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속의 또 다른 반도 전남 고흥. 그 끝자락에 자리한 마을에 사는 최연희씨(63)는 시집온 순간부터 동네에서 소문난 호랑이 시어머니를 부양해온 효부다. 그런데 어찌 된 영문인지 85세 고령의 시어머니보다 60대인 며느리의 허리가 더 굽어 있다. 외모로만 볼 땐 오히려 며느리 쪽이 시어머니, 시어머니 쪽이 며느리로 보일 정도다. 익은 벼처럼 고개 숙인 최씨의 허리 탓이다.
잠깐 움직일 때도 쉽게 휘청거리며 중심을 잃는 최씨의 모습이 위태롭게만 보였다. 허리를 펼 수 있는 만큼 최대한 펴보라고 하자 최씨가 온갖 인상을 찌푸리며 있는 힘을 다해 허리를 세웠다. 그러나 허리가 꼿꼿해지는 만큼 무릎이 반사적으로 굽었다. 그마저도 몇초 지나지 않아 원상태로 돌아간다. 등을 만져보니 허리뼈가 상당히 튀어나와 있었다. 이렇게 뼈가 튀어나오고 허리가 굽었다는 것은 최씨의 몸에 변형이 왔음을 의미한다.
대부분 사람들은 ‘몸이 아프면 참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통증을 감내한다. 그렇게 통증이 커지고 빈도가 잦아지면 우리 몸은 고통이 발생하는 부위를 사용하지 않기 위해 변형을 일으킨다. 이내 온몸이 뒤틀어지고 망가져 성한 곳이 없게 된다.
최씨도 그랬다. 항상 눈에 밟히는 농사일 때문에, 몸에 이상신호가 감지됐을 때도 제대로 된 검사와 적절한 치료를 받기보다는 일시적으로 통증을 줄여주는 주사 한대가 매번 더 아쉬웠다. 논과 갯벌이 함께 있는 지리적 조건 때문에 벼농사부터 바지락 등 각종 조개 캐는 갯일까지 해내느라 통증을 달고 살 수밖에 없었던 최씨. 그가 처음 허리 통증을 느끼기 시작한 것도 무려 20여년 전이었다. 그렇게 통증을 견디기만 했더니 최씨의 몸에 변형이 오고 만 것이다. 얼마 전부터는 양쪽 다리 뒤쪽이 당기고 발가락이 저린 증상까지 더해졌다.
여느 60대다운 허리로 꼿꼿하게 걷고 싶다는 최씨의 절실한 마음이 느껴져 서울에 있는 병원으로 모시고 와 정밀검사를 진행했다. 검사 결과 자기공명영상(MRI)에서 신경줄이 내려오다가 좁아지는 척추관협착증이 발견됐다. 예상했던 대로 허리 관절이 많이 망가져 있었고, 퇴행성 디스크에 설상가상으로 척추가 앞쪽으로 밀려나는 척추전방전위증까지 있어 전반적으로 척추가 불안정한 상태였다.
척추는 작은 뼈들이 탑처럼 쌓인 형태로 이뤄졌는데, 척추뼈 뒷부분에는 고리 모양의 관절돌기가 있어 위쪽과 아래쪽 뼈가 고정된다. 노화로 인한 퇴행으로 척추 구조물이 약해지면 위쪽 뼈가 아래쪽 뼈보다 앞으로 밀려나온다. 이때 척추의 정렬이 흐트러지고 밀려나온 척추뼈가 덜렁덜렁 흔들리게 되는 것이다. 이 밀려나온 뼈의 위치가 어디냐에 따라 통증의 증세는 달라지지만, 보통 무거운 물건을 들 때 척추뼈가 신경을 압박하게 되면서 다리저림 증상이 동반된다. 허리를 곧게 편 자세로 걷는 것이 어렵고, 허리를 뒤로 젖힐 때 통증이 증가하기도 한다.
최씨는 정도가 심해 척추고정술까지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수술은 환자의 전반적인 상태를 고려해야만 한다. 환자 상태에 따라 수술이 약이 되기도, 독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최씨의 증상이 심해 수술을 염두에 뒀지만 모든 관절과 근육이 약해진 상태여서 수술 후 다른 부위에 부담이 갈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했다.
고민 끝에 비수술적 요법으로 최상의 효과를 내는 것을 목표로 보존적 치료를 시행했다. 신경 주변의 염증·유착·부종이 심한 부위에 신경성형술을 진행했으며, 인대강화주사 증식치료로 허리 뒤쪽의 약해진 기립근을 강화했다. 또 최씨의 빠른 회복을 위해 저주파 근육자극기를 하루 2~3회 사용하도록 했다. 선진국에서는 이미 저주파 자극기로 통증을 완화하고 근육을 강화하는 치료법이 다양하게 연구·개발돼 보편화됐다. 저주파 자극은 운동을 처방받았지만 극심한 통증과 근육 소실로 당장 거동이 불편한 척추·관절 환자가 운동을 대체해 근육을 강화하는 대안으로도 주목받고 있다.
통증 완화와 근육자극 기능이 있는 소형 저주파 의료기기가 최근 국내에서 개발돼 병원은 물론 가정에서도 자가로 물리치료가 가능해졌다. 실질적으로 운동을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이러한 방법으로 근육을 자극해 서서히 운동량을 늘려가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 최씨에게도 이같은 치료과정을 적용시킨 결과 허리에 힘이 생기기 시작했다. 마침내 꼿꼿하게 서서 환한 미소를 지으며 힘차게 걷는 최씨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