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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야말로 인류 역사상 가장 성공한 거짓말이라 하겠다. 예수가 사랑을 히트시킨 후 문화상품으로 널리 유통되었다. 사랑이 먹힌 데는 이유가 있다. 보통은 사랑을 성적 본능의 의미로 좁혀 쓰지만 그 정도로는 인류 단위로 먹힐 수 없다. 구조론으로 보면 사랑은 세력에 의지하는 것이다. 사랑을 다른 의미로도 쓸 수 있지만 인류의 보편적 가치가 되려면 의미가 확대되어야 한다.
한자어 사량思量은 불교용어에서 온 말이고 순 우리말에는 사랑이 없다. love의 어원은 약탈혼을 하는 게르만족이 납치한 신부가 도망갈까 감시하지 않고 내버려두는 뜻이다. 믿는다는 의미가 있다. 한자어 애愛는 매력에 끌리는 것이다. 우리말로는 '아낀다'에 가깝다. 애愛는 소장자가 수집품을 애호하듯이 신경을 쓰고 마음을 두는 것이다. 인류의 보편가치에는 미치지 못한다.
사랑은 성적 본능과 관련이 있지만 그것은 사랑의 일부 측면이다. 호르몬 반응을 사랑이라고 한다면 이상하다. 중요한 것은 사랑이 인류에게 널리 받아들여졌다는 점이다. 파트너의 성적 매력에 끌리는 사랑은 식욕과 같은 동물적 본능에 불과하다. 예수는 사랑이라는 말에 더 깊은 의미를 부여했다. 왜 사랑이 종교와 연결되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진정한 사랑은 더 깊은 곳에 있다.
인간 정신을 지배하는 가장 큰 부분은 세력본능이다. 그것은 집단에 의지하는 마음이다. 문제는 자신이 의지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이다. 진정한 사랑은 마이너스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것을 얻을 때는 모르고 잃을 때 명확히 알게 된다. 꽃을 예뻐하거나 강아지를 귀여워하는 것은 쉽게 증명된다. 그것은 얻는 것이다. 의지하는 사랑은 잃은 후에 깨달으므로 사랑을 증명할 수 없다.
진정한 사랑은 의지하는 대상이 무너졌을 때 자신이 파괴되는 정도로만 겨우 파악된다. 이미 떠나버렸으므로 나타낼 수 없다. 성적 매력에 끌리는 사랑은 여의치 않으면 투자 종목을 바꾸면 된다. 아이돌을 쫓아다니는 사람은 다른 아이돌로 바꾼다. 사랑을 파악하지 못하는 이유는 모든 행위의 근거가 되는 세력본능을 배우지 않았기 때문이다. 누가 말해줘야 겨우 알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남자나 여자를 사랑한다고 믿는다. 실제로는 세력에 의지하는 것이다. 커플은 세력이다. 커플과 솔로가 길에서 마주치면 솔로가 비켜야 한다. 하나에 하나를 더하면 둘이 되는게 아니라 그 이상이 된다. 두 사람이 사랑하면 셋이 있다. 너와 나 그리고 우리다. 사랑한다는 것은 우리의 결속에 의지하는 것이다. 너와 나 말고도 별도의 인격으로 '우리'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동물적 사랑은 사랑의 학습이다. 첫 눈에 반한다거나 하루종일 생각이 나고 흥분된다면 뇌가 사랑을 학습하려고 하는 것이다. 학습이 끝나면 사랑도 끝난다. 청춘의 사랑이 오래 가지 못하는 이유다. 학습에 만족하여 더 학습하려고 사랑의 종목을 바꾸기 때문이다. 사랑은 자신을 변화시킨다. 자신의 변화에 자신이 놀란다. 더 변화시키고 싶어진다. 드라마에 나오는 사랑은 학습이다.
좋아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다. 벗어나지 못하는게 사랑이다. 사랑은 선택하지 않는다. 엄마는 자식을 선택하지 않는다. 내 자식이 귀여워서 사랑하는 것은 아니다. 다른 엄마와 비교하여 내 엄마가 더 낫다고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진짜 사랑은 거기서 이탈하면 내가 파괴되므로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처음은 유혹에 이끌려 사랑하지만 나중에는 사랑에 의지하여 이탈하지 못하게 된다.
매력에 끌리는 사랑 - 결과 측, 복제본, 위하여 : 대상과 접촉하는 플러스에 기쁨이 있다.
세력에 의지하는 사랑 - 원인 측, 원본, 의하여 : 세력을 잃는 마이너스에 고통이 있다.
사랑은 사람에 의지하는 것이 아니다. 엄마와 아기가 합쳐진 가족에 의지하는 것이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진짜가 아니다. 자신이 속한 팀을 사랑하는 것이 진짜다. 팀에 의지하게 하는 것은 세력본능이다. 유혹하는 사랑은 결과 측이고 위하여다. 의지하는 사랑은 원인 측이고 의하여다. 사랑에 도달하여 끝나는게 아니고 사랑에서 출발하여 시작된다. 사랑은 인생을 격발하는 활이다.
사랑은 도착점이 아니라 출발점이다. 사랑이라는 엔진에 의하여 생활이라는 화살이 발사되는 것이다. 인간은 세력 안에서 에너지를 공급받고 편안해진다. 개가 견주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세력을 따르는 것이다. 견주가 단호한 명령으로 세력의 존재를 일깨워줘야 개는 편안해진다. 개를 애지중지 하면 약하게 보여서 개가 불안해한다. 개가 원하는 것은 강한 팀에 소속되는 것이다.
사랑의 본질은 눈물 짓고 그리워하는 감성팔이가 아니라 강팀이 되는 것이다. 그럴 때 인간은 편안해진다. 사람을 사랑한다는 말은 가짜다. 국가를 사랑한다는 말도 가짜다. 세력에 의지한다는 말은 진짜다. 과연 세력인지가 중요하다. 티키타카가 되어야 세력이다. 상호작용이 있어야 한다. 팀에 소속되어 내가 강해졌기 때문에 그 에너지의 관성력에서 이탈할 수 없는 사랑이 진짜다.
예뻐서 사랑한다면 가짜다. 좋아서 사랑한다면 가짜다. 예쁘면 호르몬이 나온다. 호르몬이 나오면 사랑을 배운다. 사랑을 배우면 더 배우려고 떠난다. 사랑의 증거는 내가 강해진 것이다. 행복한 것은 사랑이 아니다. 즐거운 것은 사랑이 아니다. 누구를 사랑한다는 말은 거짓말이다. '한다'고 했으면 무언가를 해야 한다. 아무 것도 실천하지 않으면서 사랑한다고 말하므로 거짓말이다.
인간은 사랑 속에서 강해진다. 강해지면 사건의 원인 측에 설 수 있다. 사랑한다는 말은 믿을 수 없지만 강해진 사실은 의심할 수 없다. 강해지면 팀플레이 속에 관성력이 있다. 팀이 깨졌을 때 허둥대는 사실로 관성력을 증명할 수 있다. 사랑하면 팀을 믿으므로 과단성 있는 의사결정이 가능해진다. 사랑하여 의사결정을 더 잘하게 된다면 진짜다. 새끼 딸린 엄마곰의 행동은 신중하다.
'의하여'와 '위하여'의 차이다. 매력에 끌리는 절반의 사랑은 자신에게 기쁨을 주는 결과 측을 본다. 다른 방법으로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으므로 말을 갈아탄다. 세력에 의지하는 완전한 사랑은 얻는게 없고 잃는 것만 있다. 잃을 것이 분명하므로 최대한 지키려 하는게 사랑이다. 세력은 다른 것으로 대체할 수 없다. 부모를 바꿀 수 없다. 복제본은 바꿀 수 있지만 원본은 바꿀 수 없다.
사랑은 주는 것이 아니고 받는 것이 아니다. 주고받기 거래를 외상으로 하면 권력이 발생하여 피곤해진다. 사랑은 줄 수 있는 것이다. 엄마는 혼자 노는 아기를 지켜보지만 개입하지 않는다. 언제든 개입할 수 있는 상태에 머물러 있다. 필요한 때 도움을 받을 수 있으므로 용감해지는 것이 사랑이다. 용감하고 신중하게 의사결정을 잘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사랑을 하고 있다.
구조입문
존재는 안과 밖이 있다. 안에는 구조가 있고 밖에는 형상이 있다. 안에는 성질이 있고 밖에는 물질이 있다. 안에는 사건이 있고 밖에는 사물이 있다. 인류는 밖을 보는 관점을 발달시켜 왔다. 밖에서 형상을 보고, 물질을 보고, 사물을 보되 안의 구조와, 성질과, 사건은 보지 않았다.
구조론은 존재의 안을 보는 관점이다. 인류는 그동안 존재의 바깥쪽 절반을 봤을 뿐이다. 인류가 지금까지 쌓아온 지식은 반쪽짜리 지식에 불과하다. 안은 보이지 않으므로 구태여 보려고 하지 않았다. 안에는 압력이 걸려 있다. 밖에서는 알 수 없는 완전히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소실점은 그냥 봐도 보이지만 그것도 보려고 해야 보인다. 안이 존재 자체의 고유한 질서라면 밖은 외부 관측자에 전달된 정보다. 밖은 관측된 것이며 관측은 매개가 있다. 우리가 보는 정보는 전달된 것이며 전달자에 의해 왜곡된 정보다. 관측의 매개를 극복해야 진실이 보인다.
안에는 밖에서 알 수 없는 특별한 것이 있다. 계 내부에 밸런스를 이루는 압력이다. 물에는 수압이 있고 공기는 기압이 있다. 모든 의사결정은 내부 압력에 의해 일어난다. 압력에는 밸런스의 복원력 형태로 관성력이 있다. 구조의 대칭을 통해서 계 내부의 압력을 추적할 수 있다.
구조는 깔때기다. 입구와 출구가 있다. 에너지의 입력과 출력 사이에서 의사결정 하는 것이 구조다. 입구는 조절자, 출구는 전달자다. 인류가 본 것은 매개된 전달자 뿐이다. 입구와 출구 사이에 방향전환이 있다. 조절자가 밸런스의 축을 움직여 에너지의 방향과 순서를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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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이 있으면 성질이 있다. 사물이 있으면 사건이 있다. 명사가 있으면 동사가 있다. 하드웨어가 있으면 소프트웨어가 있다. 육체가 있으면 영혼이 있다. 멈춤이 있으면 변화가 있다. 두 존재가 별도로 있는 것은 아니다. 둘은 무엇이고 왜 나누어지는 것일까?
외부 - 내부
물질 - 성질
정靜 - 동動
사물 - 사건
명사 - 동사
멈춤 - 변화
물질은 관측된 것이다. 성질은 존재 자체의 모습이다. 성질이 존재의 진실이고 물질은 인간이 관측하는 방식이다. 성질이 빛이라면 물질은 그림자다. 물질은 인간 눈에 그렇게 보이는 것이다. 변화는 존재의 진실이고 멈춤은 인간이 존재를 관측하는 방식이다.
에너지, 물질, 공간, 시간, 정보가 별도로 있는 것은 아니다. 하나의 존재가 사건의 원인 측을 보느냐, 결과 측을 보느냐, 의사결정의 단계별 과정을 보느냐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것이다. 물질은 인간과의 대칭이고 성질은 인간과 무관한 존재 자체의 대칭이다.
구조론은 존재의 두 얼굴 중에서 성질을 보고, 사건을 보고, 동動을 보고 변화를 본다. 하드웨어가 아니라 소프트웨어를 본다. 존재는 변화다. 멈춘 것은 관측자와 나란한 변화다. 세상에는 변화의 결맞음과 결어긋남이 있을 뿐이다. 결을 보는 눈을 떠야 한다.
우리는 물질에 성질이 딸리고, 사물에 사건이 딸리고, 멈춤에 변화가 딸린다고 믿지만 천만에. 반대다. 동動이 정靜보다 크다. 동動이 정靜을 이긴다. 변화가 멈춤보다 크다. 변화가 멈춤을 이겨서 변화를 복제하여 우주를 가득 채운 것이 세상의 참된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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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아보이지만 다르다. 전체는 부분의 합보다 크다. 뜨거운 물체는 차가운 물체보다 질량이 크다. 동動은 정靜보다 크다. 빛은 어둠보다 크다. 움직이는 물체는 정지한 물체보다 크다. 산 것은 죽은 것보다 크다. 진보는 보수보다 크다. 선은 악보다 크다. 원인은 결과보다 크다. 돌고 있는 팽이는 멈추어 있는 팽이보다 에너지가 크다. 다른데 같다고 착각하므로 오류가 시작된다.
작은 그릇에 큰 그릇을 담을 수 없다. 사물에 사건을 담을 수 없다. 결과에서 원인을 역추적할 수 없으나 원인에서 결과를 복제할 수는 있다. 큰 것이 작은 것을 이긴다. 전략이 전술을 이기고, 진보가 보수를 이기고, 선이 악을 이기고, 공격이 수비를 이긴다. 공격이 이겨야 게임이 끝나고 승부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선은 악을 이길때까지 멈추지 않는다. 진보는 멈추지 않는다.
같은데 다른 이유는 변화라는 숨은 변수 때문이다. 집합에는 원소에 없는 하나가 더 있다. 집합에는 원소들을 연결하는 대칭성이라는 고리가 있다. 원본에는 복제본에 없는 권력이 있다. 주도권이 있다. 사람들은 변화를 싫어하므로 이러한 진실을 외면한다. 멈춘 것에 명명할 수 있을 뿐 변화에 명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은 변화에 약한 존재다. 이야기는 거기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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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는 방향이 있다. 물은 수압이 있고, 전기는 전압이 있고, 집단은 사회압이 있다. 정치든, 경제든, 문화든, 종교든 집단 내부에 긴장을 걸어서 압력을 만드는 점은 같다. 상호작용 총량을 증대시켜 간격을 좁히면 집단은 의사결정이 가능한 상태가 된다.
사회압을 거는 방법은 두 가지다. 전략과 전술이다. 전략은 전장 밖에서 결정하고 전술은 전장 안에서 결정한다. 진보와 보수다. 진보는 외부를 연결하고 보수는 내부를 쥐어짠다. 긍정주의와 부정주의다. 외부의 연결은 긍정이고 내부 쥐어짜기는 부정이다.
구조는 깔때기다. 입구를 열어 외부 자원을 끌어들이면 압력이 증가한다. 입구를 닫고 내부를 쥐어짜도 압력이 증대된다. 문제는 지정학적 환경이다. 궁벽한 곳은 입구를 열어도 찾아오는 사람이 없고 도시는 사통팔달로 연결되어 쥐어짜면 다들 떠나버린다.
밖으로는 지학적 환경을 살피고 안으로는 사건의 진행단계에 따른 타이밍을 고려하여 상황에 맞는 판단을 해야 한다. 전략과 전술이 둘 다 필요하지만 머리는 전략이다. 선전략 후전술, 선진보 후보수, 선긍정 후보수다. 이것으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다.
구조론은 질, 입자, 힘, 운동, 량 다섯으로 설명한다. 인간들이 뇌용량이 딸려서인지 어렵다고 한다. 다섯이 많으면 둘로 줄이자. 긍정과 부정이다. 둘이면 방향을 헷갈린다. 일원론으로 합쳐서 봐야 헷갈리지 않는다. 선악이원론이 아니라 깔때기 일원론이다.
원인과 결과, 선과 악, 빛과 어둠, 진보와 보수, 전략과 전술, 전체와 부분, 머리와 꼬리, 긍정과 부정, 절대성과 상대성 등 대칭되는 것은 깔때기의 입구와 출구다. 하나의 변화를 인간이 시작과 결말에서 각각 관측하고 둘로 착각한다. 에너지로 보면 하나다.
입과 항문이 각각 있는게 아니라 하나의 소화관이 있는 것이다. 밖에서 보면 둘이지만 안에서 보면 하나의 긴 파이프다. 하나인데 둘로 착각하므로 오판한다. 머리 속에 깔때기의 입구와 출구를 잇는 화살표를 그려서 하나로 합쳐서 보는 훈련을 해야 한다.
이익을 얻는 방법은 둘이다. 아이를 한 명 더 낳으면 된다. 아이를 부려먹으면 이익이다. 아이를 하나 죽여서 입을 덜어도 이익이다. 두 사람이 힘을 합쳐도 이익이지만 경쟁자를 제거해도 이익이다. 각자 자기 방법이 옳다고 우겨서 사회가 시끄러운 것이다.
긍정주의 – 아이를 하나 더 낳아 노동력을 늘리면 이익이다.
부정주의 – 아이 하나를 죽여서 입을 덜면 내 몫이 늘어난다.
현명한 방법은 환경이 좋을 때는 숫자를 늘리고 환경이 나쁠 때는 숫자를 줄이는 것이다. 봄에는 새싹을 키우고 겨울에는 낙옆을 떨어뜨린다. 봄에는 개입주의가 낫고 겨울에는 보호주의가 낫다. 문제는 인간이 방향전환을 못하고 하던 짓을 반복하는 것이다.
초반에는 공범과 힘을 합쳐서 은행을 털고 후반에는 공범을 죽여 이익을 독점하는게 범죄영화의 공식이다. 선전략 후전술, 선진보 후보수. 선긍정 후보정의 공식이다. 이렇게 못하고 갈팡질팡 한다. 철저하게 긍정모드로 가든가 철저하게 부정모드로만 간다.
긍정과 부정, 진보와 보수, 선과 악, 빛과 어둠, 원인과 결과, 입력과 출력, 머리와 꼬리를 하나로 통합해서 생각할줄 알아야 한다. 우주는 다섯으로 되어 있지만 크게 보면 둘로 되어 있고 하나가 둘을 관통한다. 하나는 에너지다. 에너지 일원론을 배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