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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하기 이후 황궁씨 계족 천산주 이동
카카오 환단원류사 박민우 카톡강의방에서 발췌
2017.08.31 카톡-54
태고 하도 시기 성(姓) 출현 역사
빙하기 이후 황궁씨 계족 천산주 이동
이 이야기를 쓸즈음 강상원박사님께서 전화가 왔습니다.
정건재박사 흑피옥 도록을 받아왔는데 이걸 영어로 번역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고 합니다.
번역비용은 부르는대로 준다고 해서 덜컹 수락했습니다.
그래서 흑피옥 관련 자료를 좀 보내라고 했습니다.
흑피옥 자료는 채희석씨가 많이 가지고 있고 저도 그 자료를 보면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제가 써놓은 에세이중 ' 빙하기 이후 황궁씨 계족 천산주 이동'이라는 글이 박사님께 도움이 될 것 같으니 보내겠습니다.
하면서 보내게 되는데 그 글이 청구원류에 실렸습니다.
환민족의 역사를 연구하는데 있어 제일 중요한 원전은 부도지라 할 수 있다. 부도지는 짧은 문장 속에 인류의 창세기를 담은 불가사의(不可思議)한 책이다. 개벽의 서막이 열리기 전 황궁씨 계족은 천산주로 떠났다. 그리고 청궁씨가 곤륜산이 있는 동쪽으로 떠났으니 부도지의 기록만으로 유추하자면 황궁씨는 천산을 넘어 돈황으로 와서 황하를 타고 북쪽으로 간 것이다. 천산과 곤륜은 대륙의 본토에 닿으면 서로 만나게 돼 있어 본토의 입구가 되는 돈황에서 두 계족은 자연히 만나게 돼 있다. 그 시기가 같을 수는 없었을 것이나 오랜 세월 동안 이루어지는 일이므로 그 후손들은 서로 섞이고 혼혈하며 살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청궁씨 계족은 황하를 타고 남쪽으로 향하고 또는 동진(東進)하여 오르도스 지역으로 들어갔다고 본다.
그들의 사명은 동쪽으로 가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북쪽은 춥기 때문에 매력이 없는 곳이었다. 그러나 황궁씨 계족은 북쪽으로 가야하는 사명 때문에 그나마 황하의 물길을 타고 가는 것이 제일 좋은 방법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먼저 성을 빠져나간 무리들은 어디로 갔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김은수 선생이 번역한 부도지 제 7장에는 지소씨가 부끄러워 얼굴이 붉어져서 권속을 이끌고 성을 나가 멀리 가서 숨어 버렸다고 한다. 그리고 포도의 열매를 먹은 자와 수찰을 하지 아니한 자도 역시 모두 성을 나가 이곳 저곳으로 흩어져 가니 황궁씨가 그들의 정상을 불쌍하게 여겼다고 했다. 그건 구제불능이란 말이다. 황궁씨는 모든 책임을 지고 더 이상 피해를 없애기 위해 각 종족을 동, 서, 남, 북으로 나누어 떠나게 했다.
먼저 성을 나간 사람들은 무엇이 정상이 아니었단 말인가? 부도지 제 6장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열매를 먹고 사는 사람들은 모두 이(齒)가 생겼으며 그 침(唾)은 뱀의 독(毒)과 같이 되어 버렸다. 이는 강제로 다른 생명을 먹어 버렸기 때문이었다. (중략) 발은 무겁고 땅은 단단하여 걷되 뛸 수가 없었으며 태정(胎精)이 불순하여 짐승처럼 생긴 사람을 많이 낳게 하였다.”
이것은 환인께서 개벽하여 인류를 다스리시기 이전의 일이다. 이른바 ‘오미의 변’을 말하는 것인데 부도지에서 가장 유명한 이야기이고 이 이야기는 바이블에도 비슷하게 기록되어 있다.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고 여자는 아이를 가져야 하며 10개월 동안 산통을 겪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그것이다. 어찌 보면 부도지의 기록이 더 상세하다고 말할 수 있다.
[인용문]
부도지 제 7장
이에 사람들이 원망하고 타박하니, 지소씨가 크게 부끄러워 얼굴이 붉어져서 권속을 이끌고 성을 나가 멀리 가서 숨어 버렸다. 또 포도의 열매를 먹은 자와 수찰을 하지 아니한 자도 역시 모두 성을 나가 이곳 저곳으로 흩어져 가니 황궁씨가 그들의 정상을 불쌍하게 여겨 고별하여 말하기를 “여러분의 미혹함이 심대하여 성상이 변이한 고로 어찌할 수 없이 성 중에서 같이 살 수가 없게 되었소. 그러나 스스로 수증하기를 열심히 하여, 미혹함을 깨끗이 씻어 남김이 없으면 자연히 복본 할 것이니 노력하고 노력하시오.” 하였다. 이때에 기(氣)와 토(土)가 서로 마주치어 시절을 만드는 광선이 한 쪽에만 생기므로 차고 어두웠으며 수(水)와 화(火)가 조화를 잃으므로 핏기 있는 모든 것들이 시기하는 마음을 품으니 이는 빛을 거둬들여서 비추어 주지 아니하고 성문이 닫혀 있어 들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於時에人世ㅣ怨咎하니支巢氏ㅣ大恥顔赤하야率眷出城하야遠出而隱이라. 且氣慣食萄實者와設禁守祭者ㅣ亦皆出城하야去各地하니黃弓氏ㅣ哀憫彼等之情狀하야乃告別曰諸人之惑量이甚大하야 性相變異故로不得同居於城中이라. 然이나自勉修證하야淸濟惑量而無餘則自然復本하리니勉之勉之하라. 是時에氣土相値하야時節之光이偏生冷暗하고水火失調하야血氣之類ㅣ皆懷猜忌하니此는冪光이卷撤하야不爲反照하고城門이閉隔하야不得聽聞故也라.
부도지 제 8장
더구나 성을 떠난 사람들 가운데 전날의 잘못을 뉘우친 사람들이 성 밖에 이르러 직접 복본을 하려고 하니 이는 복본에 때가 있음을 모르는 까닭이었다. 곧 젖샘을 얻고자 하여 성곽의 밑을 파헤치니 성터가 파손되어 샘의 근원이 사방으로 흘러 내렸다. 그러나 곧 단단한 흙으로 변하여 마실 수가 없었다. 그러한 까닭으로 성 안에 마침내 젖이 마르니 모든 사람들이 동요하여 풀과 과일을 다투어 취하므로 혼탁이 지극하여 청정을 보관하기가 어렵게 되었다.
황궁씨가 모든 사람들 가운데 어른이었으므로 곧 백모를 묶어 마고 앞에 사죄하여 오미의 책임을 스스로 짊어지고 복본 할 것을 서약하였다. 물러나와 제족에게 고하기를 "오미의 재앙이 거꾸로 밀려오니 이는 성을 나간 사람들이 이도를 알지 못하고, 다만 혹량이 불어났기 때문이다. 청정은 이미 없어지고 대성이 장차 위험하게 되었으니 앞으로 이를 어찌할 것인가"하였다.
이때에 천인들이 분거하기로 뜻을 정하고 대성을 완전하게 본전 하고자 하므로 황궁씨가 곧 천부를 신표로 나누어 주고 칡을 캐서 식량을 만드는 법을 가르쳐 사방에 분거할 것을 명령하였다.
이에 청궁(靑穹)씨는 권속(眷屬)을 이끌고 동쪽 사이의 문을 나가 운해주(雲海洲)로 가고 백소(白巢)씨는 권속을 이끌고 서쪽 사이의 문을 나가 월식주(月息洲)로 가고 흑소(黑巢)씨는 권속을 이끌고 남쪽 사이의 문을 나가 성생주(星生洲)로 가고 황궁씨는 권속을 이끌고 북쪽 사이의 문을 나가 천산주(天山洲)로 가니 천산주는 매우 춥고 매우 위험한 땅이었다. 이는 황궁씨가 스스로 떠나 복본(復本)의 고통을 이겨내고자 하는 맹세였다.
[부도지 인용 끝]
이제 그 이야기를 하려 한다. 나는 먼저 성을 빠져나간 그들이 흑인종이었으며 흑피옥 종족이었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들은 마고성에 대홍수가 나기 2천 년 전에 황궁씨의 고별이 있기 전에 먼저 성을 떠났다. 그들이 정착하기까지는 매우 큰 고난이 있었을 것이다. 모두 생긴 모습이 짐승 같았으니 보통 사람과는 어울릴 수도 없이 외롭게 살았을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왜! 발가벗고 살았으며 왜! 다리가 굽었으며 왜! 흑피옥을 만들었는가?
황궁씨 고별 이전에 먼저 성을 떠난 사람들
약 1만 4천 년 전, 이들은 아직 초기 단계의 인류이므로 몸이 성하지 않았다. 다리가 굽었거나 몰골이 짐승의 모습처럼 생겨 고립된 생활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들이 성을 떠난 초기는 매우 추웠다. 그때는 빙하기였기 때문이다. 그들이 오랜 세월 동안 어떻게 추위를 견디어 냈는지 알 수 없다. 다만 그들이 추위를 견딜 수 있는 이동로를 추정해 볼 수 있을 뿐이다. 파미르고원에서 천산 아래로 천산 아래에서 타클라마칸의 물길을 따라 돈황까지 돈황에서 황하의 물길을 따라 남하 또는 북상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그들이 빙하기 때 시베리아 쪽으로 갔다면 아마도 얼어 죽었을 것이다. 시베리아에도 여름은 오지만 일 년에 9개월은 겨울이다. 그것도 영하 50도 이하로 떨어진다. 잠시 길을 잘못 찾아 그곳으로 갔어도 그들은 다시 돌아 남쪽으로 왔을 건 명백한 사실이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따뜻한 곳을 찾아가게 돼 있다. 마고성은 파미르고원에 있었기 때문에 그들이 서쪽 중앙아시아 쪽으로 내려갔으면 가장 이상적이었을 것이다. 다음 장에 소개하겠지만 중앙아시아 쪽으로 내려간 종족들이 터어키 아나톨리아까지 진출한 것으로 생각된다. 동쪽으로 내려간 사람들은 산 아래에 도착하면 역시 사막이다. 그들은 곤륜산 아래에서 물길을 타고 돈황까지 갔을 것으로 생각한다. 타클라마칸이 죽음의 사막이기 때문에 사람이 살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편견을 버려야한다. 그때는 지금으로부터 1만 4천 년 전이다. 사막이 바다였는지 강줄기로 가득 차 있었는지 아무도 모른다. 최소한 물과 나무가 풍부한 녹지였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당시로서는 사막을 걸어서 동쪽으로 가는 길이 가장 이상적인 길이었다.
흑피옥을 연구한 채희석 선생은 그의 강의 중에서 뗏목을 띄워 거대한 돌을 싣고 갈 수 있는 물길도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왜냐하면 흑피옥의 성분을 분석한 결과 곤륜산 아래 이전원에서 나는 옥돌과 같은 성분의 돌이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 당시 옥 공예품 가운데는 무게 1톤이 넘는 것도 수두룩한데 그렇게 무거운 돌을 싣고 최소 오천 리 길을 운반할 수 있는 수단은 뗏목 밖에 없다고 하였다.
또 그들이 남쪽으로 가서 희말라야 산맥을 넘어갈 이유가 없다. 오늘날 전문 산악인도 넘기 힘든 산맥을 아무런 장비도 없이 산꼭대기까지 올라가서 빙하를 헤치고 다시 산 아래로 내려갈 이유가 왜! 있었겠는가? 그들이 눈물을 흘리며 성 밖으로 나왔을 때는 먹는 문제를 해결해야 하기 때문에 자연적으로 파미르고원에서 가장 가까운 천산이나 곤륜산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천산 아래로 가던 곤륜산 아래로 가던 그들은 오랜 세월이 흐른 후에 돈황에 도착하게 된다. 돈황은 대륙으로 들어가는 관문이기 때문이다. 돈황까지 도착하는데 몇 백 년이 걸렸는지 알 수 없다. 맨 처음 성을 나간 이후로 환인씨가 태어나기까지 2천년이 걸리고 젊은 빙하기로 멸종의 위기까지 또 천년이 걸리므로 도합 3천년 동안 그들은 대륙의 구석구석까지 흘러 들어 갔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이들에 대한 기록은 없으나 산해경에 이상하게 생긴 사람들의 나라가 있다고 한 것들은 모두 이들과 관계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 당시는 빙하기였지만, 만주 벌판과 그 이남 그리고 황하 주변과 그 남쪽으로는 일찌감치 빙하기에서 벗어나 그때는 아주 따뜻한 곳이었다. 그리고 약 3천 년이 지난 후 흑피옥 종족이 지금 몽골 지역의 ‘우란찰포’에 정착했을 때는 매우 더운 날씨 속에 살게 되었다. 그것은 시베리아트랩의 화산이 폭발했기 때문이다. 화산은 대량의 이산화탄소를 내뿜고 북방아시아와 전 세계를 약 1천 년 동안 찜통으로 만들었다.
다시 한 번 필자가 추정하여 강조해서 말하자면 성을 먼저 떠난 사람들은 천산 아래로 곤륜산 아래로 사막으로 나갔으나 결국 돈황에서 만나게 되었다. 이동 도중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태어났고 대규모 집단을 이루어 부족 단위로 이동하였다. 그들은 만 리 나 되는 길을 험준한 산을 타거나 강을 건너면서 또는 뗏목을 타고 이동한 민족이다. 그것은 소수이기 때문에 가능하였다. 그러나 돈황에 도착한 이후 많은 가족들이 생겨 이제는 이동 자체가 어려워졌다. 특히 부족 전체가 높은 산맥을 타면서 이동하는 일은 점차 사라졌다. 당시는 빙하가 녹기 시작하는 때라 돈황에서 서안까지 들어가는 길은 물로 가득 차 있었다. 가도 가도 끝없는 평원에 강줄기가 수없이 많이 생겼고 강에는 물이 가득 차 흐르고 있었다. 수십만 년 동안 얼었던 물이 녹아 한꺼번에 육지로 쏟아지니 대륙 전체가 물바다가 된 것이다.
흑피옥 부족은 물이 풍부하고 초원이 우거진 숲에서 살며 물길을 타고 이동하였다. 황하는 천산에서 시작되어 돈황에 이르러서는 곧바로 북쪽으로 꺾어 '오르도스'를 뺑 돌아 남하하여 양자강까지 간다. '오르도스'의 북쪽은 내몽골과 접경한 곳으로 물과 수목 그리고 자원이 풍부하였다. 일단의 종족들은 돈황에서 남하하기도 했지만 황하의 물길은 북쪽으로 뻗어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선출성족(先出城族)은 북쪽으로 이동하여 내몽골의 '우란찰포'까지 갔다. 우란찰포에서 다시 황하는 남쪽으로 꺾어지며 흐른다. 그곳은 물과 수목 그리고 사슴, 양, 소, 돼지, 닭 등이 뛰노는 낙원이었다. 낙원을 발견한 이상 더 이상 행군 할 필요가 없던 종족은 정착했고 그곳에서 기장, 조 등을 심고 수확하며 초기 형태의 농업을 시작하고 목축을 하며 살았다.
이곳에 옥이 풍부하게 널려져 있었다. 그것은 근처 화산에서 폭발되어 분출된 것으로 오랜 시간 동안 홍수에 떠밀려 온 것이 대부분이다. 이들은 옥을 캐기 위해 노력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얻을 수 있었다. 상당히 강한 재질의 경옥이기 때문에 가공하기 어려웠지만 그들은 일상의 무료함을 떨쳐버리고 왕권 강화의 목적으로 식량을 움켜진 부족장이 일을 시키고 녹봉으로 식량을 나누어 주며 전 부족이 옥가공 하는 일에만 매달렸다. 하늘에서 떨어진 철(鐵 Steel) 운석을 주워 공구로 만들어 사용했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운석의 거의 90%는 철(鐵 Steel) 운석이다. 순도 100%에 가까울 정도로 양질의 철(鐵 Steel)도 많다. 이것을 달구어서 두들기고 물에 담구어 급냉 시키면 오늘날 금속 가공에 쓰이는 '바이트'나 초경공구 정도의 강력한 공구를 만들 수 있었다.
그들이 우란찰포 지역을 벗어나지 못했던 이유는 자급자족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굳이 떠나야 할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이곳은 오지이다. 사막에 오아시스처럼 물이 풍부하고 짐승도 많았지만 지역을 벗어나면 끝없는 초원과 밀림 그리고 맹수들이 우글거리므로 나아가지 않았던 것이다.
그들은 옥가공 기술을 점점 발전시켜 옥에 검은색 코팅하는 기술까지 익혔다. 그 이유는 알 수 없다. 그들은 그 옛날 흑소씨의 후손이 아니었을까?
혹자는 그들이 멸망하지 않았고 아프리카로 이동했다고 주장 했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에는 아프리카는 너무 먼 곳이며 옷도 입지 않은 사람이 추위와 싸우며 구태여 아프리카까지 갔겠는가? 그리고 아프리카에서 흑피옥 비슷한 유물이 나왔다는 소식도 없다. 그들이 만들던 유물과 비슷한 것들은 홍산과 서안에서 출토 되는 것으로 보아도 그들이 아프리카까지 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옥가공기술에 대한 요약
옥을 불에 달구어 가공하는 방법을 사용하였을 것이다. 대형 옥 가공품도 많은 것을 보면 그 방법은 반드시 필요하다. 옥을 불에 달구어서 달군 부분을 때리면 그 일부분만 떨어진다. 그리고 최고 높은 온도까지 도달한 옥을 초경공구로 긁으면 줄무늬를 새길 수 있다. 이러한 기술은 평생 동안 옥 가공만 하던 장인들만 할 수 있는 고도의 방법으로 오늘날 재현하기 어렵다. 이들만의 도시는 초기 국가 형태를 지녔지만 어떻게 보면 오늘날 농업, 목축을 겸한 공업단지 같았다고 할 수 있다. 평생 동안 옥을 가공하는 노하우는 분업화 했을 것이다.
신속(神俗)
그들의 神은 마고(麻姑)일 수도 있고 아니면 부족을 지켜주던 실질적 그들의 조상일 수도 있다. 그들의 몰골을 치료하기 위해 서방에서 파견 나온 무인(巫人)이면 또 어떨까 생각해 본다. 무인(巫人)은 병을 고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사람이란 뜻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천산을 떠나오면서 너무 고생을 많이 해 풍토병을 얻었거나 아니면 태생부터 꼽추, 난장이 등 이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외부 인사를 초빙하여 치료에 힘 쏟았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들이 모셨던 神에 대해 오늘날 학자들은 일방적으로 웅녀나 마고일 것이라고 추정하는 것은 좀 더 신중하게 생각해야 한다. 발굴 문명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여신상을 소중하게 생각한다. 최소한 여신상이 나와야 문명사회로 인정한다는 얘기이다. 그것은 초기 인류 사회가 모계중심 사회였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이에 대한 필자의 생각은 좀 다르다. 여신상이 발견 된 것은 흑피옥 문명이 망하고 약 6천 년이 지난 후에 홍산에서 발견되었다. 학자들은 그 여신상을 마고라고 부른다. 그러나 흑피옥 유물에는 여신상이 발견되지 않았다. 흑피옥 유물 가운데는 그들의 神에 해당하는 인물상이 딱 한 개 있는데 그 인물상은 현대인 가운데서도 체격이 건장하고 인물이 잘 생긴 스타 배우처럼 생겼다. 그 神人은 두루마기 같은 옷을 입고 있다. 이에 대해 잘 설명하고 있는 채희석 선생의 주장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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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문]
1. 누가 언제 왜 어떻게 이러한 흑피옥조각상을 제작했을까?
수많은 옥 조각품 중에서 유일하게 현대인과 거의 같은 복장을 한 수염을 기른 남자상이 있다. 이 조각상은 다른 인물 조각상과는 전혀 다른 특징들을 매우 많이 가진 특이한 조각상이다.
1) 수많은 인물조각상들이 거의 모두가 전신조각상이며, 상대적으로 인물의 얼굴이 매우 작게 표현된 점에 반하여 이 인물상은 독특하게 흉부 이상만 조각되었고 전형적인 흉상 초상 조각상이다. 자조상으로 보인다.
2) 수많은 인물상들의 머리모양은 대체로 길게 늘어 뜨렸는데, 이 인물은 상투를 틀었다. 뒷모습에 머리카락을 표현한 곳이 없이 머리는 모두 위로 올려져 있으므로 틀림없는 상투를 튼 모양인데 이 역시 수많은 조각상 중에서 유일한 형태이다. 그리고 상투 끝에 상투머리 덮게인 관이 있고 관에는 새(매미?) 모양 장식이 있다. 나중에 갓을 써서 상투를 보호하는데 갓God은 영어로 God 신神이며, 갓머리는 상투를 표현한 것으로 원래는 우주선이 지붕에 앉은 모습을 표현한 것이라 한다. 윤복현님의 주장으로는 영어의 성인聖人을 뜻하는 ‘세인트’ 라는 단어는 ‘상투’가 변한 말이라고 한다. 즉 상투란 하늘부족만이 하는 것이었다. 갓은 말총으로 만들며 새 장식은 날개달린 천마를 상징한다. 즉 상투와 새 장식 갓은 신神(하늘에서 온 사람)을 표현한 것이다.
3) 이 사람의 안면각은 다른 인물들의 안면각이 80도 이내인 점과 비교하여 거의 직각을 이루고 있다.
4) 이 인물의 얼굴의 상하 비율은 다른 인물상들이 거의 정사각형인데 비해 이 인물은 상하로 긴 장방형이다. 극히 지적인 인상이다.
5) 콧수염을 기르고 있는 거의 유일한 인물상이다. 즉 수염을 기른다는 것은 나이를 먹었다는 것을 뜻한다. 콧수염을 기른 이들은 신적인 존재로서 수명에 제한이 없었다.
6) 상의에 두루마기의 에리처럼 보이는 장식이 되어 있고 상체에 의복을 걸친 거의 유일한 인물상이다. 자세히 보니 털은 한쪽으로만 그은 사선으로 처리한데 반하여 이 무늬는 격자무늬이다. 이것은 분명 격자로 짜여진 천을 표시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매우 특별하며 예외적인 조각으로 이 인물이 특별히 중요한 인물임을 시사하고 있다. 이는 누가 보던지 당시 돌도끼를 사용하는 원시인들과는 전혀 다른 종족이며 그들이 바로 무덤의 주인공이고 이 조각품들을 조각한 장본인임을 알 수가 있다. 그들이 바로 시리우스라는 별로부터 이동해 온 우주인들로 보인다. 그들이 세운 문명이 아틀란티스와 레무리아 이다.
[인용 끝]
자! 그러면 그 잘생긴 스타 배우를 마고라 할 것인가?
덮어 놓고 여신상만 찾을 일이 아니다. 바이블에 노아를 보라 노아는 홍수로부터 세상을 구하는 선지자인데 남자의 모습으로 묘사된다. 바이블의 원조는 힌두 신화에서 찾을 수 있다. 힌두 신화에서 홍수를 이겨내고 인류를 재창조하는 神의 이름은 마누스이다. 마누스는 남자가 분명한 것이 그의 아내 이름이 마누라이기 때문이다.
* 마누스(manus) : 인류의 조상, 지혜의 화신.
* 마누라(Manura) : 여신(女神) 여자 제사장, 여자 추장,
인도의 힌두 신화학자들은 진화의 마지막에 씨앗 마누의 이야기가 등장하는 시점을 72번 째 마하유가(Maha Yuga) . 4320000 x 72로 지목하였다. 인도 경전 '샤타파타 브라마나(Shatapatha Brahmana)'에 대홍수 이야기가 나오는데 마누는 노아의 특성과 아담의 특성을 모두 지니고 있다.
브리테니카 온라인 사전 인용
" '샤타파타 브라마나(Shatapatha Brahmana)'를 보면 마누가 친절을 베풀었던 물고기로부터 전 인류에게 대홍수가 덮치리라는 경고를 듣게 된 경위가 설명되어 있다. 마누는 물고기가 일러준 대로 배를 만들었다가 홍수가 닥치자 이 배를 물고기의 뿔에 묶어 산꼭대기에 있는 쉴 곳으로 안전하게 대피했다. 홍수가 물러가자 인류의 유일한 생존자인 마누는 제물인 버터와 신 우유를 물에 부어 제사를 지냈다. 1년 뒤 스스로 '마누의 딸'이라고 하는 여자가 그 물에서 태어났고, 이 둘은 그 뒤 땅 위에 다시 번성하게 된 새 인류의 조상이 되었다. 〈마하바라타 Mahābhārata〉에서 이 물고기는 브라마 신과 동일시되지만, 〈푸라나스 Purāṇas〉에서는 비슈누 신이 물고기로 변신한 마트시아라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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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브리테니카 온라인 사전
마누스는 3억 1천1백4만년 마다 다가오는 지구 재창조기에 나타나는 구원의 神이다. 힌두 경전에 실린 말이 전부 산스크리트이고 우리말인데 우리의 옛 조상들이 그 신화적 사상과 철학을 공유하지 않았다고 누가 장담할 것인가?
과학적으로 살펴보아도 3억 1천1백4만 년 전에는 판게아 개벽기였다. 즉, 지금 지구 땅덩어리는 판게아에서 갈라지며 이룩된 것이다. 중국학자들은 아예 판게아(Pangaea)를 반고(盤古)라고 한다. 비록 신화이지만 일리 있는 말이 아닌가!
3억 1천1백4만 년이라는 숫자는 간지(干支) 숫자이다. 다시 말해 60의 배수이다. 시계의 숫자판을 분침 시침이 돌고 돌듯이 시간이 돌고 돌아 3억 1천1백4만 년이 지나면 지구는 다시 창조된다. 그때 인류는 죽는 사람도 있고 살아남는 사람도 있을 것이니 마누스가 그 구원의 손을 펼친다고 말하고 있다. 이제 발굴 문명학자들은 틀에 박힌 사고를 벗어나야 한다. 어떤 고구려 무덤에서 닭 모양이 새겨진 유물이 나왔다고 덮어 놓고 봉황이라고 주장하는 오류를 범하지 말기 바란다.
2차, 3차 등등 줄이어 마고성을 떠난 사람들
황궁씨가 권속을 나누어 무리들을 출성시키기 전에도 사람들은 떠났다. 그러나 대부분의 무리들은 멸종되거나 살아남았어도 소수 부족 단위로 남아 지금의 동남아 일대와 중국의 오지에서 생활하게 되었을 것으로 본다. 멀쩡한 神의 자식들이 오미의 재앙 이후 태어나는 자식마다 금수의 모양으로 태어나니 이 시기가 3천년 동안 지속되었다. 그 후 환인씨(1만 1천 년 전)때에 와서 지기(地氣)가 정상으로 돌아왔다.(부도지)
[인용문]
부도지 제 9장
옛날에 먼저 성을 나간 사람들의 자손이 각지에 잡거하여 그 세력이 자못 강성하였다. 그렇기는 하나 거의가 그 근본을 잃고 성질이 사나와져서 새로 온 분거족을 보면 무리를 지어 추격하여 그들을 해하였다. 분거족이 이미 정주하니 바다와 산으로 멀리 떨어져 있어 내왕이 거의 없었다.
[인용 끝]
2차, 3차 줄이어 마고성을 떠난 사람들과 후기 황궁씨 일족도 차례로 흑피옥 종족이 사는 곳에 도착했다. 그러나 흑피옥 종족의 결속력은 너무나 강하여 외부인을 보면 죽이려 달려들었다. 그후에 도착한 이주민들은 하는 수 없이 다른 곳에 가서 정착하게 된다. 그들 중 태행산맥을 넘어 간 사람도 있었고 태행산맥 서쪽 아래 요하 근처에 정착한 사람도 있었다. 베링해를 넘어 아메리카까지 간 사람도 있었다. 후기 출성족(後期出城族)들의 일부는 요하 일대에 자리 잡고 흑피옥 종족과 1천년 동안 이웃해서 살다보니 옥(玉)가공 기술이 전파되고 서로 무역을 하는 등 제법 왕래가 많았다. 그러나 생긴 모습이 많이 달랐다. 흑피옥 종족은 '난장이'들이 모여 사는 나라였고 요하 일대는 그래도 정상인들이 살았다. 요하를 넘고 태행산맥을 넘어 동쪽으로 간 사람들은 멀리 일본까지 갔다. 그리고 청구와 한반도에도 사람이 들어와 살았다. 황궁씨의 후예는 천산을 출발하여 태행산맥을 넘고 부상국에 당도하니 장차 이곳이 널리 세상을 이롭게 할 길지였으므로 요녕성 일대에 아사달을 짓고 영주, 봉래, 방장, 지리, 한라, 백두 등지에서 은거하며 살았다. 사람이 많지 않았던 시대라 신선이 되어 산속으로 들어갔다.
제주도 전라도 경상도 등지에 정착한 사람들은 약 1만 1천 년 전후하여 서해 바다가 육지였을 때 천축 실담어를 사용하며 대륙 쪽에서 한반도로 걸어서 들어 왔을 것이다. 그것은 산동반도와 절강성 일대에 고대 신라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고 언어가 우리나라 경상도와 유사한 것이 많다. 이는 얼마 전 광동어를 전공한 김준성이라는 한 유학생이 알려 주었다. 경상도 전라도 제주도 사람들의 먼 조상은 지금은 바다가 된 서해 지역에 그냥 살았지 동쪽으로 의도적으로 이주해온 것은 아닐 것이다. 바다가 갑자기 생기는 것도 아니고 무려 7천년 정도에 걸쳐 서서히 지형이 바뀌는 것이므로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면 그들의 조상은 한반도와 대륙 땅, 일본까지 걸어서 오갔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곳이 부상국이다. 부상국은 발해라고도 하고 한밝 땅, 밝달, 배달 환국, 청구 등 명칭이 많다. 명칭이 많다는 것은 사연도 많은 것이고 사연이 많으니 그것이 진실에 가깝다는 말이다. 이 작은 한반도에 고구려, 백제, 신라, 발해, 고조선까지 다 찌그러트려 넣은 학자들은 이번이 마지막 기회이니 꼭 반성하기 바란다.
오랜 세월이 지나는 동안 황궁씨의 무리들은 부상국의 좋은 땅에서 풍요하게 살았다. 특히 쌀과 콩, 조, 기장 그리고 해산물, 범피, 호피, 원숭이, 코끼리, 물개가죽, 압록강에서 나는 수암옥 등 많은 교역 물품을 요하 일대에 무역상들에게 공급하였다.
당시 환인씨의 나라는 천제울국으로 이전원에 있으면서 전 세계에 파견사를 보내 다스렸다. 황궁씨 일족들이 청구에 먼저 들어와 발판을 마련하여 훗날 지금으로부터 약 6천 5백 년 전에 천제울국에서 환웅씨가 무리 3천을 이끌고 부상국으로 가게 된다. 이른바 환웅이 서자(庶子)라는 것은 神의 아이들이란 뜻이다. 서자(庶子)의 올바른 뜻은 시바(Siva) 神이 보낸 사자이다. 서자(庶子)의 올바른 뜻은 다음 장에서 소개한다.
다시 그 옛날로 돌아가서, 1만 2천 년 전 대홍수 시기가 도래 되었다. 그것은 몇 백만 년 간 지속되어 오던 빙하기가 갑자기 멈추고 전 세계적으로 해빙이 시작된 것이다. 해수면이 상승하고 얼었던 땅이 녹으면서 융기하고 갈라지고 폭우가 쏟아지고 해일이 일고 지구는 총체적 난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리고 1천 년이 지난 후 북방 시베리아 트랩에서 강력한 화산이 폭발했다. 화산폭발은 간헐적으로 일백 년 동안 폭발하여 전체 지구의 기온이 올라갔다. 화산이 폭발하여 내뿜은 이산화탄소가 그 원인이다. 지구 온난화는 약 2백 년 동안 지속되었다. 홍수에 떠 밀려온 옥조각들이 지천에 널브러지니 흑피옥족은 신나게 더 많은 조각품을 만들고 요하 일대로 보내 식량과 맞바꾸며 교역과 왕권력을 강화 시키고 아주 부유하게 살았다.
그러나 영거드라이아스 기간 동안 흑피옥족은 갑자기 멸종했다. 그들은 추위에 대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구 온난화가 끝나고 약 2백 년간 지구는 얼어붙었다. 이 기간 동안 요하 일대로 피신한 사람은 평생을 '난장이' 취급 받으면서 공방에 처박혀 옥기 가공만 하다가 죽었을 것이다. 결국 적자생존 법칙에 의하여 멸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