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로서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치러야 하는 대가는 무엇일까. 창작의 고통과 자신과의 싸움, 과연 그럴듯하고 세련된 고뇌뿐일까. 종이모형가 장형순(40)은 작가가 되어가며 겪는 갖가지 고충, 때로는 비참하기 까지한 여정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추구해야 하는 가치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6년간 세상과 고립된 후 긴 터널을 가까스로 빠져나온 작가가 말하는 늪과도 같은 고통의 시간과 마침내 얻게 된 안식과도 같은 깨달음은 듣는이를 숙연한 맘으로 돌아보게 한다.
종이모형가라는 다소 생소한 타이틀의 작가 장형순을 만났다. 종이모형은 전개도 형태로
디자인돼 누구나 출력해 똑같이 만들 수 있고, 출력 크기를 조절해 다양한 크기로 제작할 수도 있다.
그는 직접 전개도를 만들어 출력한 후 이를 접어 모형으로 만드는 작가다. 작업실에는 작고 단순한 동물,
만화 캐릭터부터 거대한 로봇과 보살, 기마인물형토기와 같은 복잡한 모형까지 각양각색의 작품이 잔뜩 쌓여 있었다.
전개도라는 개념도 없고, 컴퓨터는 사전에나 있던 시절, 색종이·색상지 정도의 컬러지가 있던 때부터 그는 종이모형을 만들었다.
■ 종이모형가의 문턱에서
종이모형을 처음 만들게 된 것은
고등학교 1학년이던 1985년.
캐릭터 상품이 없던 시절, 만화영화를 좋아하던 그는 만화주인공 인형이 갖고 싶은데 살 돈도 없고, 살 데도 없어 직접 만들기로 했다. 색종이와 색상지를 오려붙여 바람돌이, 가제트 형사 등을 만들었는데, 단순한 취미였다.
이후 그는 건축학과를 진학한다. 대학원에서도 건축학을 전공해 공모전도 많이 나가고 상도 꽤 탔다. 건축을 굉장히 좋아했고, 교수님과 친구들도 비전이 좋다고 봤다. 꿈이 굉장했다. 종이모형은 취미로 가끔, 여학생들 ‘꼬실’ 때나 접을 정도였다.
대학원까지 마친 후
설계사무소에 들어가게 되지만, 실제 현실은 자신이 생각했던 것과는 판이하다는 걸 알게 됐다. 자신이 만드는 것으로 미래를 걸고 싶던 작가에게, 수십 명, 수백 명이 관여해 엄청난 돈을 걸고 건물을 짓는 일은 A부터 Z까지 스스로 하고 싶었던 작가와 맞지 않았다.
회의에 빠진 그를 몰아붙이듯 대형 건축물이 무너지는 사고가 연달아 일어났다. 특히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는 그가 건축을 그만두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당시 일하던 사무소가 삼풍백화점에서 500m 거리였는데, 퇴근 직전에 갑자기 백화점이 무너지기에 일부러 무너뜨린 줄 알았어요. 불과 7~8분 후에 사고현장을 지나갔는데 자욱한 연기에 찢어지는 비명 뿐이었죠. 너무나 많은 목숨이 걸려 있다는 점, 나 혼자서 창작하고, 감당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점. 그런 점들 때문에 그만두게 됐지요.”
하지만, 그때만해도 종이모형으로 미래를 걸겠다는 생각은 못했다. 대신 좋아하는 만화세계에서 일하기로 하고, 애니메이션 회사에 입사해
캐릭터상품 개념으로 종이모형 전개도를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섬광이 스친 듯, 종이모형으로 미래를 삼겠다고 결정한다. 2001년의 일이다.
■ 6년의 터널
2001년
세종문화회관에서 종이모형과 관련한 전시가 연린다. 공룡을 소재로 한 전시를 접한 작가는 자신만의 전개도로 종이모형을 접어 완성하는 일을 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된다.
당시만 해도 작가보다는
디자이너가 되고자 했다. 전개도를 만들어내고, 상품화하려는 취지였다.
“전개도를 무작정 계속 만들어내고, 이 비전으로 사업제안을 했죠. 애니메이션, 팬시, 엔터테이먼트사,
통신업체,
출판사 등 제안을 하지 않은 데가 없어요. 팬 사인회에서 연예인의 종이모형을 제공한다면, 동물원에서 동물 종이모형을 만들 수 있다면 좋을 거라고 생각하며 일주, 이주에 한 차례씩 제안했죠. 그렇게 산 시간이 6년이에요.”
2001년부터 2006년까지 점심을 혼자 먹었다. 종이모형의 세계에 빠져들어 전개도를 탐구하다가도 ‘세상에 내 자리가 없구나’ 여겼다. 말을 하다가도 갑자기 종이모형을 끄집어내 와 보여주고, 한참을 그러다 “질문이 뭐였죠?” 되묻기도 하는 그는 그때 이런 말투를 익히게 됐다 한다.
너무 말을 안 하다 보니 누군가 말을 시키면 동시에 여러 가지 생각이 드니까 말이 나오다 막히고, 정신없게 되고 그렇게 얘기하게 되는 식이다.
“6년이나 걸릴 줄 알았다면 이 일을 시작하지 않았는지도 모르죠. 종이모형이 든 가방을 네 개나 듣고 약속한 미팅을 하러 가서는 담당자 얼굴도 못 보고 오기 일쑤였어요. 그때 겪은 수모는 평생 잊히지가 않겠지만, 어마어마한 양을 끝없이 만들어내서 지금도 아이템이 상당히 많아요.”
■ 작가로서의 시작
사업으로서 구상만 했던 종이모형을 전시하게 된 것은 2005년의 일이다. 상품으로 내놓으려는 제품이 작품으로 바뀐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됐다. 그의 종이형을 접한 파주 헤이리 아트팩토리에서 들어온 제안이었다.
‘장형순 종이모형전’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반가사유상, 코끼리, 애니메이션 캐릭터 등 다양한 작품을 전시했다. 이때부터 작가로서의 윤곽이 잡힌 셈이다. 이렇게 사는 삶도 있구나, 이렇게 살 수도 있구나 생각했다.
이후
교보문고 전국 5개 지점 순회전을 갖게 되고, 한 차례씩
체험학습을 할 수 있도록 종이모형 강사로 참여했다. 애초에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데로 흘러간 셈이다.
그리고 2007년 대안예술공간인 안양 스톤앤워터를 알게 되고, 종이모형 강사로 1년간 참여했다. 페인팅작업, 리폼작업, 북아트 등과 관련한 다른 작가들을 접해 만나면서 새로운 세계를 알게 됐다.
“2007년은 물속에 들어가면 죽는 줄 알았는데, 막상 들어가 보니 아가미가 있다는 것을 깨달은 시기에요. 내가 살던 세상과 완전히 다른 세상에 왔는데 오히려 행복한 느낌이었죠. 예술이나 디자인에 대한 고민을 얘기할 수 없었던 분위기가 반대로 가고, 나와 통하는 세계를 만난 셈이에요.”
2007년 도면을 쉬지 않고 만들었던 그는, 이듬해 스톤앤워터 레지던시 작가로 활동하며 작가로서의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이후 2009년 서울대자인재단의 혜택을 받아 서울첨단산업센터에 디자이너로 입주해 디자이너들과 교류하며 디자인관련 전시를 열게 된다. 유명세를 타면서 TV에 출연하기도 하고, 종이모형이 널리 알려지게도 됐다. 느리지만 쉬지 않고 걸어온 결과다.
“모든 사람이 종이모형을 좋아할 필요는 없어요. 하지만,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TV가 필요해서 TV를 보고, 전화가 필요해서 전화를 사용하는 것처럼 종이모형도 필요한 거구나, 여기며 자신의 세상에 들어와도 되는 여건이 됐으면 좋겠어요. 프라모델이나 인형 마니아가 있는 것처럼 종이모형도 그 영역이 생겼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오는 23일부터 서울 코엑스에서 열리는 2011
서울인형전시회 참여 작가로 준비에 여념이 없는 그는 1~2년 내로 국외전시를 하는 게 목표다. 더 나아가 자신이 종이모형으로 만들며, 만화적 상상력을 펼친 작품을 토대로 애니메이션, 영화화가 됐으면 하는 꿈이 있다.
상업과 예술의 경계에서 작품과 더불어 종이모형의 세계를 만들어가는 장형순.
종이모형을 하는 이유에 “가장 잘하는 부분을 버릴 수는 없기 때문”이라고 답하는 그는 앞으로도 지금처럼 전개도가 예술로 합치되는 지점을 고민할 계획이다.
▲작가약력
-종이모형 디자인 전문사 지콘디자인 대표
-
아주대학교 건축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국립중앙박물관 문화상품 공모전 은상, 제1회 헤이리 에코디자인 공모상 우수상 외
다수-2005 장형순 종이모형전, 2006 건축적 상상전 ‘여섯개의 꿈’전, 2010 장형순 ‘지성시대’전 외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