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이웃에게 모범이었던 착한 사람이 사후에 간다는 천당과 지옥이 너무나 궁금했다.
“천당과 지옥은 정말 있을까? 만일 천당이 있다면 몇 사람이나 천당에 갔을까. 사람이 살아가면서 죄를 하도 많이 지어 지옥은 넘쳐나겠지?”
몹시 궁금한 나머지 하느님께 간절히 기도하여 마침내 살아생전에 지옥과 천당을 방문해 보는 특별한 허락을 받았다.
날 잡아 목욕재계(沐浴齋戒)하고 옥양목 바지저고리에 두루마기까지 입고 지옥을 먼저 가보았다. 뱀이 우글거리고 심판관들의 고문으로 소름 돋는 비명이 있을 거라는 생각과 달리 상다리 부러질 정도로 차린 잔칫상에 지옥에 온 사람들이 나란히 앉아 있었다.
“아니 지옥이 이런 곳이야? 내가 잘못 찾아온 건 아니야?”
그런데 사람들이 맛난 음식을 앞에 두고 먹질 못해 안달하고 있었다. 까닭인즉, 자신의 팔장 길이보다 훨씬 긴 수저를 들고 있었고 반드시 수저 끝을 잡고 먹어야 한다는 규칙이 있었다.
규칙을 지켜야 하니 혼자서는 도저히 음식을 먹을 수 없었다. 맛난 음식이 가득한 잔칫상을 앞에 두고 먹을 수 없어 영원히 배고픔에 시달려야 하는 곳이 바로 지옥이었다.
이번에는 천당을 방문하였는데 놀랍게도 지옥과 같은 잔칫상에 사람들이 마주 바라보며 앉아 있었다. “아니, 천당과 지옥이 똑같다고?” 그런데 이곳 천당에 온 사람들은 서로 마주 앉은 상대방에게 음식을 먹여 주면서 덕담을 즐기며 웃음꽃을 피우고 있었다. 수저 끝을 잡고 상대방에게 진수성찬을 먹여 주면서 맛난 음식을 공유하며 즐기고 있었다.
요약하면 혼자 독식(獨食)하려는 이기적인 사람들이 모인 지옥은 아무도 음식을 먹을 수 없는 데 반해, 협력하고 공유할 줄 아는 사람들이 모인 천당에서는 서로 도와가며 차려진 음식을 즐기는데 전혀, 문제가 없었다는 이야기다.
우리가 사는 현실에 비유하면, 잔칫상을 차릴 수 있는 선진 경제권역 중에 역동적 복지 체제를 도입하고 포용적 사회정책을 시행하고 있는 유럽 선진 국가들은 천국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국가의 1%의 소수의 사람이 20%의 부(富)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끼리 잘 먹고 잘살자는 식의 국가는 분명 지옥이라 할 수 있겠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실제의 현실사회는 천당과 지옥의 중간으로 천당의 이타(利他)적인 인간군(群)과 지옥의 이기적인 무리가 함께 섞여 산다.
사람 개개인 역시 대체로 복잡한 감성적 모순을 지닌 채 이기적이고 충동적인 동기와 박애(博愛) 적이고 헌신적인 의무감이 뒤섞여 공존하는 존재다.
인류는 근현대에 이르면서 강제력을 동반한 국가라는 틀 속에서 법치 사회의 시민으로 도덕과 규범에 기초하여 본능을 다스리고 행동을 통제할 수 있는 지적 판단과 공동체적 자유를 고즈넉이 지니게 되었다. 그러면서도 상황과 조건에 따라 숨겨진 본능과 이기심이 폭발하는 것도 자주 목격한다. 또한 우리의 내면적 갈등 속에서 악마와 천사가 교대로 속삭이며 서로 자신이 옳다고 유혹하는 것을 체험하기도 한다.
이에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공동체로서의 사회가 천당은 아니더라도 사람답게 살아갈 만한 공간이 되기 위해 우선 필요한 것은 각자가 개별적 존재로서 탐욕적이고 이기적 본능을 억제하고 이웃과 함께하는 선한 의지가 자신을 인도하도록 스스로 훈련하고 교육과 실천을 통해 생활 속에 습관으로 자리 잡게 하는 것이다.
또 하나는 함께 하는 사회생활 속에서 개인의 선한 행위가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형성되도록 유도하는 공동체적 관습과 상생적 문화의 정착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선한 행위가 결국, 보상받는 반면, 이웃에 무관심하면 위에 예시한 지옥처럼 자신에게 불리하고 사회에 해를 끼치는 행위는 반드시 합의된 규정에 따라 처벌을 받는다는 원칙이 정치 경제 사회의 강제력으로 제도화되고 시스템으로 작동시켜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