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래 루드비코 성인의 본래 이름은 몽포르 루드비코
마리아 그레뇽이었습니다.
몽포르는 루드비코 성인이 태어나신 동네 이름이고
가문이름은 그레뇽이었습니다.
성인은 1673년 1월 31일에 프랑스 베르타뉴 지방우
의 몽포르 라간 지금은 몽포르쉬르메라고 하는 곳에서
태어나셨습니다. 그리고 1716년에 43세의 나이로 돌
아가셨습니다.
□ 루드비코 성인의 아버지는 왕실 변호사였고 그리고
공작이었고 어머니는 레네세시의 집정관의 딸이었습
니다. 루드비코 성인은 그래뇽이라는 공작집안의 성을
쓰는 것 싫어했습니다. 루드비코는 이 성인의 이름이
고, 마리아는 견진성사 받을 때 받은 이름입니다.
태어나신 지역은 프랑스 북서쪽에 있는 브리타뉴 지방
의 몽프르라는 작은 마을 이었습니다
18명 형제중 둘째였고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셨고, 형
도 어릴 때 돌아가심으로 해서 루드비코 청년은 장남
역할을 했습니다. 형제중에서 3명이 신부님이 되셨고
4명이 수녀님이 되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너무나 성모
님을 좋아했고 또 하느님에 대한 큰 사랑이 있었고, 마
음이 선량했습니다.
□ 레지오 창설자 프랭크더프 멘토였습니다. 루드비코
성인과는 다른 시대에 살았지만,그분의 저서를 통해서
많은 것을 보고 배우며 많은 영감을 받았기 때문에 프
랭크더프의 멘토라고 우리는 말할 수가 있겠습니다.
루드비코 성인은 레지오 마리가 창설될 것이라고 또한
예언을 했습니다. 성모님을 큰 보름달로 승화시킨 분이
바로 루드비코 성인이십니다.
□ 당시 우리나라는 영조와 정조의 시대였고, 프랑스는
북측 영국과 프랑스는 100년간의 긴 세월 동안 전쟁을
했었던 시기였고. 1789년에 프랑스혁명이 일어났던
시기였습니다.
□ 아버지가 빨리 돌아가심으로 해서 12살 이전에는 학
교 교육을 받지를 못했고 12살 때쯤에 성 토마스 베케
트 대학에서 운영하는 중학교에 입학해 공부를 하게
됩니다. 중학교에 있는 갈메 성당의 성모님 앞에서 기
도를 하고 있었는데 성모님께서 너는 사제가 될 거라고
이런 부르심을 받았다고 합니다.
18세 때 성쉘피스 신학교에 들어가시는데 그 신학교
는 많은 성인들이 배출되었고 성인들이 빛인 쟌자코
올리에 신부님이 1648년에 설립한 하느님의 어머니
동정 마리아의 집이었습니다.
1695년에 이 신학교에 입학합니다. 첫 미사를 성쉴피
스성당 성모님 제대 앞에서 하게 되됩니다.
아버지의 부제와 스폰서의 파산으로 열악한 상황에서
자신이 일을 해서 학비를 벌어 공부하게 됩니다.
신학교에서 도서관 사서로 일하면서 벨라루스성인등
많은 성인전과 특히 성모마리아에 관한 책은 모두 읽
었습니다.
루드비코 성인은 공부를 잘해서 학교신부님들이 교수
로 데리고 있으려고 했는데, 자기는 가르치는 일보다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을 더 하고 싶다
고 말합니다.
1700년 6월 5일 사제로 서품을 받고 선교사로 파견되
어 활동을 계속했고 가난한 이들의 브아뜨에르 병원에
서 원목신부로 일을 하면서 가난한 이들을 도와주는 지
혜의 딸 수녀원을 만들고, 몽포르의 마리아 선교 공동
체라고 하는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남자 수도
회를 만들었습니다.
□ 루도비코 청년 시대에 이단은 카라카니즘과 얀세니즘
이라는 이단이 있었습니다.
루드비코 성인이 대항한 이단은 얀세니즘이었습니다.
안세니즘은 안세니우스 주교에 의해서 일어난 사조로
자비의 하느님이나 사랑의 하느님이라기보다는 정의
의 하느님으로 선포하는데 비해, 루도비코 성인은 하느
님은 사랑의 하느님이시고 자비의 하느님이시고 불쌍
하고 가난한 많은 이들을 돌보시는 하느님이고 우리를
용서해 주시고 우리가 당신께로 나오기를 원하시는 분
으로 드러드러내셨습니다. 이단은 성인을 끊임없이 괴
롭혔습니다. 나중에는 이 성인을 체포해서 감옥에도
가두고 누명을 씌워 주교님한테 고발까지 합니다.
그러던중 1713년 얀세니우스주교는 교황청으로부터
파문을 당합니다.
□ 1704년 루드비코는 주교님께 청해서 병원보다는 선
교사로 파견시켜 줄 것을 원합니다. 그래서 선교사로
파견이 됩니다.룰두비코는 선교 지역에 갈 때마다 미사
드릴 장소, 목적에 관한 설교 등으로 많은 그 성과를 얻
습니다.
냉담자가 회두하고 이단자들에게 올바른 신앙의 열기
가 살아나도록 북돋으면서 가는 곳마다 선교의 그 결실
을 거두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이단들로부터 예외적으로 높은 기도,
고행 등으로 미움을 사서 그곳에서 쫓겨나게 됩니다.
루드비코는 생각을 합니다. 이단들과 싸우기 위해서는
정말 교황님의 특별한 고강도 강복을 받고 싶었던 것입
니다.
그는 1706년 사순절에 한손에는 십자가, 또 한손에는
성모님상, 허리에는 15단 목줄을 두르고 유일한 짐인
성서와 성무일도를 가지고 구걸하면서 로마를 향해서
떠나게 됩니다. 로마에 도착해서 우연히 정말로 우연
히 토마스 신부를 만나게 됩니다. 그는 교황 클레멘스
11세의 교회 신부였습니다.
그는 지난 얘기들을 모두 털어놓으면서 교황님을 알현
할 수 있도록 부탁을 합니다. 교황님을 알현하고 본인
의 소망을 말씀하게 됩니다.
루드비코는 교황님께 선교하면서 악의 세력과 싸워 이
기기 위해서 교황님께 강복을 원합니다.
그러나 교황님께서는 프랑스로 돌아가서. 그곳에서 일
하십시오. 얀세니즘과 싸우세요. 교리를 가르치세요.
성서의 갱신 예절을 행하십시오.그리고 주교님께 순명
하십시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루드비코는 교황님을 알현한 후 돌아오게 되는데 그의 손에는 교황파견 선교사 자격증이 손에 쥐어졌습니다.
이 자격증은 어느 교구를 막론하고 선교할 수 있는 그
특권의 그 증명서였습니다. 그 후 루드비코는 다시 프
랑스로 돌아와서 선교의 길을 나서게 됩니다.
나중에는 돌아가실 때는 그날 이단들이 신부님이 먹는
수통에다가 독약을 탔습니다. 그것을 입에 넣고 알아차
려서 뱉았는데 그 후유증으로 43세에 나이에 돌아가시
게 됩니다.
□ 이 성인의 위대한 공적은 두가지가 있습니다.
첫째가 얀세니즘과의 투쟁입니다. 1713년에 이단으로
로마교황청에서 판결이나서 공식 금지령을 받습니다.
둘째 교회 안에 마리아의 시대라고 불리는 미래에 대한
예언자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영혼은 마치 우리 육신이
공기를 숨쉬는 것처럼 마리아를 호흡해야 된다고하십
니다.
□ 루드비코는 이렇게 힘든 사도직을 수행하면서 그는
두 권의 명작을 쓰게 됩니다. 한 권은 "영원한 지혜에
대한 사랑", 두 번째 책은 "복되신 동정녀에 대한 참된
신심"이라는 명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