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부르는 기전사가 / 도종환
그대들 지금도 날 기억하는가
장백산 사십 척 골짝에 누워
어랑촌, 백운평 원시림 속 떠돌며
압록강 얼음 위에 은빛 달 뜰 때마다
끓어오르는 울음 살 아린 바람더미로
되살아나고 되살아나는 내 핏발선 목청
그대들 지금도 기억하고 있는가
시월 삭풍에 우우우 북간도의 겨울은 몰려오는데
야영화 달군 돌 위에 옥수수가루 콩가루
짓이겨 지짐하여 허기를 채우고
키넘는 활엽으로 등 녹이고 가슴 덮으며
사흘 낮 사흘 밤을 꼬박 새워 싸우며
우리는 한 박짝도 물러설 수 없었지
총대에 내 몸을 칭칭 감아 동여매고
장고봉 넘어 치내려온 관동군, 만철수비대
수백여 구의 뱃속에 박힌 분노가 되어
영영 돌아오지 않고 지금도 썩어 있는
아, 나는 북로 군정서 소년병 최인걸
자랑스런 대한독립군의 기관총 사수였다
지금도 나는 꼭 한 번만 더 살아나고 싶구나
언제고 한 번만 더 살아 일어나서
하나 남은 기관총에 다시 허리를 묶고
끊임없이 이 땅에 밀려오는 저 적들의 가운데로
방아쇠를 당기며 달려가고 싶구나
밀림 속에 숨어 아직도 돌격 소리 그치지 않는
저 새로운 음모의 한복판을 향해
빗발치늩 탄알소리로 쏟아지고 싶구나
늦가을달 높이 뜬 삼천리 반도를 오가며
그때 부르던 기전사가 다시 부르고 싶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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