인식하지 못한 채 오랫동안 살았다는 사실에 대하여 슬픔이 밀려오자 울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어떻게 하늘의 하나님이시요, 왕의 왕, 주의 주이신 분께서, 우리의 호흡에서부터 영원한 생명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주시는 그런 분께서 나를 위해 그분의 생명, 그분의 모든 것을 내 놓으실 수 있었단 말인가?
사실 그대로 말하자면, 나는 그날 하나님의 사랑에 완전히 사로잡혀서 한동안은 말도 할 수 없었고 움직일 수조차 없었다. 감사하다고 말하는 것이 오히려 불경스럽게 느껴질 정도였다. 나의 거룩하신 하나님이 나를 위해 그분 자신을 주셨다니! 나는 주님께서 그만하시기를 조용히 기도드렸다. 나를 위한 그분의 은혜를 더 알게 된다면 도무지 그 은혜를 다 감당할 수 없어 폭발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내가 진정된 후에 어떤 행동을 했을 것이라고 독자는 생각하는가? 전과 마찬가지로 부주의한 삶으로 되돌아갔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세속적인 사물에 관심을 기울였을까? 전혀 아니었다. 나는 주님께 전적으로 내 삶을 맡겼다. 과거에는 그 정도로 굴복해 본적이 없었다. 나는 주님께 말씀드렸다.
“주님, 저를 이처럼 사랑하신다니요. 하지만 저는 그 사랑을 받을만한 자격이 없습니다. 앞으로도 그런 자격을 갖추지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제게 하셔야 할 것이 있다면, 그렇게 해 주십시오. 저는 전적으로 주님께 맡기겠습니다. 제 모든 것을 주님 앞에 내어놓는 것은 저의 특권이자 영광입니다. 저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제 주님은 저의 모든 것입니다. 주님은 저를 진정으로 가치 있는 존재로 대하시겠다고 선택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