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두 지파
(창29:1-30:24).....여호와께서 레아가 사랑 받지 못함을 보시고 그의 태를 여셨으나 라헬은 자녀가 없었더라 레아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르우벤이라 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의 괴로움을 돌보셨으니 이제는 내 남편이 나를 사랑하리로다 하였더라.....하나님이 라헬을 생각하신지라 하나님이 그의 소원을 들으시고 그의 태를 여셨으므로 그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이르되 하나님이 내 부끄러움을 씻으셨다 하고 그 이름을 요셉이라 하니 여호와는 다시 다른 아들을 내게 더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
1. ‘야곱’은 형 ‘에서’를 위장해서 아버지 이삭으로부터 장자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축복 기도가 막 끝났을 때 ‘에서’는 사냥에서 돌아와 아버지가 원하셨던 별미 고기를 요리해서 가져가 “아버지여, 일어나서 아들의 사냥한 고기를 잡수시고 마음껏 내게 축복하소서.”라고 합니다. 그 때 이삭이 놀라서 “너는 누구냐?”고 묻자 이삭이 “나는 아버지의 아들 곧 아버지의 맏아들 에서로소이다.”고 대답합니다. 이에 이삭이 크게 충격을 받고서, 부들부들 떨면서 더듬거리는 말이지만 야곱에 대한 장자 축복을 분명히 합니다. “그러면 사냥한 고기를 내게 가져온 자가 누구냐? 너 오기 전에 내가 다 먹고 그를 위하여 축복하였은즉 그가 정녕 복을 받을 것이니라.” 이에 에서는 소리치며 울면서, 아버지에게 애원합니다. “저에게 축복하여 주십시오. 아버지, 저에게도 똑같이 복을 빌어 주십시오.” 그러나 이삭은 이렇게 말합니다. “네 아우가 간교하게 와서 네 복을 빼앗았도다.”(창27:31-35) 이삭은 뒤늦게나마 두 아들이 태중에 있을 때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 “(창25:23)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는 어린 자를 섬기리라.”는 말씀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야곱에게 넘어간 장자의 명분에 따라 아브라함에게 약속된 축복의 상속자로서 야곱에게 이렇게 축복하여 그를 외삼촌 집에 보냅니다. 창세기28:2-4입니다. (창28:2-4) 일어나 밧단아람으로 가서 너의 외조부 브두엘 집에 이르러 거기서 너의 외삼촌 라반의 딸 중에서 아내를 취하라. 전능하신 하나님이 네게 복을 주어 너로 생육하고 번성케 하사 너로 여러 족속을 이루게 하시고 아브라함에게 허락하신 복을 네게 주시되 너와 너와 함께 네 자손에게 주사 너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땅 곧 너의 우거하는 땅을 유업으로 받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아브라함이 25년 만에 독생자 이삭을 낳고 그 이삭이 20년 만에 쌍둥이 에서와 야곱을 낳았습니다. 그리고 그 동생 야곱이 장자권을 양도받아 외삼촌 집에 가 그곳에서 라헬과 레아를 아내로 맞아 무려 12명의 아들들을 낳게 됩니다. 오늘 본문은 야곱이 내리 12아들들을 낳게 되고 그 아들들마다 각기 이름 뜻을 가지고 태어나는데 이들이 바로 이스라엘의 ‘열 두 지파’ 조상들이 된 것입니다. 이들 12아들들이 하나님의 섭리가운데 애굽 고센 땅에 거주하며 생육하고 번성하게 되었습니다. 야곱(이스라엘)이 애굽에서 17년 동안 거주하며 자손들이 번성하는 가운데 향년 147세가 되어 임종하기 전에 12아들들, 즉 ‘열 두 지파’의 조상들을 불러놓고 분량대로 축복합니다. (창47:27-28) 이스라엘 족속이 애굽 고센 땅에 거하며 거기서 산업을 얻고 생육하며 번성하였더라 야곱이 애굽 땅에 십 칠년을 거하였으니 그의 수가 일백사십 칠세라 창세기49:1-27에서 야곱이 12아들들에게 예언적으로 축복하며 이들이 ‘열 두 지파’의 조상들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창49:28) 이들은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라. 이와 같이 그들의 아버지가 그들에게 말하고 그들에게 축복하였으니 곧 그들 각 사람의 분량대로 축복하였더라. 야곱이 각 아들들에게 내려 주었던 예언적 축복은 단순히 야곱 자신의 생각이나 계획에 의한 것이 아니라, 야곱의 열 두 아들들을 통해서 형성될 장차 이스라엘 ‘열 두 지파’에게 미치는 축복입니다. 이삭이 눈이 어두워 야곱에게 속아서 야곱에게 장자의 축복을 했지만 결국에는 하나님께서 태중에서 말씀하신대로 이루어진 것처럼, 12아들들에 대한 야곱의 축복은 장차 ‘열 두 지파’에 대한 하나님의 축복이 모두 그대로 성취됩니다. 다시 말해 야곱이 12아들들의 지난 행동, 행적을 토대로 해서 그에 맞는 축복을 했지만 그 예언적 축복이 그대로 성취된 것입니다. 이 축복들은 앞으로 ‘열 두 지파’가 약속의 땅을 차지하게 될 때 성취되는 것을 여실히 볼 수 있습니다. 12지파에 대한 야곱의 축복으로부터 400여년이 지난 후에 이스라엘 ‘열 두 지파’는 가나안 땅을 차지하게 됩니다. 그들은 가나안 땅을 분배할 때 원시적으로 보이는 ‘제비뽑기’라는 방식을 사용합니다. 형제 서열이나 공적에 따라 분배하지 아니하고 ‘제비뽑기’라는 방법을 채택한 것은 가나안 땅 분배를 하나님께 맡긴다는 뜻입니다. 그 결과 놀랍게도 400년 전, 야곱이 12아들들에게 축복한 내용과 정확하게 일치되어 배분되었습니다. 어떤 지파에겐 험준한 광야가, 어떤 지파에겐 최고의 곡창지대가, 또 어떤 지파에겐 전쟁 기운이 감도는 위험한 전선(戰線)이 주어지기도 했습니다. 또 어떤 지파 안에는 점령하지 못한 이국(異國) 도시들도 끼어 있어서 오랫동안 이들과 반목하며 살아야 하는 괴로움을 겪기도 했습니다. 특히 유다 지파는 영적 장자의 축복을, 그리고 요셉 지파는 경제적 장자의 축복을 받아 분배받은 땅도 가장 안전하고 좋은 땅을 받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들 지파의 후손들은 이스라엘 역사 속에 지대한 영향력과 지도력을 미쳤습니다. 먼저, 유다에 대한 축복을 보겠습니다. 창세기49:8-12입니다. (창49:8-12) 유다야 너는 네 형제의 찬송이 될지라. 네 손이 네 원수의 목을 잡을 것이요 네 아비의 아들들이 네 앞에 절하리로다. 유다는 사자 새끼로다. 내 아들아, 너는 움킨 것을 찢고 올라 갔도다. 그의 엎드리고 웅크림이 수사자 같고 암사자 같으니 누가 그를 범할 수 있으랴. 홀이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치리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시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미치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 그의 나귀를 포도나무에 매며 그 암나귀 새끼를 아름다운 포도나무에 맬 것이며 또 그 옷을 포도주에 빨며 그 복장을 포도즙에 빨리로다. 그 눈은 포도주로 인하여 붉겠고 그 이는 우유로 인하여 희리로다. 그리고 요셉에 대한 축복입니다. (창49:24-26) 요셉의 활이 도리어 견강하며 그의 팔이 힘이 있으니 야곱의 전능자의 손을 힘입음이라. 그로부터 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가 나도다. 네 아비의 하나님께로 말미암나니 그가 너를 도우실 것이요 전능자로 말미암나니 그가 네게 복을 주실 것이라. 위로 하늘의 복과 아래로 원천의 복과 젖먹이는 복과 태의 복이리로다. 네 아비의 축복이 내 부여조의 축복보다 나아서 영원한 산이 한 없음같이 이 축복이 요셉의 머리로 돌아오며 그 형제중 뛰어난 자의 정수리로 돌아오리로다. 그러나 아버지 야곱으로부터 심한 꾸지람을 들었던 르우벤과 시므온은 네게브 사막 지역과 사해 동쪽 척박한 땅을 각각 분배받았습니다. 그리고 그들 후손들 역시 역사에 기여함이 없이 명함도 못 내밀고 역사 속에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르우벤과 시므온에 대한 축복 내용입니다. 창세기49:3-7입니다. (창49:3-7) 르우벤아, 너는 내 장자요 나의 능력이요 나의 기력의 시작이라. 위광이 초등하고 권능이 탁월하도다마는 물의 끓음 같았은즉 너는 탁월치 못하리니 네가 아비의 침상에 올라 더럽혔음이로다. 그가 내 침상에 올랐었도다. 시므온과 레위는 형제요 그들의 칼은 잔해하는 기계로다. 내 혼아, 그들의 모의에 상관하지 말지어다. 내 영광아 그들의 집회에 참여하지 말지어다. 그들이 그 분노대로 사람을 죽이고 그 혈기대로 소의 발목 힘줄을 끊었음이로다. 그 노염이 혹독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요 분기가 맹렬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라. 내가 그들을 야곱 중에서 나누며 이스라엘 중에서 흩으리로다. 첫째 아들 르우벤이 비록 장자일지라도 아버지의 첩(서모)을 범하여 아버지의 침상을 더럽혔기 때문에 장자권을 상실하여 그 지파 후손들은 사실상 축복과는 거리가 먼 땅을 분배받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시므온과 레위 지파는 자기 여동생 디나를 강간한 세겜 족들에게 대해 거룩한 할례의식을 사칭하여 피의 보복을 행했기 때문에 최악의 불모지 네게브 사막을 분배받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뜻에 맡긴 ‘제비뽑기’ 방식의 가나안 땅 분배가 400년 전, 야곱이 그 12아들들의 행적에 따라 예언적으로 축복한 그대로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에 땅 분배의 공평성에 대해 의심하거나 불만을 가질 여지가 전혀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들 12지파 후손들은 자신들이 분배받은 땅이 하나님께서 약속하시고 주신 땅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주어진 땅을 개척한 것입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열 두 지파’는 땅, 토지의 소유주는 오직 하나님이시며, 인간은 그 땅을 할당받아 사용하고 관리하는 청지기라는 사실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오늘날까지도 ‘열 두 지파’의 후손, 이스라엘 백성은 이러한 토지 개념에 따라 이스라엘에서 땅을 매매할 수가 없습니다. 단지 계약 기간에 따라 일정한 토지를 대여해 줄 뿐입니다. 그리고 12아들들은 그들에게 주어진 이름대로 그 ‘열 두 지파’ 후손들이 살아가게 됩니다. 첫째 르우벤은 ‘보라, 아들이라.’ 둘째 시므온은 ‘순종하다, 경청하다.’ 셋째 레위는 ‘재산’ 넷째 유다는 ‘찬송하리로다.’ 다섯째 스불론은 ‘함께 기거하다.’ 여섯째 잇사갈은 ‘상을 주다.’ 일곱째 단은 ‘심판’ 여덟째 갓은 ‘침투하는 군병’ 아홉째 아셀은 ‘축복과 정직’ 열째 납달리는 ‘씨름하다.’ 열 한 번째 요셉은 ‘물질을 모으다.’ 그의 두 아들 에브라임은 ‘열매’ 므낫세는 ‘잊어버리다.’ 열 두 번째 베냐민은 ‘오른손의 아들’ 등의 이름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러한 이름대로 에브라임과 유다 지파 등에 속하는 예루살렘, 베들레헴, 기럇여아림, 벧세메스 등의 도시는 오늘날도 눈부시게 번영하고 있습니다. 반면 죄와 연루되었던 도시들은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사라졌습니다. 예컨대 이스라엘 초대 왕 사울이 자신의 전쟁 승리를 알리는 ‘기념석비’를 건립했던 ‘실로’, 여로보암의 금송아지 숭배로 얼룩졌던 도시 ‘벧엘’, ‘월신(月神), 달 숭배사상’의 원조 도시였던 ‘벳세다’, 로마식 사우나 시설을 갖춘 초호화 헤로디움 별장이 자리해 있던 ‘드고아’ 등의 도시들은 오늘날 그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또한 각 지파의 유명했던 사람들 중 모세와 아론과 사무엘은 레위지파였고, 여호수아는 에브라임 지파, 기드온은 므낫세 지파, 삼손은 단 지파, 야베스와 갈렙과 다윗과 솔로몬과 나사렛 예수는 유다 지파, 사울과 예레미야와 바울은 베냐민 지파에서 나왔습니다. 어린 시절 예수를 만났던 안나는 아셀 지파 사람이었습니다. 성적인 범죄 때문에 장자권을 박탈당한 르우벤 지파에서는 단 한 명의 유명한 인물도 나오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지파의 우두머리가 적군에 포로로 잡혀갔다는 우울한 기록만이 남아 있습니다.(대상5:6) 갓 지파의 경우 그 이름의 뜻처럼 최고의 용장들이 대거 나왔습니다. (대상12:8) 갓 사람 중에서 거친 땅 견고한 곳에 이르러 다윗에게 돌아온 자가 있었으니 다 용사요 싸움에 익숙하여 방패와 창을 능히 쓰는 자라 그 얼굴은 사자 같고 빠르기는 산의 사슴 같으니 그러나 갓 지파는 하나님께서 가장 가증스럽게 여기는 토속 우상을 섬긴 죄악으로 모든 땅을 빼앗기고 먼 나라로 이주해 가야 하는 고통을 겪어야 했습니다. (대상5:26) 그러므로 이스라엘 하나님이 앗수르 왕 불의 마음을 일으키시며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셀의 마음을 일으키시매 곧 르우벤과 갓과 므낫세 반 지파를 사로잡아 할라와 하볼과 하라와 고산 하숫가에 옮긴지라 저희가 오늘날까지 거기 있으니라 이러한 ‘열 두 지파’의 자손들은 신약시대까지 연결되었습니다. 그러나 나라가 망하는 기원후 70년 이후부터는 약속의 땅 가나안에서 추방되어 전 세계에 흩어지게 되어 더 이상 ‘지파 문화’는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일부 지파적 전통이 남은 이름들이 있는데, 유대인 청바지 제조업체 ‘리바이스(Levis)<또는 Levin> 루빈스키 등은 레위지파에서 온 이름이며 시몬스 시몬느는 시므온 지파에서, 코헨은 제사장 가문에서, 루벤, 또는 루벵, 루빈스키와 루빈스타인 등은 르우벤 지파에서 유래된 이름들입니다. 2. 그러면 이스라엘의 이 12지파는 그대로 역사 속에 소멸되고 말았는가? 출애굽기 28:9-12을 보겠습니다. (출28:9-12) 호마노 두개를 취하여 그 위에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을 새기되 그들의 연치대로 여섯 이름을 한 보석에 나머지 여섯 이름은 다른 보석에 보석을 새기는 자가 인에 새김 같이 너는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을 그 두 보석에 새겨 금테에 물리고 그 두 보석을 에봇 두 견대에 붙여 이스라엘 아들들의 기념 보석을 삼되 아론이 여호와 앞에서 그들의 이름을 그 두 어깨에 메어서 기념이 되게 할지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인도하시기 위해 광야 길을 걷게 하셨습니다. 그 광야 길은 낮에는 그늘이 없이는 전혀 이동할 수 없고, 밤에는 너무 추워 그냥 밤을 지새울 수 없는 곳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시원한 그늘을 마련해서 이동할 수 있도록 하셨고, 밤에는 불기둥을 세워 광야 길을 가게 하셨습니다. (출 13:21-21)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 행하사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기둥으로 그들에게 비취사 주야로 진행하게하시니 낮에는 구름 기둥, 밤에는 불기둥이 백성 앞에서 떠나지 아니하니라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하시는데는 반드시 하나님께 예배드리도록 하셨습니다. 그 예배가 하나님께 열납되면 가나안 땅을 향해 진행할 수 있도록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셨고, 그래서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임하지 아니하면 열납될 때까지 예배를 드려 죄 사함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이 예배를 주관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세우신 것이 바로 제사장입니다. 그 제사장이 예배를 위해 입는 의복을 ‘에봇’이라고 합니다. 금으로 실을 뽑아 청색, 자색, 홍색, 그리고 베실로 정교하게 만들었습니다. 금으로 실을 뽑아 ‘에봇’을 만들게 하신 것은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이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 ‘에봇’의 두 어깨 받이에 호마노 두 개를 가져다 야곱의 12아들들의 이름을 한 호마노에 여섯씩 새겨 넣으라고 했습니다. 그 이름을 새길 때는 보석 세공인이 인장 반지를 새기듯이 새겨야 합니다. 그런 다음 “너는 그 두 보석을 금테에 물리고 그것을 에봇의 두 어깨 받이에 달아 이스라엘 열 두 지파의 상징으로 삼아라.”고 했습니다. 이와 같이 아론 대제사장은 하나님 앞에서 기념으로 그들의 이름, 열 두 지파의 이름을 두 어깨에 달고 다녀야 합니다. (출28:9-12) 호마노 두개를 취하여 그 위에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을 새기되 그들의 연치대로 여섯 이름을 한 보석에 나머지 여섯 이름은 다른 보석에 보석을 새기는 자가 인에 새김 같이 너는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을 그 두 보석에 새겨 금테에 물리고 그 두 보석을 에봇 두 견대에 붙여 이스라엘 아들들의 기념 보석을 삼되 아론이 여호와 앞에서 그들의 이름을 그 두 어깨에 메어서 기념이 되게 할지며 (출39:6-7) 그들이 또 호마노를 깎아 금테에 물려 인을 새김 같이 이스라엘의 아들들의 이름을 그것에 새겨 에봇 견대에 달아 이스라엘 자손의 기념 보석을 삼았으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대로 하였더라 호마노는 그 재질이 아주 단단하기 때문에 그 위에 이름을 새기기 위하여서는 고도의 세공술이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호마노 위에 이름들을 새기고 더 나아가 그 호마노를 고정시키기 위해 금테를 물리게 한 것은 하나님께서 영원히 그 12아들들, 열 두 지파의 이름을 지워지지 않게 하신다, 영원히 그 이름들을 잊지 아니하시고 사랑하시겠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이러한 사랑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49:15-16) 여인이 어찌 그 젖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 “여인이 어찌 그 젖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이는 ‘열 두 지파’의 자손들, 즉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은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보다 훨씬 승하다는 것입니다. “내 손바닥에 새겼다.”는 것은 손바닥처럼 가까이 두고 들여다보며 사랑하신다는 뜻입니다. 이어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라는 말씀에서 ‘성벽’은 인간생활의 보호벽을 뜻합니다. 따라서 이는 하나님께서 성도들의 어려운 생활 실상을 기억하시고 계셔서 성도들에게서 한 순간이라도 그 시선을 떼지 않으시고 지켜 보호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제사장이 12아들들의 이름이 새겨진 이러한 ‘에봇’을 입고 하나님 앞에 나아간다는 것은 단순한 야곱의 열 두 아들들이 아닌 이스라엘 전체 지파를 대표하여 하나님 앞에 나아간다는 뜻입니다. 대제사장 아론이 ‘열 두 지파’의 이름이 인같이 새겨진 ‘호마노’ 보석이 달린 ‘에봇’을 입고 지성소 하나님 앞에 나아간 것처럼 이 시대에 우리의 영원한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예수 믿음으로 영적 이스라엘이 되시는 성도 여러분의 이름을 가슴에 안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십니다. (히 6:20) 그리로 앞서 가신 예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영원히 대제사장이 되어 우리를 위하여 들어 가셨느니라 그리고 호마노 보석 두 개에 각 여섯 아들들의 이름을 새겨 넣어 한 에봇에 달았다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보호 아래 하나의 공동체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공동체가 오늘날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인 교회 공동체가 된 것입니다. 이를 고린도 전서12:12-27에서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고전12:12-27)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3. 에스겔 선지자는 장차 이스라엘 ‘열 두 지파’가 회복된 땅을 각 지파의 기업으로 분배받게 될 것을 예언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영적 가나안 땅인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열 두 지파’가 회복될 것을 예언한 것입니다. 그 회복되는 하나님 나라 예루살렘 성의 문들이 이 ‘열 두 지파’의 이름을 따라 지어졌습니다. 에스겔48:30-34입니다. (겔48:30-34) 그 성읍의 출입구는 이러하니라. 북편의 광이 사천 오백척이라. 그 성읍의 문들은 이스라엘 지파들의 이름을 따를 것인데 북으로 문이 셋이라. 하나는 르우벤 문이요 하나는 유다 문이요 하나는 레위 문이며 동편의 광이 사천 오백척이니 또한 문이 셋이라. 하나는 요셉 문이요 하나는 베냐민 문이요 하나는 단 문이며 남편의 광이 사천 오백척이니 또한 문이 셋이라. 하나는 시므온 문이요 하나는 잇사갈 문이요 하나는 스불론 문이며 서편도 사천 오백척이니 또한 문이 셋이라. 하나는 갓 문이요 하나는 아셀 문이요 하나는 납달리 문이며 그리고 그 성읍의 이름을 ‘여호와 삼마’라고 하리라고 했습니다. ‘여호와 삼마’는 ‘하나님께서 거기 계시다.’는 뜻으로 하늘의 영광과 축복이 거기에 있다는 것입니다. 하늘의 영광과 축복이 ‘열 두 지파’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도 요한이 환상 중에 보게 된 ‘새 예루살렘’을 보게 되었는데 그 모습이 이렇습니다. (계21:10-12)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하나님의 영광이 있으매 그 성의 빛이 지극히 귀한 보석 같고 벽옥과 수정같이 맑더라. 크고 높은 성곽이 있고 열 두 문이 있는데 문에 열 두 천사가 있고 그 문들 위에 이름을 썼으니 이스라엘 자손 열 두 지파의 이름들이라 ‘새 예루살렘 성’에 12문이 있는데 그 문들 위에 ‘열 두 지파’의 이름들이 새겨져 있습니다. 여기 ‘열 두 지파’는 하나님께서 택하신 모든 백성을 의미합니다. 아브라함의 자손, ‘유대인으로 태어났다고 해서 참 유대인이 아닙니다. 그리고 유대인을 두고 할례받은 백성이라고 하는데 육체에 할례를 받았다고 해서 참 할례가 아닙니다. 오히려 예수 믿고 마음에 참된 변화를 받은 사람이라야 참 유대인이며 기록된 율법이 아닌 성령님에 의한 마음의 할례가 진정한 할례입니다.’(롬2:28-29) 예수 믿고 예수께서 약속하시고 보내주신 성령에 의해 변화된 마음의 할례를 받은 사람이 진정한 할례요 진정한 할례받는 백성이라는 것입니다. 그 이유를 이렇습니다. ‘언제 아브라함의 믿음이 인정을 받았습니까? 할례를 받은 후입니까, 받기 전입니까? 그것은 할례를 받은 후가 아니라 받기 전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할례를 받기 전에 이미 믿음으로 의롭다는 인정을 받은 표로서 후에 할례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할례를 받지 않고도 하나님을 믿어 의롭다는 인정을 받은 모든 사람들의 조상이 되었습니다.’(롬4:10-14) ‘그러므로 아브라함은 우리 모든 믿는 사람들의 조상입니다. 그리고 믿는 사람은 모두 그가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어 아브라함에게 약속된 축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할례받는 백성이나 무할례받는 사람이나 그 누구를 막론하고 약속을 믿는 자의 조상입니다.’(롬3:28-31) “이제 이스라엘 조상을 두었다고 해서 다 이스라엘 사람이 아니며 아브라함의 후손이라고 해서 다 그의 자녀가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이삭을 통해서 난 사람이라야 네 후손으로 인정될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약속의 자녀라야 아브라함의 후손이 된다는 말입니다. 약속을 믿는 자가 모두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입니다.”(롬9:6-8) 그래서 갈라디아서 3:6-29에서 예수 믿는 사람은 모두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며, 너희가 그리스도께 속한 자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고 했습니다. ‘에서’는 장자의 명분에 담긴 하나님의 약속된 축복을 망령되게 여겨, 다시 말해 믿지 아니하고 팥죽 한 그릇에 팔아버렸기 때문에 약속의 자녀가 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비록 동생으로 태어났을지라도 장자의 명분에 담긴 조상 아브라함의 약속된 축복을 믿었기 때문에 그 장자권을 양도받아 ‘열 두 지파’의 조상, 이스라엘이 된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예수 믿음으로 아브라함의 자손 야곱의 ‘열 두 지파’처럼 그 이름이 “하나님 나라의 거룩한 새 예루살렘” 성문에 호마노 보석에 새겨져 있습니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은 ‘어린양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인 교회’를 말합니다. (계21:2)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호마노 보석에 인장같이 새겨진 영광스러운 이름을 가지신 성도 여러분을 영원토록 변함없이 사랑하시는 하나님 앞에 거룩함으로 단장한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로 사시기 바랍니다.(사61:10) 거룩한 하나님께서 성도 여러분의 이름을 손바닥에 새기시고 한 순간도 눈을 떼지 아니하시며 지켜 보호하시는 사랑이 더욱 더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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