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06. 14.
가뭄이 예사롭지 않다. 더욱 심각한 것은 충남을 비롯해 일부 지역에서는 벌써 몇 년째 가뭄이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가뭄 수준의 강수량은 지구의 허파라 불리는 숲을 이루는 데 한계 수준에 접근할 만큼 위험한 상황이다. 가뭄이 지속되면 울창한 숲을 이루지 못하는 것은 물론 가용한 물의 양에 맞춰 나무가 드문드문 자라나는 사바나와 유사한 식생이 성립될 가능성이 짙다. 자연이 마실 물이 없으니, 당연히 인간이 마실 물도 부족하게 돼 지금 조절 급수마저 논하고 있다.
우리는 기후변화를 논할 때 흔히 기온 상승만을 고려해 우리나라가 아열대지역으로 바뀐다는 얘기를 해왔다. 그러나 기후변화는 지구의 온도 상승만이 아니라 해수면 상승, 가뭄과 홍수, 태풍이나 돌풍과 같은 기상이변을 동반하거나 유발하기도 한다. 또 기후변화는 물리적·생물적·사회적 원인이 복합된 문제로 세계경제를 위협하는 최대 위험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겨울철 제주도에 내리는 눈은 집중호우의 몬순기후와 물을 오래 간직하지 못하는 현무암의 특성이 함께 작용해 겨우내 쌓여 있다가 봄이 되면 천천히 녹아 우리나라에서만 자라는 특산식물 구상나무에 물을 공급하며 생명수로 기능을 해왔다. 그러나 기후변화로 겨울에 기온이 올라가고 강설량은 크게 감소해 한라산을 비롯한 여러 지역에서 구상나무 수만 그루가 고사되면서 멸종을 걱정할 수준에 이르렀다. 이뿐만 아니라 제주도를 비롯해 한반도 남동부에 확산 중인 재선충병은 우리나라 국민이 가장 좋아한다는 소나무를 이 땅에서 몰아낼 기세다.
올해 5월 초 강릉을 비롯한 여러 지역에서 발생한 대형 산불은 또 어떠한가. 흔히 우리나라의 산불, 그중에서도 대형 산불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주로 신록이 발생하기 이전인 4월에 발생했다. 그러나 올해는 신록이 제 모습을 갖춘 5월에 대형 산불이 발생하며 이례적인 기록을 남겼다.
이와 더불어 가뭄이 이처럼 심해지기 전까지만 해도 전국적으로 강수량은 조금 늘었거나 그대로인데 강우 빈도는 줄었다. 이는 곧 폭우 발생 가능성이 늘어났다는 의미다. 그런데 집중호우 시 물이 흘러갈 하천은 현실을 무시한 인위적인 하천 관리전략이 적용되면서 물이 흐를 수 있는 단면이 크게 좁아져 침수피해를 가중시키고 있다. 기후변화에 따라 늘어난 이상기상 현상과 해수면 상승으로 인한 해수의 하천 유입은 하천에 또 다른 압력으로 작용하며 하천을 위험한 공간으로 부상시키고 있다.
인간 영역으로 관심을 옮겨보면 열대 지역에 국한됐던 질병이 점점 우리를 위협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우리를 두렵게 하는 것은 신생아의 소두증 등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진 지카바이러스의 한 매개체인 흰줄숲모기가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후변화로 서울에서도 발견됐다는 점이다. 이 모두가 기후변화와 직·간접적으로 연관돼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기후변화로부터 안전한 환경을 확보할 수 있을까. 무엇보다 기후변화 실태를 정확하고 정밀하게 파악해야 한다. 이웃나라 일본은 전국적으로 약 3000곳의 대상지역을 지정해 기후의 변화 상황을 면밀히 모니터링하고 있다. 미국도 기후변화에 적극 대응하기 위해 전국에 촘촘한 관찰망을 구축해 놓고, 미시적 관찰로부터 거시적 관찰에 이르기까지 수준별 관찰을 이어가고 있다. 유럽도 대륙 전체를 덮는 관찰 네트워크를 구축해 기후변화를 지속적으로 감시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그나마 30여곳에서 관찰해 오던 모니터링마저도 지금은 유명무실해진 상태이다. 즉 기후변화 대비를 위한 진단 다음단계인 예측의 경우 모니터링 결과를 종합한 후 모델을 개발해 이뤄지는 데 진단한 기초자료가 없기에 진행이 불가능하다. 기후변화와 연관돼 다양한 방향과 경로를 통해 인간의 삶이 위협받고 있는 이 시점에 기후변화에 대한 정확한 진단과 예측, 그리고 적응 대책을 체계적으로 준비하는 것은 선택이 아닌 필수이므로 더 늦기 전에 실천이 필요하다.
이창석 / 서울여대 교수·동아시아생태학회연합회장
세계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