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은 곡선이다
박희정
그리움의 출발은 멀리서부터 등이 휘었다
끝나지 않은 길처럼 보이지 않는 능선처럼
포말과 맞닿은 절벽이 허리를 드러냈다
해질녘 스며들다 터져버린 고백은
파도와 몽돌 사이 뜬눈으로 미끄러져
맨살의 잔솔가지를 붙안고 사라졌다
뒤척일 때마다 부서지는 묵언도
오래도록 굴리면 화음에 가닿을지
지난 밤 더딘 숨결이 꽃인 듯 차올랐다
일본 노인들의 단시
일본의 노인들을 대상으로공모한 짧은 글 당선작
(천묘.단시, 川柳. 短詩)
2024년 1월 19일 발표
▪︎사랑인 줄 알았는데
부정맥.
▪︎전구 다 쓸 때까지도
남지않은 나의 수명.
▪︎종이랑 펜 찾는 사이에
쓸 말 다 까먹네.
▪︎세 시간이나 기다렸다
들은 병명은"노환입니다"
▪︎일어나긴 했는데 잘 때까지
딱히 할 일이 없다.
▪︎자명종 울리려면 멀었나
일어나서 기다린다.
▪︎연명치료 필요없다 써놓고
매일 병원 다닌다.
▪︎만보기 숫자 절반 이상이
물건 찾기.
▪︎몇 가닥 없지만
전액 다 내야 하는 이발료.
▪︎눈에는 모기를,
귀에는 매미를
기르고 산다.
. 쓰는 돈이 술값에서
약값으로 변하는 나이
▪︎젊게 차려 입은 옷,
자리를 양보받아
허사임을 알다.
▪︎이봐 할멈! 입고 있는 팬티
내 것일세.
▪︎일어섰다가 용건을 까먹어
다시 앉는다.
▪︎분위기 보고 노망난 척하고
위기 넘긴다.
▪︎무농약에 집착하면서
먹는 내복약에 쩔어산다.
▪︎자동응답기에 대고 천천히 말하라며
고함치는 아버지.
▪︎전에도 몇 번이나
분명히 말했을 터인데
"처음 듣는다!"고.
▪︎할멈 ! 개한테 주는 사랑
나한테도 좀 주구려.
▪︎심각한 건 정보유출 보다
오줌 유출.
▪︎정년이다.
지금부턴 아닌건
아니라고 말해야지.
▪︎안약을 넣는데
나도 모르게 입을 벌린다.
▪︎비상금 둔 곳 까먹어
아내에게 묻는다.
▪︎경치보다
화장실이 신경 쓰이는 관광지
▪︎손을 잡는다.
옛날에는 데이트
지금은 부축.
▪︎이 나이쯤 되니
재채기 한 번에도 목숨을 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