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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장 성령의 열매 – 충성(1)
고린도전서 4:1-5 / 마태복음 25:14-30 (참고 단 6:1-4, 딤후 2:1-7) / 찬송 : 333장
고전 4:1-5 / 여러분은 아볼로와 내가 하나님의 감춰진 비밀을 맡은 그리스도의 일꾼임을 알아야 합니다. 2) 일꾼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주인이 시키는 대로 따르는 것입니다. 3) 그런데 나는 어쨌습니까? 충실한 일꾼답게 일해 왔다고 여러분은 보십니까? 그러나 여러분이 어떻게 생각하든 또 누가 어떻게 생각하든 나는 그런 것에 개의치 않습니다. 나 자신의 판단도 믿지 않습니다. 4) 내 양심에 조금도 거리끼는 일이 없다고 해서 내가 죄 없는 사람이라고 내세울 생각도 없습니다. 나를 판단하시는 분은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5) 그러므로 주께서 오시기 전에 어떤 사람이 좋은 일꾼이냐 하는 것을 성급하게 결론 짓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주께서 오시면 모든 것을 밝히 드러내실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마음 깊은 곳까지 있는 그대로 속속들이 드러나 비로소 모든 사람이 왜 우리가 주님의 일을 해왔는가를 알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각자 한 일에 따라 칭찬을 하실 것입니다.
■ 이성계의 아들 이방원이 정몽주의 마음을 떠보려고 <하여가>라는 시를 읊었습니다.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 칡이 얽혀진들 그 어떠하리. 우리도 이같이 얽혀져 백 년까지 누리리라.
<하여가>를 들은 정몽주가 <단심가>를 지어 답을 하여 읊었습니다.
이 몸이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 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임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우리는 이 두 사람을 통해 충성의 의미를 생각해 보게 됩니다. 한 사람은 이렇게 저렇게 칡처럼 얽혀서 사는 것이 인생이라고 말하고 또 한 사람은 임금을 향한 일편단심을 말하고 있습니다. 충성이란 말을 한마디로 <일편단심(一片丹心)>입니다. 충성이란 하나님을 향한 마음이 변치 않는 것이며, 그래서 믿을 수 있는 인격을 말하는 것입니다.
1. 성령의 열매 – 충성의 의미
성령의 일곱 번째 열매인 ‘충성’의 사전적 의미는 ‘진정에서 우러나는 정성, 도덕적 관념에서 임금에게 바치는 충직한 지성’이라는 뜻입니다. 충성(忠誠)이란 마음의 중심에 말씀이 이뤄진다는 것이 한문의 뜻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충성은 어떤 것일까요?
충성(피스티스)의 뜻은 ① 믿음이고 ② 충성입니다. 어떤 번역은 믿음(faith)으로 번역하고(KJV) 어떤 번역은 충성(loyalty)으로 번역합니다. 개역성경에 충성으로 번역된 원어는 ‘피스티스’로 믿음으로 보통 번역합니다. 표준새번역은 ‘신실’로, 공동번역은 ‘진실’로, 영어 성경은 대부분은 faithfulness로 번역하였습니다. ‘충실’ ‘성실’ ‘신의’란 뜻입니다.
2. 충성을 하려면 먼저 하나님을 믿어드려야 합니다.
충성이란 뜻을 담아서 ‘충성’이라고 하면, 믿을만하고 자기 일에 열심을 다한다는 뜻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충성’ 혹은 ‘신실함’이 성령의 열매인 까닭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성령이 아니고서는 인간이 하나님께 대하여 신실하지 못하며 믿을만하지 못함을 뜻합니다. 따라서 성령이 우리를 변화시킬 때 비로소 신실한 사람이 될 수 있으며, 하나님께 대하여 충성할 수 있는 자가 될 수 있음을 뜻합니다.
▶ 믿음은 무엇을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까? 이것은 죄 용서함을 믿어야 합니다. 그러면 영원한 생명이 있습니다. 영원한 생명이 있는 것을 믿기에 충성스럽게 살아가게 됩니다.
고후 5:10 / 장차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 앞에 서서 심판을 받아야 합니다. 그때에는 우리가 살아온 모습이 그분 앞에 다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선한 일을 했든지 악한 일을 했든지 땅위의 육체로 사는 동안에 행한 대로 보상을 받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의 삶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요 죽은 후에는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선다는 것입니다. 이런 심판을 생각하는 사람은 충성스런 삶을 살게 됩니다. 충성스런 삶은 성령의 임재를 체험한 사람만이 이 믿음이 확실하기에 그들의 삶은 언제나 순간순간 충성스럽게 삽니다. 다음 세상이 믿어지지 않고 영원한 천국이 없다면 누가 정직하게 살며 누가 충성스런 삶을 살겠습니까? 샤머니즘적인 바탕에서 예수를 믿으니 하나님 앞에 선다는 진지함 보다는 이 땅에서 잘 살았으면 하는 이기적인 신앙은 충성이라는 인격의 열매를 기대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히 11:1 / 믿음은 무엇입니까?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확신을 갖는 게 아니겠습니까? 또한 아직 눈앞에 보이지 않는 미래의 일일지라도 우리가 기대하는 것이 반드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 게 아닙니까?
히 11:6 / 여러분은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로 나아가려고 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하나님이 살아 계신다는 것을 믿으십시오. 진정으로 하나님을 바라는 이는 반드시 보상받는다는 것을 믿으십시오.
고전 15:14-17 /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아직도 죽은 자 가운데 계시다면 우리가 전한 것은 다 허상에 불과하며 여러분의 믿음도 헛되고 아무 가치도 없는 것이 되어 버릴 게 아닙니까? 15)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다면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무덤에서 다시 살리셨다고 전한 것이 모두 거짓말이 되어 결국 우리 사도들은 헛소리나 늘어놓은 셈이 됩니다. 16)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그리스도께서는 아직도 죽은 상태대로 계셔야 하고 17) 하나님의 구원을 믿어 온 여러분은 어리석기 짝이 없는 사람으로서 여전히 죄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부활하여 하나님 앞에 선다는 확실한 믿음은 성령의 도움으로만 가능합니다. 성령이 함께 하심으로 부활의 소망은 확실해 집니다. 이런 사람은 모든 일에 충성하게 됩니다.
마태복음 24장은 말세에 나타날 징조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25장에서는 열 처녀의 비유, 달란트의 비유, 양과 염소의 비유를 통해서 천국시민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열 처녀의 비유는 믿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믿음이 있는 슬기로운 다섯 처녀와 믿음이 없는 미련한 다섯 처녀를 말하고 있습니다. 달란트의 비유는 예수님의 재림을 대망하는 성도는 충실하게 산다는 비유로, 재림의 소망이 확실하다면 반드시 충성스런 삶을 살게 됩니다.
이것은 소망 중에 산다는 말입니다. 양과 염소의 비유는 이웃과 관계를 말합니다. 평상시 어떻게 인간관계를 맺고 사느냐는 천국에 심판의 기준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랑의 관계를 말합니다.
시 24:1 / 온 누리와 그 안에 가득 찬 것이 모두 다 여호와의 것. 세상과 그 속에 살고 있는 것이 모두 다 여호와 우리 주님의 것.
이 세상의 모든 것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선한 청지기로 살아야 합니다. 시간, 물질, 우리가 가진 재능 모두가 하나님께서 잠깐 우리에게 맡겨놓은 것입니다. 그래서 담대히 이렇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고전 6:19-20 / 여러분의 몸은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신 성령의 집이며 성령께서 여러분 안에 살고 계신다는 것을 아직 모르십니까? 여러분의 몸은 여러분의 것이 아닙니다. 20)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비싼 대가를 치르고 여러분을 사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몸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데 사용하십시오. 여러분의 몸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롬 14:8-9 / 살든지 죽든지 우리는 주님을 따라야 합니다. 사나 죽으나 우리는 주님의 것입니다. 9)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것은 우리가 살든지 죽든지 언제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주님이 되시기 위한 데에 그 목적이 있습니다.
위의 구절로 볼 때, 우리에게는 내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 몸도 성령이 거하는 전입니다. 우리 몸의 주인도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오직 우리가 할 일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지만 한편으로는 청지기로서 하나님 앞에서 계산할 날이 있다는 것입니다.
3. 어떤 종이 충성된 종이며, 어떤 종이 불충성한 종입니까?
마태복음 25:14-30에서는 충성된 종과 불충성한 종의 구별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충성된 종은 어떻게 사는지 확실한 소망 중에 사는 사람들이 사는 방식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어느 주인이 종들을 불러서 각각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한 달란트씩 맡겨주고 먼 길을 떠났습니다. 다섯 달란트 받은 종과 두 달란트 받은 종은 열심히 장사를 하여 각각 배를 남겼습니다. 그래서 주인은 돌아와서 “잘하였다. 너는 착하고 충성스러운 종이다. 네가 이 작은 일에 충성을 다하였으니 이제 내가 더 큰일을 너에게 맡기겠다. 자, 어서 와서 나와 함께 기쁨을 나누자' 하고 말하였다.”(마 25:21)라고 칭찬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한 달란트 받은 자는 땅속에 묻어 놓았다가 그대로 가지고 왔습니다. 그리고 주인을 나쁘게 말합니다. 그래서 이 사람은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책망을 받고 밖으로 쫓김을 받았고 있는 것도 다 빼앗겼다는 내용입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인생을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서 착하고 충성된 종과 악하고 게으른 종으로 구별이 되며 그 보상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청지기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의 시간, 물질, 재능 모두가 하나님이 주신 것이지 내 것은 없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사용할 때 청지기로서의 바른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에덴동산에 왜 선악과를 만들어 놓았는가를 사람들이 의문을 품습니다. 이것은 에덴동산의 모든 것의 주인이 아담과 하와가 아니고 주인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알려 주기위한 것이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이 베푸신 모든 것들에 대하여 감사하고, 사랑하고, 순종할 수 있는 것을 표현하는 길이 바로 이 선악과를 따 먹지 않는 것입니다. 이 선악과야 말로 하나님께 사랑을 표현하는 좋은 기회라는 사실을 알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주인처럼 자기의 마음대로 행동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였고, 감사를 몰랐고, 하나님께 대한 사랑을 표현하지 않고 선악과를 따 먹었기에 그들은 에덴에서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의 비유에 나오는 한 달란트를 받은 사람의 모습입니다. 이 사람은 주인을 이해하기를 이렇게 하였습니다.
마 25:24-25 / 이번에는 한 달란트를 받은 사람이 와서 말하였다. “주인님, 저는 주인님이 씨를 뿌리지도 않은 곳에서 거두어들이고 심지도 않은 데서 모아 들이는 인색하고 매정한 분이신 줄을 잘 알고 있지요. 그래서 제가 이익을 남기더라도 빼앗아 갈 것이므로 돈을 다만 땅속에 감추어 두었다가 그냥 가지고 왔습니다!”
이때에 주인은 무서운 책망과 더불어 밖으로 내어 쫓습니다.
마 25:26-30 / 그러자 주인은 그 종에게 호통을 쳤다. “이 악하고 게으른 놈아! 네가 나를 그런 매정한 사람으로 알고 있었다면 27) 너는 적어도 내 돈을 이자 놀이하는 사람에게 맡겨 두어 내가 이자라도 받을 수 있도록 해주었어야 할 것이 아니냐? 28) 여봐라, 이자가 가진 돈을 빼앗아 열 달란트를 가진 사람에게 주어라. 29) 자기에게 주어진 것을 잘 활용하는 사람은 더 많이 받아서 풍족하게 될 것이고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사람은 가지고 있는 것마저도 빼앗길 것이다. 30) 이 쓸모없는 인간을 바깥 어두운 곳에 내쫓아라. 거기서 가슴을 치며 통곡할 것이다.”
한 달란트 받은 종은 주인에 대한 인식이 잘못되어 있었습니다. 씨를 뿌리지도 않은 곳에서 거두어들이고 심지도 않은 데서 모아 들이는 인색하고 매정한 분이신 줄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주인을 폭군 정도로 인식하였습니다. 이것은 잘못된 정보입니다.
하와도 선악과를 따 먹으면 눈이 밝아서 하나님처럼 된다는 마귀의 유혹에 넘어간 것입니다. 이 말은 하나님은 자신만이 지혜를 가지고 이들을 지배하고, 자신들을 처벌하는 폭군처럼 그림을 그려서 하와로 하여금 넘어가게 한 것입니다.
오늘날도 사단은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이것 하지 말라, 저것 하지 말하면서 간섭하고 괴롭히는 것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서 모든 재미있는 일을 못하게 하는 귀찮은 존재로 생각하게 만든 것이 사단의 전략입니다.
전도를 해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렇게 대답을 합니다. “예수 믿으면 술도 못 마시고, 담배도 못 피우고, 거짓말도 못하고, 주일날 골프도 못하고, 바람도 피우지 못한다.”고 하면서 하나님은 모든 즐거움을 우리에게서 다 빼앗기는 폭군 굳은 사람으로 그림을 그려 놓았습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십시오. 세상의 잘못된 풍속이 하라는 대로 살아보십시오. 이것은 우리를 파멸의 길로 빠지게 합니다. 담배 때문에 하루에 137명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술 때문에 가정이 파괴되고, 교통사고가 얼마나 많이 나는 줄 안다면 누구도 술을 권하지 않을 것입니다. 바람을 피우는 일로 수많은 가정들이 파괴되고 자녀들이 탈선합니다. 도박은 망국병 중의 하나입니다. 마귀는 우리가 원하는 것을 모두 가졌다고 하지만 정작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해서는 안 되는 것을 못하게 합니다. 맞습니다. 악하고 필요치 않는 것은 하지 않아야 우리 자신에게 유익입니다.
세상의 쾌락은 나를 파멸의 길로 인도합니다. 그래서 악하고 게으른 종은 있는 것마저 빼앗깁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법칙대로 살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사는 사람은 인생을 낭비하는 것입니다.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악한 일을 한 것이 아닙니다. 주인의 것을 본전 그대로 돌려주었으니 그렇게 악한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니었는데 왜 주인은 악하고 게으르다고 하였습니까? 이 사람은 주인을 위해서 적극적으로 행동을 하지 않았습니다. 자신만 생각하였습니다. 혹시라도 잘못하여 이 돈을 다 허비하면 어떻게 하나 걱정이 되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꽁꽁 싸서 땅에 묻어놓았습니다.
여기서 생각해 볼 문제가 있습니다. 한 달란트는 금이 50kg 정도 되므로 족히 10억은 될 것입니다. 노동자가 19년간 번 돈의 양입니다. 처음의 두 종은 어떻게 하든지 주인에게 좋은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적극적으로 열심히 투자하여 돈을 모았습니다. 100% 이익을 남겼습니다. 그러나 한 달란트 가진 종은 소극적이었습니다. 잘못하면 나에게 돌아오는 불이익을 생각하였습니다.
오늘날 교회 내에서 생각해 보십시오. 내가 무슨 재능이 있는가?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나는 회사 일로 바쁜데 하면서 봉사를 하지 않고, 전도도 하지 않는 피동적인 크리스천들이 얼마나 많은가 생각을 해 보십시오.
하나님의 일을 할 때에 의무감이나 남에게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가 고마워서 적극적으로 하라는 말입니다. 올림픽에 금메달을 딴 선수들은 헝그리 정신도 아니고, 악바리 근성도 아니고, 한(恨)과 콤플렉스 표현도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자기 삶에 대한 놀라운 긍정의 힘을 바탕으로 즐기면서 하는 스타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일도 이러한 정신으로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은총을 받은 우리는 얼마나 행복자인가 하는 긍정의 힘 말입니다. 감사해서 교회에 나오고, 하나님의 은혜가 감사하여 헌금하고, 봉사하는 긍정의 힘 말입니다.
건축헌금 몇 억을 내라는 말이 아닙니다. 직장을 그만두고 교회를 위하여 봉사하라는 말도 아닙니다. 작은 것이라도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 적극적으로 해 보겠다는 마음입니다. 누구를 만나든지 전도를 생각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늘 하나님을 주인으로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돈이 없는 사람은 교회에 나와서 기도할 수 있습니다. 청소도 할 수 있습니다. 부엌일을 도울 수도 있습니다. 얼마든지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 일이 많습니다. 여러분이 음식을 먹는 것처럼만 주의 일에 충성하면 엄청난 일을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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