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이 땅에서 6.25전쟁이 일어난 지 만 61년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1953년에 휴전이 된 후 계속해서 남침하려고 하고, 전쟁을 도발하려는 북한 공산당의 만행으로 늘 불안하기는 했지만, 전쟁이 다시 일어나지 않고 평화를 유지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외국에서 한국 뉴스를 들으면 한국이 금방 망할 것만 같습니다. 그래서 교포들이 얼마나 걱정하는지 모릅니다. 이렇게 수없이 많은 위기를 겪으면서도 그 위기 속에서 건져주시고 다시 일어나게 하시어 계속 발전하여 세계 10대 경제대국이 될 수 있게 해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살려달라고 기도할 때마다 한 번도 예외 없이 기도에 응답하시고 점점 더 잘되게 하셔서 지금은 경제대국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가 되었으니, 이것은 하나님의 축복이 아니면 안 되는 일인 줄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골3:15)」라고 감사하는 자가 되라고 하셨습니다. ‘감사하는 자’는 성도들의 별명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감사하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노예생활을 하다가 모세를 통해서 가나안으로 가는 길에 물도 없고, 풀 한포기 없는 광야를 거쳐 갈 때, 왜 우리를 애굽에서 데리고 나왔냐며 대부분의 사람들이 원망하고 불평했습니다. 그러나 원망불평한 사람들은 한 사람도 가나안에 못 들어가고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가나안에 들어간 사람들은 원망불평하지 않고 감사한 사람만 들어갔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감사하면서 하나님 앞에 영광을 돌리고 믿음의 말만 하였기 때문에 가나안에 들어갔습니다. 고대 교부 가운데에는 크리소스톰이라는 유명한 설교가가 있습니다. 그 분의 설교 중에 ‘죄 중의 죄는 감사하지 않는 죄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감사할 줄 모르는 것이 얼마나 큰 죄인지를 강조하는 것입니다. 죄를 가진 사람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죄 사함 받은 사람만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죄 사함 받는 길은 예수 믿고 회개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정말 예수 믿고 회개한 사람인가, 정말 믿음을 가진 사람인가 하는 것은 하나님께 감사하는가를 보면 압니다. 감사할 줄 알면 믿음이 있는 사람입니다. 믿음과 감사는 정비례합니다. 믿음이 커진 만큼 감사하는 열정이 있고, 감사하는 태도를 보면 믿음의 수준을 알 수 있습니다. 감사는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평소에 우리가 얼마나 감사하느냐는 내 믿음의 상태를 보여줍니다. 교회의 실력은 믿음의 실력을 나타내고, 믿음의 실력은 감사 실력으로 나타납니다. 교인들이 얼마나 감사하면서 사느냐가 중요합니다. 사람의 숫자가 문제가 아닙니다. 숫자가 많아도 믿음 없는 사람이 많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믿음은 감사로 나타납니다. 감사하는 성품은 하나님의 백성의 성품입니다. 감사하는 성품은 은혜 받은 자의 성품입니다. 은혜 받은 사람은 남들이 보면 감사할 것이 하나도 없는 것 같은데도 자신은 기뻐하고 행복해 합니다. 감사하는 성품은 복된 성품입니다. 감사하는 성품을 가진 사람이 복을 받습니다. 스탠리 존스는 “교양인과 야만인의 차이는 감사할 줄 아느냐, 감사할 줄 모르느냐에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사람과 들어가지 못할 사람의 차이는 감사에 있습니다.
시편 100편 3-4절에 「3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이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4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할지어다」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천국 문에 들어갈 때 감사하면서 통과할 줄 믿습니다. 나 같은 죄인이 천국 문을 통과하다니 하면서 감사와 감격과 찬송하면서 그 나라에 들어갈 것입니다. 감사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백성이고, 천국에 들어갈 사람입니다. 감사하는 성품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항상 감사하는 모습을 하나님이 보시면 얼마나 기뻐하실까요. 영국의 올리버 크롬웰 장군은 1648년 의회군을 이끌고 왕당파를 물리치고 공화국을 세웠습니다. 그는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정치가였으며 군인이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경건한 신앙생활을 하는 청교도였습니다. 그는 식사 기도할 때 이렇게 기도해서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켰다고 합니다. “사람들 중에는 먹을 것이 있어도 식욕이 없는 이가 있고, 또한 식욕이 있어도 먹을 것이 없는 이가 있습니다. 저희에게 먹을 것과 식욕을 함께 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식욕까지도 감사하는 태도, 우리가 이러한 태도로 살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줄 믿습니다. 유명한 성경 주석가였던 메튜헨리가 어느 날 강도를 만나서 많은 것을 잃어버렸습니다. 그 때 그는 감사할 것 네 가지를 깨달았다고 합니다. 감사는 감사할 것이 깨달아진 사람이 합니다. 깨달아 지지 않으면 감사할 수 없습니다. 그는 첫 번째로 이전에 도적을 맞지 않은 것이 감사했고, 두 번째는 자기의 생명을 도적맞지 않은 것이 감사했고, 세 번째는 아직도 자기에게 무엇인가 남아있는 것을 감사했고, 네 번째로는 자신이 강도가 되지 않고 목사가 된 것을 감사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강도를 만났어도 감사하는 사람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실까요.
감사하는 사람은 많은 사람을 기쁘게 합니다. 부모님께 감사해보세요. 부모님이 얼마나 기뻐하시는지 모릅니다. 스승에게 감사해보세요. 부부 사이에 감사해보세요. 감사하면 서로를 기쁘게 합니다. 이래서 감사 저래서 감사하면 기쁨과 행복이 찾아옵니다. 감사하는 성품을 가지면 자신이 행복합니다. 자녀를 보아도, 부모님을 보아도, 교회에 와도 감사합니다. 그래서 감사가 많은 사람은 행복이 넘칩니다. 우리가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면 그리스도의 평강이 우리 안에 넘칠 줄 믿습니다. 미국의 헬렌 켈러 여사는 태어날 때부터 듣지도 보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여인이었지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불행하고 어리석은 사람은 말할 수 있는 입을 가지고도 감사하는 말을 할 줄 모르는 사람이다.” 유명한 신학자 라인홀드 니버는 <인간의 본성과 운명>이라는 그의 책에서 “인간의 죄의 근본은 교만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죄의 뿌리가 교만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교만 때문에 감사할 줄 모른다고 했습니다. 자기가 잘나서 사업에 성공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하나님께 감사할 줄 모릅니다. 나는 남보다 깨끗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 순간부터 교만해지고 감사를 잊게 됩니다. 감사가 없다보니, 행복도 없어집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감사하는 자가 되라」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 골로새서 3장 17절에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고 했습니다. 16절에는 찬송할 때에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했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어떤 말을 하고 어떤 일을 하든지 항상 감사하는 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다니엘은 사자 굴에 들어가게 될 줄 알면서도 지금까지 해오던 기도를 하면서 하나님께 감사했다고 했습니다. 죽을 각오를 하고 감사하면서 기도한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믿어서 복음을 전하다가 죽는다면, 죽으면서도 감사하는 사람은 순교자입니다. 그러나 죽으면서 감사가 없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을 이렇게 죽게 하느냐면서 하나님을 원망한다면 그는 순교자가 아닙니다. 과거에 예수 믿는 사람들이 많이 죽었지만 모두 순교자가 아닙니다. 죽을 때 기쁨으로 감사하면서 죽는다면 순교자이고, 원망 불평 낙심했다면 순교자가 아닙니다. 우리는 어떤 일이 있어도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왜 우리는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전부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해야 할까요?
1. 지금까지 하나님으로부터 거저 받은 것이 너무나 많기 때문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이 세상에 태어날 때는 적신으로, 완전히 빈 몸으로 태어났습니다. 세상에 올 때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고,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은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4장 7절에는 「누가 너를 남달리 구별하였느냐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냐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 같이 자랑하느냐」라고 말씀합니다. 절대주권을 가지신 하나님께서 주시지 않으면 받을 자가 없습니다. 여러분이 돈을 벌어서 얻은 것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이 주시지 않으면 돈을 벌 수 없는 것입니다. 역대상 29장에 보면, 다윗은 성전을 짓기 위해서 어마어마한 금은보화를 하나님 앞에 드리면서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대상 29:14)」라고 하였습니다. 얼마나 하나님 앞에 겸손한지 모릅니다. 하나라도 자기 것이라 하지 않고 전부 받은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이 신앙을 우리도 가져야 할 줄 믿습니다.
2. 감사하면서 살 때, 복 받을 그릇이 되기 때문입니다. 독일 역사에 마티 바덴이라는 사람이 나오는데, 그는 극보수파에 밀려나 젊은 시절에 고생을 많이 한 정치가였습니다. 그는 어느 지방에 여행을 갔다가 돈이 없어 값싼 여관에서 하룻밤을 지내게 되었는데, 아침에 깨어보니 구두가 없어진 것입니다. 그는 화가 나서 욕을 하면서 자신처럼 가난한 사람의 신발을 훔쳐가도록 내버려두신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그 때 친구 하나가 헌 신발을 빌려주며 주일이니 교회에 가자고 했습니다. 마지못해 교회에 간 마티는 교회에서 예배드리는 사람 중에 두 다리가 없는 사람을 보았습니다. 그 사람은 눈물을 흘리며 찬송을 하고, 기도드릴 때에도 눈물을 흘리며 감사의 기도를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마티 바덴은 두 다리가 없는데도 하나님 앞에 감사하면서 찬양하고 기도하는 사람을 보고 자신의 신앙을 생각하니 너무나 부끄러웠습니다. 그래서 그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감사만 하겠다고 결심을 했습니다. 그러자 이 사람의 삶이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감사하면서 사니 얼굴이 밝아지고, 축복의 문이 열려서 독일의 재무장관이 되고, 존경받는 훌륭한 정치가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무슨 일에든지, 말에나 일에나 감사하면 복 받을 그릇이 됩니다.
3. 감사하면서 살 때, 기적이 일어나고 놀라운 축복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어느 교회의 사모님은 병원에서 위암 판정을 받고는 입을 굳게 다물고 미음도 입에 대지 않았습니다. 한창 나이에 이 지경이 된 것은 개척교회 시절에 심한 고생을 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남편을 잘 못 만나서 이렇게 고생했고, 주의 일을 했는데 이렇게 병에 걸리게 하신 하나님이 야속해서 낙심을 하고, 너무나 화가 났습니다. 그 모습을 본 목사님은 마음이 아팠습니다. 어느 날 목사님이 신학교의 학장님을 만났는데, 목사님의 얼굴을 본 학장님은 무슨 일이 있느냐며 걱정을 했습니다. 사정 이야기를 들은 학장님은 노트를 한 권 사다가 아내에게 주고, 감사할 일을 적어보게 하라는 제안을 했습니다. 목사님이 사모님에게 노트를 사들고 가니, 사모님은 무슨 감사할 일이 있느냐며 화를 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사모님은 한 두 줄 씩 사소한 일부터 노트에 쓰기 시작했습니다. 쓰다 보니 감사할 사람들이 생각나는 것이었습니다. 죽기 전에 감사하다는 말을 해야 할 사람이 하나 둘 떠오르자, 사모님은 그 사람들을 찾아가서 감사하다고 인사하고, 함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하루 이틀 지내다 보니 어느 새 통증이 사라졌고, 병원에 갔더니 암 세포가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암은 생기기도 하지만 없어지기도 합니다. 어떤 자매가 꿈을 안고 결혼을 했는데, 결혼 첫날부터 남편이 술 망태가 되어서 독수공방으로 밤을 지새웠습니다. 그 후 10년이 지나도록 남편의 버릇은 고쳐지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마음을 고쳐먹고 살아보려고 해도 더 이상 살 수가 없어서 이혼을 결심했습니다. 그런데 직장 동료가 자신의 어려움을 알고 “걱정만 하지 말고 함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자. 우리 교회 목사님이 무슨 일에나 감사를 드리면 하나님께서 감사드린 대로 되게 하신대.”라고 말했습니다.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남편이 술주정뱅이인 것도 감사합니다. 이런 남편도 하나님 만나면 변화될 줄 믿습니다.”라고 기도했습니다. 기도하고 집에 돌아가니 그렇게도 밉던 남편이 밉지가 않은 것입니다. 그렇게 날마다 기도를 했는데, 어느 주일 아침에 교회에 가려고 준비를 하는데, 남편이 “나도 따라갈까?”라고 하는 것입니다. 남편은 그 날 교회에 가서 통회 자복을 하고 하나님을 만나 새사람이 되었다고 합니다. 사람은 영물이라고 했습니다. 자신을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다 압니다. 강아지도 주인이 자기를 좋아하면 좋아서 난리가 나지만 구박하는 주인을 보면 개집 속에 들어가서 나오지 않습니다. 강아지도 자신을 좋아하는지 아는데, 부부가 왜 모르겠습니까. 하나님께서 감사기도를 드리는 아내를 보고, 남편의 마음을 움직이신 것입니다. 여러분, 감사할 것이 안 될 일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어려움 당하면, “어려움 당하게 하셔서 감사합니다.”라고 하시기 바랍니다. 손해 봤다면 “손해 보게 하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더 큰 축복 주실 줄 믿습니다.”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놀라운 일이 일어날 줄 믿습니다.
4. 범사에 감사하면서 사는 자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기 때문입니다. <실낙원>의 작가 밀턴은 소경이 된 후에 불후의 명작을 집필했습니다. 그가 소경이 되었을 때 이런 감사를 드렸습니다. “육의 눈은 어두워 보지 못하지만 그 대신 신령한 영의 눈을 뜨게 되었으니 감사합니다.” 이런 감사의 마음은 그가 눈을 뜨고 있을 때보다 더 풍성한 영감을 얻으므로 실낙원과 같은 위대한 작품을 쓸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감사하는 자에게 전화위복이 되게 하시고,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는 분인 줄 믿습니다. 우리가 감사할 때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되고, 많은 사람을 기쁘게 하고, 행복하게 살게 되고, 복 받는 그릇이 될 줄 믿습니다. 모두 감사하는 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