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가. 새 하늘과 새 땅은 겉 사람(마음)이 온전히 사라지고 십일조와 헌물이 된 아들이다.
나. 창조로 오역한 ‘크티세오스’는 바라(개간)로서 마음 밭을 해체하는 것이다.
다. 태초로 오역한 베레쉬트(엔 아르케)는 아버지와 하나 된 그리스도 예수다.
2. 본론
가. 새 하늘과 새 땅은 겉 사람(마음)이 온전히 사라지고 십일조와 헌물이 된 아들이다.
“보라 내가 (그) 새 땅을 창조(바라, 개간) 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사 65:17).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계 21:1).”
과거 기억은 전혀 없다. 새 하늘과 새 땅은 겉 사람의 마음이 사라졌음을 의미한다. 아버지에게 아들로서 온전한 십일조와 헌물이 된 것이다. 참 아들로 돌아와야 하나 된다. 처음 하늘과 처음 땅과 바다는 겉 사람(죄와 사망의 법아래 있는 사람)을 이야기한다.
아버지와 하나 된 예수가 창세기 1:1에 베레쉬트(근원)요, 요한복음 1:1에 엔 아르케(근본, 베레쉬트)다. 시, 공간 개념이 전혀 없다. 근본이며 히다(은밀한 말)다. 한글 성경은 모두 태초로 오역하는 실수를 범하였다. 이는 시간 개념이다.
나. 창조로 오역한 ‘크티세오스’는 바라(개간)로서 마음밭을 해체하는 것이다.
“라오디게아 교회(에클레시아)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아멘 이시오, 충성 되고, 참된 증인이시오, (그) 하나님의 (그) 창조(크티세오스)의 근본이신 이(헤 아르케)가 가라사대(계 3:14)”
창조로 오역한 크티세오스는 창세기 1:1의 창조로 오역한 바라(개간)와 같다. 마음 밭을 해체하여 개간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그 근본(아르케)이다.
다. 태초로 오역한 베레쉬트(엔 아르케)는 아버지와 하나 된 그리스도 예수다.
“그는 몸인 교회(에클레시아)의 머리라. 그가 근본(아르케)이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속에서) 먼저(처음) 나신 자니 이는 친히 만물(파신)의 으뜸(프로듀온, 주인)이 되려 하심(기노마이, 이루어지다, 하나 되다)이요(골 1:18)”
그리스도 예수가 근본(아르케)이다. 그러므로 태초로 오역한 베레쉬트(엔 아르케)는 아버지와 하나 된 그리스도 예수를 가리킨다. 이 베레쉬트(근본)를 보아야 한다. 그러면 어떻게 이 근본(베레쉬트)을 볼(호라오) 수 있는가? 그리스도 예수 안으로 들어가서 하나 되어야 볼 수 있는 믿음의 선 조건이다.
찬송하고 기도하고 예배하고 헌금하는 종교 행위로서는 이를 볼 수가 없다. 기도 많이 한다고 열심히 봉사한다고 대상이 아닌 그리스도 예수가 칭찬하는 법이 없다. 오히려 간음했다고 한다. 그 의미를 모르고 거룩하게 보이는 모든 종교 행위들이 도적질이고 간음이고 살인 행위가 된다. 이래서 비사와 비유는 대단히 어렵고 중요하다.
나(예수 차원)를 잃어버리는 모든 행위가 도적질이요, 간음이요, 살인이며, 안식일(예수)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성경 말씀은 내가 깨어나는 것이 근본(그리스도 예수)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천 년 전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를 일러주시고 가셨다. 그분는 포장된 종교 행위를 거부하신 분이다.
생명의 빛의 그 안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