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깨일기
박병일
아카시아 꽃 만발하면 참깨 파종 적정한 시기라 한다. 최저기온 12도 이상 이어야 잘록병이 없다고 한다. 원산지는 아프리카 고온 건조 한 곳 이어서 물 빠짐이 좋고 통풍이 잘 되어야 한다. 모든 작물이 그렇겠지만 잡초 제거, 가뭄 피해를 줄이고자 비닐을 덮어야 한다. 비닐을 덮기전 살충, 살균, 진딧물 약과 약간의 복합 비료를 뿌린다. 비닐은 폭 1m로 하여 250mm 간격으로 두 줄식 한다. 비닐 덥기는 비닐 멀칭기계를 구입하여 북을 돋우면서 한다.
일을 마치고 짜투리 시간을 내어 어수룩 할 때 까지 작업 한다.
아침 출근에 맞추어 영롱한 햇살이 비추고 산 허리에는 서리가 온 모양으로 아카시아 꽃이 하얗다. 도로가에 이팝나무 가로수도 그에 질세라 파란 입사귀를 안고 쌀밥 고봉으로 담은 모양이다. 울타리에는 장미꽃이 딸기처럼 피어 있고 농경지는 제철을 만나 변화하는 모습이 다양하다. 하루하루의 시작이 역동적이다. 아무리 바빠도 신호준수 카메라를 보고 여유있는 브레이크로 출발하자.
깨가 깨알만 해서 손에 잡히지 않는다. 파종을 하기 위하여 기계로 예닐곱 개를 심어서 속아주기 해야 한다. 속아주기 노동력이 적지 않아 시중에서 코팅제 안산 가지 참깨를 구입하여 두 알식 심는다.
발아율을 높이고 성장을 왕성하게 하기 위하여 비닐을 천공하여 상토 거름을 넣는다. 네이브나 유튜브에는 한 포기식 키워라고 한다. 그래야만 튼튼하고 수확이 좋다고 한다. 하지만 평생 씨앗을 파종한 어머니는 견해가 다르다 모든 작물은 두 포기식 심어야 된다고 하신다. 작물뿐만 아니라 자연의 모든 이치가 그렇다고 하신다. 한 포기는 외롭다며 그러신다. 그리고 서로 경쟁이 있어 튼튼하게 잘 자란다고 하신다.
나는 두 알식 파종하기로 한다.
경쟁하듯 자라면서 뒤쳐지는 것은 속아주고 대등하게 잘 자라는 것은 두 포기로 키우기로 했다.
파종 씨앗을 24,000개 구입하였다. 그들은 흙냄새를 맡으며 영롱 한 햇살을 맞이하려고 나의 손길을 학수 고대 하고 있다. 나는 그들을 잘 키워 300,000,00개의 깨알을 생산하고자 노력한다. 이것은 과거 부모님 생산량 이다.
멀리서 소쩍새 울어 대는 한밤중이다. 누구를 찾는 것인지, 어려움에 처하여 도움을 요청하는지, 행복에겨워 노래를 부르는지, 어두움 만큼이나 알 길이 없다. 오늘은 토요일이다.
가슴 설레는 반공일 이다. 특별할 것도 없으면서 오전 수업하고 친구들과 집에 오면서 찔레꺾어 껍질 벗겨먹고 이름모를 벌레잡아 놀다 보면 문득 엄마 생각에 한달음에 집에 온다. 집에오면 늘 그렇듯이 꼴 망태 둘러매고 소풀 하러 간다. 여린 강아지풀로 개구리 낚아채기 부화한 새에게 메뚜기 잡아 주고 방아깨비로 방아 찧는 놀이를 하다 보면 하루가 저문다.
어떤 의도, 이유도 없었지만 그냥 즐거운 하루 하루 모든 것이 신기해 하면서 웃고 하는 즐거운 일상이었다. 오늘 저녁에 공연이 있다. 아이들이 표를 구매 하였다는데 ... 아이 엄마는 함께 봐야 한다며 야단이다. 나의 손길을 기다리는 참깨와 공연을 봐야 하는 입장이 상충된다. 어릴 적에는 이런 갈등이 없었다.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했는데... 소쩍새도 이런 갈등 때문에 울고 있나보다.
소쩍, 소쩍, 혼자서
일요일에 비가 온다는 예보에 만사 제쳐두고 파종을 했다. 파종을 덜한 것을 하늘이 아는지 구름 한점없는 쾌청한 날씨다. 파종하는 시간이 많이걸리는 것은 구멍뚫린 비닐에 잡초제거 때문이다. 야생 고라니, 산토끼, 산돼지 등의 발자국이 비닐을 뚫어놓았다. 그들에게 출입 금지 펫말을 써 붙여야겠다.
씨앗을 파종하였으니 비가 와야한다.비가 오기전 해야 할 일이 있다. 씨앗들이 깨어나기전 제초제약을 고랑에 뿌려야한다.
작년에는 잘 못하여 약해로 고심 한 바 있다. 농업기술원에 도움을 청하여 그나마 약간의 해결을 하였다.
군위군 농업기술원의 헌신 적인 젊은 두분께 감사 한다.
하늘을 쳐다보니 구름 한 점 보이지 않고 초여름 날씨로 여겨진다. 아직 자연을 극복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가뭄 대책으로 고무대야 600리터 두 개를 밭 위 가장 자리에 설치하여 함석으로 빗물을 모이게 한 결과 모두 물이 가득하다.
내일 비가 오지 않으면 씨앗에 물을 주어야겠다. 수고가 있으면 보람도 있으리라!
잠자는 씨앗을 깨워야겠다.
자연이 못 하면 하늘의 천사처럼
필요로 한 것을 필요한 시기에 공급 하리라. 환경이 좋지 않아 허약한 증상이 보이면 영양제도 공급하리라. 이들과 인연이 맺어진 이상 최상의 목표를 향하여 행진하리라. 그들이 꽃피우고 벌과 나비를 불러 들일때 나의 수고로움이 미치는 정도를 가늠 해 보아야 겠다. 스피노자는 ,내일 지구가 종말이와도 한그루의 사과나무를 심는다, 고 했다.
아침 마다 깨알 한 알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고 내일은 생각하지 말자.
비가 온다 비 님이 오신다. 하느님이 참깨를 보우하사 단비를 내리신다. 작은 참깨가 놀랄까 봐 봄비답게 살포시 보슬보슬 내리신다. 비닐 속까지 습기가 차려면 많은 비가 와야 하는데 비는 기대하는 것처럼 오지 않는다. 자연의 깊은 뜻을 모르기에 답답하다. 이른 아침 비둘기 구구대는 소리가 멈추고 영롱한 햇살도 비 님에게 양보 하였다. "엄마 비 온다" 하니 "네가 고생한 것을 하늘이 아나보다" 하신다. '이왕 올 거면 많이 와야 한다'는 기대 감으로 "이래와서 언제 깨가 올라오겠노" 하니 "조급해 하지마라 지금 오는 것은 비가 아니고 곡식이다" 고 하신다.
문이 열렸다.
하늘이 파랗다.
눈이 부신다.
피할 수가 없다.
몸이 변한다.
연녹색이다.
바람이 온다.
말없이 온다.
묻지 않고 온다.
그리고 간다.
말없이 간다.
해도 간다
어둠이 온다.
별들이 온다.
넓적한 달이 쳐다본다.
이슬이 온다.
옷깃을 적신다.
온도가 내려간다.
햇살이 기다려진다,
달과 별들이 위로한다.
참아야 된다고.
그리고
바람을 조심하라고 한다.
내가 나를 모른다고 모른다고 할 수 없다. 그렇다고 아는 것이 없으니 안다고 도 할 수 없다. 수분을 들이키고 적정 온도가 주어지니 온몸에 생기가 돈다. 주위는 가만히 있는데 나만 변하고 있다. 내가 어디서 무슨 이유로 왔는지 모른다. 느낌이 있고 오감이 하나씩 움직이기 시작하니 나의 존재가 점차 커지고 있다는 걸 느낀다. 이미 시작한 생명의 출발 이어서 어떤 의미를 가지기 전에 연속 선상이다. 모든 것이 처음겪는 것이라지만 판단할 수 있는 것은 아직 없다. 자율 신경에 의한 유전자 프로그램으로 작동되고 있는 것이다.
아침의 영롱한 이슬을 머금고 햇빛을 받으려고 입술을 내 밀었다.
누군가 와서 허기를 달랜다. 나도 누군가에게는 필요 한 존재 인가 보다. 땅이 흔들린다. 흙이 꿈틀 거린다. 지렁이가 운동 중이다. 뿌리를 간지럽히며 지나간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났을까?, 괴물 두더지다. 아침 식사하러 지렁이 잡으러 간다. 허공에 머물러 발 디딜 공간이 없어졌다. 또 누군가 온다. 세상이 모두 제것인냥 킥킥 거리며 땅에 코를 비비며 이리저리 다닌다. 식성이 좋다고 소문난 멧돼지다. 무언가 바람 소리가 난다. 이불 같은 비닐을 걷어차며 지나간다.
고라니 이다.
소쩍새 울음소리와 밤에 별과 달을 보고 생각한다는 것이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른다. 희망, 꿈, 이상향은 누리는 특권이자 어리석음이다. 오감을 통하지않고 무엇을 찾는 것은 공허하다. 공허한 것은 생존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일상적인 감각 기관을 통하여 현실을 직시하고 대처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현실이 비록 생존의 갈림길에서 선택의 여지가 없을지라도 바라보고 예측 할 수 있는 능력이 힘이 된다. 어려울 때는 삶의 무력감을 줄이고 또한 스스로 포기한다. 평상시에는 생동감을 증폭할 수 있고 또는 과욕으로 그릇된다. 성악설, 성선설과 그리고 계급투쟁, 사랑과 화합이라했다.
애벌레, 지렁이, 두더지,산돼지, 고란이, 날짐승 모두 모순 속에서 갈등 없이 생존한다.
그들에게는 별이 없다. 달도 없다.내일을 생각하는
어리석음도 없다. 애벌레는 떡잎을 먹으며 허기를 채우고 있다. 반복되는 소쩍새 울음소리
지나온 전생을 일깨운다.
몸이 부글 부글 끓어오른다.
볼록볼록 겨드랑 사이에서 동그란 몽우리가 일더니 밖으로 툭 튀어나온다. 낯과 밤이 몇 번인가 두려움에 공포와 불안이 교차하면서 맑고 하얀 꽃이 태어났다. 삶의 새로운 분기점이자 생명의 출발이다.
이제는 혼자가 아니다. 생리현상으로 의지에 관계없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뿌리로 영양을 섭취하고 잎으로 광합성 작용을 열심히 한 결과이다.
주어진 생명을 외면하지 않고 환경에 최선을 다한 결과 덤으로 오는 기쁨이다. 이 모든 것은 혼자서는 아니 된다. 누군가 와서 도와주어야 한다. 바람이 와야 하고 벌과 나비 등 아름다움을 감지할 줄 아는 또 다른 생명들이 와야 한다.
'아름답다, 란 아름이란 내가 팔 벌려 가질 수 있는 영역이다. 답다란 다 없다는 뜻의 준말 이라고 한다. 즉 내가 가질 수 있는 것을 모두 베푼 다는 모습이 된다. 나는 이렇게도 생각한다. 아름은 앎의 뜻으로 안다, 알다가 된다. 답다는 닮다 모습이 된다. '내 스스로의 모습을 안다는 것을 닮다.' 가 된다. 스스로의 모습을 알려고 노력하며 살아가는 것이 아름다움의 극 치가 아닐까 한다.
스스로의 모습을 알려면 주위에 주어진 여건을 알아야 한다.
습도, 기온, 영양상태, 각종 병원 체와 해충과 지나는 바람도 잡아야 하고 또는 피해를 적게 하면서 보내야 한다. 모든 것은 적절한 시간에 맞추어야 한다.
멀리서 발자국 소리가 난다.
뚜벅뚜벅 피로가 싸인 걸음걸이다. 내일을 산다는 아름다움이 없는 자 인가보다.
우수수
앞 다투어 쏟아진다.
업장 등에 업고
아래로 일탈 한다.
지난 고뇌
고여진 수련의 알갱이
해방 되는 시간
파노라처럼 펼쳐질
후생의 디딤돌
응고되어 낙하 한다.
*프로필
8호와같습니다
첫댓글 퇴고 하였 습니다.
잘 부탁 드립니다.
010-9811-94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