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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부 뜰의 구조와 구원의 원리/ 2) 물두멍 : 우리는 번제단을 통과할 때 피 뿌림을 받고, 물두멍에서 씻음을 받는다.
<물두멍의 영적 의미>
출40:30-32절은 “그가 또 물두멍을 회막과 단 사이에 두고 거기 씻을 물을 담고 자기와 아론과 그 아들들이 거기서 수족을 씻되 그들이 회막에 들어갈 때와 단에 가까이 갈 때에 씻었으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대로 되니라.”고 말한다.
물두멍은 놋 거울로 만든 일종의 커다란 세수 대야로서 번제단 앞 성소 입구에 위치했다. 그 용도는 제사장들이 성소에 들어가기 전, 혹은 제사를 드리기 전 먼저 손발을 씻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 자세한 모양이나 크기, 제조 방법 등은 언급되지 않았다.
제사장들이 이 물두멍에서 손발을 씻는 행위가 의미하는 바는 물론 일차적으로는 하나님께 나아가거나 제사 의식을 집전하기 전 사막의 흙과 먼지로 더렵혀진 손과 발을 깨끗이 씻는다는 정결례였다.
그러나 보다 깊은 상징적 의미는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 심령이 물과 성령으로 깨끗이 씻음 받고 거듭나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물두멍에 담긴 물은 인간의 온갖 더러움을 깨끗이 씻어주기 위해서 십자가상에서 아낌없이 쏟아 흘리신 예수의 물과 피를 연상케 한다(요19:34; 계7:14).
제사장들은 물두멍에서 씻지 않으면 성막에서 봉사할 수 없었다. 물두멍의 씻는 능력은 생명 주시는 성령을 의미한다(고전15:45). 물두멍의 씻음은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오는 자들에게 땅에 속한 더러움을 씻어내어 하나님과 교통(교제)을 유지할 수 있게 한다(요13:1-5, 13-15).
생명 주는 영이신 내주하시는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항상 즉각적인 현재의 살아 있는 말씀을 주시므로 신진대사적으로 옛것을 씻어 내고 새 것으로 대체하시어 우리 안에 내적인 변화가 일어나게 하신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신부로 예비되도록 말씀 안에 있는 물두멍의 물에 의해 씻어냄으로써 거룩하게 되어야 한다(엡5:26).
<물두멍의 모양과 크기>
모양이나 제조 방법 등에 대해서는 성경 상의 언급이 없으나 원어 ‘키요르(כּיּר)’는 둥근, 도려낸, 솥 등의 뜻이므로 둥글게 생긴 큰 대야나 욕조 형태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성경 뒤편의 물두멍 그림을 참고하시라.
<물두멍의 재료>
출38:8절에 의하면, 이것은 회막 문 앞에서 수종 드는 여인들의 놋 거울로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 아마 이들은 이스라엘의 절기 때에 춤을 추고 노래하는 역할을 맡은 여인들이었던 것 같다(출15:20). 그들이 자신들의 거울로 물두멍을 만들도록 헌물(獻沕)한 것은 그들 자신의 단장보다 하나님을 더 생각하였다는 것을 뜻한다.
이와 같은 행위는 그들이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서 자기 자신을 부인하였다는 것을 나타내 준다(마10:38-39). 여기에서 거울은 동판(銅版) 거울을 가리킨다(고전13:12). 한편 이러한 물두멍은 본래 하나였으나, 훗날 솔로몬 당시에는 성전의 규모에 비례하여 10개로 늘어났다(왕상7:38). 물두멍을 고정시키기 위한 발(foot)이 있는데 이를 받침이라고 한다.
<물두멍의 위치>
“회막과 단 사이에 두고,” 좀 더 자세히 설명하면 회막, 곧 성막 본체와 번제단을 일직선상으로 연결하는 선에서 남쪽으로 약간 비껴난 지점에 물두멍을 두었다(유대 랍비들의 가르침). 아마 이는 물두멍이 회막 앞 정중앙 부분에 위치하면 제사장이 성소를 출입할 때 불편하기 때문일 것이다.
<물두멍의 용도>
“수족을 씻되,” 물로 몸을 씻는 것은 고대에 성행하던 종교 예식이었다. 이는 곧 죄를 씻어낸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 행위이기도 하면서, 먼지와 흙으로 더러워지기 쉬운 광야 지대에서는 실제적인 의미를 갖는 행동이었다. 그러나 물이 귀한 광야 지대에서 매번 제사를 드리기에 앞서 손과 발을 씻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며 상당한 노력이 따라야 했다.
이로 볼 때 하나님께 대한 예배와 제사는 그 준비 단계에서부터 노력과 정성이 따라야 함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오늘날 믿는 이들도 이와 같이(또한 예수의 말씀처럼) 신령과 진정으로(사람의 영 안에서 진실함으로) 예배드려야 한다(요4:24).
아울러 이 행위는 이 세상에 사는 믿는 이들이 주위의 온갖 죄의 오염으로 인하여 영혼이 더렵혀졌을 때 하나님 말씀의 생명수로 매일 정결케 씻어야 한다는 사실을 교훈해 준다(요13:8-10).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 심령(영)이 물과 성령으로 깨끗이 씻음 받고 거듭나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물두멍에 담긴 물은 인간의 온갖 더러움을 깨끗이 씻어주기 위해서 십자가상에서 아낌없이 쏟아 흘리신 예수님의 물과 피를 연상케 한다(요19:34; 계7:14).
물두멍의 크기가 언급되지 않은 것은 여인들이 바친(헌물한) 동 거울의 양에 따라 크기가 달라지기도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상징하는 물두멍은 주님의 보혈의 능력처럼 모든 죄인들을 씻기고도 남음이 있음을 의미한다고 보겠다.
주님께서 마지막 밤 제자들의 발을 씻기실 때 베드로는 절대로 그렇게 할 수 없다고 거부했다. 감히 주님이 어떻게 제자의 발을 씻긴다는 말인가? 이는 종이나 하는 것 아닌가? 그러나 주님은 “내가 너를 씻기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요13:8)고 하셨다.
이것은 이미 목욕을 한 사람, 곧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 용서 받고 거듭난 사람도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해서는 매일 매일 회개를 통해 깨끗이 한 후에 나아갈 수 있음을 말해준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말씀의 생명수로 매일 정결케 씻어야 한다는 사실을 교훈해 준다(요13:8-10). 물이 귀한 광야 지대에서 매번 제사 드리기에 앞서 손과 발을 씻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인데 주님께서 씻는 것을 강조하신 것은 보면 이를 뒷받침해 주신다.
<물로 씻어 죽기를 면할 것이요>
출30:20절은 “그들이 회막에 들어갈 때에 물로 씻어 죽기를 면할 것이요 단에 가까이 가서 그 직분을 행하여 화제(火祭)를 여호와 앞에 사를 때에도 그리할지니라”고 말한다.
비록 제사장이라 할지라도 부정한 몸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면 이는 곧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대한 침범이 되기 때문에 죽임을 당하게 된다. 따라서 그는 물로 씻어 의식적으로 정결케 되었다고 인정받은 후에야 비로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었다. 이사야는 입술이 부정한 채 하나님을 보고, 스스로 망하게 되었다고 고백하였다(사6:5).
“그와 그 자손이…영원히 지킬 규례니라.” 물론 이러한 의식적인 규례는 구약 제사제도가 지속되는 동안 아론과 그 자손인 제사장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 영적인 의미는 오늘날 만인 제사장적 자격을 지니고 있는 모든 믿는 이들에게 예수님의 재림시까지 그대로 적용된다. 따라서 오늘날 믿는 이들은 그리스도의 보혈과 생명수로 매일 자신을 정결케 해야 한다(롬5:9).
<제사장 임명>
출29:4절은 “너는 아론과 그 아들들을 회막 문으로 데려다가 물로 씻기고,”라고 말한다.
“물로 씻기고,” 여기 물은 성소와 번제단 사이에 있는 큰 대야(물두멍)의 물을 가리킨다(출40:30). 한편 아론과 그 아들들이 제사장으로 위임됨에 앞서 먼저 몸을 씻음은 몸을 씻음으로써 몸과 영을 깨끗하게 한다는 상징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후7:1; 엡5:26).
따라서 향후 제사장들은 성막에 들어갈 때와 번제단에 제물을 드릴 때 먼저 이 대야의 물로 손발을 깨끗히 씻어야 했다(출30:20). 출애굽기 28장은 대제사장이 입는 옷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다.
대제사장의 복장에 대한 언급이 계속 반복되는 것은 그것이 차질 없이 수행되어야 할 의식이기 때문이었다. 믿는 이들이 하나님께 예배드림에 있어서도 이러한 정성과 면밀함을 갖추어야 한다.
<구속과 구원>
출30:17절은 “너는 물두멍을 놋으로 만들고 그 받침도 놋으로 만들어 씻게 하되 그것을 회막과 단 사이에 두고 그 속에 물을 담으라.”고 말한다.
물두멍은 ‘놋’으로만 만들었으며 둥글게 만들었지만 크기는 언급되지 않았다. 물두멍은 운반하기 위한 ‘고리’나 ‘채’가 없다. 물두멍은 ‘물’을 사용했는데 ‘제사장’에게만 허용되었다. 제사장은 성소에 들어가기 전에 번제단을 반드시 통과해야 했던 것처럼, 물두멍 또한 반드시 통과해야 한다.
물두멍은 언제나 물이 채워져 있었다. “물”은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역사하여 “깨끗케 하는 능력”이다. 물두멍에서 깨끗케 되기 전에는 제사장의 직무를 수행할 수 없다. 물두멍의 가장 중요한 교훈은 ‘성결(=거룩)’과 ‘성화’이다. 하나님의 은혜로 거룩하게 씻김을 받아야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다.
출30:18-20절은 “그 속에 물을 담으라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그 물두멍에서 수족을 씻되 그들이 회막에 들어갈 때에 물로 씻어 죽기를 면할 것이요”라고 말한다.
요3:5절은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아론과 그의 아들들을 데려다가 물로 씻기라’고 하셨다. 모세는 ‘단 한번만’ 그들의 전신을 씻겼다. 중생의 상징으로 거듭남은 단 한번으로 영원하다. 그 후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스스로’ 손발을 씻었다. 그러므로 우리도 매일 씻음이 필요하다. ‘손발을 씻는 것’은 모든 더러움에서 깨끗하기 위함이다.
주님은 하나님의 말씀인 ‘물(생명수)’로써 자신의 백성 안에서 역사하신다. 제사장은 물두멍 앞에 설 때마다 자신의 모습을 본다. 로마 군병이 그리스도의 옆구리를 창으로 찌르니 ‘피와 물’이 흘러나왔다. ‘피’는 속죄를 의미하며 ‘물’은 정결케 함이다. ‘속죄의 보혈’은 누구나 구원받을 때 적용되며, 그 후엔 ‘계속적인 물의 씻음’이 필요하다. 이것이 물두멍의 의미이다.
요13:8절은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고 말한다.
구원은 이미 번제단(십자가)에서 이루어졌다. 그것은 실생활에서의 ‘주님과의 동행’을 말한다. 주님은 그분의 백성을 위해 단번에 완전한 희생 제물로 자신을 제공하셨다. 주님의 피로 ‘온전한 속죄’를 이루었고 ‘하나님의 공의’가 완전히 충족되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성도의 기업을 얻게 하셨다. 너는 물두멍을 놋으로 하고(출30:18), 물두멍은 ‘심판’을 상징한다. 사용된 것은 ‘물’이다.
이것은 또한 ‘모든 것에 주님의 말씀을 적용하는 것’이다. 말씀은 악에 빠지는 것을 방지한다. 말씀은 더러움을 씻는데 사용해야 한다. ‘두루마기를 빠는 자는 복이 있나니,’ 말씀은 영혼의 회복을 위해 사용한다. 롯이 두 천사의 발을 씻기고자 했으나 거절당했다. 소돔에는 그들을 위한 회복이 없다.
놋 거울은 애굽의 물건이었지만 옛것이 버려지고 새 것이 되었다. 놋 거울은 만드는데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왜냐하면 물두멍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먼저 소중한 것을 하나님께 바친 ‘여인들의 헌신’이 있었다. 또한 성막을 짓고 기구들을 만듦에 지시하신 것을 이행할 수 있도록 일꾼들을 하나님이 예비하셨다(출35:30-35).
모세를 통한 하나님의 의도를 이들이 깨닫고 물두멍을 만들 수 있도록 브살렐과 오홀리압에게 성령이 임한 것이다. 브살렐이 첫 번째로 지명받았다. 그는 유다 지파로 홀의 손자 ‘우리’의 아들이다. ‘브살렐’의 뜻은 ‘하나님의 그늘 밑, 하나님의 보호’이다. 또한 ‘유대’의 뜻은 찬양이며, ‘우리’의 뜻은 빛이요, 홀의 뜻은 자유이다.
두 번째로 오홀리압을 부르셨는데 단 지파 아히사막의 아들이다. 오홀리압의 뜻은 ‘아버지의 장막’이다. 단은 심판, 아히사막은 의지할 형의 뜻이다. 유다 지파가 이스라엘 백성을 먼저 인솔하면, 단 지파는 후미를 이끌었다. 브살렐과 오홀리압, 이 두 사람은 모세가 지시하면 그것을 성령으로 이해하고 성막의 모든 것을 기술적으로 완성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보조하도록 이들을 그의 종들을 택하셨다. 그들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진정한 섬김의 요소는 ‘순종’에 있다. ‘물두멍의 치수’와 ‘물의 양’은 정해지지 않았다. “아론과 그 아들들이 그 물두멍에서 수족을 씻되,” 하나님의 자녀가 된 후에도 죄에 넘어질 때 계속 그 죄를 자백하고 회개해야 한다.
요13:10절은 “이미 목욕한 자는 발 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고 말한다.
예수님은 ‘목욕’과 ‘발 씻음’을 구별하시고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다”고 말씀하셨다. 여기서 목욕하는 것은 거듭남의 씻음을 말한다. 거듭난 믿는 이들은 그들의 영 안에서는 하나님 안에 있고 하늘들의 영역 안에 있지만, 그들의 몸 안에서는 여전히 육체 안에 살며 땅 위에서 행하고 있다.
땅에 속한 것들과 접촉하면서 거듭난 믿는 이들은 자주 더러워진다. 이것은 그들과 주님과의 교통뿐만 아니라, 거듭난 사람들 사이의 교통을 방해한다. 그러므로 그들은 성령과 말씀과 생명으로 씻을 필요가 있다.
이것은 그들과 주님과의 교통과 거듭난 이들 사이의 교통이 유지되도록, 그들의 더러움을 씻어내는 것이지, 피로 죄들을 씻어내는 것(요일1:9)은 아니다. 그러나 가롯 유다는 목욕하지도 못했다.
“너희가 깨끗하지만 다는 아니다(13:10).”
우리는 번제단을 통과할 때 피 뿌림을 받고, 물두멍에서 씻음을 받는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보혈’로 죄사함(법리적 구속)을 받은 후, 하나님의 말씀으로 계속 ‘정화(완전한 구원에 이름)’하여 씻어야만 변화되어 완전한 구원에 이를 수 있다. 우리를 깨끗케 하는 것은 ‘말씀’이다.
구약의 이스라엘은 번제단을 지나 더 이상 들어갈 수 없었지만, 신약 시대의 우리는 모두가 ‘왕 같은 제사장’으로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다. ‘주님 흘리신 물과 피로 우리를 정결케 하시고, 주님의 의로 옷 입혀주시니 웬 은혜인가? 벌레만도 못한 지렁이 같은 날 위해 주님 고난 당하셨네!’(기억나는 찬송가 중에서)
할렐루야! 아멘!
첫댓글 아멘 또 아멘♡♡♡
보혈과 물로 우리를 씻으시고
우리를 정결케 하신 은혜를 기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