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지오 교본 해설 - 제9장 레지오 단원과 그리스도 신비체
1. 영적 독서 : (범위) 교본 84 쪽 첫째줄 ~ 84 쪽 16째줄
맨 처음 레지오 단원들이 가진 회합에서는 그들이 시작하고자 하는 봉사 활동이 단순한 선행의 차원을 넘어서서 초자연적인 성격을 지녀야 한다는 점이 강조되었다. 레지오 단원이 사람들을 접촉할 때에는 당연히 친절해야하나, 단지 그 정도에 머물러서는 안 되며, 그들이 만나는 사람들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뵐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너희가 여기 있는 형제 중에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40) 하신 주님의 말씀에 따라, 그들이 활동 중에 만나게 되는 사람들, 특히 가장 약하고 미천한 이들에게 베푸는 것이 바로 우리 주님께 베풀어 드리는 것이라는 점을 인식하도록 했다.
2. 교본 해설 : (범위) 1. 이 교리는 레지오 봉사의 기초이다 - 전체
세계 최초의 레지오 마리애 회합에서 시작기도와 영적 독서 후 장차 수행할 사업으로 성 빈첸시오의 애덕 자매회에서 운영하는 더블린 구호병원을 둘씩 짝지어 방문하는 것으로 정하였다. 단원들은 활동에서 취해야 할 정신 자세를 논의하였다.
단원들이 방문하는 사람들 하나 하나에게서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대면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맨 처음에 가진 회합에서는 그들이 바야흐로 착수하고자 하는 봉사 활동의 초자연적 성격을 강조하였다. 레지오 단원이 그 대상자들에게 접촉할 때에는 상냥하고 친절해야 하지만 그 동기가 평범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들이 봉사하는 모든 사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뵙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너희가 여기 있는 형제 중에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 40)고 하신 주님의 말씀에 따라 단원들이 다른 사람에게 - 가장 약하고 미천한 사람들에까지 - 해 주는 것은 우리 주님께 해 주는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이다."
또한 맨 처음의 회합에서 강조한 그리스도 신비체 교리의 초자연적 동기가 레지오의 봉사 활동뿐 아니라 레지오의 규율과 내적인 조화, 그리고 단원들 사이의 관계에 있어서도 기본 원리가 되어야 한다면서 이 원리가 상훈에도 포함되어 매월 쁘레시디움 회합에서 읽도록 한다고 했다.
교본 본문은 교회와 결부된 그리스도의 신비체 교리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며 만물을 완성하시는 분의 계획이 그 안에서 완전히 이루어진다(에페 1, 22-23). 그리스도는 신비체의 머리 곧 중요하고도 없어서는 안될 완전한 핵심부이다. 이 핵심부로부터 그 몸의 모든 부분은 힘과 생명을 분배받는다. 세례성사를 통하여 우리는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친밀한 관계로 그리스도와 결합한다.
그러므로 그 지체들과 머리의 사이, 그리고 각 지체들 사이에는 서로
사랑하고 봉사해야 하는 신성한 의무가 생긴다.“
레지오 교본 해설 - 제9장 레지오 단원과 그리스도 신비체
1. 영적 독서 : (범위) 교본 88 쪽 첫째줄 ~ 88 쪽 16째줄
성모님은 아들이신 예수님을 실제로 기르고 보살피고 사랑하는 일을 직접 맡아 하셨다. 지금도 성모님은 가장 미소한 형제로부터 신분이 높은 사람에 이르기까지 그리스도 신비체의 모든 지체들을 일일이 돌보는 일을 하고 계신다. 그러므로 ‘모든 지체가 서로 도와’(1코린 12,25) 일치를 이룰 때, 우리가 혹 무지하거나 소홀하여 성모님의 존재를 미처 깨닫지 못할 경우가 있더라도 결코 성모님과 떨어져서 독자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신비체를 위해 온 힘을 쏟으시는 성모님의 일에 지체로서 자신의 노력을 합치는 것이다.
성모님은 이미 신비체의 지체들을 보살펴 오셨다. 예수님을 잉태하신 순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성모님은 이 일을 하시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쁘시다. 그러므로 엄밀히 말하자면, 레지오 단원들이 성모님께 도움을 청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성모님이 당신의 일을 도와 달라고 단원들을 부르시는 것이다.
2. 교본 해설 : (범위) 2. 성모 마리아와 그리스도 신비체 - 전체
레지오 단원은 마리아와 더불어 신비체에 봉사해야 한다. 마리아는 예수님의 구원 사업을 세상에 확장할 협조자를 찾고 계신다. 레지오 단원은 신비체의 지체들을 모성애로써 보살피시는 마리아의 도구가 되고 협력자가 되어야 한다.
교본 본문은 마리아와 그리스도의 신비체에 있어서 레지오 단원의 역할과 본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역설하고 있다 :
신비체의 다른 지체들에 대한 봉사를 할 경우에 레지오 단원들이 성모님을 모시고 가서 그들을 도와 주시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성모님이 당신을 도와줄 단원들을 부르시는 것이다. 이웃을 위해 봉사한다고 하면서도 마리아의 지위와 특전을 축소시키거나 성경을 받아들인다고 하면서도 하느님의 어머니를 무시하는 사람들에게도 이 신비체 교리는 유익한 가르침을 준다.
그러한 사람들에게는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어머니를 사랑하고 어머니께 순종하셨다(루가 2, 51 참조)는 점과 그리스도가 당신 어머니께 보이신 모범을 그리스도 신비체의 각 지체가 따라야 한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주어야 한다. 머리이신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어머니께 바쳤던 그 숭고한 사랑과 순종은 신비체에서 그대로 재현되어야 한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사랑과 순종을 특별히 본받는 것은 레지오 단원의 본분이요 의무이다.
그리스도의 신비체 안에서 레지오 단원들이 지닌 특별 임무는 다른 지체들을 인도하고 위로하고 깨우치는 일이다. 그러한 임무를 잘 수행하려면 그리스도의 신비체인 교회의 모습을 깨닫지 않으면 안된다. 교회의 지위와 특권, 일치, 권위, 발전, 수난, 기적, 승리, 은총을 베푸는 일, 죄의 사함 등을 납득할 수 있으려면 그리스도께서 교회 안에 살아 계시고 교회를 통하여 당신의 사명을 계속하신다는 사실을 이해해야만 한다.
레지오 교본 해설 - 제9장 레지오 단원과 그리스도 신비체
1. 영적 독서 : (범위) 교본 91 쪽 26째줄 ~ 92 쪽 10째줄
레지오 단원은 활동 중에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데, 특히 고통받는 이들과 긴밀히 접촉하게 된다. 그러므로 단원들은 세상이 ‘고통’이라고 하는 문제에 대해서 깊이 알고 있어야 한다. 평생 동안 고통의 짐을 지지 않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 그러나 모두가 고통을 거부하며 고통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 친다.
그러다가 혹 그것이 불가능한 일임을 알게 될 때, 영혼은 때때로 고통에 짓눌리고 급기야는 좌절하게 되며, 구원 계획도 차질을 빚게 된다. 옷감을 짤 때 씨실과 날실이 교차하며 서로 보완하듯이, 모든 성공적인 삶에도 고통의 자리가 있게 마련이다.
현실의 고통이 인간의 삶을 가로막고 방해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인간은 이 고통을 통해서 완성에 이른다. 성서의 가르침대로,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을 특권뿐만 아니라 그분을 위해서 고난까지 당하는 특권, 곧 그리스도를 섬기는 특권을 받았으며“(필리 1,29) 또한 ”우리가 그분과 함께 죽었으니 그분과 함께 살 것이고, 우리가 끝까지 참고 견디면 그분과 함께 다스리게 될 것“(2티모 2,11-12)이기 때문이다.
2. 교본 해설 : (범위) 3. 신비체 안에서 겪는 고통 - 전체
레지오 단원들은 봉사 활동으로써 고통받는 사람들과 잦은 접촉을 하게 되므로 고통의 의미에 대해 깊이 알아두어야 한다. 그러기에 레지오 단원들은 고통의 의미를 잘 깨달아 고통받는 신비체의 지체들을 위로하고 격려해 주어야 한다. 그렇게 할 때 고통은 은총이 되고 전화위복이 될 것이다.
신비체 안에서 겪는 고통에 대해 설명한 교본 본문을 요약해 보자 :
고통은 인생의 길을 가로막고 방해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고통이야말로 인생을 완성시키는 구실을 한다. 이 점에 대해서는 성서의 여러 곳에서 가르쳐 주고 있다
(필립 1, 29 ; 2디모 2, 11-12 참조)
십자가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죽는 순간을 표상한다. 우리 구원을 위해 십자가에서 흘린 예수님의 고귀한 성혈은 신비체를 통해 미세한 부분에까지 전달됨으로써 영혼들을 그리스도와 닮게 해 준다.
모든 그리스도교 신자는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가 좋아하는 면만 빼내어 고를 수 없음을 깨달아야 한다. 예수님과 성모님의 성심처럼 환희와 영광뿐 아니라 고통도 받아들여야 한다. 고통의 인간으로서 그리스도와 나란히 걷지 못하는 사람은 영혼들에 대한 그리스도의 사명에 아무 구실을 할 수 없다. 고통은 단순히 죄에 대한 벌이 아니며 치유와 힘을 주고 그리스도를 닮게 해 준다. 고통의 의미를 터득하면 그 고통은 기쁨으로 바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