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이다.
정확히 하루가 더 지났다.
코로나로 인해 한국에 가지도 못 하지만,
홍콩도 설 명절을 지내는 터라
외국생활의 낯섦이 덜 하다.
서양에서는 오로지 양력이니
명절이 되면 약간의 서글픔도 있었다.
떡국도 먹고 한 살 더 먹고...
지난 시간과 또 주어지는 시간을 지내면서
주위를 둘러보게 된다.
많은 사람들, 참 다양하다.
다양한 사람들 속에,
때로는 함께, 때론 아무 상관없이 지낸다.
좋아하기도 하고 싫어하기도 한다.
하여튼 함께 살아간다.
함께 살아가는 우리 모습을 표현하는
신조어(이미 익숙한 표현인가?)가 있다.
'인싸'와 '아싸', 인사이더와 아웃사이더라는
영어를 줄여서 표현한 단어이다.
주류와 비주류,
인싸의 반대말은 왕따라고 할까?
'마싸'도 있다.
My라는 영어를 줄여서
Sider와 합성한 것이다.
인싸도 아니고 아싸도 아니면서
혼자 잘 놀고 지내는 사람을 말한다.
어쩌면 아싸이면서
스스로 마싸라고 자신을 위로하는 측면도 있는 것 같다.
나는 어느 편에 속하는가?
나는 인싸인가. 아싸인가 아니면 마싸?
그리고 나는 어떤 사람들을 인싸라고 인정하고
어떤 사람을 아싸라고 비웃는가?
그런 것이 싫다고 애써 무관심하면서
난 마싸에 속한다고 생각하는가?
예수님께서는 아싸를 좋아하셨다.
그들을 고쳐주고 위로하고 함께 하셨다.
연중 6주일의 복음이다.
나병환자는 철저한 아웃사이더였다.
진영 밖에 살아야 했다.(레위기 13.46)
예수님께선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셨다.
금기를 깨뜨리시면서 격리 수칙을 어기셨다.
열린 눈으로, 열린 귀로, 열린 마음으로
아웃사이더들을 받아들이셨다.
그분께는 모든 이가 인싸가 된 것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의 그 열린 모습을
닮아야 한다.
상대방이 코로나에 걸린 것도 아닌데, 나는
그들을 배척하고 외면하는가?
모두가 내편이 되어야 하고,
적어도 나는 배척당할 인물이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남을 무시하고 내 삶의 테두리 밖으로 내모는 것은 아닌가?
예수님께서는 모든 이를 품으시다가
철저한 아웃사이더가 되어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
그 십자가 죽음과 부활로 인해 모든 이의 구원이 이루어졌다.
모든 이를 하늘나라의 인사이더로 초대하셨다.
우리가 일상에서 남을 받아들이는 것은
영원한 인싸이신 예수님을 받아들이는 것이고,
세상이 말하는 인싸도, 아싸도, 마싸도 아닌
예싸가 되는 것이다.
십자가 앞에서 기도한다.
"저 예싸입니다."
*위의 사진 : #마리안느와 마가렛 수녀
#소록도의 두 천사
참된 예싸의 모습을 검색해 보셔요!
첫댓글 “저 예싸입니다.”하고 십자가 앞에서 기도하고 일상에서 그렇게 살아가기를 청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