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죄인입니다.” 딤전 1:12-15
https://youtu.be/SKAkF3p1lBI
1. ‘주님이면 충분합니다.’같은 멋진 슬로건 아래에서 때론 난 그렇지 못한 패배감을 느끼지 못합니다. 복음이 전부인데 정작 우린 아니라고 느껴질 때 괴리감만 커집니다. 구체성이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라는 분과 나와의 구체성을 아는 것은 어마어마한 보물입니다.
2. “저는 그분과 상관 있습니다.”란 고백이 첫 번째 구체성입니다. 영적 개인주의가 편만해서 신앙조차 내가 하면 열심히 하는데 남이 하는 것은 상관없는 것처럼 여깁니다. 심지어 편리주의까지 가세해 교회도 편하게 지낼 수 있는 곳을 찾습니다. 묻고 싶습니다. ‘정말 주님이 당신이 원하시는 것처럼 거리감을 두셔도 괜찮겠습니까?’ 바울은 반대로 말합니다. 그분이 나를 ‘능하게 하신 분’ 즉 예수님으로 옷입혀주셔서 나와 그분은 뗄수 없다고 말합니다.
왜 예수님과 상관있는 것이 중요한가요? 그제야 내가 모르고 있던 사실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비방자, 박해자, 폭행자’ 몰랐습니다. 정말 맞다고, 옳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계시자 알게 되었습니다.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저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알지 못하나이다.’ 주님을 훼방하고 있는데 정작 자신만 모릅니다.
3. “주님이 하시는 일은 은혜입니다.” 주의 은혜란 말을 통하여 주님은 자신에게 은혜를 주고 계심을 알게됩니다. 그 은혜가 믿음과 사랑도 만들어 냅니다. 수요예배때에 얼마나 많은 아이들과 청소년들이 오는지 모릅니다. 전세대 예배를 프로그램화 하지 않아도 옵니다. 은혜가 사람을 움직입니다. 일하면 교회는 망합니다. 은혜가 섬기도록 인도해야 세워집니다.
4. 마지막으로 “예수님은 말씀으로 은혜주십니다.”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로고스(말)가 은혜의 근원지입니다. 앞자리에 앉으십시오. 말씀듣는 자리를 사수하십시오. 여기서 다 결판납니다. 말씀이 들리는 것을 어떻게 아냐구요? 다른 죄인들이 보이지만 자신이 더 나쁜 죄인이라는 생각이 들게 됩니다. 어머니를 죽인자, 복종하지 않는 죄인들이 눈에 보이십니까? 우리가 죄인중의 괴수입니다. 말씀은 우리를 우월해지는 것이 아니라 더 낮아지게 합니다. ‘내가 저보다 더한데.’라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