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 좋은 성악가들이 많은 한국에 가기 때문에 무척 행복하다. 조수미씨와 함께 노래한 적이 있고, 그에 못지않게 훌륭한 신영옥씨와도 함께했다. 홍혜경씨와는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오페라단(메트오페라단)에서 주역으로 함께 활동했다. 그는 뛰어나며 늘 준비된 성악가다. 노래나 연기가 늘 고귀하다. 홍씨는 매우 신중하며 그와 일할 때 매우 좋은 느낌이 든다. 나와 흡사한 면들도 있다.”
테너 라몬 바르가스(55)가 밝힌 소프라노 홍혜경과의 각별한 인연이다. 바르가스는 ‘빅3 테너’(루치아노 파바로티, 플라시도 도밍고, 호세 카레라스)를 잇는 ‘제4의 테너’로 불린다. 멕시코 출신이지만 이탈리아 정통 벨칸토 창법(Bel Canto, 아름다운 창법을 중시하는 19세기 오페라 스타일)을 잇는 거의 유일한 성악가이기도 하다. 그는 다음달 서울과 부산에서 홍혜경과 함께 듀오 콘서트를 연다. 지난달엔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라보엠>의 로돌포 역으로 관객의 가슴을 울렸다. <한겨레>는 지난달 27일 인편에 질문지를 보내 라스칼라 극장 리허설룸에서 바르가스와 인터뷰를 했다.
-당신은 파바로티 대신 나서 ‘대타 홈런’을 친 성악가로 유명하다.
“1992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한 동료 성악가가 ‘메트오페라단에서 올리는 <람메르무어의 루치아>의 연출이 너무 현대적이라 파바로티가 출연을 거절했는데 혹시 당신이 나갈 생각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의 추천으로 단 한번도 미국 무대에 선 적이 없는 신인인 내가 메트로폴리탄에서 당당히 큰 성공을 이뤄냈다. 실력을 갖추고 있으면 기회가 뒤따른다고 믿는다.”
-빅3 테너를 잇는 제4의 테너로 불리는데….
“카루소가 축음기 시대에 적합한 테너였다면, 스리 테너는 시디 시대와 맞물려 커다란 성공을 거뒀다. 이제는 이미지가 중요 판단기준인 시대에 접어들었고, 지금 시대가 원하는 문화 형태에 걸맞은 성악가가 되려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당신은 카루소, 파바로티를 잇는 벨칸토 창법의 거의 유일한 계승자로 불린다.
“나는 분명 벨칸토를 계승한 사람으로 19세기 성악가들의 발성법을 따르고자 한다. 항상 깨끗한 소리, 아름다운 소리를 만들고자 노력했고 가슴의 압력이나 힘을 강조하는 방법은 늘 멀리했다. 그러니까 베리스모(Verismo, 현실주의 오페라)의 영향을 덜 받았고, 벨칸토 성악가로 태어나 벨칸토 성악가로 남으려 노력했다.”
-맑은 미성을 가졌고 이제 55살로 완숙기다. 연령별로 성악가의 기량에 차이가 난다고 보나?
“젊었을 때 자주 하던 작품을 이제는 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세월이 흐름에 따라 인생과 음악적인 경험의 폭이 넓어지다 보니 젊을 때보다 나은 음악을 선사할 수 있다. 나는 나를 음악가라고 생각한다. 음악을 하기 때문에 노래를 할 수 있는 것이지, 노래만 한다고 음악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음악을 통해 나를 표현하지, 노래만으로 나를 표현하지는 않는다.”
-성악가로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 기억에 남는 순간은 언제였나?
“1988년 스위스 루체른 오디션 때였다. 빈에서 성악공부 과정을 마치고 응시했다. 예술감독 마르첼로 비오티가 나를 선택하는 순간, 나는 학생에서 성악가로 변신했다. 노래로 먹고살 수 있게 됐고 아파트 임대료를 낼 수 있게 됐다. 성악가로서 생계를 유지하게 된 그 순간이 내겐 가장 행복한 때였다. 그 밖에 많은 성공들은 덤이라고 생각한다.”
-안젤라 게오르기우, 안나 네트렙코와 같은 무대에 많이 섰는데, 특별한 에피소드가 있다면?
“게오르기우와는 1993년 빈에서 <팔스타프>로 만났다. 그의 데뷔 무대였다. 그 뒤 매우 유명해지면서, 영국 코번트 가든에서 <라트라비아타>를 공연하게 된다. 그때부터 무척 가까운 친구로 지냈다. 네트렙코는 어떤 것에도 거침이 없고 진취적인 사람이다. 무대를 위해 태어났다. 그와는 오페라보다 콘서트를 많이 했는데, 참 좋은 동료다. 게오르기우가 조심스럽고 신중한 성격이라면, 네트렙코는 즉흥적이고 감성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