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 전 바람 부는 날 칠보산에 오르다
1. 일자: 2021. 7. 3 (토)
2. 장소: 칠보산(778m)
3. 행로/시간
[떡바위(09:30, 청석고개 2.1km) ~ (문수암골) ~ 청석고개(10:30, 칠보산 0.6km) ~ 칠보산(11:00) ~ (거북바위/점심) ~ 각연사 고개(11:41, 절말 3.6km) ~ (살구나무골) ~ 신선폭포(12:31) ~ 쌍곡폭포(12:45) ~ (탁족) ~ 쌍곡휴게소/절말(13:09) / 7.54km]
< 칠보산 산행을 준비하며 >
2014년, 2017년에도 가려 했으나 성사되지 못했고 준비하던 기록만이 남아 있다. 여름에 인기 있는 산이라, 장마가 발목을 잡았나 보다. 옛 것에 새 것을 더해 산행을 준비한다.
괴산은 속리산 자락에 위치한 곳으로 명소가 많다. 그 중 칠보산은 가기로 마음 먹었다 이런 저런 이유로 취소되기를 반복한 곳이다. 그래도 잊혀지지는 않는 곳, 기회를 엿보다 네팔산악회에 공지가 떴길래 신청을 한다.
‘쌍곡계곡을 사이에 두고 군자산과 마주보고 있는 칠보산은 바위 암릉과 노송이 어우러져 솔 향기 그윽한 동양화를 연상케 하는 산이다. 정상에서의 조망이 빼어나게 아름답다. 군자산과 함께 덕가산, 악휘봉, 대야산, 조항산, 청화산 등이 조망된다. 화양동구곡, 선유동구곡과 함께 괴산 3개 구곡에 속하는 쌍계구곡은 쌍곡마을에서 제수리재에 이르는 총 길이 10.5㎞의 계곡으로 호롱소, 소금강, 병암(떡바위), 문수암, 쌍벽, 용소, 쌍곡폭포, 선녀탕, 마당바위(장암) 등 명소를 품고 있다.’익숙한 이름의 산과 계곡 이름을 보자 낯선 곳이 친근해진다.
산행은 떡바위에서 시작하여 칠보산에 오르고 쌍곡폭포를 거쳐 쌍곡휴게소로 하산한다. 떡바위에서 완만한 문수암골 계곡을 끼고 1시간쯤 오르다 계곡 끝에서 가파른 산비탈을 치고 오르면 청석고개이다. 이곳에서 정상은 0.6km로 가파른 급경사 길이지만 중절모바위, 버선코바위와 군데군데 암릉과 노송이 어우러지며 시야가 트인다. 정상에서면 동으로 덕가산, 시루봉, 악휘봉이 서쪽으로 남군자산이 조망된다. 철계단을 내려서 노송과 소나무 고사목이 어우러진 암릉지대를 지나 30분이면 시루봉, 악휘봉 갈림길 안부이다. 안부에서 20여분이면 계곡으로 내려서고 계곡물이 합쳐지는 지점부터 쌍곡휴게소까지 약 2.5km는 완만한 계곡길이다.
가야 할 길은 구분해 본다. 떡바위~칠보산 정상까지 2.7km, 정상 ~ 쌍곡휴게소까지는 4.3km이다. 7km 거리에 4시간 산행이 예상된다. 역방향으로의 산행도 가능하지만, 떡바위에서 산행을 시작하여 쌍곡휴게소로 하산하는 것이 산행도 수월하고 계곡에서 발을 담그고 쉬어 가기에도 좋다.
< 희망사항 >
사람의 마음은 간사하다. 장마가 늦어져 그 언제처럼 마른 장마 후 폭염이 오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더니, 막상 산행하는 날 비기 올까 걱정이 된다. 속물이 되진 말아야지 하면서도, 일기예보를 면밀히 관찰한다. 하늘이 하시는 일 이래라 저래라 할 순 없어도, 토요일 반나절만은 비가 오지 않기를 바래본다.
칠보산 산행의 하이라이트는 하산 시 마주하는 쌍곡폭포와 계곡일 것이다. 여름 계곡 사행의 진수를 경험하고 싶다.
오랜 인연이 이번에 닿기를 바래본다.
(여기까지는 산행 준비 과정을 기록한 것이다.)
< 괴산 가는 길에 >
일찍 잠을 깨 뒤척이다 집을 나선다. 양재에서 네팔 버스에 오른다. 21인승 리무진, 웬 호사냐 한다. 지난 청산도 트레킹에서 경험해 보았기에 잘 안다. 참 좋다. 몸을 눕히고 잠을 청한다.
구름이 잔뜩 끼었지만 멀리가 조망되는 등산하기 제격인 날씨다. 괴산휴게소에서 여유롭게 쉬고도 들머리에 도착하니 09:30이다. 바람이 꽤 분다. 이제 4시간 동안 칠보산과 찐하게 연애를 할 것이다.
< 떡바위 ~ 칠보산 >
떡바위 문주를 지나 계곡을 건너며 칠보산에 들어선다. 계곡을 따라 돌길이 이어진다. 오르막과 평지가 번갈아 나타나 크게 어렵지 않게 거리를 좁혀간다. 1.5km까지는 별 볼거리 없이 계곡과 숲길이 계속된다. 간간이 나리꽃이 주홍 자태로 유혹한다. 가까이 다가가 사진을 찍으려 하니 바람이 세차게 분다. 까탈스럽다. 그래도 이쁘니 용서가 된다. 다시 모습을 찍는다.
너무 쉽게 가나 하는 생각이 들 무렵, 된비알이 시작된다. 0.6km 거리를 쉬엄쉬엄 오른다. 급할 게 없는 일정이다. 삼거리에 도착한다. 정석고개다. 각연사와 칠보산 길이 나뉜다. 걸음에 탄력이 붙어 쉼 없이 정상으로 걸음을 옮긴다.
암릉 사이로 계단이 놓여 있다. 중간 중간에 전망바위가 등장한다. 바위 난간에 선다. 속리산 국립공원 일대 산들의 파노라마가 구름 잔뜩 낀 하늘 아래 펼쳐진다. 흐린데 대기가 맑아 멀리가 조망되는 복 받은 날이다. 무더위와 비를 걱정했는데, 기대 이상이다.
정석고개 ~ 칠보산은 0.6km 거리다. 볼거리가 많아 힘든지도 모르고 오른다. 풍광 좋은 곳을 만나면 쉬어 간다. 흐린 날에도 산은 충분히 멋질 수 있다. 출발 90분 만에 칠보산 정상에 선다. 정상석 앞에 긴 줄이 이어진다. 기다렸다, 나도 흔적을 남긴다. 막힌 것 없이 펼쳐진 풍경 끝에 거대한 바위산이 보인다. 충청도 산의 힘참이 느껴진다.
< 칠보산 ~ 절말 >
긴 계단을 내려서며 바라보는 풍경도 근사하다. 칠보산 등산의 정수는 지금부터다. 암릉을 내려서며 곳곳에 전망대가 등장한다. 바람이 심하게 분다. 장마 비의 습기가 진하게 묻어있지만 바람이 워낙 거세서 시원함이 느껴져 좋았다. 바위 난간에 기대어 서 점심을 먹는다. 풍경이 근사한 반찬이 되어 준다. 저 멀리 아래 각연사 절 집들이 눈에 들어온다. 검은 지붕이 눈 길을 끈다.
각연사 고개에서 좌틀한다. 암릉과는 이별이다. 돌 비탈이 길게 이어진다. 30여분 내려서자 계곡이 등장하다. 초입에 있는 신선폭포의 물소리는 무척 시원했다. 물길을 보며 돌길을 지그재그로 돌아든다. 계곡에서 탁족을 즐기는 이들을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보며, 조금만 더 내려가자고 되뇐다. 수국과 원추리에 하늘을 찌를 듯 높이 솟은 침엽수림을 바라보는 걷는 기분이 상쾌하다. 적당히 불어주는 바람은 산행 내내 힘이 되어 준다.
쌍곡폭포에 젊은 친구들이 물놀이를 즐기고 있다. 바위에서 물로 뛰어내리려 하는 청년에게 모두가 용기의 박수를 보낸다. 그 모습에 모처럼 왁자지껄한 분위기가 연출된다. 펜션이 보이는 마지막 계곡에서 멈춘다. 신발을 벋는다. 종아리에 시원한 계곡 물이 닿는다. 시리다. 얼굴에 물이 닿자 멈추지 못한다. 그렇게 쌍계계곡을 즐겼다.
< 에필로그 >
올갱이 해장국을 주문하고 앉자 비가 내린다. 혼자 먹을 만한 음식이 없어 시킨 해장국은 기대 이상이었다. 한 그릇 뚝딱 비우고 사진을 본다. 사진에 찍힌 것은 피사체이자 내 내면의 정신세계라 했다. 주장이나 일관성 있는 내용을 담으려는 촬영자와 그렇지 않은 촬영자에 따라 이미지는 달라진다. 전자는 내용을 담기 위해 대상을 선택한 것이고, 후자는 그저 대상에 끌려 사진을 찍은 것이다. 난 후자다. 그래도 내가 찍은 사진을 볼 때 마나 내 의도가 드러남에 뿌듯해 한다.
차창으로 장마비가 내린다. 누워서 차창 밖을 바라본다. 신선노름이 따로 없다. 산행을 복기해 본다. 출발 전 예상했던 그대로였다. 적당한 고도, 오르며 내려서며 계곡을 따라 걷고, 정상에서는 이웃한 산들의 파노라마를 바라보고, 계곡물에 탁족하고, 시간도 4시간, 하산 후 식사까지 맘 먹은 대로였다. 내 맘대로 되는 게 드문 세상에 흔치 않은 일이다.
칠보산은 여름 피서 산행의 적지다. 크게 힘들이지 않고 정상에 오른 후 사원한 계곡 따라 하산 할 수 있으니 말이다. 즐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