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분열증' 함부로 쓰지 말라는 患者 어머니들
조선일보 2014.12.02
김철중 의학전문기자·의사
국내 환자 15만명 추산 조현병
치료 통해 일상생활 가능한데 사회적 烙印과 편견 뿌리 깊어 犯人 단정하고 '收監者' 표현
누구나 걸릴 수 있는 마음의 病… 적절한 진료 환경부터 만들어야
우리나라에는 회원 수가 100명 이상인 환자 단체가 1400여개에 이른다. 환자들끼리 동병상련(同病相憐)의 정감도 나누고 치료 정보도 공유하는 움직임이 왕성하다. 그중에는 환자의 어머니들이 소리 소문 없이 똘똘 뭉쳐 다니는 모임이 있다. 자녀가 조현병을 앓는 어머니들의 단체다. 벌써 8년이 됐다.
조현병(調絃病)은 정신분열증의 새 용어다. 정신분열증이라는 말이 너무 험악하게 들려 요즘은 순화시켜 조현병이라 부른다. 현악기의 줄을 조율하여 맑은 소리를 내듯 정신의 부조화도 치료를 통해 조화롭게 하자는 희망이 담긴 말이다. 조현병 환자 어머니 모임의 이름은 '심지회'다. 촛불의 심지처럼 스스로 타서 세상에 빛을 주겠다는 의미다. 친척에게도 감출 만큼 안으로 숨기고 싶은 아픔일 텐데 이 어머니들은 밖으로 나왔다.
세상일이 어찌 될지 모르는 게 인생사지만 멀쩡하게 잘 자라던 아이에게 조현병이 생기는 것처럼 부모에게 황당, 황망한 게 없다. 아이가 조현병으로 진단받을 때 심정은 세상 빛이 모두 사라지는 느낌이라고 한다. 심지회라는 이름도 그래서 나왔다.
이 어머니들 가슴에는 자식의 지나온 과거 모든 게 담겨 있다. 고등학교 때 전교 수석을 다투며 명문대에 진학했고 외국 유학 가서 박사 공부하던 아이가 어느 날 강박적인 이상(異常) 행동을 보이면서 환자가 된 사연, 청각장애를 극복하면서까지 일반 중학교에 다니면서 반장을 하던 아이가 환청을 호소하며 진단받은 이야기들이 있다. 어떤 어머니는 딸이 초등학생 때 전 과목 최우수 점수를 받은 성적표를 아직도 고이 간직하고 있고, 한 방에 낫게 해주겠다는 무당에게 속아서 굿판 비용으로 수천만원을 날린 이도 있다.
조현병은 생각을 담당하는 뇌(腦) 신경회로의 결함으로 생긴다. 어느 인종이나 비슷하게 인구의 0.5~1%에서 생기니 발병 원인은 내적·선천적 요인이 크다고 본다. 국내에는 15만명의 환자가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남자는 대개 20세 전후에 발병하고, 여자는 그보다 조금 늦게 나타난다. 어떤 아이는 중학생 때 오기도 하고, 어떤 이는 30대 중반에 뒤늦게 오기도 한다. 그만큼 환자들 사이의 학습 경력과 지적 능력은 다양하다.
요즘에는 좋은 약물들이 개발되어 나와 조현병이라도 조기에 꾸준히 약물치료를 받고, 인지 행동과 심리 재활 치료를 받으면 일상생활을 아무런 문제 없이 잘한다. 지하철을 몇 번 갈아타며 혼자서 미술 전시회를 찾아다니는 환자도 있고, 동생들과 당구장에 가서 어울리는 환자도 있다. 조현병 환자는 무시무시하고 통제 안 되는 사람이 아니다. 자녀가 이렇게 우리 사회 구성원의 한 명으로 살아가서 얼마나 행복한지 모르겠다는 어머니가 많다. 심지회 회장 조성금씨는 '장애가 있어 더욱 사랑스러운 우리 딸'이라는 문구가 새겨진 명함을 들고 다닌다.
그러다가도 어머니들의 가슴이 덜컥 내려앉고, 억울하고, 분노하는 일들이 벌어진다. 괴이한 범죄가 생길 때마다 방송이나 신문에서 무심코 던진 '범인은 정신분열증을 앓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는 한 줄 때문이다.
외국에서 이뤄진 연구로는 조현병 환자들의 범죄율은 일반인의 10분의 1 이하 수준이다. 전남대 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김성완 교수의 조사에 따르면 범인에게 정신병이 있다는 것이 확실치 않은 상황에서 '마구 찔러' '무차별' '묻지 마' 등의 자극적인 용어를 써가며 정신질환자의 소행으로 단정하는 식의 보도가 상당수다. 정신질환 관련 언론 보도 셋 중 둘이 이런 부정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는 분석이다. 설사 조현병 환자의 범행으로 밝혀진 경우에도 범죄의 약 80%는 제대로 진단과 치료를 받지 않는 상태에서 이뤄진 것으로 조사되지만 이런 배경은 보도에서 외면받는다는 것이다.
우리는 상대를 비난하거나 비하하면서 정신병 관련 용어를 무심코 사용한다. '정신병적 정권' '정신분열에 빠진 자본주의'처럼 통제 불능이고 부정적인 혼란 상황을 정신분열로 묘사하곤 한다. 미디어 속에서 정신분열과 관련된 은유적 표현의 빈도는 '암적 존재' 등 암(癌)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경우보다 열 배나 많은 것으로 조사된다. '정신병원에 입원했다'고 하면 될 것을 '정신병원에 수용됐다'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정신과에 입원하는 것이 마치 감옥에 수감되는 것 같은 인상을 준다. 이런 과정을 통해 조현병에 대한 사회적 낙인과 편견은 깊이 뿌리박힌다.
조현병은 누구한테 올지 모를 마음과 생각의 병이다. 조현병과 관련된 사회적 문제는 조현병을 조기에 진단하고 적절히 치료받을 환경을 만들어 주지 못한 의료 시스템의 허점이지 조현병의 문제가 아니다. 촛불의 심지가 타면서 내는 환한 불빛과 따뜻한 시선이 병을 낫게 하고 그늘을 걷어낸다. 우선 정신분열증이라는 용어부터 함부로 쓰지 말아야 할 것이다.
첫댓글 그렇구나님!! 글 잘 읽었습니다^^*~
저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