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운문학상 수상작
■詩낭송■
전쟁과 평화가 있는 내 부엌 / 신달자 (낭송 송연주)
놀라지 마세요
내 부엌에는 물과 불이 있어요
얼음과 숯불과 영하 20도와 영상 20도가 살아요
58도의 독한 술과 13도의 순한 술이 있어요
냉동고에는 치미는 전쟁과 평화가 있는 내 부엌
분노와 살인적 치욕이 멈춘 채 정지되고
세상에 새면 안 되는 급 비밀이 급 냉동되어 무표정하게 굳어있고
하나의 서랍엔 비상약이 수북하게 약 주인을 향해 위협적으로 수군거리고
한주먹 털어 넣으면 영원한 안식으로 가는 약이 밤마다 눈인사를 하고
다섯 개의 칼이 번뜩거리며 용도를 기다리며 있고
한방이면 돌도 깨어지는 쇠뭉치방망이가 있고
잘게잘게 찢을 수 있는 날선 가위가 3개
쇠구멍도 뚫을 수 있는 장비가 다섯 개
이름도 예쁜 레몬 에이드 주방세제의 거품은 저를 닦진 못하고
페녹시에탄올 구연산 나트리움은 내 밥그릇에 얼룩을 남길 것 같고
늘 물이 끓고 있어요
어쩌다 기름이 끓기도 하지요 굵은 소금이 슬쩍 쳐다봐요
금방이라도 산 생선이 푹 익는 300도의 끓는 물
가축 뼈를 우려내 밤새 우려내 그 물을 마시면서
쌀도 푹 익혀 잘게 잘게 씹어 먹는 내 부엌
누르면 불이 되는 인덕션 옆에는 뼈도 가루가 되는 믹서기가 돌지만
공포와 두려움은 없어요 잘 길들여져
평화롭게 먹고 마시는 내 부엌
이런게 삶?
전쟁공부에서 많이 보았던 풍경?
박수근화백의 엽서 속 소가 보는 앞에서 소고길 잘게잘게 다지는 도마 위
밥이 다 되면 전기솥이 푸우욱 치솟는 연기가
극초음속 마하10 탄도 미사일이라고 생각하는
이 전쟁의 핵심은 오늘도 먹는 일
먹을 걸 만드는 일......
밤늦도록 평화로운 공포 속
어둠 내리면 붉은 태양 같은 따뜻한 불이 켜지는 내 부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