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36장 성소 진리 - 재림교회의 중추적인 교리 Sanctuary Faith Pivatal Teaching of Adventist
Ⅰ. 우리 교회의 기독교 교리에 독특한 공헌(기여)
1. 성소 진리는 유독 재림교만 있다
이 책의 표지 앞에 있는 감명 깊은 정면의 주요보도와 도형 묘사의 제목을 다시 생각해 보라. S.D.A.를 다른 모든 과거와 현재의 기독교 교단들과 구별하고 동일시하는 유별난 교리적 가르침은 하나의 독특한 구별된 구조적 진리는 우리가 항상 성소 진리라고 정의해 내려 왔다. 이것은 맨 처음부터 그렇게 되어왔다. 왜냐하면 성소진리는 알아야 하고 가르쳐야 할 가장 초기의 실망후의 견해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결코 중추적인 견해를 상실한 적이 없다. 다른 모든 교리들은(우리가 주장하거 가르치는) 제칠일 안식일, 조건적 불멸설, 예언의 신, 예언적 해석, 전천년설,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 잠그는 침례, 십일조, 기타 등은 모두 다른 교파에서도 과거나 현재에도 한 단체 혹은 그 이상의 단체에서 전체적으로나 부분적으로 주장해 왔다. 그러나 초대 교회에서나(사도들이 가르치는 동안 아직 손을 대지 않은) 개신교회에서도(사도들의 견해 중의 대부분 회복되고 다시 찾아진) 대제사장의 중보의 봉사의 두 개의 구분된 국면들에서 제사장으로 봉사하는 것과 2번째 국면에는 하나님의 크신 현재의 심판의 시간의 활동을 구성하는 하늘 성소 진리를 가르치지 않았다.
2. 과거시기에 강조하는 것은 합당치 않다
이 과거의 침묵은 단순한 이유, 즉 성소 진리는 수세기간의 하나님의 계획에 있어서 정해진 때에 예언된 하나님의 심판의 시간이 실제로 사도 시대에, 사도 이후 시대에는 미래에 마지막 시대에 강조될 것으로 내다보았고 종교 개혁 지도자 Luther는 약 300년 이후에야 생각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오늘날 그것을 선포하는 것이 합당할 뿐 아니라 이 마지막 배경과 강조 중에서 현재 실제로 위임받은 것으로 인식하고 선포한다(영원한 복음의 오늘날의 선구자로서). 우리는 그것을 긴급한 놀라운 현대 진리라고 생각한다. 결과적으로 우리가 성소 진리를 오늘날 믿고, 가르칠 뿐 아니라, 이 때를 위한 우리의 독특한, 틀림없다고 강조함에 있어서 중심 위치에 둠이 지당하다. 결과적으로 그것을 명백히 이해하고 그 다음에 우리의 기별로서 사람들에게 그것을 선포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이다. 그리고 이 단순한 이유 때문에 그것은 모든 것을 포함하는 재림 교회 진수이다. 참으로 만일 하늘에 성소가 없고 거기서 봉사하시는 대제사장이 없다면 이 시대에 인류에게 보내는 하나님께로부터 온 심판의 시간의 기별이 없다면 우리는 종교계에 아무런 정당화시킬 만한 자리가 없고 아무 독특한 교파적 사명과 기별도 없고 오늘날 한 구별된 교회의 실체로서 기능이 있다고 변명할 수도 없다.
3. 여 하안 탈선도 재림교의 완전을 최고 덤빈다
결론적으로 성소진리를 약화시키는 것이다. 부인하는 것이나 보이지 않게 하는 것은 심각한 일일뿐 아니라 치명적인 일이다. 거기에서 탈선하는 것이나 포기하는 것은 재림 교회 핵심을 때리는 것이요, 그 바로 완전에 도전하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 하나의 모든 것을 포함하는 현대 진리 그 자체 내에 진리의 완전한 조직을 내포하고 구성하는 것을 강조하도록 하기 위하여 일으키셨고 직접적인 역사적 반응으로서 생긴 것이다. 다른 모든 긴요한 진리들은 그 안에 실제로 포함되어 있다. 도덕적 율법, 안식일, 희생적 속죄, 대제사장의 중보, 심판, 칭의, 성화,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 최후 보상과 징벌, 재림, 교정할 수 없는 악인의 전체 멸망 등이 다 포함되었다.
4. 남은 교회의 얽매인 책임
결과적으로 성소 진리는 한 이상하고 독특한, 비정상적인, 찌그러진, 변호할 수 없는 교리가 아니다. 혹은 어떤 적대자들이 주장해온 것처럼 1844년의 실망의 이야기를 설명하기 위하여 만든 단지 한 방편이 아니다. 그것은 역사적 기독교 신앙으로부터의 한 이탈이 아니다. 그것은 진정으로 기독교 신앙의 논리적인 완성이요, 필연적인 완성이다. 그것은 세상에 증거를 끝마치는 부분에 남은 교회가 전하는 영원한 복음을 특정 짓는 예언의 강조의 00 마지막 날에 단순히 나타난 것이다. 그것은 전조에 있어서 중대한 면 위에 있어서 강력한 매혹적인 하늘에서 이루어지는 엄청나게 놀라운 사건에 관해서 땅에 증거 한다.
그 중대한 특성과 의미 때문에 성소 진리는 도전을 받고, 공격받고, 풍자 받고, 조소당하는 제목이 되도록 되어 있다. 그리고 이것은 내부에서도 외부에서도 당한다. 우리는 이것을 예상해야 하고 당면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우리는 성소 진리의 완전성을 위하여 애써 지켜야 한다. 그리고 그 효과적인 옹호를 함에 있어서 민첩하고 굳세게 해야 한다. 이것은 단지 자기 맘대로 하는 교의가 아니기 때문에 여기서 침묵할 수는 없다.
5. 피할 수 없는 표적
사단은 성소진리를 증오한다. 그는 그것이 현대를 위한 하늘의 최고의 진리임을 안다. 그것은 직접 자기 그의 운명과 종국, 그의 임박한 체포와 궁극적 소멸을 폭로한다. 그는 시간을 얻으려고 애쓰고 있다. 그는 할 수 있는 한 많은 사람들을 자기와 함께 멸망으로 끌어내리려고 결사적으로 노력한다. 그는 결과적으로 그 강조를 달이 꾸며 재구성하거나 방해하거나 개조하거나 변경시키려고 온갖 시도와 노력을 다하고 있다. 그리고 그 증거에 타격을 주고 그 가르침을 교란시키고 그 고결성을 손상시키려고 애쓰고 있다.
우리는 수정론자들, 개조자들, 빗나간 자들 - 밖으로 뒤집어엎는 자들을 제한한다. 그것은 그 중대한 특성과 중요성에 대한 무의식적인 증거이다. 그런 책략은 결코 작은 문제에 집중되지 않는다. 우리는 그런 협잡꾼들과 곡해 자들에 대항해서 건전한 성소 견해를 지지하고 변호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6. 해치는 자들은 궁극적으로 없어진다
우리는 이점을 강조한다. 그 타당성을 비웃고, 그 성서적 근거를 의문시하고, 그 예언의 신의 반증을 요구하는 자들이 있을 것이다. 성소 진리는 어떤 다른 재림 교회의 가르침보다도 더욱 비 재림교 반대자들을 아주 떠나서 우리 교단의 온 역사를 통해서 교회 내부에서의 공격의 주제가 되어 왔다. 맨 처음부터 개인들이 이따금씩 이 점과 다음에는 저점을 조소하거 부인하는 자들이 생겨났다. 그러나 이 방해자들은 모두 결국은 우리를 떠났고 보통 우리를 대적했다. 그러나 그들은 일단 적으로 없어졌고 이들의 불행한 파선은 수십 년 동안 가끔 있었다. 그들은 일단 그렇게 행한 후에는 신앙을 잃어버렸고 교회의 사명과 사업에 어떤 구조적인 공헌을 결코 하지 못했다.
7. 하나님을 대항해서 싸우는 일을 삼가라
신령한 하나님이 위탁하신 성소 진리는 승리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므로 그것을 대항해서 싸우는 자들은 하나님과 그의 예정된 계시다. 물론 다른 모든 진리와 마찬가지로 끊임없는 완성과 강화됨과 증가되는 명확성과 사상의 넓이가 일어야 한다. 그러나 어떠한 진정한 개선도 일ㅉ기 과거에 입증돼 기초들을 무효화하지는 못한다. 진정한 진리를 강화시키는 자는 결코 뒤집어엎지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일단 협조하시고 확고히 하신 것을 결코 나중에 부인하거나 내버리시지 않으신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선조들이 하나님의 현저한 축복 밑에서 신실하게 수고하여 건전하게 세우고 주의 영이 거듭 입증하신 것을 파헤치고 뒤집어엎으려는 자들을 불신으로 쳐다보지 않으면 안 된다.
8. 공격의 여러 형태의 범위
때때로 하늘에 있는 성소의 실제성(큰 근본적 성소가 실제로 있는가)에 관하여 공격의 초점이 있을 것이다. 그것은 상상이 아니다. 우리는 거기에 대한 경고를 받았다. 원수는 성소가 없다고 하는 교리와 같은 거짓 이론들을 전개할 것이다. 이것은 믿음에서 떠나게 될 점들 중 하나이다(R.&H. 1905, 5, 25). 혹은 다니엘 8장과 9장의 불가결한 관련성이나 연대나 시기 등에 집중할지도 모른다. 혹은 의미론에 관하여 속죄의 학술적인 양상, 성소의 정결의 범위와 의미, 성소의 완성, 마지막의 변화의 과정들과 사건들에 관하여 될지도 모른다.
약한 자는 적극적인 진리를 묘사하지 못하게 우리를 돌이키려는 것 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그리고 원 주제를 떠난 말로서 토론, 탈선에 응수하느라고 시간과 정력을 소비하도록 우리를 복잡하게 하려는 것뿐이다. 그에게 그런 만족을 주어서는 안 된다.
Ⅱ. 하늘 성소의 실재성
1. 성소는 하나님 자신과 같이 실재이다
앞에 있는 요소들의 빛 가운데에서 엘렌 화잇이 말씀한 이 한 가지 기본적 도전을 택하여 솔직히 검토해 보자. 하늘 성소가 실제로 있는가? 아니면 그 술어는 다만 인간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맘속에 있는 어떤 추상적인 준비, 목적, 활동을 상징하기 위하여 사용된 한 초월적 상징적인 말인가? 말씀의 증언은 하늘에 있는 성전은 하나의 하늘의 실체요 신령하게 계시된 사실, 하나님 자신과 같이 혹은 새 예루살렘이나 하늘의 제사장으로서 거기에서 봉사하시고 계시는 하나님의 어린양과 같이 실제라는 것이다. 모든 구속적인 활동이 거기에서부터 나오는 그것은 이 모든 웅장한 사건들이 00되고 행사되는 세워진 명령 Carter이다. 이 모든 것은 그리고 더 많은 것들이 우리가 연구를 계속함에 따라서 점점 분명해질 것이다.
2. 실제적 사실이라는 의미
우리가 사용하는 술어를 정의해 보자. 하늘 성소가 실재로 사실로 있는가 아니면 비유적 실재라기보다는 추상적인가? 이것을 고려할 때 우리는 하늘의 실재와 사실을 우리 죄로 저주받은 물질세계의 더러운 지상의 요소들과 물질과 혼돈해서는 안 된다(고전 15:48, 49). 물론 그런 것은 땅의 금, 은, 놋, 나무, 베, 돌, 기름 등으로 만든 모세의 지상 성소의 구성 요소이다(출 25:3-7). 우리는 이 둘을 혼돈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이것들은 확실히 대조적이기 때문이다. 본질에 있어서 실제란 사실 단지 상징적, 수사학적, 비유적인, 가설적이란 말과 반대되는 것이다. 실재적이란 참된 사실의 만질 수 있는 현실이다. 이 모든 것은 비현실적, 가공적, 상상적, 공상적, 망상적, 환상적, 영기성들과 반대되는 말이다. 하늘 성소는 참으로 실제적이며, 추상적이 아니다.
Ⅲ. 모든 것이 중추적인 성소 진리에 집중된다
1. 성소 진리는 재림교의 진수를 이룬다
변할 수 없는 복음은 마지막 시대에 하나님의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다는 기별에서 그 당당한 완성에 도달한다. 이 세계적인 첫째 천사의 기별은 19세기초에 일어나서 계14장의 2째 3째 천사의 기별 하 에서 그 완성에 이른다. 이것들은 사실은 하나이다. 단지 삼중으로 광범위한 범위와 확장과 누가적인 강조이다. 심판은 상징과 실재에서 모두 성소의 준비와 진해의 최후의 국면이다. 그것은 성소의 준비들 속에 불가결하게 묶여 있다. 성밖, 성전, 왜냐하면 그 술어들이 서로 교대로 사용되기 때문이다.
2. Daniel은 O. T.의 배경을 보충했다
그 기초적인 특성 때문에 재림 신앙의 기본적인 00으로 인정되고 있는 이 근본적인 진리를 어느 정도 깊이 연구해 보자. 왜냐하면 어떤 이는 혼돈하여 하늘 성소의 실재성을 부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다름에 있어서 우리는 계시록과 히브리서에 제시된 증거에서 주로 접근해 볼 것이다. 그러나 그 전에 Daniel의 예언은 성경의 배경을 준비하고 그 뒤에 오는 모든 것을 위하여 함께 끼어든다. 그 개요를 살펴보자. 다니엘 7, 8, 9장은 표면만 언급해도 될 정도로 매우 익숙히 알려졌다. 먼저 7:10의 심판의 과경이 천천만만의 수종자들과 함께 영원 저부터 계신 분으로 나온다. 그 다음 “심판을 베푸는데 책들이 펴 놓였더라”(단 7:10).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의 영원한 왕국이 세워지기 전에 교황권 작은 뿔의 뻔뻔스런 공격 후에 나타났다(단 7:14). 그것은 시간 관계와 관련성을 준비한다.
3. 작은 뿔의 불신의 등장
이것은 물론 매일 드리는 제물을 폐하고, 만군의 주재의 성소를 헐어버리는 것은 그 같은 작은 뿔이었다. 그 왕의 진리를 담대히 땅에 내던지셨다(단 8:11, 12).
특히 10계명을 변경시켰다.
안식일은 하나님의 성일로서 일요일로 대치되었다. 00적인 불멸성은 그리스도안에만 있는 생명을 대치시켰다. 침례 대신에 세례가 대치되었다. 갈보리 위에서의 그리스도의 단 하나의 유일한 희생은 일 만개의 지상 제단 위에서의 미사의 희생으로 대치되었다. 신성과 인성이신 그리스도의 유일한 제사장직은 이 같은 지상의 제단에서 단지 인성을 가진 제사장 제도에 의하여 밀려났다. 주의 만찬의 빵과 포도즙은 성병과 화체설로 대치되었다. 모든 교리가 영향을 받았다.
4. 성소를 정당한 중심 위치로 회복하기 위하여
그 다음에 8:14에서 그 정한 때에 성소의 정결이 온다. 그리고 그 다음에 9:24의 70주년과 연결된 선행에서 메시야 왕이 끊어버림을 당하고, 죄가 끝나며, 죄악이 영속되며 영원한 의가 드러난다(단 9:24, 25). 이것이 명료한 구약 성서의 서론이요 배경이다. 그것은 필수적이며 기본적이다. 수세기가 지나갔다. 지정된 시간에 예정된 마지막 때 안에 재림 운동은 정시에 정확하게 이르렀다. 주로 포함된 진리들이 그 합당한 중심 위치에 놓여지고 그 모든 것 중에서 필수적인 부분인 그 탁월한 최후의 사건이 높이 들리었다.
5. 하나님의 성막에 대한 심한 증오심
신약에서 요한의 같은 예언에서 하나님과 그의 장막에 대한 이 적개심이 매우 큰 이 같은 권세에 관해서 묘사되었다. 여기에서 1260년의 그 같은 예언적 기간동안 열국에 바다에서 일어난 계 13장의 첫째 짐승의 상징으로 묘사되었는데, 그의 입을 벌려 하나님을 향하여 참람 되게 말하고 그의 이름을 훼방하고 그의 장막과 하늘에 거하는 자들을 훼방하더라(계 13:6).
이같이 하나님의 상전인 장막에 대한 끊임없는 적개심이 있다. 그리고 이 계시록의 장막임 15:5에 하늘에 증거의 장막의 성전으로 명백히 정의되어 있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으로 가득한 이 성전 장막인데 거기에서부터 마지막 일곱 재앙을 쏟으라는 지시가 나왔다(15:8). 이상이 그의 중추적 위치요, 동일성이다.
Ⅳ. 성전, 보좌, 제단, 법궤에 관한 영감적인 묘사
1. 성전이 하늘에 있었다
다음 사도 요한이 계시록에 하늘의 성전, 보좌, 제단, 그의 증거의 법궤 등에 관한 많은 묘사를 엄밀히 살피라(11:19).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영감 받은 선견자를 감동시킨 조목들의 전반적인 견해를 파악하도록 할 것이다. 또한(이것들의 상호관계) 오늘날 우리에게 알리고 통찰력을 갖도록 하기 위하여 기록하라고 지시를 받았던 이것들의 상호관계를 주목해 보라. 요한은 여기에서 마치 우리의 묘사와 해석의 안내자요 우리의 보는 눈이요, 듣는 귀가된다(1:1).
무엇보다도 먼저 거대한 성전, 거룩한 계시 중에 요한에게 거듭 보여주신 성전은 약 15번 기록되었다. 그것은 성전이라고 불리 울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성전(11:1, 19), 내 하나님의 성전(3:12), 그의 성전(7:15; 11:19)이라고 불린다. 그것의 위치가 있고, 하늘에 있는 성전으로서 명백히 묘사되었다(14:17). 더욱 명백하게 하늘에 있는 증거의 장막의 성전이라고까지 정의되어 있다(15:5). 단순히 하늘의 성전아라고도 부른다(16:17). 제단은 그것과 나눌 수 없이 연결되어 있다(11:1). 일곱 가지가 있는 촛대도(1:12). 그 사도의 묘사의 의도와 그 위치가 틀림없다. 그리고 그 실제성 그와 우리에게 하늘의 성전 혹은 계시 중에 보여진 그 거룩한 부속품들과 함께 장막의 묘사는 실제적이다.
2. 모든 것의 중심에 하나님의 보좌
하나님의 보좌가 있다는 말을 요한이 31번 기록했다. 그것은 물론 성전의 중심에 뛰어난 특성이다. 그리고 그것은 그의 계시의 전체 사건을 통하여 요한 앞에 끊임없이 나타났다. 그것은 한 보좌(4:2)요, 그 보좌(29번)일 뿐만 아니라 특별히 하나님의 보좌(3번 7:15, 14:5, 22:1)이다. 그리고 그것은 그의 보좌(3:21, 12:5)이며, 또한 나의 (그리스도)의 보좌와 공동의 것이다(3:21, 7:17 참고). 더욱이 요한은 이 보좌는 하늘에 있다(4:2)고 선언한다. 이 보좌에 앉아계신 분은 하나님이시다(4:28, 5:7, 6:16, 19:4, 21:5). 이 권능의 보좌라는 영광스러운 무지개가 둘려있고(4:3), 하늘 조력자들이 들러있다(4:4, 6, 5:11). 헬 수 없는 천사의 무리를 포함하여 그 앞에 등불이라고 있었고(4:5), 그 앞에 유리 같은 바다가 있었다. 그것은 중대한 통치자의 지시의 근원이요, 장소이다. 요한은 그 보좌에서 나오는 명령하는 소리를 2번 들었다(16:17, 19:5). 이리하여 성전과 보좌는 불가불리로 연결되어 있고(16:17), 항상 하늘에 있었다. 요한에게는 똑똑한 의식이 있었고 진실을 말했다.
3. 제단의 열쇠의 장소
제단에 관하여 역시 특히 평가해야 한다. 그것은 8번 기록되었는데, 2번은 금(金)단이라 했다(8:3, 9:13). 그것은 보좌 앞에 있었다(8:3). 하나님 앞에 있었다(9:13).
큰 흰 구름위에 앉아 있는 지상으로 돌아오시려고 대기하고 계시며 앉아 계신 인지에게서 가라는 신호를 하는 그 천사는 제단에서 나왔다. 지상으로 돌아오시려고 대기하고 계시며 앉아게신 인자에게 가라는 신호를 하는 그 천사는 제단에서 나왔다(14:18). 하나님의 포도주 틀에 진노의 포도들을 모으라는 2번째 한 명령의 소리가 그 제단에서 났다. 그러므로 그 제단과 그 보좌는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이상이 그 성전의 영감 받은 세목의 일부이다. 그 보좌, 그 제단과 그 법궤이다. 그리고 이것들은 모두 그 성전에 있었다. 그 어린양은 그 보좌와 연결되어 그 옆에 서 있거나 앉아 있는 것으로 항상 묘사되었다. 그리고 그의 성전에서 하나님께 끊임없는 경배와 봉사가 있다(7:15). 자 이제 더 큰 양상 큰 개관을 살펴보자.
Ⅴ. 수세기간 감추어 있던 비밀들이 공개되었다
1. 각 시대의 구원의 파노라마
자 우리는 계시록의 구속적인 양상의 배경을 찾아보자. 모든 것을 내포한 하나님의 구속의 계획의 큰 범위가 사도 요한 앞에 틀림없이 계시 중에 빨리 지나가게 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지상과 시간과 인간의 사건보다 훨씬 더 큰 것을 의미했다. 그것은 하나미과 영원과 하늘, 그리고 그 수없는 천사의 무리들이 포함되었다. 반복되는 계시의 장면 중에 끊임없이 활동하는 하늘의 활동의 장면들이 사람들을 회복시키고 죄를 멸하기로 예정된 요한이 깨어 알 수 있도록 그 계시를 통해서 공개되었다.
사람을 회복시키고 앞으로 올 끝없는 미래의 영원까지 미치는 계시들의 전체 연속적 장면에 우리가 시간이라고 부르는 이 현재의 중대한 시기도 포함된다. 땅의 압축적인 장면들 넘어서 요한은 하늘의 표현할 수 없는 활동들과 인간의 완전 회복을 위한 신성의 현장 뒤에서 활동하시는 자세한 모습이 보였다. 바꾸어 말하면 하나님의 계시의 절정을 이룬다.
2. 큰 사건의 전율하는 중심
요한은 그 큰 사업의 가장 깊은 중심, 고도하는 심장, 구속 사업의 성전의 내심의 부분에서 전능하신 하나님의 보좌를 보았다. 그 택한 부속물들과 헬 수 없는 하늘 수종자들의 군대를 보았다. 그것은 두려운 광경이었다. 왜냐하면 이것은 우주의 전략 명령 중심(우주에 스스로 침범한 죄와 반역의 재난을 처리하기 위하여 특별한 일을 하고, 그 다음에 이 지구에 인간거민으로 살도록 하시는 중신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죄의 문제가 해결되고 죄의 창시자들과 가해자들 영구히 없이 해버리고 연달아 생기는 정결한 우주와 땅에서 구속 받은 자들이 예언된 새 땅에서 영원히 살게 될 때까지 그 전략 사무는 계속된다.
3. 0000와 하늘의 보좌
그 장엄한 운동과 활동이 모두 사도의 휘둥그레진 눈앞에 생생하게 지나갔다. 그는 한 장면 한 장면 먼저 한 면을 보고 다음에 다른 면을 보고했다. 그 다음에 요한은 그 모든 것을 기록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우리도 역시 특히 오늘날 그의 눈을 통해서 보고 빛을 얻고 인도를 받도록 하기 위하여 그러나 요한을 가장 감동시킨 것은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의 미로 핵심에 있는 그 하늘의 보좌와 함께 있는 그 두려운 명령 중심 이였다. 그는 그것에 관하여 거듭 말했다. 그는 22장 가우데 거의 40번이나 이 보좌의 중심을 언급하고 묘사하도록 강권함을 받았으며 그 권세와 특성들과 놀라운 성취에 관해서 주의를 환기시켰다. 시간과 영원의 모든 문제가 결정의 장소요 모든 행위를 근원으로서의 그 보좌에 부여되고 있고 그 보좌에서 나온다. 그리고 만물을 창조하시고 우주를 주관하시는 분은 그 보좌 위에 앉아 계신 분 하나님과 하나님의 어린양이시다. 모든 것을 그 분이 결정하시고 그 분의 지시대로 행해진다. 그리고 요한이 거듭 열거한 그 보좌는 하늘에 있는 거대한 성전의 가장 깊은 내심에 위치되어 있다. 그 택한 사도가 반복해서 강조하게 된 것은 예정된 것이요 의미심장한 것이다. 거듭 거듭 요한은 이 하나님의 성전 그 특성들과 무엇보다 그 탁월한 활동들에 관해서 언급하도록 마음에 강권을 받았다. 그것은 그를 사로잡았다. 모든 사람들의 운명이 거기에 달려 있었다. 모든 것이 그 한계 내에서 결정되었다. 그것은 여러 세대의 큰 범위를 총망라한다. 그것은 압도적인(저항할 수 없는) 능력과 의의 공의의 장소이다.
4. 우리의 인내를 위한 펼쳐지는 파노라마
신속한 큰 걸음으로 다음의 펼쳐지는 파노라마의 요점들이 요한에게 공개되었다. 이제 그 최후 장면을 향하여 신속히 진행되는 그 무한한 구속의 계획 중에서 신의 역사하심과 지배인을 알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당신의 지상의 추종자들을 인도하기 위하여 여기서 공개하신 그 은밀한 일을 요한의 성령에 감동받은 눈을 통해서 볼 수 있도록 애써야 한다.
우리가 확실한 것과 확신을 갖도록 하기 위해서 그 큰 개관을 이해하는 것은 기본적인 것이다. 이리함으로서만 우리는 각 시대에 관한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 가운데에서 그 큰 개관을 이해하는 것은 기본적인 것이다. 이리함으로써만 우리는 각 시대에 관한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 가운데에서 그리고 계시된 과정과 시게에서 우리가 바로 어느 지점에 와 있는가를 안다. 그리고 이모든 운행하는 그 통치자의 결정과 지시는 요한에게 공개된 것과 같이 위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에 있는 하나님의 보좌의 방에서부터 온다. 계시된 연속적인 장면들의 큰 범위를 주목하라.
Ⅵ. 성전 보좌의 방 - 우주의 명령 사령부
1. 무한한 권능의 근원
그러므로 그 성전의 보좌 방은 무한한 권능과 목적, 사랑과 행위의 지성소이다. 인간을 위한 모든 구속의 행위는 그 말할 수 없는 보좌, 그리스도의 함께 앉은 보좌일 뿐이니라(3:21). 아버지의 보좌에 중심 되어 있고 거기에서 나온다. 그것을 숙고하라.
사도 요한은 열린 문(4:1)을 통해서 계시 중에 이 보좌가 하늘에 안치되어 있음을 보았다. 한 매혹적인 부지개가 그 보좌를 두르고 있었다. 유리 같은 큰 바다가 그 주위에 있었다. 특별한 보좌관들이 24명이 하나님 주위에 앉아 있었고 묘사하기 어려운 다른 보좌관들과 한께 있었다(4:6-11). 요한은 거창한 활동을 보았고 소리들을 들었다.
2. 수 없는 보조자들이 활발하게 협조했다
요한은 죽임을 당하신 하나님의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를 보았으며, 어린양의 특별한 활동을 주시했다. 하늘의 비밀들이 공개되려고 했다. 그러나 먼저 구속받은 자들 중에 더러가 거기 있다. 그는 이 거대한 성전에서(큰 봉사하는 천사들의 큰 군집) “천천만만”의(4:11)의 천사들을 보았다. 그 크기는 말로 표현 할 수 없는 그 보좌가 있었다. 그 모든 활동 중에 중심인물이신 그 어린양, 요한은 또한 근처에 한 제단을 보았고(계 6:9), 그보다 조금 전에 일곱 금 촛대(계 1:12)와 그것과 특별한 관계가 있는 인자를 보았다(1:13). 그리고 그는 성도들을 죽인 자들에 대한 보복을 두려워함은 물론 순교자들을 위한 보상에 관한 말을 들었다(6:16, 17).
3. 보좌와 성전이 둘 다 안치되어 있었다
요한은 보좌 앞과 어린양 앞에 서 있는 구속받은 자들의 헬 수 없는 무리들을 보고 감명을 받았다(7:9). 그리고 하나님을 섬기는 그 보좌 주위에 있는 천사들(특히 주목을 받을 것은) 그의 성전에(7:15) 있었고 주께서 그 모든 것 가운데에 그 어린양과 함께 그의 보좌에 앉아 계셨다(7:17). 그것은 논쟁의 여지없이 하나님의 성전에 그 보좌가 있는 것이다. “하늘에 있는” 그 성전에서(8:1) 그 선지자는 땅에 내리시는 심판의 연속적 사건들 특별한 작용을 본다. 다시 요한은 가까이에 제단(이때는 “금 제단”이라고 부른다. 이 그 “보좌 앞에” 있는 것을 본다(8:3, 5). 그 다음에 그는 하나님 앞에 있는 금단에서 나오는 큰 소리를 들었다(9:13). 이상이 일반적인 관계와 특별한 배경이다.
4. 지상에서의 활동은 하늘로부터 지시되었다
그 다음 요한은 땅에 임할 하나님의 심판이 하나님 앞에 있는 금단에서 지시되는 것을 보았다(9:13, 14). 제한하는 것은 물론 권세를 승인하거 명령을 발한다. 이것들이 하늘에서 명하여 땅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부분이다.
하늘과 땅 사이에 직선의 연결이 있고(천사의 사자들(10:1)과 권위 있는 음성이 있다(10:2, 4, 7). 하늘에 있는 그 성전에서 나온 명령이요 땅에 놀라운 사건들을 위한 준비이다. 시간은 흘러간다(10:6). 땅에서 운동이 강화되고, 촉진된다.
이리하여 보좌에서 온 지령과 땅 위의 놀라운 활동들 사이에 불분의 관계가 있다. 이 현상은 특히 그 성전에 있는 보좌에서 지시된 발전은 시대 끝이 육박함에 따라서 촉진된다.
5. 하늘 성전에 있는 법궤
그 다음에 그 현상에 직접 참여하게 되었다. “일어나서 하나님의 성전과 그 제단을 척량하라는 명을 받았다(11:1). 그는 그의 의리를 파악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하늘 성전과 지상의 뜰 사이의 구분이 되어 있었다(11:2). 요한은 그 다음에 시간의 흐름에 따라서 지상의 마지막 때 하나님이 진노의 때가 이르렀기 때문에 땅의 열방들의 분노하는 것을 보았다(11:18). 요한은 다시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열린 것을 보았다. 그 위치에 관해서 잘못이 있을 수 없다. 그 다음 그는 그의 성전에서 그 증거의 법궤를 보았다(11:19). 그 배경과 의미는 요한에게 배우 익숙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지상의 상징들은 보든 유대인등이며 잘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고대 보세의 성밖으로 돌아가서 그가 지금 보고 있는 그 큰 하늘의 실재를 예표하고 반영하는 성소를 잘 알기 때문이다.
6. 지상에 있는 교회에 대항하는 전쟁
그 다음에 좀 더 계시 중에 영원한 과거 중에 하늘에 있는 놀라운 역사적 대 쟁투 그리스도에 대항하는 뻔뻔스런 반역과 천사들의 1/3의 변절 등이 계시되었다(12:4). 그 다음 마귀가 그의 추종자들이 패배하여 추방당하여 “땅으로 내어쫓기어”(12:7-10). 불행히도 인간 중에 그들의 집합소가 되었다. 그 다음에 1260년의 교황권 시대의 기독교회에 대한 길고 잔인한 전쟁이 요한 앞에 전개되었다. 그는 때의 남은 자들과 남은 교회로 향하게 되었다. 그는 이들의 이중 특성,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 묘사된 것을 주목한다(12:17).
여기 세기간의 쟁투가 다시 반복해서 보였다. 주요 활동 자들과 요인들이 행동 무대에 교차된다. 교화와 국가의 공모가 포함되어 있다(13장). 그리고 어린 양의 구속적인 준비 때문에 어린 양과 그를 따르는 자들(14:1-4)에게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흠 없다고 선언된 자의 승리가 계시된다.
7. 재림 직전의 삼중 기별
그 다음 마지막 시대에 땅에 보내는 하나님의 삼중 기별 - 심판의 시간, 바벨론의 무너짐. 인류에게 보내는 짐승의 표의 기별은 19세기 초에 전파되기 시작한다. 이 기별의 결과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믿음을 지키는 충성된 남은 자들이 생긴다(14:12). 그 다음에 세상 끝에 큰 추수의 때에 영광스런 재강림이 있다(14:14-17).
막 재림하시려고 “흰 구름” 위에 앉아계신 하나님의 아들과(14:14) 더불어서 요한은 하늘에 있는 성전에서(14:15)부터 한 큰 소리로 앞으로 가라는 지시를 들었다. 그 다음에 2번째 큰 소리로 진노의 포도송이들을 하나님의 포도주들이 넣도록 모으라는 지시가 그 같은 성전에 있는 제단에서부터 발해졌다(14:18, 19). 이 장면들은 시대와 끝을 의미한다.
8. 마지막 칠 재앙들도 성전에서 지시했다
요한은 다시 눈을 들었다. 그는 그 보좌 앞에 있는 그 큰 유리바다(하늘에 있는)를 다시 한번 더 보았다(15:2). 그는 하나님의 심판이 막 쏟아지려함을 보았다(15:4). 다시 계시 중에 요한은 쳐다보라는 지시를 받았다. 그는 하늘에 있는 증거의 장막의 성전을 땅에 쏟으려고 그 성전(15:6-8)에서 일곱 천사들이 나왔다(15:7). 요한 그 다음 지시를 들었다. 그 성전에서 나오는 큰 소리 같은 것이 치명적인 사건 중에 심판의 대접을 쏟으라고 명하는 소리. 일곱 대접을 차례대로 사람들에게 쏟았다. 한 변호하는 천사의 음성이 하늘 성전에 있는 제단에서 들려 나왔다. 주의 심판의 의롭고 참되시도다(16:7). 이것들은 최후의 큰 삼중 연합과 땅위에 아마겟돈 전쟁으로 절정을 이룬다(16:13-16).
일곱 천사가 자기의 대접을 쏟았을 때 요한은 다시 하늘 성전의 그 보좌에서 나오는 한 큰 소리를 들었다. “되었다(다 이루었다)”(16:17). 이것은 또한 구속의 명령 사령부와 심판 활동 본부에서 왔다. 그것은 최후의 보응 이 절정을 이루어 끝났다는 것을 표시했다. 구속 사업은 영원히 끝났다.
9. 하늘에서 오는 최후 권세와 호소
세부적으로 들어가서 기독교 시대동안 이 모든 두려움을 초래했던 교회의 배도의 깊이는 국가들의 협조를 얻고 방조를 받았다(17장).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여기서 한 지배하는 손을 가지셨는데 보라와 하늘에 있는 성전에서 한 빛나는 천사가 내려오는 것을 보았는데 그 영광으로 땅이 환해지는 것을 보았다(18:1).
그러나 바벨론의 완전하고 최종적인 멸망의 선언 중에서 요한은 다른 소리 이번에는 부드러운 하늘에서 오는 소리를 들었는데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예하지 말고 그 받을 재앙을 받지 말라는 것이었다(18:4). 그것은 흐트러져 있는 배도한 조직체 속에 있는 당신을 충성하지 말고 그 받을 재앙을 받지 말라는 것이었다(18:4). 그것은 흐트 러져 있는 배도한 조직체 속에 있는 당신을 충성됨이 따르는 자들을 하나님이 사랑으로 돌보고 계심을 지적한다. 그리하여 그들은 응했다. 이것들 우리는 곧 보게 된다. 다시 요한은 보좌를 향하여 눈을 들었다. 그는 그 보좌에서 들리는 소리를 듣는다. 그는 반역에 가담했던 열국을 치시기 위하여(19:15) 하늘에서(19:11) 말하되 하나님의 아들이 오실 때의 보복적인 심판의 이 큰 마지막 장면들을 본다. 그것은 성도를 모으는 것과 악인을 완전히 멸하시는 것과 더불어서 누가적인 강조를 하기 위해 주신 재강림의 또 하나의 묘사이다.
10. 사단과 그 추종자들의 영원히 멸망되었다
또 다른 힘센 천사가 하늘에서부터 내려와서(20:1) 사단을 묶어 1000년간 황폐된 땅에 그를 가두었다. 동시에 하늘에서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과 공의가 우주 앞에서 부활하고 변화된 성도들에 의하여 입증됨으로 다시 변호되었다. 이리하여 그 큰 파노라마는 끝난다.
1000년 기 끝에 사단과 그의 악한 군대들과 땅에서 부활한 악인들의 큰 무리가 하나의 최후의 결사적인 그러나 헛된 공격을 이제 하늘에서 내려온 하나님의 도성 새 예루살렘에 가한다. 그 다음 이들은 하늘에서부터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삼키는 불에 의하여 멸망된다(20:7-9). 이것이 2째 마지막 영원한 사망이다. 왜냐하면 죄의 연속극에 가담한 모든 것들 사단, 타락한 천사들, 악인들이 모두 없어진다.
11. 거룩한 도성에서 성전을 보지 못했다
장면은 갑자기 바뀐다. 요한은 죄로 훼손되고 파괴된 낡은 땅 대신 대치된 새 하늘과 새 땅을 본다. 하나님께서 훤히 회복된 파라다이스에서 사람들과 함께 거하신다(21:1-6). 이 지구는 악한 반역에 가담한 한 유성의 부대는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성도들의 죄 없는 집이 영원히 된다. 그러나 놀라운 창조적 장면들 중에 다음의 결과가 있다. 새 땅의 수도 새 예루살렘에서(하늘에서 하나님께로부터 온)(21:2) 요한은 거기에 성전에 없는 것을 보았다(21:22). 더 이상 구속 사업, 중보, 심판의 명령 중심이 있을 필요가 없다. 죄는 영원히 없어졌다. 구속은 완성되었다. 얼굴과 얼굴을 대면하는 교제는 영원히 회복되었다.
12. 성전 봉사의 필요성이 더 이상 없어졌다
그것을 잘 명시하러 사람의 구속과 죄의 문제에 포함된 보든 것들을 취급하기 위해 쓰여진 한 성전 안에 한 중보자의 필요성이 더 이상 없다(21:22-24). 그러나 하나님의 보좌와 어린양의 보좌는 영원히 그곳에 남아있다. 2번 언급되었다(22:1, 3). 구속받은 자들은 이제 “그의 얼굴을 볼 것이며”(22:4), 배면하여 교제한다.
그러므로 오늘날은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에 위치된 하늘에 한 보좌가 금단과 법궤와 같은 부속물들과 함께 그 하늘에 계신 것이 확실한 것과 꼭 같이 있다. 우리의 구속과 승리의 유일한 희망은 그 성전에 중심되어 있다. 아무것도 구속의 계획을 실천하시는 하나님 자신과 하나님의 어린양보다 더욱 사실적이며 실재적일 수 없다.
Ⅶ. 히브리서 구속의 계획에 있어 제사장의 성직
1. 계시록과 히브리서의 영감적인 일치
그 성소의 양상에 있어서 계시록은 주로 모든 것을 충족하는 하나님의 어린양의 희생과 함께 하늘 성소의 보좌방의 책인 한편 히브리서는 지금 거게에서 봉사하고 계시는 모든 것을 충족시키는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강조하는 것과 더불어 그 같은 하늘 성소의 책이다. 그리고 그 큰 하늘의 실재에 있어서 그리스도에 관해서 완전한 조화의 일치가 있다. 그러므로 히브리서에 바울이 성령의 지시에 의하여 보충한 요한의 영감의 제시는 그 두 불가분으로 합해서 제시되는 것은 그 같은 성전과 그 같은 구속적 준비이다. 이 중에서 바울은 모세의 지상 성소에 관한 깊은 하늘의 의미 하늘의 실재의 빛 가운데에서 제시된 성소 봉사와 부속물들과 함께 제시한다. 그리고 이것은 하나님의 생각에 있는 단지 한 추상이 아니요, 한 객관적인 실재였다. 그리고 그리스도는 이 두 책에 있는 모든 것의 활동적인 핵심이다.
2. 죽으시기 위하여 사람이 되심
아래에 바울의 간결한 개관을 대충 추려본다. 히브리서는 하나님의 아들이 먼저는 땅 위에서 승리의 생애를 사시고 우리를 위하여 대신 죽으시기 위하여(히 2:9) 성육신을 통하여 사람이 되신 것에 관한 책이다. 그의 지상 여행을 위하여 하나님이 예비하신 사람의 몸을 받아들임을 통하여 가능케 되었다(10:5). 이렇게 함으로서만 그는 속죄의 첫 번째 큰 목적 대신의 화목의 제물을 준비하는 일을 이행하실 수 있었다.
그러나 속죄는 희생과 제사장을 모두 포함한다. 그리고 아들 만물의 창조자요 붙드시는 분(히 1:23)은 이 놀라운 구속의 회복시키시는 목표의 성취를 위하여 성육신을 통하여 인간 형태와 본정으로 낳으셨다(히 1:5, 6; 5:5). 3번이나 하나님과 주님으로 부름을 받은(히 1:8-10) 그 분은 땅에 있는 그의 인간 형제들과 하나가 되셨다(히 2:11-17).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으심으로(히 2:19)써 그의 죽으심은 더 넓은 목적까지 마귀 자체를 멸하시며(2:14)(죄의 악한 창시자) 사람에게 재난과 사망의 원인을 멸하시는 것을 의미했다. 이리하여 그리스도는 죄의 해독의 원인과 결과를 모두 없이하게 되었다.
3. 제사장이 되시려고 인간이 되심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대신 속죄의 희생이 되실 뿐만 아니라 역시 우리의 신실한 대제사장이 되시어 우리의 죄를 위하여 효과적인 화목을 이루시기 위하여 죽음을 통과하셨다(2:17). 바울은 예수님을 그의 직무에 충실한 우리에게 임명된 대제사장(3:1)으로서만 아니라 그의 지상에서의 그의 성육신의 생애동안에 시험을 받으시고 이기셨기 때문에 우리 연약함을 느끼시고 동정하시는 비교할 수 없이 크신 대제사장(4:14)으로 묘사한다(4:15). 계획과 준비는 완성되었다.
4. 어린양도 되시고 영원한 제사장이시다
그리고 이제 그는 영원히 하나님의 어린양리신 것과 꼭 마찬가지로 영원히 제사장이시다(5:6, 6:20, 7:21). 이 두 직책을 일단 수확하신 이상 그분은 결코 피차의 관계에서 물러나지 않으신다. 이 직분들은 영원히 취하셨다. 그러므로 이 이중의 관계는 그가 그 후에 내버리실 어떤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는 단지 끝없는 생명의 능력이시 뿐 아니라, 끝없는 사랑이시기 때문이다(7:16). 그분은 지상의 고난을 통해서 완전하게 되셨다(5:8, 9). 그는 결코 변치 않으신다. 그는 우리의 영원한 보증이시다. 예수께서는 그의 “00의 지사장직을 가지시고”(7:24),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럽히지 않은”, 그리고 죄인에게서 떠나계신, “자신을 제물로 드렸다”(7:24)고 한 것과 같이 희생을 드리셨다. 오직 그분만이 이 일을 하실 수 있다. 오직 그의 생명만이 충분할 수 있다. 이 큰 행사에 있어서 그는 이중의 관계에 계신 그 분 안에 집중된다. 그는 모든 국면에서 크신 모든 것을 포함하신 산 구원의 실재이시다. 이 원인 때문에 그 분은 영원히 드리신바 되었다(7:28).
Ⅷ. “제사장직” - 히브리서의 주요 기고
1. 하늘 성소에서의 제사장직
이것은 8장과 9장에 제시된 바울의 제시의 핵심으로 우리를 이끈다. 이런 대제사장이신 예수께서는 하늘에 계신 대주재의 보좌의 우편에 앉아 계시다(8:1). “참 장막, 곧 사람이 한 것이 아닌 주께서 베푸신 성소의 봉사자, 하늘에 베풀어진 이 한 가지(성소)이시다. 그러므로 만일 그리스도께서 실재하신다면 그가 봉사하고 계신 하늘 성소도 실재한다. [스데반은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우편에 서계신 것을 보았다(창 7:55, 56). 그리고 바울은 골 3:1과 롬 8:34에 예수께서 그 우편에 앉아계시다고 말한다. 그리고 바울은 히브리서에서 3번거기에 주께서 계시다고 했다(1:3. 10:12, 12:2). 논쟁할 여지가 없다.]
2. 하늘 실재와 땅의 그림자
지상의 모세의 상징적 성박은 죄 문제가 지속되는 항 계속 작용하여 남아있는 하늘 실재(성소)의 시장의 없어지는 그림자였다. 이 지상의 상징은 산에서 그에게 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하늘에서 발단된 것이었다. 모세의 성막은 조잡한 복사요 한 지상의 모형, 채택된 원본 그대로의 복사요, 응용시킨 모조품이요, 수정된 재생품이요, (사람을 위하여 사람이 만든) 대표작 이었다. 하늘 성소에서의 그리스도의 봉사는 따라서 더욱 나은 우수한 봉사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더 좋은 약속 위에 세워진 더 나은 좋은 언약 위에 기초되었기 때문이다. 그것과는 비교할 것이 없다. 그것은 무한히 더 좋은 것이다. 그것은 완전한 하늘의 영광스런 실재이다.
3. 지상 성소는 두 성소의 부분이 있다
그러므로 세상에 속한 성소가 하늘 성소의 모형인 “신령한 봉사의 절차”를 좇아서 있었다(9:1). 그리고 그 예표는 전체로서 성박의 두 구분 혹은 부분이 있었다. 그 첫 부분은 촛대와 떡상과 진설병이 있는 성소라고 부르는 거룩한 곳이 있었다(9:2). 그 다음에 건너편에 지성소라고 부르는 성밖이 있었다(9:3). 이곳은 하나님의 임재가 나타난 곳이었다. 이 침범할 수 없는 부분은 위엄 있는 하나님의 율법, 언약의 비석들이 있는 언약궤가 있었다(9:4). 또한 금향단과 만나의 항아리와 아론의 지팡이가 있었다. 그리고 특히 공의와 자비, 율법과 은혜가 섞인 그 궤를 덮은 시은 죄가 있었다. 그 준비는 모든 면에서 완전하였다.
4. 승천하여 성소 봉사에 들어가셨다
제사장의 봉사에 관하여 땅의 제사장들은 첫 장막 혹은 성소에서 저들에게 지정된 봉사를 행하며 배일 봉사했다. 그러나 지상의 대제사장은 일년에 한번씩 2째 혹은 지성소에 속죄일에 들어갔다. 제사장의 봉사의 예비적인 국면이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자신을 드리셨을 때 땅에서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 시에 이미 이루셨다. 그러나 십자가에서의 속죄의 행위의 은사를 적용하는 하늘의 제사장의 봉사에 들어가신 것은 그의 부활과 승천 시였다. 그 지상의 것은 단지 현재를 위한 비유였다.
5. 참 성소가 하늘에 설치되어 있다
우리의 대제사장 그리스도는 사람의 손으로 하지 않은 더 크고 더욱 온전한 장막에서(9:1!) 지금 봉사하거 계시다. 우리의 구속을 위하여 죽임을 당하신 후에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우하여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하늘 성소에 들어가셨다(9:12). 그리고 지상의 모형들, 하늘에 있는 것들의 모형(9:23)이 피로서 정결케 될 수 있었던 것같이 하늘에 있는 것들은 그리스도 자신의 보혈의 무한한 희생으로서만 정결케 될 수 있다.
6. 중보 후에 심판과 재림
바울은 명백한 말로 그리스도께서는 지상의 모형에 들어가지 않으시고 하늘에 들어가사 이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셨다(9:24). 그리스도께서는 갈보리 위에서 모든 사람을 위하여 단번에 자신의 희생으로 말미암아 죄를 제거하셨다(9:26).
그러나 바울은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하늘에서의 그의 계약적인 중보를 하신 후에 심판이 올 것이라고 확증했다(9:27). 그리고 심판 후에 그리스도의 대격변의 재림이 그가 죄와 상관없이 구원하시기 위하여 두 번째 나타나실 때에 있을 것이다(9:28). 그것이 사건의 순위이다. 얼마나 놀랍고 촉진시키는 묘사인가! 얼마나 당당하고 모든 것을 포함하는 완성시키는 모습인가! 그것은 그리스도안에서 그를 통하여 준비된 구속의 행위 전체를 포괄한다.
7. 지상의 그림자가 정확한 상징은 아니다
땅의 그림자가 정확한 상징 혹은 대표가 아님을 다시 주복해 볼 때 대표적 지상의 짐승의 희생이 분명히 실제로 죄를 없이 할 수는 없다(10:4). 그러나 그리스도의 완전한 모든 것을 충족시키는 자신의 희생(그 분을 위하여 준비된 몫으로 이루신(10:5))은 죄를 없앤다. 그것은 모든 것을 단번에 거룩케 한다. 그것이 큰 목표이다. “단 한번의 희생”을 하신 후에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하나의 완전한 제물, 영원히 완전케 된 것을 가지고 하나님의 우편에 앉으셨다(10:21). 그러므로 모든 면에서 우리의 믿음의 의요, 온전케 하시는 이이신 그리스도는 하늘에 있는 성소에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다.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인 그리스도는 하늘에 있는 성소에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다.
Ⅸ. 하늘의 성소의 실재에 관한 놀라운 묘사
1. 우주에서 더 이상 실재적인 것이 아무것도 없다
바울과 요한은 이와 같이 같은 언어를 사용했다. 그들은 하늘에 있는 성소의 하나의 명령 본부에서 이행되는 하나의 유일한 구속의 계획을 강조하여 같은 것들에 대하여 말한다. 그리고 그 모든 것 중에서 뛰어난 그 모든 국면에서 뛰어나신 것은 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우리의 대제사장 영원한 언약의 피를 통하여 우리의 구원을 효과 있게 하시는 분이시다(13:20).
결론은 불가피하다. 참으로 우리는 실제적으로 죽음을 통하여 실재적 속죄를 이루신 실재하시는 그리스도를 소유하고 있다. 그리고 실제적인 부활과 승천 후에 주께서는 우리의 실제적인 대제사장이 되시어 실재하는 하늘에 있는 한 실재적인 재림시에 우리를 당신께로 모으신다. 성소를 포함하여 보든 국면에서 이 냉혹한 결론보다 더욱 실패적인 것이 우주에는 아무것도 없다.
2. 구속의 전체 범위가 포함되었다
바울의 기별을 요약해 보자. 구속의 전체 범위가 포함되어 있다. 신성의 모든 충만함이신 삼위일체 신성의 제 2위이신 그리스도의 영원한 신성(그의 성육신(신성과 인성을 겸하신), 역자주), 십작에서 하나님의 어린양으로서의 그분의 대신 죽으심 그리스도께서 제사장으로써 골고다의 속죄 행위의 말할 수 없는 은사를 적용하고 계시다.
드디어 그분은 지금 엄숙히 진행 중에 있는 하나님의 심판의 큰 시간에 심판장으로서 최고의 책임을 이행하고 계신다. 그것을 마칠 때 주님을 당신의 완전한 구속의 전리품들을 모으시기 위하여 만왕의 왕으로서 다시 오실 것이다. 이상이 바울이 제시한 힘 있는 묘사이다. 그리고 하늘 위에서 계속 중인 이 모든 놀라운 구속적인 활동은 모든 구속적 진행과정의 초점이요 근원인 하늘 성소에서부터 비치고 중심되어 있다. 오직 하나님만이 그런 놀라운 계획을 고안하실 수 있다. 오직 그리스도만이 그것을 가능케 하실 수 있으시다. 오직 영감만이 그것을 계시할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두 가장 큰 동시대의 신약 시대의 사도요 선지자들 계시자 요한과 신학자 바울을 통하여 완전히 기록되었다.
Ⅹ. 예언의 신은 성소진리에 관해서 입증한다
1. 명료한 예언의 신의 확증
우리는 성소 진리에 관한 예언의 신의 말씀으로서 마치려 한다. 이것들은 감명 깊고 놀랍게도 이해하기 쉽다. 이것들은 우리의 검토에서 포함된 근거를 완성할 때에 아마 우리의 안내서가 될 것이다. “우리 신앙의 기초”, “진리의 완전한 조직”, “큰 본질”, “중심 진리”, “성령으로 입증됨”과 같은 것을 주목하라.
성소 문제는 1844년의 실망의 비밀을 여는 열쇠였다. 그것은 연결된 조화되는 진리의 완전한 조직을 보여준다.
“하늘에 있는 성소는 인류를 위한 그리스도의 사업의 바로 중심이다”(GC 488, 1888년 편찬).
“하늘의 성소에서의(우리 중보자 그리스도)의 봉사는 우리 신앙의 기초이다”(Letter 208, 1906. Ev 228).
“그리스도의 속죄는 위대한 본질이요, 중심 진리이다”(Ms. 156, 1898; Ev 228).
“이 진리의 기둥들은 영원한 산같이 사단과 그 군대와 연합한 사람들의 모든 노력에도 움직이지 않고 확고히 서 있다”(R.&H. 11, 27, 1883. Ev 223).
“위에 있는 성소에서의 인간을 위한 그리스도의 중보는 십자가 위에서의 그의 죽으심과 꼭 같이 구원의 계획에 요긴한 것이다.” 그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그는 그의 부활 승천 후에 하늘에서 완성할 사업을 시작하였다(GC 489, 1888).
“우리 신앙의 큰 기둥들이 제시될 때, 성령께서는 현저한 방법으로 이 교리를 설교할 때 입증하셨다. 그러나 오늘날에도 과거에서와 같이 어떤 이들이 새로운 이론들을 형성하려고 할 것이며 하나님의 신이 그의 인을 치신(승인, 인정하신) 진리들을 부인하려고 할 것이다”(Ms. 125, 1907. Ev 224).
2. 실제적인 성소의 부인
우리가 들은 바, 특별한 부언과 특별한 이론들이 나타날 것이다.
“원수는 성소가 없다고 하는 교리와 같은 거짓 이론들을 만들어 낼 것이다. 이것은 믿음에서 이탈하게 되는 점들 중에 하나이다.”(R.&H. 5, 25, 1905. Ev 224).
“과거에 주께서 존귀하게 여기셨던 자들 중에 어떤 이들까지도 성소 문제를 포함하여 진리의 여러 면들에 관하여 그릇 인도하는 이론들을 옹호하게 될 정도로 진리에서 매우 멀리 떠날 것이다”(Ms 11, 1906. Ev 360).
제37장 재림의 지연 Divine Reasons Disclosed - No.1(재림이 지체된 신의 이유가 공개됨)
Ⅰ. 성취가 연기되었다 - 영감의 해설이 준비됨
1. 왜 약속들이 아직 성취되지 않았는가?
수 십 년간의 위기의 빛 가운데서 우리가 이점에 대하여 보도해왔고 예언의 신을 통해서 주신 바와 같이 당신의 많은 예언들과 약속들을 성취시키려고 우리 주님의 임박한 재림의 확신들을 반복했다. 지금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엄숙한 문제는 다음과 같다.
약속하신 우리 주님의 오심을 지연시키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가 왜 어디에 이유가 있는지 정확히 알 수 있는가? 그리고 누가, 무엇이 책임인가? 우리가 건방진 추측을 하지 않도록 이 문제가 계시되어 있는가? 아니면 우리가 재림의 임박함을 기대한 것이 근본적인 잘못이 있거나 잘못 인도된 것인가? 그리스도께서 예측할 수 있는 미래에 실제로 오실 것에 대한 어떤 진정한 확증이 있는가? 아니면 우리가 마치 노아가 홍수 전에 기다리는 날 동안에 당할 것같이 조소하는 세상의 조롱거리가 되어야 하는가? 혹은 니느웨에서의 요나와 같이 그리고 1844년 실망 후의 밀러주의 재림신도들같이? 예언의 신은 오애 지체되는 것은 물론 재림의 임박함의 확실성에 관하여 실제로 뭐라고 말하는가? 일반적으로가 아니라 세부적으로 무엇이라고 했는가? 오늘날의 우리들에게 어디에 책임이 있는가? 만일 잘못이 있는 그 환경을 변경시키기 위하여 꼭 무엇을 하지 안으면 안 되고 할 수 있는가? 하나님의 선언과 지시는 무엇인가?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것은 중대한 문제이다.
2. 양심적으로 솔직한 접근을 해보자
어떤 이들은 매우 많은 사람들을 그렇게 오랫동안 당혹케 해온 이 문제를 옆으로 제쳐놓는 경향이 있어왔다. 어떤 이들은 그들의 충성이 의문시되지 않도록 그것을 말하기를 주저해왔다. 소주는 위에서 언급한 이유들을 찾아냄이 없이 어떻게 모두 잘 될 것이라는 그들의 맹목적인 확신을 교란시킬까봐 그 사실들을 대면하기를 두려워 해왔다. 그러나 진정한 진리는 두려워할 것이 아무 것도 없다. 하나님은 결코 속지 않으신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거짓말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히 6:18, 딛 1:2). 우리는 이것에 신뢰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 책이 다루는 전반적인 분야의 연구 중에서 이 지점에서 하나님 그분의 지혜, 사랑, 정직성, 그분이 선언한 통치권에 확신을 가지고 바로 이 문제의 진상을 직면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건전하고 균형 잡힌 결론에 도달하도록 이러한 문제를 이지적으로 정직하게 두려움 없이 철저히 연구하기를 원하신다. 만일 이 책이 우리 주님의 오심을 오래 지연시킨데 대한 계시된 이유들과 예언의 신 청사진에 매우 명백히 상세히 설명된 교제 방법들을 만일 솔직히 다루지 않는다면 이 책은 직무태만이다. 적절한 검토가 요구되고, 여기에 취급된다.
3. 연대적 순서대로 기록된 말씀들
이해와 해결을 찾으려고 우리를 위해서 남긴 서류상의 기록을 주의깊이 탐구해 왔다. 수 년 동안 영감에 의하여 주신 이 당황케 하는 지연에 관하여 기록된 말씀들의 이해하기 쉽게 수집을 아무도 거의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은 요긴한 출발점이다. 이 장 끝과 다음 장에 계속해서 예언의 신의 말씀들을 연대적으로 그 연대 순서를 표시하는 숫자를 넣어서 기록했다. 그 시기는 때때로 의미심장하다. 그리고 가장 의미심장한 것은 기록한 때나 환경을 설명하는 해설을 첨부했다. 그 인용 중에서 요점을 속히 관찰하고 파악하기 위하여 중대한 구절은 이탤릭체로 썼다. 반복을 주목하라. 왜냐하면 반복은 중요한 점을 강조하거 내포된 여러 관점을 지적하는 엘렌 화잇의 독특한 방법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이 같은 방법으로 그 전체 묘사는 우리 앞에 명백히 드러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모든 것과의 우리의 개인적인 교단적인 관계를 알게 되고 따라서 스스로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계획의 중요성은 분명하다. 이 검토는 이리하여 우리에게 중대하거 개인적인 것이 될 수 있다. 그리고 반드시 그렇게 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이것은 우리 각 사람의 개인적으로는 물론 교회 전체로서 운명을 결정하는 입증된 운동으로서 결론적으로 우리에게 직면한 가장 당황케 하는 문제들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먼저는 이해하고 그 다음에는 현대에 대한 하나님의 소원과 기대에 따라서 반응을 모이는 것이 우리 개인적인 그리고 교단의 책임이다. 그러나 먼저 우리는 이 역사적 배경을 연구할 필요가 있다.
Ⅱ. 세계적인 재림의 각성이 배경을 형성함
1. 구대륙의 재림의 대 각성
19세기 새벽에 장면을 묘사해보자. 하나님이 심판의 때에 관한(계 14:6, 7). 광범위한 인식에 기초된 마지막 때, 특히 1830년대에 일어난 세계적인 재림에 대한 대 각성이 오시는 주님을 영접하도록 세계 도처에서 반응을 보이는 백성을 일으켜서 준비시키는 것이 분명히 하나님의 목적이요, 준비였다. 일정한 시간적 요소가 포함되었다. 그것은 경사스런 시작이었다. 그것은 신대륙에서 시작되기 전에 구대륙에서 먼저 시작되었다. 그것은 현저하게 한 시기의 운동 - 하나님의 심판의 때가 왔다는 운동이었다. 그리고 연관된 성구 단 8:14의 성취였다. 그러나 유럽 대륙에서는 영국에서까지도 한 실제적인 운동이 결코 되지는 못하고 다만 한 각성에 불과했다. 그리고 이 최초의 발단은 1830년대 후기에 동이 텄다. 1844년이란 문구는 없었다. 그리고 남미에서도 Lacunza같은 이들의 소리가 있었다. 그리고 비슷하게 땅과 바다의 다른 대륙의 어떤 부분에 서있었다. 있어야 할만한 뿌리가 없었다.
2. 북미에서만 한 운동이 전개되었다
영국에서의 좌절은 첫 번째 주요한 주축이었다. 구대륙의 소리들은 대부분 사라졌다.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그들은 1843년 혹은 1844년에 초점을 맞추지 못했다. 북미에서만 재림의 선구가 분명한 운동의 형태와 규모로 형성되어 첫째와 둘째 천사의 기별을 충분하거 예정된 계획대로 전했다. 그것은 북미를 강하게 움직였으면 먼데까지 퍼졌다. 둘째와 첫째 기별과 결합된 칠월 운동 혹은 참된 밤중 소리는 그 당시의 보도에 의하면 약 10만 명의 신자들이 북미의 개신교회들에서 나와서 전의 밀러의 굳센 운동에는 지도력과 인쇄물과 연합된 행동들과 기대가 있었다. 이리하여 북미는 재림 심판의 기별이 원근에 비치는 초점이 되었다.
3. 널리 퍼진 임박감
온 밀러 운동은 임박 감으로 특징지어졌다. 그리스도는 속히 오실 것이었다. 사실상 절정에 이르기 전에 하늘 구름을 타고 그리스도가 오시는 때가 결정되었다. 백성들은 그들의 애정을 이 세상 사물에서 위에서 성도의 영원한 보상으로 옮겼다.
놀랍게도 그리스도께서 속히 오실 것이라는 확신은 실망의 날을 맞이했다. William Miller가 그의 예언적 계산이 인도한 딜레마를 더 이상 풀 수 없을 때 그러나 수학적 계산에는 틀림없다고 느낄 때 그는 아직도 재림은 임박하다고 믿었다. 1844년 12월에 그가 기록하기를
“형제들이여 굳게 붙잡으라. 아무도 그대들의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나는 또 다른 때에 관하여 내 마음을 확정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내게 빛을 더욱 주실 때까지 서 있기로 했다. 그리고 그것은 오늘, 오늘날 그 분이 오실 때까지 오늘날이다. 그리고 나도 내 영혼의 사모하는 그 분을 본다”(The Midnight Cry, 12, 5, 1844. p. 180). 이 임박한 재림의 기대는 성소에 관하여 다시 해결함으로서 실망의 해설을 발견한 재림신도들의 유산이 되었다. 그들은 이 땅 위에서 오래 살기를 기대하지 않았다. 최초의 저서들 중에서 엘렌 화잇은 곧 오시는 구세주를 위하여 준비하기 위하여 희망을 가진 기다리는 자들을 반복해서 격려했다. 1851년에 출판된 한 특별한 말씀은 그 시련이 곧 끝날 것을 지시한 것처럼 보였다.
“나는 예수께서 지성소에서 계셔야 할 때가 거의 끝났으며 그 때는 조금만 더 있으면 끝날 수 있음을 보았다”(EW 58).
4. 지체에 대한 화잇 부인의 해설
수년의 세월이 흘러가고 교회의 비젼이 온 세상에 전한 한 기별을 전하기 위하여 확장됨에 따라서 우리의 현재의 기능으로서 항상 불가능하게 보였던 한 일이 화잇 부인의 말에 도전했다.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시기 전에 통과해야 할 수 십년의 시간은 거의 끝났다고 영감은 어떻게 말할 수 있었을까? 1883년에 화잇 부인은 자기에 대한 비난을 답변했고 기대했던 완성의 모든 지체의 기초적인 해설을 예비했다.
1851년에 경험과 견해들에 출판된 말과 Early Writing 49쪽(현재판은 58쪽)에 있는 말씀은 나의 증언이 거짓이 아닌가했고 의문시된다. 나는 예수께서 지성소에서 계셔야 할 시간이 거의 다 끝났다. 그리고 그 시간이 매우 조금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을 보았다.
그 문제가 내게 제시된 것과 같이 그리스도의 몽사의 기간은 거의 끝난 것처럼 보였다. 나의 증언이 지시한 것보다 시간이 더 오래 계속되었기 때문에 내가 거짓말을 했다고 비난받고 있지 않는가? 그리스도와 그의 제자들의 증언은 어떠한가? 그들이 속았는가?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에게 기록하기를 “그러나 형제들이여 내가 이 말을 하노니 때가 단축하여진 고로 이후부터 아내 있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며 우는 자들은 울지 않는 자 같이 하며 기쁜 자들은 기쁘지 않는 자같이 하며 매매하지 않는 자들은 없는 자같이 하며”(고전 7:29, 30). 다시 로마에 보내는 그의 편지에 말하기를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압자”(롬 13:12).
그리고 Patmas 섬에서 그리스도께서 사랑하는 요한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시기를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계 1:3). “거룩한 선지자들의 주 하나님께서 그의 종들에게 반드시 속히 될 일을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보내셨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라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계 22:6, 7).
하나님의 천사들은 사람들에게 보내는 그들의 기별 가운데 시간이 매우 짧은 것으로 대표했다. 이와 같이 나에게 항상 제시되었다. 이 기별의 초기에 우리가 기대한 것보다는 시간이 더 오래 된 것은 사실이다. 우리 구세주께서는 우리가 희망했던 것만큼 속히 나타나시지 않았다. 그러나 주의 말씀이 틀렸는가. 결코 아니다. 하나님의 약속들과 경고들은 모두 조건적임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에게 땅에서 완수해야 할 사업을 위탁하셨다. 셋째 천사의 기별은 전파되어야 하고 신자들의 마음을 하늘 성소로 향하도록 해야 한다(그리스도께서 당신의 백성을 위하여 속죄를 이루시려고 들어가신 성소). 안식일 개혁은 전진해야 한다. 하나님의 율법 중에 있는 무너진 데가 보수되지 않으면 안 된다. 지상의 모든 거민들이 경고를 받도록 기별은 큰 소리로 선포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진리를 순종함으로 그들의 영혼을 순결케 해야 하고 그의 오실 때 그 분 앞에 흠 없이 서도록 준비되지 않으면 안 된다. 1844년에 주께서 오실 것으로 기대하던 무리들 재림 신도들은 1844년의 큰 실망 후에 만일 그들이 믿음을 굳게 붙잡고 열려진 하나님의 섭리를 연합해서 따르고 셋째 천사의 기별을 받아들이고 성령의 권능으로 그 기별을 세상에 선포했더라면 그들은 하나님의 구원을 보았을 것이며 주께서는 그들의 노력과 강력하게 함께 하셨을 것이여 사업은 완수되었을 것이며 그리스도께서는 이전에 오시어 당신의 백성을 영접하사 보상을 주셨을 것이다. 그러나 그 실망 후에 뒤따른 의혹과 불확실한 시기에 재림 신자들 중의 다수는 그들의 믿음을 포기했다. 불화와 분열이 생겼다. 대다수는 목소리와 펜으로 하나님의 섭리를 따르는 안식일 개혁을 받아들이고 셋째 천사의 기별을 선포하기 시작한 소수의 무리를 반대했다. 세상에 경고를 주는 이 한 가지 목적만을 위하여 시간과 재능을 다 배워야 했던 많은 사람들이 안식일 진리를 만대하는데 열중했다. 그리하여 안식일 기별을 선포하는 자들은 이 반대에 답변하거 그 진리를 변호하는 데에 불가피하게 시간을 소비했다. 이리하여 그 사업은 방해를 받고 세상은 흑암 중에 남아있게 되었다. 전체 재림 신자들 단체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에 연합하였더라면 우리의 역사는 얼마나 크게 달라졌을까! 그리스도의 오심이 이렇게 지체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40년간 방황한 것은 그의 계획이 아니었다. 그 분은 그들을 가나안 땅으로 그들을 직접 인도하여 그들로 하여금 한 00하고, 건강하고, 행복한 백성을 세우시겠다고 약속하셨다. 그러나 처음에 그 설교를 들은 자들은 그들의 불신 때문에(히 3:9) 들어가지 못했다. 그들의 마음은 불평과 반역과 증오심으로 가득 찼으므로 주께서는 그들과 세운 언약을 이행하실 수 없었다. 40년간 불신과 불평과 반역한 고대 이스라엘을 가나안 땅에서 분을 닫아버리고 못 들어가게 했다. 그 같은 죄악들이 현대 이스라엘을 하늘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일을 지연시켰다. 위의 두 가지 경우에서 모두 하나님의 약속이 잘못된 것이 아니었다. 주의 백성이라고 하는 자들을 지연시켰다. 위의 두 가지 경우에서 모두 하나님이 약속이 잘못된 것이 아니었다. 주의 백성이라고 하는 자들을 이 죄와 슬픔의 때에 그렇게 SHFOT동안 남아 있게 한 것은 그들의 세속과 헌신하지 않음과 투쟁 때문이다(Ms 4, 1883, 1SM 66-69).
5. 더 많은 시간과 변화된 태도가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세상과 교회가 1844년 직후에 주께서 오실 수 있도록 준비되지 못했다. 인간적인 요소(준비되지 않음, 그릇된 견해들, 마치지 못한 사업) 때문에 재림은 연기되어야 했다. 우리 백성은 아직도 분명히 준비되지 않았다. 우리 세계의 사업과 증거는 거의 시작되지도 못했다. 강력한 사업이(참으로 두려운 사업이) 남아있다. 더 많은 시간과 크게 변화된 태도가 요구되었다. 그리고 이 책의 대부분은 1888년 이후의 대등한 신의 확신은 물론 이점을 위하여 지체하게 된 방해하는 원인들의 이야기에 비쳐졌다. 그리고 특별히 1900년 이후의 발전은 우리로 하여금 산더미같이 쌓인 위기의 상태에 있는 근본적으로 달라진 어려운 세상 속으로 몰아넣었다.
이 중대한 문제에 대하여 양면, 즉 하나님의 편과 우리편이 있다. 시간과 주관은 주님의 손에 있다. 그러나 어느 지점까지 지연시키거나 가속시키는 것은 우리에게 달렸다. 이것들은 우리의 책임으로 이루어진다. 어느 지점까지 지연 기키거나 가속시키는 것은 우리에게 달렸다. 이것들은 우리의 책임으로 이루어진다. 그것은 주로 우리의 책임에 속한 일이며 그의 능력으로 된다. 하나님만이 완성을 가져 올 수 있다. 그분이 통치하신다. 우리가 이 양면을 이해하고 거기야 우리 스스로 올바른 적응은 필요 불가결하다.
Ⅲ. 1844년 무리의 진술을 솔직히 관찰함
1. 1844년 강조의 의미
어떤 이는 왜 화잇 부인이 예컨대 1883년에 그리고 늦어도 1909년에 그 연대들에 관해서 여러 차례(만일 재림신도의 무리가 1844년 실망 직후에 즉시 셋째 천사의 완전한 기별을 받아들이고 “그리고” - 그 그리고의 의미를 빠뜨리지 않고 썼는가? 성령의 능력으로 세상에 임박한 재림을 선포했더라면 하늘의 권능이 지상에서 헌 신앙 사람들의 증거와 연합했을 것이라고 거듭 말했는가에 대해서 의아해 한다. 그 사업은 빨리 끝마쳤을 것이라고 준비된 백성을 위하여 오셨을 것이다. 그렇게 될 수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확신한다. 그러나 그렇게 되지 않았다. 그 성령이란 말은 물론 큰 소리로 왜침, 늦은 비, 계 18장의 천사의 중대한 광채이다. 그러므로 큰 왜침의 때에 돌입한 때인 1888년에 시작되었다는 발전된 문구는 1798년에 확실히 끝의 절정에 도달할 마지막 때에 들 간 것과 참으로 꼭 같이 큰 왜침의 때에 들어갔다는 것이다.
2. 1844년에 뛰어난 유효한 편의
1844년을 숙고해 보라. 우리가 꼭 알아야 할 사실은 많은 헌신한 연구생들 유능한 학자들, 유명하고 능력 있는 지도자들 이 실망 전에 실망전의 무리 중에 약 100,000명을 헤아리는 운동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 참된 밤중 소리는 1844년 당시 미국의 인구가 겨우 1700만 명이었다는 것에 비례하여 생각하면 큰 발전이었다. 1844년에 그 절정에 달했을 때 밀러 운동에는 출판 시설과 약 28개의 정기 간행물의 포대를 가지고 있었고 조직과 뛰어난 인재들을 가지고 있었다. 만일 우리도 헌신했더라면, 이것과 비교해 볼 때 1911년까지(1844년 이후 67년간) S.D.A. 교인 수는 100,000명 1844년 밀러 운동의 수를 능가하지 못했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은 긴요하다. 또한 1888년에 우리의 전체 교인 수는 밀러 운동의 100,000명에 비해 겨우 26,112명에 불과했다. 이 숫자만 보아도 많은 것을 해명해 준다. 밀러의 무리에 대한 화잇 부인의 말씀은 아직도 발전하지 않았다. 1850년의 세계 인구는 11억 7100만 명으로 추산되었고, 1890년에는 겨우 156억 1800만에 불과했다. 1970년에는 36억 3200만 명에 달했다(Population Reference Bureau). 그리고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Millerite 운동 무리가 그 후에 온 불가분의 셋째 천사의 기별을 받아들이는 일을 거절했기 때문에 반대와 싸우면서 적대하는 종교계의 조롱과 적대를 당하면서 불리한 조건들을 대항해서 전혀 새 빛을 발해야 했고 의미 있는 운동이 되기까지는 더딘 전진으로 여러 해가 걸렸다. 그것이 엘렌 화잇이 여러 차례 강조했던 처음 지체의 특성과 의미였다.
3. 큰 가속이냐 아니면 비극적인 지체냐?
1844년 이후에 신속한 완성이 가능했었다. 그 칠월 운동의 속도는 강렬했었다. 셋째 천사의 기별은 그 실망을 신속한 성공으로 이끌 수 있었다. 이것은 100,000명의 밀주의자들이 신속히 연합해서 지체하지 않고 성소 안식일 예언의 신 셋째 천사의 기별을 이루는 관련된 주요 진리들이 연합해서 협동적으로 일반적으로 받아들일 것을 의미한다. 닫힌 문에 관한 그런 논쟁들의 신속한 해결, 그리스도의 신성에 관하여 하나 됨, 모든 충만함 중에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를 맏아들임 속죄의 더 넓은 범위와 의미를 채택함, 그리고 승리하는 사도 시대의 교회에서 역사한 것과 같이 성령의 오순절의 권능과 완성시키는 준비 아래 했었더라면 완수했을 것임을 의미한다(골 1:23). 그렇게 욀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운동은 쇠약해졌고 차질이 생겼다.
4. 계속적인 지체에 대한 Millerite 책임의 크기, 범위 정도
그러나 셋째 천사의 기별로 전진하는데 대한 Millerite운동의 실패가 125년 이상이나 재림을 지연시켰다고 결론을 내리는 것은 잘못일 것이다. 두리 교회 역사에서 어떤 점에 있어서 확실히 S.D.A.가 특별한 발전, 교정된 기별의 제시와 완전한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러면 우리가 만일 이렇게까지 멀리 실패해 왔다면 우리는 얼마나 더 오래 더 많이 실패를 계속할 것이다. 우리가 재림을 무제한으로 연기시킬 수 있는가? 하나님께서는 주께서 세우신 표준에 우리가 도달할 때까지 계속해서 기다리실 것인가?
5. 완성은 철저히 이루어질 것이다
하나님의 목적과 계획에는 주께서 더 이상 지체하실 수 없는 오직 그 분 자신만이 아시고 계시는 한 순간, 한때, 한 지점, 항 절정이 있다. 그 분의 목적과 약속은 정확하게 적극적으로 이행될 것이다. 그의 백성의 요구된 부분은 드디어 호응될 것이다. 그 사업은 그 때에 이 낡은 세계가 전에 일찍이 보지 못한 사도 시대까지도 보지 못했던 그런 영광과 영적 권능의 예언된 불꽃 중에서 끝 마치 것이다. 충분히 완전한 하나님의 진리는 충분히 회복될 것이다. 당신의 백성은 분비될 것이다. 날카로운 백성과 지상의 문제가 우리가 그 승리하는 최후의 군대의 한 부분이 되겠는가하는 것이다. 아니면 우리가 희미한 의심하는 둔한 자들이 될 것인가(마음에 드는 짐을 가진, 서서히 해치는 것들, 파괴자들, 지위와 권력을 열망하는 자들, 탈선하는 자들을 누누이 발하는 자들, 물러간 자들, 떨어져 나갈 빛나는 빛들, 양편에 있는 방해자들, 자기들만 옳다고 믿는 자들). 하나님의 백성의 충성된 굳은 줄에서 떠나서 입을 삐쭉 내밀고 있는 자들이 될 것인가?
하나님께서 낙오된 옆가지를 인도하시지 않는다는 말씀을 되풀이해서 들었다(5T 291, CW 45). 우리 교회의 과거 역사를 통해서 계속 시무룩한, 배반한 무리들이 계승되어 왔다. 그리고 환란이 있으나 승리하는 말세까지 그런 자들이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한 모든 것을 열중하는 연합의 발전이 있을 것이다. 운명을 결정짓는 이 운동은 승리할 것이다. 그리고 그 운명의 보든 순간은 정말로 올 것이다. 갑자기 예기치 않게 올 것이다. 그 마지막 운동은 놀랍게도 신속한 운동이 될 것이다.
6. 예언의 신은 주요 열쇠가 된다
이 모든 빛 가운데에서 이 장은 00 중에서 가장 명백하고 만족을 주는 것 중에 하나가 될 것이다. 만일 그 충분한 사실들의 솔직하게 직면한 것을 신실하게 따른다면 우리가 오래 지체된 데 관한 많은, 충분한 사실들에 솔직하게 직면해 있는 것을 신실하게 따른다면 우리가 오래 지체된데 관한 많은 예언의 신의 말씀들의 진정한 목적과 의도와 기조적인 원인들과 결과들 그리고 가치 없는 완성을 이해하려고 노력할 때 이것은 많은 이들의 생각과 태도에 한 전환점이 될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선언하신 필적하는 확실성과 절대성 그리고 그것과 연결된 호소와 능력 여하에 달린 것과 더불어 기본적 기별과 조건적 요소가 포함된다. 이것들은 균형 잡힌 확신 중에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들은 또한 그 답변을 준비할 것이다. 이 관찰은 단지 본 저자의 의견이 아니다. 오히려 이것은 이 중대하고 많은 이들에게 가장 곤란한 의문에 관해서 함께 근본적으로 건전한 원칙과 처지를 제시했고 그 통일된 기별을 찾아냈다. 그리고 그와 더불어서 우리는 어떤 명백한 역사적 자료와 강평을 준비해 두었다.
Ⅳ. 두 주요 시기가 대조적으로 서 있다
1. 1888년이 구분하는 선이 있다
1888년은 사실, 원칙, 권고에 관해서 엘렌 화잇의 발언을 대조해 봄에 있어서 논리적인 구분하는 선이 된다. 모든 기별들은 1888년의 발전 혹은 위기 - 그 이전이냐, 그 이후이냐에 관련성에서 적절히 된다. B.C.는 "Before Confrontation"로 대치된다. 그리고 A.D.는 "After Declaration" 선언 이후, 즉 그리스도에 관해서 신성의 모든 충만함으로서 더욱 충분한 빛으로 선언하고 우리 자신의 변화와 세상에 대해서 우리의 증거를 완성하는데 우리 주의 영광스러운 오심을 위하여 필요 되는 그런 초월적인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에 관한 더 밝은 선언 이후라고 잘 대표할 수 있다.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더욱 넓고 모든 것을 포함하는 포괄적인 의미에서는 그 이후부터 진짜 셋째 천사의 기별이라고 선언했다. 그것은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요 본질적인 것이다. 그것은 그 이후로부터 그 충분한 결정적인 국면에 있을 (작용과 궁극적 적용의 영원한 복음이다. 그것은 논쟁과 문제의 진수요, 그 해결의 열쇠이다. 1888년은 참으로 큰 외침과 늦은 비의 때의 시작을 신호했고 그리고 마치 밤중 소리 혹은 칠월 운동이 심판의 시간에 관한 첫째 천사의 기별을 증대했던 것과 똑같이 셋째 천사에 연합하는 계18:1의 증대하는 천사의 첨가된 빛과 권능의 의미심장함한 발단이었다.
*하나님께서 셋째 천사의 기별을 마치는 때를 계시하지 않으셨다(7BC 989-990). 재림의 때도 계시하지 않으셨다(1SM 25-26). 천사들도 그것을 모른다(4T 307). 그리스도께서 그것을 계시하지 않으셨다(DA 632-633). 그것은 계시하지 않은 하나님의 비밀이다(DA 632-633). 결과적으로 인간은 그것을 모른다(6BC 1052, Ev 221, 1SM 188). 그것은 환란의 때 끝에 하나님께서 선언하실 것이다(EW 15, 34, 285, GC 640, 1SM 75-76).
2. 그 지체의 예정된 끝
우리 위에 충분히 비치고 있는 계 18:1-4의 강화된 빛과 권한을 가지고 있으므로 책임은 더욱 커질 것이며 의무는 더욱 무거워 질 것이다. 이것이 왜 우리의 책임이 초기의 선조들보다 그렇게 더욱 큰가하는 이유이다. 우리는 참으로 늦은 비와 큰 왜침의 때에 성령의 지시한때에 살고 있다. 영원한 신성의 제 삼위이신 성령의 크신 권능은 지금 결정적인 요인이다. 그 분은 말하자면 신성의 행정관이시다. 그 분은 그 위대한 완성을 초래할 것이다. 그 분은 지체하는 일을 끝내실 것이다. 곧 더 이상 지체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3. 지금 성령과의 관계
우리는 지금의 우리의 관계는 아버지와 아들 같은 분(Ev 615) 성령과 주로 관계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 위대한 관계는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의 힘과 충만함의 근원은 지금 그 분께 온전히 달려 있다. 그것은 그 분의 지정된 책임이요 그의 임명된 본래의 힘과 권능이다. 큰 외침과 늦은 비는 완성과 승리의 우리의 유일한 근원이시며 유일한 희망이다. 그것은 영적으로 준비된 연합된 백성을 통해서 세계적 사업을 끝마치기 위한 하나님의 택한 수단이요 준비이다. 실패 없는 성취가 될 것이다. 운명을 결정하는 이 운동의 감동적인 절정에서 성령께서 의무를 지신다. 하나님의 백성의 반응을 보일 때 하늘의 무한한 가능성이 활용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진실로 이행될 것이다. 그것은 지체되는 비밀이요 놀라운 종점으로 향한 열쇠이다. 그것이 승리의 최고의 확신이다. 모든 것이 이 가운데에 달려 있고 쌓여 있다. 1844년의 운동은 1888년 전후의 완성과 연합해야만 했었다. 이제 우리는 엘렌 화잇이 한 말에 돌아가 보자.
Ⅴ. 연대적 순서로 본 예언의 신의 말씀(1850년부터 - 1888년 총회까지)
1. 1850년 - “시간이 끝날 수 있다” 그러나 조금 남아 있다
“예수께서 지성소에 계셔야 할 때가 거의 끝났다. 그리고 그 시간은 마칠 수 있다. 그러나 매우 조금 더 남았다. 인자의 오심에 관하여 살고 행하라. 인치는 때는 매우 짧다. 그리고 곧 끝날 것이다. 지금은 천사가 우리의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기 위하여 4바람을 붙잡고 있는 때이다”(EW 58). 그것은 “임박함과 영혼의 준비의 태도가 되어야 한다. 그것이 중요한 것이다.”
2. 1850 - 그러나 짧은 시간이 남아있다
1850, 6, 27에 주신 계시 중에 나의 수종하는 천사가 말하기를 “시간은 거의 끝났다. 그대는 그대가 마땅히 해야 할 만큼 사랑스런 예수님의 형상을 반사하는가?” “그 다음 나에게 땅을 지적하도록 하시고 나는 최근 셋째 천사의 기별을 품고 있는 자들 중에 준비되어 있어야 함을 보았다. 그 천사가 말하기를 준비하라, 예비하라, 그대들이 이제까지 죽었던 것보다 더 크게 세상에 대하여 죽어야 할 것이다. 나는 그들이 해야 할 큰 일이 있고 그것을 할 시간은 거의 없음을 보았다. 그 다음 나는 피난처가 없는 자들 위에 일곱 재앙이 곧 쏟아 부으려함을 보았다”(EW 64). 시련 시기의 중대한 끝은 인간 역사의 마지막 페이지의 끝에 있는 최후 기간이 될 것이다. 준비되지 않음이 큰 부족이었고, 준비하는 것이 최고로 긴요했다.
3. 1851 - “새롭게 하심”은 “등한” 때문에 불가능하다
“나는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필요한 준비는 등한히 하고 있으면서 주의 날에 그들을 서고 그의 앞에서 살 수 있도록 준비시키는 새롭게 함과 늦은 비의 때를 바라보고 있음을 보았다. 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환란의 때에 피난처가 없이 있는가를 나는 보았다. 그들은 필요한 준비를 등한시했다. 그러므로 그들은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그들로 하여금 살기에 적합하게, 새롭게 함을 받을 수 없다”(EW 71). 등한히 여김은 지체(인간만이 책임이 있는 요인)하는 첫 번째 특기된 이유들 중의 하나다. 늦은 비의 긴급한 필요성은 벌써 1850년에 강조되고 있으나 옳게 이해되지 못했다.
4. 1865 - 큰 왜침을 위하여 준비되지 않았다
“나는 우리 안식일을 지키는 백성이 아직 우리 앞에 큰 일이 남아 있는데 하나님께서 건강 개혁에 관하여 주신 빛을 실천 하는 데에 등한시 여겨 왔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건강 개혁 사업이 거의 아직 시작되지도 않았다는 것을 내게 보여 주셨다. 건강 개혁은 셋째 천사의 기별의 일부이요 인간 몸에 팔과 손과 꼭 마찬가지로 그것에 연결되어 있음을 보았다. 나는 한 백성으로서 우리는 이 이 큰 사업에 있어서 전진하여 움직여야 함을 보았다. 하나님의 백성은 셋째 천사의 큰 왜침을 위하여 준비되어 있지 않다”(1T 485-486). 준비되지 않음은 또 하나의 00된 지연의 요인이었다. 개혁은 반드시 부흥을 뒤따라야 한다. 이것은 우리 앞에 있는 우리가 아직 생각해 온 것보다 훨씬 더 큰 사업이다(p. 487). 결함들은 고쳐져야 한다. 준비하라!
5. 1868 - 재림은 자비로 연기되었다
“긴 어두움의 밤은 괴로운 것이다. 그러나 아침은 자비로 연기되었다. 만 일 주께서 오셨더라면 너무 많은 사람들이 준비되지 않은 것이 드러났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의 멸망되는 것을 원치 않으시기 때문에 이것이 그렇게 오래 지체되는 이유이다”(2T 194, Ev 694). 1844년 이후 첫 10년간은 대략 1854년까지 우리 선조들의 노력은 셋째 천사의 기별을 Millerite운동에 참가했던 자들에게 전하는 것에 제한되어 있었다. 아직은 온 인류에게 선포해야 할 세계적 기별에 대한 생각은 없었다. 그러므로 최초의 강조는 교리와 우리 교인의 영적 재건 - 영혼 안에 하나님이 형상의 재(이 항상 최고의 필수 요건이었고)이다. 이것도 단지 엘렌 화잇 개인의 사건이 아니었고 수종하는 천사의 기별이었다. 엘렌 화잇의 역할은 그 당시 환경에서 시간이 짧다는 것과 끝이 임박함을 강조하는 것이었고 엘렌 화잇의 역할은 그 당시 환경에서 시간이 짧다는 것과 끝이 임박함을 강조하는 것이었고 특히 당신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자비와 관심을 강조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항상 임박감과 필수적인 아직 상상하지 못했다. 온 세상에 증거 할 증거의 거대함과 성령의 중대한 인격적인 역할의 필수성은 아직 상상하지 못했다. 몽롱하게 보였지만 최후의 운동은 길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것은 그들의 그것을 이해할 수 있을 때에 명백하게 되고 보증될 것이다. 새벽은 자비로 지연되었다. 그들이 만일 그들 앞에 있는 세계적인 사업의 거대함을 이해했었더라면 그 당시 그들의 빈약한 수효와 재원들과 그들이 해야 할 큰 사업을 생각하고 기겁을 하고 완전히 압도되어 버렸을 것이다. 이것의 인식은 왔고, 올 수 있었으나 오직 점차적으로 왔다. 시간이 필요했다.
6. 1883 - 우리가 기대한 것보다 더 오래 계속 되었다
“하나님의 천사들은 사람들에게 보내는 그들의 기별 중에서 시간은 매우 짧은 것으로 표현했다. 항상 나에게 이같이 제시되었다. 이 기별이 처음 시작될 때 초기에 우리가 기대하던 것보다는 시간이 더 오래 계속된 것은 사실이다. 우리 구세주께서는 우리가 바라던 것만큼 속히 나타나시지 않았다. 그러나 주의 말씀이 실패했는가? 결코 아니다. 하나님이 약속들과 경고들은 모두 조건적임을 기억해야 한다”(Ms 4, 1883. Ev 695, 1SM 67).
“결코” 아니라고 엘렌 화잇이 강조한 것은(잊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 것은) 하나님의 모든 약속과 경고들은 인간이 관련된 약속들은 조건적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중대한 요소이다. 지체되는 요인은 사람의 편에 사람의 반응에 달려 있다. 그러나 그런 지체됨과 더불어서 고유의 위험이 있다. 요나는 겉으로 보기에 그에게 위탁된 담대한 선포 때문에 그의 임박한 멸망의 기별이 실패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하나님의 태도는 달랐다. 도리어 요나는 Ninerites의 회개와 결과로 달라진 것을 기뻐해야 했다. 지연시킨 것을 보기 원치 않기 때문이다. 이것이 그 지체에서 배울 기본적인 기초적인 교훈이다.
7. 1856 - 조건적이라는 단언 - Averment - 1856년 총회에서 받은 엘렌 화잇의 계시를 또한 인식하지 안으면 안 된다
“얼마는 벌레 밥이 되고 얼마는 마지막 일곱 재앙의 대상이 되고 얼마는 살아서 땅에 남아있어 예수님 오실 때 변화될 것이다”(2T 1856년; 4SG 18(1864년); 1T 131, 132). 물론 모든 무리들이 지금 죽었다. 이 선언은 분명히 축복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들과 심판의 경고는 모두 조건적이라는 결정적인 원칙 하에서 주신 것이다. 성경 원리는 렘 18:7-10에서 제시된다.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이것은 요나와 니느웨의 경우에서 현저하게 예시되어 있다(욘 3:3-5, 10). 이 경우에서 Ninevites는 만일 그들이 범한 죄에서 돌이킨다면 하나님께서 돌이키신다는 것을 인식했다(욜 3:9). 그것이 작용의 원칙이다. 다른 경우는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가기를 지연시킨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당신의 약속의 파기라고 불렀다(민 14:34). 난외 주에 “나의 목적을 변경”시킨다고 기록했다. 또한 Eli의 경우도 있다(삼상 2:30, 31). 여기서 하나님께서는 다시 당신의 선언을 변경하셨다. 사람이 그의 언약을 지키고 의의 길로 행하느냐에 따라서(출 19:5, 6) 성경의 사건들 중에서 성경 연구자들은 항상 그 백성의 도덕적인 변화를 그런 사건들에서 하나님께서 인간의 자유의지를 활용하여 인간의 행위에 영향을 받으신다고 간주한다. 재림의 약속에 영향을 주는 요인들에서도 그 같은 것이 사실이다. 베드로는 아직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을 강조한다(벧후 3:9). 그러나 베드로는 또한 그들의 자유 의지와 증거를 활용하여 재림을 촉진시키라(12절). 그리하여 그의 오래 참으심이 더 이상 필요 없게 하라는 사실을 또한 강조한다. 하나님의 역속들과 경고들은 모두 조건적인 고로 성경이나 예언의 신의 말씀에 아무 잘못이 없다(Ms. 4, 1883; Ev 695, 696). 1856년의 성취되지 않은 말씀은 조건적이요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마치 선악간에 성경 예언은 항상 조건적이며 인간의 죄 때문에 언약을 파헤친 것과 같다(Ev 696). 비록 어떤 이는 그렇게 하는 경향이 있지만 우리는 성경보다 예언의 신에 더 많은 것을 정당하게 요구할 수 없다.
8. 1883 - 불신이 우리로 이곳에 그렇게 많은 해를 머물게 했다. 하나님의 약속과 경고들은 모두 조건적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를 죄와 슬픔이 이 세상에 그렇게 많은 해 동안 머물러 있게 한 것은 주의 백성으로 공언하는 자들 중에 있는 세속과 불신과 비헌신과 투쟁이다(Ms. 4, 1883; Ev 695; 1SM 676).
1880대에 더 많은 명확한 상술을 한다. 1883년에 시작해서 미네아폴리스 대총회 이전까지 12개의 말씀이 더 있다. 4가지 다른 주요 방해하는 이유들이 이제 나타났다. 등한과 준비되지 않을 뿐 아니라, 00, 세속, 비헌신과 투쟁이다. 이것들이 그렇게 오랫동안 지체된데 관해서 1888 이전에 기록된 이유들이 잇다. 그리고 여러 해 동안 연장된 것을 설명하면서 하나님의 역속은 조건적이라고 하는 중요한 원칙을 1883년에 2번 강조했다. 화잇 부인은 다음과 같은 분명한 말씀을 하면서 1844년을 회고한다.
9. 1883 - 그리스도께서는 1883년 이전에 오실 수 있었다
만일 재림 신도들이 1844년 실망 후에 그들의 믿음을 굳게 지키고 열린 하나님의 섭리를 연합해서 따르고 셋째 천사의 기별을 받아들이고 성령의 권능으로 그것을 온 세상에 선포했더라면 주께서는 강력하게 그들의 노력과 연합해서 연합했을 것이요. 그들은 하나님의 구원을 보았을 것이며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백성을 영접하여 보상해 주시려고 이전에(1883년 이전) 오셨을 것이다. 그러나 그 실망 후에 온 의혹과 불확실한 기간 중에 재림 신자 중 다수가 믿음을 포기했다. 이리하여 사업은 방해를 받았고 세상은 흑암 중에 남아 있었다. 만일 온 재림 신도 단체가 하나님이 계명과 예수 믿음으로 연합되었더라면 우리 역사는 얼마나 크게 달라졌겠는가(Ms. 4, 1883; Ev 695-696; 1SM 68).
이것은 특히 1844년의 실망을 포함한 첫 번째 기초적인 묘사이다. 그리고 한 단체로서 밀러의 군대가 필수적인 전진된 빛을 받아들이기를 거절한 묘사이다. 그것은 그 결과적인 의심과 불확실한 지체와 더불어서 그 실망의 태도에 관한 전반적인 첫 번째 명백한 설명이었다. 이 사실은 기본적인 것이었으며 그 중요성 때문에 1884년에 다시 번복되었다. 그것은 그 이후에 따라온 모든 것에 영향을 끼친 첫째 큰 방해물이었다.
10. 1883 - 죄가 우리를 이 땅에 그렇게 많은 해 동안 가두어 두었다
그리스도의 오심이 이렇게 오래 지연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40년간 방황하도록 예정하지 않으셨다. 그분은 그들을 가나안 땅으로 직접 인도해서 거룩하고 건강하고 화목한 한 민족을 건설하겠다고 약속하셨다. 그러나 그 설교를 처음 들은 자들은 불신 때문에 들어가지 못했다. 그 같은 되들이 현대 이스라엘로 하여금 하늘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일을 지연시켜왔다. 위의 두 경우에서 모두 하나님의 약속에 잘못이 있는 것이 아니었다. 우리를 이 죄와 슬픔의 세상에 그렇게 많은 햇수 동안 가두어 두게 한 것은 주의 백성이라고 하는 자들 중에 있는 불신과 세속과 헌신하지 않음과 투쟁이다(Ms. 4, 1883; Ev 696; 1SM 68-69). 세상의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전에 40년 간 고대 이스라엘이 방황한 것의 최고의 유사성이 지금 강조되어 있고 그 최초의 세대는 들어가지 못했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하나님께서는 일반적으로만 우리에게 책임을 묻지 않으시고 세부적으로 물으신다. 그 큰 지연에 대한 정밀한 이유들이 열거된다(불평, 반역, 증오, 불신, 세속, 헌신하지 않음, 투쟁(등한, 무관심, 게으름, 준비하지 않음).. 엘렌 화잇이 1883년에 우리에게 확증한 바, 이 추한 죄악들이 그렇게 많은 해 동안 우리를 하늘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그 이후의 지체에 대한 원인들을 이해하는 데에도 기초가 된다. 여기에 첫 번째 반복이 나온다.
11. 1884년 - 오래 지체됨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만일 1884년에 사업에 연합해서 수고해 왔던 모든 사람들이 셋째 천사의 기별을 받아들이고 성령의 권능으로 그것을 선포했더라면 그들의 노력에 주께서는 강력히 역사하셨을 것이다. 빛으리 홍수가 세상에 쏟아졌을 것이다. 수년 전에 지상 거민들은 경고를 다 받았을 것이며 끝마치는 사업은 완성되었을 것이며,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백성의 구속을 위하여 오셨을 것이다. 그리스도의 오심이 이렇게 오래 지체되고 당신의 백성의 이 죄와 슬픔의 세상에 이렇게 오래 남아 있는 것이 하나님의 오심이 이렇게 오래 지체되고 당신의 백성이 이 죄와 슬픔의 세상에 이렇게 오래 남아 있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다. (4SP 291-292).
1844년 이후의 이야기와 그 결과로 인한 주요한 시간 지연 문제는 그 후에 오는 모든 것의 기조가 된다. 모든 우주적인 지연에 관한 그 기본적인 태도는 지나치게 강조될 수 없다. 그것은 모든 환경의 00 중에 있는 주요 원인이다. 여기에 그 강조가 있다.
12. 1884년 - 세상에 대한 자비로 지연되었다
“세상을 긍휼히 여기셔서 죄인들이 경고를 들을 수 있는 기회를 갖도록 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쏟아지기 전에 주 안에서 한 피난처를 발견하도록 하지 위해서 예수께서는 당신의 오심을 지연 시키신다”(상동 292).
13. 1884년 - 겸비한 대리자들을 통해서 완성됨
“큰 소리로 외치는 때가 올 때 주께서는 겸허한 대리자들을 통해서 역사하실 것이다. 그들의 마음을 주의 봉사에 헌신하도록 인도하사 그 일꾼들은 교육 기간의 훈련에 의해서 보다 당신의 영의 기름 부음에 의하여 자격을 얻게 될 것이다. 믿음과 기도의 사람들이 거룩한 열성으로 전진하지 않으면 안될 만큼 강권되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말씀을 선포할 것이다. 이 거룩한 열성으로 전진하지 않으면 안될 만큼 강권되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말씀을 선포할 것이다”(상동 424). 사람은 그의 능력의 근원과 그것 없이는 가지 자신의 아무것도 아님을 느껴야 한다. 인간의 재능들은 신에게 길을 비켜야 한다.
14. 1884년 - 세계적인 경고가 절정을 가져온다
“온 땅 위에서 수천의 음성으로 기별은 전파될 것이다. 기적들이 행해지고 병자는 고침을 받고 표적들과 기사가 신자들을 뒤따를 것이다. 사단도 역시 거짓 거짓들을 행하고 심지어 사람들 앞에서 불어 하늘에서 내려오게 한다. 이리하여 지상의 거민들은 그들이 서야 할 입장을 분명히 한다”(상동 430). 교육을 받지 못한 그러나 헌신한 평신도들이 능력 있는 증거를 하도록 강권될 것이다. 그리고 어린애들이 목사가 반응을 보이지 않았을 때 1844년 이전에 Sweden에서 어린 설교자들 같이 전도한다. 이들이 학식 있고 훈련받은 자들과 연합할 것이다. 평신도들은 등용되고 능력을 부여받을 것이다.
* 화잇 부인은 어떤 이들이 주장하는 대로 하나님께서는 목사들과 다른 교육받은 사역자들을 떠나서 오직 헌신한 평신도들만으로 사업을 마칠 것이라는 사상을 지지하지 않았다. 여기에 항상 예언의 신을 특정 짓는 하나님의 균형이 있다. 물론 바다를 덮는 것과 같이 온 땅을 주의 지식으로 충만하게 할 사업을 행하는 것은 목사 중에 책임 있는 높은 자리에 있는 자들만으로는 아니다. 직원회나 위원회의 지위에 있는 사람들로 만도 아니요 우리 병원이나 출판소의 관리자들로 만도 아니다. 이 사업은 하나님의 인도 하에 능력 한에 그들의 몫을 행하는 온 교회로 말미암아서만이 성취할 수 있다( Pacific Union Recorder 3, 24, 1904. p. 1, 2). 수 천 명의 겸비한 평신도들과 사업가들이 목사들의 노력을 증대시킬 것이며 흔히 신학적 박학 이 실패한 곳에서 성공할 것이다. 각성시키고 회심시키고 사업을 마치는 것은 항상 성령이시다. 이 겸비케 하고 강권하는 사실이 우리 대회 사역자들 앞에 항상 있어야 한다. 성령께서는 우리의 모든 학식과 사람의 모든 수완보다도 더욱 무한히 성취하실 수 있다.
15. 1888년 - 기술적인 논쟁과 성령의 확신으로
기별은 1844년의 밤중 소리 때와 같이 토론으로 보다는 하나님의 신의 깊은 확신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토론은 이미 실컷 해 보았다. 씨는 뿌려졌다. 이제는 싹이 나고 열매를 맺어야 한다(Ev 701). 명석한 논리로서가 아니고 사람을 끄는 호소가 사람들의 마음을 설복시킬 것이다. 그리스도를 더욱 많이, 논쟁은 더 적게 함이 우리 증언의 절정을 이룰 것이다. 성령의 필수적인 부어주심은 신령하게 묘사된 상태가 될 때 있을 것이다. 성령께서는 우리가 반응을 보이기를 기다리고 계시다. 반복적인 강조는 경고의 기별뿐만 아니라 자비의 기별에 있다. 엄숙한 경고가 당연히 있어야 하지만 하나님의 사람만이 강권하신다. 인간적인 매력은 사라지고 사랑이 지배적이 되어야 한다.
16. 1888년 은혜의 시간을 몇 번 더 연장해 달라고 기도하라
큰 위기가 하나님의 백성을 기다리고 있다. 한 위기가 세상을 기다리고 있다. 가장 중대한 투쟁이 바로 우리 옆에 있다. 40년 이상이나 임박하다고 예언적인 말씀의 권위로 주신 사건들이 지금 우리 눈앞에서 이루어지려고 하고 있다.40년을 성취할 수 있을 때까지 이 재난이 연기되도록 열렬하고 효과적인 기도가 하늘로 상달되어야 한다. 가장 열렬하게 기도한 다음에 우리의 기도와 조화되게 일하자(p. 714). 하나님의 백성이 깨어서 빛을 비추도록 연기가 허용될지도 모른다. 만일 의인 10사람이 있었더라면 그들의 악한 도시를 구원하실 것이었는데 하나님께서 지금도 당신의 백성의 기도의 응답으로 당신의 법을 무효화시키려고 일하는 자들의 일을 막으실 수 없겠는가? 우리는 우리 마음을 하나님 앞에 크게 겸비하여 은혜의 보좌로 나아가서 그의 강하신 권능을 나타내 주시도록 탄원하지 않겠는가?
“하나님은 그의 백성이 오늘날의 입장에서 훨씬 전진하기를 원하신다. 그러나 이제 그들이 행동에 뛰어들 시간이 왔을 때 그들이 준비된다(p. 714-715). 파수꾼이 자고 있다. 우리는 수년 뒤에 떨어졌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깨라고 요구하신다. 왜냐하면 끝이 거의 왔기 때문이다. 매시간은 우리 앞에 곧 열려야 할 그 큰 장면에 한 부분을 하도록 땅 위에 있는 한 백성을 준비시키기 위하여 하늘 법정에서 활동하고 있는 시간 그 큰 장면에 한 부분을 하도록 땅 위에 있는 영원한 관심사만큼 중대하다. 이 시간들은 영위한 생명이냐 거룩한 상태로 일어나지 않는 한 그대는 우리 주님의 나타나심 위해 준비하지 못할 것이다”(p. 717).
온 땅에 있는 기도하는 남녀들 위에 하나님께서 악의 그룹을 제거하시고 주님을 위하여 일할 수 있는 은혜의 시간을 몇 년 더 주시라고 탄원해야 할 큰 책임이 메워져 있다. 자 우리 하나님께 그 천사들이 세계 각처에 선교사들을 보내어 여호와의 율법을 불순종하는 자들에게 경고를 할 때까지 사방 바람을 붙잡게 해 달라고 부르짖자.
자비 중에 수년이 연장되었다. - 5가지 가장 의미 있는 표현들 “연기될지 모른다. “유예 기간이 아직 허락 될 수 있다” “억제한다” “사방 바람을 붙잡는다.” “은혜의 시기를 몇 년 더 주신다.” 등은 누가적인 힘에 있어서 크게 의미가 있다. 1888년 미네아폴리스 총회 전에 기록된 것으로서 우리 백성들의 영적으로 낮은 수준에 있었고 아직도 어떤 그릇된 견해에 대하여 예리하게 분열되어 있을 때 그들은 예언된 국가적 일요일 휴업령에 의하여 위협을 받고 있었고 준비되어 있지 않음과 등한으로 약화되었다. 그러나 우리 백성들은 그 호소에 응했을 때 그들의 간구는 분명히 응답되었다. 그 위기는 연기되었다. 간구한 은혜의 해들은 연장되었다.
배울 교훈은 무엇인가?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경고를 촉진시키는 것보다 귀한 영혼들이 구원받고 주님을 맞이하도록 준비시키는 것에 더욱 관심을 갖고 계신다. 그 같은 말 가운데에서 엘렌 화잇이 말하기를 “하나님께서 항상 나를 통해서 말씀한 바와 같이 그대들이 의회 앞에 불려가서 그대들이 주장하는 진리의 모든 견해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을 받을 때가 올 것이다”(p. 717). 그들은 88년 총회 이전에는 그런 예리한 질문들과 부자비한 공개를 위해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그들의 논쟁적 기술과 자기 확신에도 불구하고 소돔과 고모라에 의인 10명만 있을지라도 그 들판의 도시들의 멸망을 연기하겠다는 것은 하나님의 넘치는 자비와 연민을 보여준다. 그러나 10명이 없었으므로 소돔과 고모라에 멸망이 왔다. 하나님의 자비는 세상과 교회 모두를 위하여 1888년 즈음에 멸망을 연기하셨다. 준비하고 증명할 시간이 허용되었다. 미네아폴리스의 전진은 필수적이었다. 이 점에서 배울 교훈은 많다. 그것은 연장된 채에 대한 참 해설이다. 우리의 막대한 사업을 마치도록 더 많은 시간이 요구되었고 허락되었다. 그렇지만 우리가 보아온 것과 같이 그 반응은 마땅히 있어야 할만큼 미치지 못했다. 그러나 반응을 나타내는 회개가 인간들에게서 없어질 때 자비는 진노로 변할 것이다. 그런 상태는 피해가 지남에 따라서 강조된다.
17. 분기점이 되는 1888년 미네아폴리스 총회
미네아폴리스 총회 동안에는 지체에 대해서 더 이상의 말씀이 없었다. 목전에 있는 그 총회의 논쟁이 급선무였고 다른 모든 것을 대치해 버렸다. 1889년 동안에도 없었다. 그러나 1890년대에 13개의 기별들이 있었다. 하나님의 백성 전체가 신성의 모든 충만함이신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전진한 빛, 1888년에 밴 앞에 감명 깊게 제시된 빛 그리고 그 기초적 진리와 함께 온 모든 것은 빨리 받아들이는 것이 하나님의 소원이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고 오직 어떤 이들만이 처음에는 받아들이고 그 가운데서 행했다. 뚜렷한 전진에도 불구하고 반대가 계속되었다. 전진에 대한 일반적인 태도와 실패 때문에 더 많은 해가 요구될 것이다. 그것이 다만 이유요 비극일 뿐만 아니라 시간이 지나감으로 입증되고 반복된 예언의 신의 말씀이 증거한 냉혹한 사실이었다. 세상에 대한 우리의 책임은 지금 점점 더 강화된다. 그리고 우리의 실패 그러나 거기에는 또 하나의 가장 중대한 관심이 있다.
18. 1892년 - 시기와 때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권한에 있다
“하나님께서 때와 시기는 자기 자신의 권한에 두셨다.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는 이 지식을 우리에게 주시지 않았는가? 왜냐하면 주께서 알려 주셨다면 우리가 그것을 옳게 사용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 지식을 우리 백성이 알게 되면 장차 올 큰 날에 한 백성이 서도록 준비시키는 하나님의 사업을 크게 지연시킬 상태로 귀결될 것이다”(R.&H. 3, 22, 1892; Ev 221). 우리는 그 시간은 모르지만 하늘의 전지하신 회의에서 알려져 있다. 그것은 하나님의 결정하는 손에 있다. 모든 지옥 세력들은 신이 정하신 때가 오기까지 그 완성을 멈출 수 없다. 그것을 항상 기억해야 하고 곧 발전될 것이다.
19. 1892 - 명확한 때에 관해서 추측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계시하시지 않은 때와 시기에 관하여 추측하는데 열중하지 말아야 한다. 예수께서 당신의 자녀들에게 깨어있으라고 하셨지 명확한 때를 말씀하시지는 않았다. 그를 따르는 자들은 그들의 대장의 명령을 잘 듣는 자들의 위치에 있어야 한다. 그들은 주님이 오시는 시간이 임박함에 따라서 깨어 기다리며 기도하며 일해야 한다. 그러나 아무도 언제쯤 그 때가 올 것인가를 알 수 없고 그대들의 10년이나 20년 내에 오시지 않을 것이라고 말함으로 그의 오심을 연기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성령 부어주심이나 그리스도가 오시는 일정한 때를 알아서는 안 된다(R.&H. 3, 22, 1892; Ev 221). 위의 마지막 문장을 숙고하라. 이것은 주목해야 할 만큼 중대한 권면이다. 우리는 특별한 날짜를 추측하는 것이나 말하는 것을 삼가야 한다고 권고를 받았다. 혹은 몇 년 남았다고 추측하지도 말라는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이런 일이 때때로 있었고 아직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지혜롭지 못하고 부적당할 뿐만 아니라 자신과 남에게 실망과 불건전한 반응의 기초가 될 것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위험한 되를 범한다. 이런 방종도 추방되어야 한다.
20. 1892 - 추측을 피하라. 성령에 굴복하라
어떤 특별한 흥분의 기대 중에서 사는 대신에 우리는 영혼들의 구원받도록 해야 할 일을 하면서 현재의 기회를 지혜롭게 개발해야 한다. 주께서 자기 자신의 권한에 두시고 인간에게서 거두신 때와 시기에 관해서 추측 하는 데에 우리의 정신적 능력을 소비하는 대신에 우리는 자신들을 성령의 주관 하 에 굴복시켜 현재의 의무들을 이행하고 인간적 생각으로 더럽히지 않은 생명의 떡을 진리가 없어서 멸망하고 있는 영혼들에게 나누어 주어야한다(R.&H. 3, 22, 1892; Ev 702).
우리는 추측을 삼가야 하고 인간의 생각으로 생명의 떡을 더럽히지 말아야 한다. 그 마지막 권면에 대한 이유가 있다. 왜냐하면 그것을 실제로 행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21. 1892 - 사업은 곧 마쳐질 것이다
“사업은 곧 마쳐져야 한다. 충실하다고 입증된 교회 군대의 교인들은 승리하는 교회가 될 것이다”(Letter 32, 1892; Ev 707).
그 자격에 대한 문구 충실한 신자들은 가장 의미 있다. 반응은 결코 만장일치가 되자 않을 것이다. 그것은 개인적인 문제이다. 모두가 승리자는 아니다.
22. 1892 - 온 땅이 그 영광을 빛냈다
첫째, 둘째, 셋째 천사의 기별 중에 포함된 진리는 반드시 각 나라, 족속, 방언, 백성에게 전파되어야 한다. 그것은 반드시 모든 대륙의 흑암을 비추어야 하고 바다의 섬들에 퍼져야 한다. 이 사업에 지체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우리의 표어는 앞으로 항상 전진되어야 한다. 그것은 반드시 모든 대륙의 흑암을 비추어야 하고 바다의 섬들에 퍼져야 한다. 이 사업에 지체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우리의 표어는 앞으로 항상 전진되어야 한다. 하늘 천사들은 우리 앞에 가서 길을 준비할 수 없다(GW 470). 온 세상을 복음화 하라는 나팔 소리 같은 부르심은 과거 어느 때보다도 더욱 끊질 기게 지금 들려오고 해가 감에 따라서 강화되었다. 사업의 거대함은 점점 강화된다. 머뭇거리고 있으나 점점 이해가 된다.
23. 1895 - 기별 선포를 위하여 성령으로 추진된다
하나님께서는 사회에서 겸비한 자 위에 있는 사람들을 움직일 것이다. 하나님의 신으로 강권되어 남에게 빛을 전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인 진리는 그들의 뼈 속에 불과 같이 될 것이다. 교육받지 못한 자들 중에서 끼지도, 많은 사람들이 이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한다. 어린이들이 성령에 의하여 강요되어 나아가서 하늘에서 온 기별을 선포한다. 성령께서 그 자극에 굴복할 모든 자들 위에 부어질 것이며 그리하여 그들은 모든 인간적 조직, 그를 얽매는 규례와 신중한 방법 등을 내버리고 성령의 권능의 힘으로 진리를 선포할 것이다. 군중들이 그 신앙을 받아들이고 주의 군대에 가담할 것이다(R.&H. 6, 23, 1895; Ev 700). 이것은 놀라운 말씀들이다. 그 큰 완성에서 기별들은 비천한 그릇들이 성령에 의하여 크게 사용될 것이라고 반복해서 말한다. 거룩한 방대함과 효과가 있을 것이다. 높은 교육을 받고 현저하게 재능이 있는 자들은 너무 흔히 그들 자신의 영리함과 학식과 정력을 의뢰한다. 그리고 많은 이들은 그렇게 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겸비한 방해받지 않는 통로들 목사와 평신도들을 소유해야 한다. 하나님의 권능과 은혜의 강력한 최후의 역사를 위하여 말씀과 설교에 있어서 거민들이 있을 것이다.
24. 1895 - 지금 성령을 부어주시도록 하라
“교회 위에 성령의 강림을 미래에 있을 일로 내다 보아왔다. 그러나 교회가 지금 소유하는 것은 특권이다. 그것을 위해 구하라. 그것을 찾으라. 그것을 믿으라. 우리는 그것을 소유하지 안으면 안 된다. 그리고 하늘은 그것을 주시려고 기다리고 계신다.”(R.&H. 3, 19, 1895; Ev 701). 이것이 하늘의 준비 격려요, 호소이다.
25. 1896 - 그리스도의 의는 반드시 먼저 비추어야 한다
“참으로 회심한 모든 영혼은 다른 이들을 오류의 흑암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의의 놀라운 빛 가운데로 인도하는 것을 강렬하게 소원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신을 크게 부어주심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동역 자가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경험으로 아닌 빛을 받은 백성을 갖게 될 때까지 오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사업에 전적인 온 마음을 다한 헌신을 할 때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영을 한량없이 부어주심으로 그 사실을 인정하실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교회의 대부분이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가 되지 않는 동안에는 이런 일이 없을 것이다”(R.&H. 7, 21, 1896). 1888년의 필수적인 교훈 그 모든 충만함 중에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아직도 다수가 배우지 못했고 경험하지 못했다. 우리는 경험으로 알아야 할 것이다. 교회의 최대 부분이란 표현은 의미심장하다. 단지 어떤 이들만이 1888년 미네아 폴리스에서 빛을 받았다.
26. 1896년 - 산 경험의 부족으로 지체된다
“만일 하나님의 일에 산 경험을 가졌다고 주장하는 자들이 주께서 명하신 바와 같이 그들에게 지정된 사업을 다했더라면 온 세계는 이전에 경고를 받았을 것이며 주 예수께서는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셨을 것이다”(R.&H. 10, 6, 1896). 또 다시 하나님의 일에 있어서의 산 경험과 온 세상에 대한 성공적인 경고와 재림과의 불가분의 00이 강조되었다. 이것들은 분리할 수 없다. 이제 능력 있는 진리가 있다. 그 충분한 의미를 상실해서는 안 된다.
27. 1898 - 서두르는 것도 지체하는 것도 없다
지정된 길에 있는 큰 제도에 있는 별처럼 하나님의 목적은 서두르지 않고, 지체하지도 않는다. 큰 흑암과 연기라는 풀무의 상징을 통해서(창 15:8-18)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애급에서의 이스라엘의 노예 생활을 계시하셨고 그들의 체류기간이 400년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그 후에 그들이 큰 재물을 가지고 나올 것이라고 하셨다(창 15:14). 이 말씀에 대항하는 파라오의 교만한 왕국의 모든 권세로도 싸웠으나 헛수고였다. 하나님의 약속 중에 있는 바로 그 날에 주의 모든 군대가 애급 땅에서 나왔다(출 12:4). 이와 같이 하늘의 회의에서 그리스도의 초림에 대한 시간이 결성되었다. 그 큰 때의 시계 바늘이 그 시간을 지시했을 때 예수께서 베들레헴에서 나셨다(DA 32). 이 말씀은 균형 잡힌 이해를 위하여 최고로 중요하다. 언약하신 하나님의 목적의 성취의 확실성은 별들의 궤도와 같이 확실하고 빗나가지 않고 신성하다. 그것을 결코 잊지 말자. 하늘 회의에서 초림의 때는 오래 전에 결정되었다. 어긋남이 있을 수 없다. 그리스도께서는 미리 결정된 예정대로 영원한 정확한 때에 베들레헴에서 나셨다. 그의 속죄의 죽으심도 정밀한대로 결정되었다. 미리 아시고 모든 것을 보시는 전능하신 분은 주권을 가지셨다. 그분, 그분만이 그가 다 이루었다고 선언 하실 때를 아신다. 그 최종 막은 그 분의 손안에 충분히 신뢰할 수 있게 있다. 빗나가지 않고 그것 역시 그대로 될 것이다.
28. 1898년 주의 오심을 촉진할 수 있는 권세
“복음을 세상에 전파함으로 말미암아 우리 주님의 오심을 추진시키는 것은 우리의 권한에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날이 임하는 것을 바라볼 뿐 아니라 촉진시켜야 한다. 그리스도의 교회가 주께서 명하신대로 지정된 사업을 이행했더라. 온 세상은 이 전에(1898) 경고를 받았을 것이요 주 예수께서는 능력과 큰 영광으로 우리 지상에 오셨을 것이다”(DA 633, 634). 그러나 무한하신 분께서는 사람이 할 일 뿐만 아니라 당신 자신의 하실 일도 아신다. 주께서는 사람의 변덕에 말려들어가지 않으신다.
29. 1898 - 1898년에 하나님의 도성에 가 있을 수 있었다
“당신의 백성이 자비의 기별을 세상에 전함에 있어서 하나님의 목적을 이행했더라면 그리스도께서는 이 땅에 오셨을 것이요 성도들은 이 하나님의 도성으로 영접 받았을 것이다”(Austrailian Union Record, 10, 15, 1898). 19세기 마쳐갈 때 우리에게 지워진 세계 복음화 할 의무는 점점 더 강조되었다. 재림을 촉진시키는 직접적인 자세로서 그 때에 우리의 외방 선교 확장은 점점 속도를 가하기 시작했다. 복음 전도의 전진을 위한 나팔 소리 같은 부르심이 있었다. 만일 조건만 이루었다면(복음 사명 완수, 인간이 할 일) 그리스도는 오실 수 있었고 우리는 그 나라에 가 있을 수 있었다는 확신에 보증을 더 해 주셨다. 그러나 그렇게 되지 못했다. 이 때문에 미리 알고 있던 지체가 선언되었다.
* 주 - 100% 교인의 헌신이 있을 것이라고는 결코 하지 않았다. 그리스도께서 친히 말씀하시기를 추수 때까지 알곡 중에 가라지가 있을 것이라고 하셨다(마 13:20). 신랑을 기다리는 처녀들 중에 반은 어리석었고 탈락되었다. 엘렌 화잇의 처음 계시, 1844년 12월에 하나님의 도성까지 예상하지 못한 중에 그 빛을 받은 깃을 따라가다가 그 여행이 길기 때문에 피곤한 자들이 넘어지고 아래 세상의 흑암 속으로 떨어져 버린 것을 계시했다(EW 14-15). 늦은 비중에서 성령의 부어주심은 교회의 대부분이 전적인 헌신으로 특징지어질 때에만 교회 위에 임하실 것이다. 이 원리를 우리는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 주 - 1899년과 1905년 사이의 많은 위기의 시기
범신론으로 인한 분리된 논쟁, 멀리까지 마친 의료 사업의 위기, 조직에 과한 논쟁 그리고 여러 사람의 탈퇴, 모든 것이 더 큰 논쟁(복음 전자, 역자 주)을 희미하게 했고 품성의 불완전과 끝마치지 못한 세계 사업 때문에 완성의 시간을 불 가치하게 연장시켰다. 성령께서는 기다리고 준비되어있는 원하시고 하실 수 있는 교인들이 준비되지 않은 것 때문에 그분께서 지정된 사업을 하실 수 없었다. 그런 상태는 반드시 변경되어야 하고 변경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