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드나무

[sunjusong]

버드나무

송선주

딸네 식구들이랑 여행을 떠났다. 최종 목적지는 Grand Teton과 yellow stone이다. 딸과 사위가 번갈아 운전하며 라스베이거스에서 하루 밤을 보내고 다음날 또다시 여섯 시간을 운전하여 유타로 갔다. 가는 길은 TV에서만 보던 붉은색 기이한 절벽과 아치들이 예술작품의 전시장을 방불케 했다. 하나님의 걸 작품들이다.

유타에서 아이들 친구 집에서 이틀을 머물게 되었다. 딸이 결혼하여 스페인으로 신혼여행을 다녀오자마자 사위와 의료 선교하러 괌으로 떠났다. 마침 그들도 선교를 와 만났다. 미국인 금발의 아름다운 부인 미셀과 타일 랜드 남편사이에 아들 둘 딸 하나를 둔 다복한 가족이다. 그 아이들이 나에게 “선주그랜마grandmother”라고 부르는 호칭이 정감이 있다. 미셀 남편은 안과전문의인데 유타 어느 대학에서 교수로 있단다. 집은 지하 일 층하여 삼층집인데 우리가 가는 날 에어컨이 고장이 나 우린 그나마 시원한 지하에서 묵었다. 잠을 설치며 새벽부터 우릴 위해 준비한 밥이 죽도 밥도 아니라 민망해하며 한바탕 웃었다. 그곳에 새로 생긴 대형한국 H마트에서 콩나물을 구입하여 만든 셀러드도 아삭하니 먹을 만했다. 뒷마당에 가득열린 노란 살구로 만든 그녀의 파이가 달큰하게 입안에 감돈다.

동네어귀에 하늘에 닿을 듯 버드나무가 줄지어있다. 나무이파리가 한 잎 한 잎이 실 바람에도 바람개비처럼 팔랑인다. 어린 시절 동네 어귀부터 줄지어 서 있던 그 나무다.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쭉쭉 뻗어 있는 모습이 얼마나 반가웠는지. 플라타너스나무에 부엉이가 집을 짓고 밤의 활동을 위하여 낮에 잠을 자고 있었다.

지금은 고국을 방문해도 버드나무를 볼 수가 없다. 가로수도 유행이 있는지 버드나무가 사라지고 한동안은 거리가 은행잎으로 황금융단을 깐듯했다. 언젠가부터 연분홍 벚꽃나무가 산천을 채색하고 이팝나무가 몽실몽실 탐스럽게 만발했다. 다양한 가로수로 자연과 도시가 조화롭게 공존하는 변화가 새롭다.

어린 시절 소풍을 가던 곳, 강가에 버드나무가 촘촘히 우거져 선생님들이 숨겨둔 보물찾기를 하기도 했지. 엄마가 정성껏 싸준 김밥과 삶은 계란을 먹고 사이다도 마셨어. 어김없이 아이스깨끼 장사가 나타나 빨강 파랑 물들인 얼음과자로 동심을 흔들기도 했지. 어느 해는 돌아 올 무렵에 가져간 물을 다 마셔 웅덩이에 물을 마셔 소동이 일어났지. 그 속에 개구리 알이 있어 집에 와서 회충약을 먹고 난리가 아니었어.

여름방학엔 버드나무 그늘에서 방학숙제로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곤충채집한다고 매미도 잠자리도 잡기도 했지. 방학 때면 대구에 사는 아들만 여섯인 큰 삼촌네 아이들이 큰집인 우리 집에 와 떠들썩했지. 할머니랑 어린동생과 나는 그늘에서 노는데 엄마와 언니가 더운데 밥해 먹이느라 땀을 흘리며 고생 하던 게 생각나네. 내 또래 사촌은 내가 아끼던 크레용을 함부로 사용하여 분질러 속상해 하기도 했지. 미루나무에 매미가 요란히 노래 할 때면 6‘25전쟁에 돌아가신 할아버지 제삿날이 있어 고모 삼촌들이 모여 온 집이 부산스러웠다.

버드나무를 아스핀트리라고 부른다. 버드나무도 여러 종류가 있다. 우리가 어릴 때 보던 버드나무는 잎이 약간 두껍고 반질거린 반면 이곳 나무는 이파리에 엷은 지문 까지 드러나 있다. 사막 지대가 많은 캘리포니아와 달리 전나무와 아스핀트리가 즐비하여 달리는 내내 풍경에 도취했다.

주가 바뀌면서 한 시간 더 여유가 있는 유타를 지나 그랜드 티톤을 가기까지 수시로 날씨가 바뀌었다. 검은 구름이 금 새 비를 뿌리고 천둥과 번개가 번쩍이니 운전하는 동안 시원해서 좋았지만, 라스베이거스 가는 길에 회오리바람으로 긴 트레일러가 두 대나 쓰러져있어 긴장도 됐다.

아이들이 테슬라 사이버 트럭을 새로 구입해 타고 갔다. 세 시간마다 전기 충전소를 찾아 다녔고 충전하는 동안 긴 여행에서 쉬엄쉬엄 스트레칭도하고 쇼핑도 했다. 손녀 둘은 뒷자리에서 할머니랑 앉아 손 놀이 ‘보리밥 쌀밥’ ‘이 거리 저 거리 각거리’ 등 깔깔 웃으며 이야기도 하고 지루하면 pc에 열중했다. 케이블카로 내려다본 만 피터 이상 높은 산에 하얀 눈, 잔디밭에 방목한 말들은 가까이 다가 와 눈을 맞춘다. 평화롭고 아름다운 Jackson Hole에서 삼박사일은 영원히 남을 추억이다. 칠박팔일의 이천 마일을 달려 무사히 여행을 마치고 감동을 안고 귀향했다. 햇살에 윤슬처럼 반짝이던 버드나무와 함께 “겨울에 또 오세요. 눈이 오면 별천지예요.”하던 그랜드 티톤 에서 만난 친절한 여인이 그리워 질 것이다.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인연을 만나기도 헤어지기도 한다. 좋은 사람들과 인연은 행운이다. 아름다운 인연을 만들려면 서로 신뢰하며 아껴야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