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예 어떻게 쓸것인가?
1,자각과인식
무엇을 하는가? 우리가 하는 일은 적어도" 예술이며 도" 라는 명제를 진지하게 받아들여야만한다.무턱대고 밥먹듯이 할수는 없다.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 했다.서예에 대한 인식을 고쳐야 하겠다.
왜하는가? 서예, 서도 그 자체의 기쁨과 즐거움이 있기때문이다.
우리들에게 예술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다. 남으로 부터 칭찬에 얽매이는 사람은 진정한 기쁨과 즐거움을 놓친다.
때론 자신의 예술과 도를 스스로 모독하기도 한다.
그러나 붓을 들고 그토록 애써던 한순간을 "옳거니" 하고 마음속으로 외칠때 가슴 벅찬 기쁨을 맛보며 한없이 만족한다.
그 짧은 순간에, 처음으로 수평선을 발견한 듯한 열락이 있다.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고 했다.
어떻게 할것인가? 이는 곧 실제적인 방법론이 될 것이다.
숨어있는 기쁨과즐거움을 스스로 찾아 가져라. 그 기쁨은 깨달음의 기쁨이요,
그 즐거움은 발견하는 즐거움이다. 발견하고 깨닫기 위해서는 깊이 생각하지 않으면 안된다. 깊이 생각 하라.
2, 실제적인 방법
* 기초에 대하여
무엇 때문에 줄긋기를 일주일씩이나 하는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어떤점에서 중요한가? 그 중요함에는 목적과 방법이 있다.
줄긋기의 목적은 서예와 처음으로 사귀기 위함이요. 자세를 몸에
익히기 위함이다.많이 대하면 사귀어지게 마련이다.
그러나 잘 사귈려면 상대방을 알아야 한다. 서예는 붓의 조화임을 인식하라.
따라서 붓을 통하여 서예에 접근하라. 언제나 붓이다.
무턱대고 긋지말고 다음사항을 확인하라.
붓대는 항상 수직을 유지하는가? 逆入과 收筆은 빠뜨리지 않는가?
붙끝에 긴장을 주고 붓털을 항상 세워야 한다.
중봉으로 운필하는가?
붓대는 집게손가락 두번째 마디에서 곧게 세워라.
연필을 쥐듯이 몰아 넣지 맏라. 붓대가 눕거나 팔목이 꺽여서는 곤란하다.
그리고 엄지손가락 끝과 집게손가락끝이 가볍게 맞닿도록 하라.
손가락 끝으로 붓대를 돌리는 일이 없도록 주의 하라.
그렇다고 손가락에 힘을 꼭 주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올바른 자세는 어떤 것인가?
편안한 자세다. 불편하고 억지스러운 자세에서 자연스러운 운필이 가능 하다고 생각 하는가?
다음사항을 확인하라.
어깨선은 책상과 평행을 유지하느가?
붓은 오른쪽 가슴 전방 20센치 부근에서 움직이는가?
팔로써 운필 하는가? 이상과 같이 할때 기초 학습이 끝나게 된다.
여기에서 중요한점은 팔 전체로써 부드럽게 운필하라는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팔을 몸통에서 떼라. 붓을 지탱하는 팔과 몸통이 붙어서 함께 움직이면 부자연 스럽다.
그렇다고 팔을 필요이상 치켜 들지 마라.그것도 불편한 자세 이므로 쉽게 피로와 싫증이 온다. 어깨, 관절,팔목에서 힘을 빼라.뻣뻣해서 곤란하다
자연스럽게 움직여라. 절대로 팔목이나 손가락을 움직이지 말라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습관이 되어 고칠수 없는 지경에 이를수 있다.
요컨대 서예는 붓의 조화임을 또다시 강조하고 싶다. 먼저 붓을 보라. 붓은 원인이요,
획은 그 결과다.
결과에 집착하여 눈 멀지 마라. 붓의 조화를 발견하고 깨닫는 기쁨과 즐거움 때문에 우리는 쉽게 붓을 놓질 못한다.
* 체본 받기에 대하여
사실 여기서 부터는 세세하게 말할 바가 못 된다.
사람마다 제 각기 다른 글씨, 다른 방법을 택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큰 가지만 알아 보기로 한다.
왜 체본이 필요 한가?
우리들 주위에는 수많은 교본이 있다.
그기에는 쓰고 싶은 글자의 대부분이 담겨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체본을 받는가?
체본은 살아있는 교본이기 때문이다.
교본과 체본은 무엇이 다른가?
교본은 인쇄화 된 결과에 지나지 않지만 체본은 인쇄과정을 지켜 볼수 있다는 차이다.
따라서 체본은 살아있는 교본이다.
그러니 체본을 받을 때는 만사를 제쳐두고 지켜보라.
눈에 불을 켜고 붓끝을 따라가라. 바늘 같은 붓끝 마저도 쪼개어서 볼수 있어야 한다.
붓 끝의 어느 부분이 어떻게 들어가고 어느 방향으로 움직이며 어디서 앉고 멈추고 일어서고 꺽이며 어떻게 넘어가고 빠져 나오는가를 주위깊게 관찰 하라.
또 다시 일러두거니와 서예는 붓의 조화임을 명심하라.
덧붙여서 체본을 받을때는 상대방에게 예의와 성의를 보여라.배우는 이로써의 마땅함이다.
체본만 부탁하고 내 몰라라 한다면 상대방을 인쇄기계 취급하기와 무엇이 다르랴.
체본을 받았으면 본받아 쓰게 된다.체본을 받을때에지켜보고 기억한 모든 사항들을 재생하여 옮기면 될 것이다.
그런고 우리는 크게 쓰는 것을 미덕으로 삼아야 한다.
특히 초학자의 경우 붓의 미세한 움직임까지 뜯어볼수 있는 눈이 길러져 있질 않다. 다라서 큰붓으로 크게 씀으로써 붓의 움직임을 크게하고 그리하여 쉽게 발견하고 깨달을수 있다.
* 교본 활용에 대하여
교본을 열람 할때에는 고도의 정신 작용이 필요하다.
앞에서 붓의 조화(필법)을 터득하기위한 방법을 구체적으로 열거 했다.한편 교본은 결과로서 굳어있다.
그리고 순전히 평면적 구성체다.
비록 평면적이긴 해도 어디까지나 예술활동의 결과이고 보면 복잡하고 미묘한 구조이다. 아무렇게나 얽혀진 구조가 아니라 인간의 내면적 미감을 토대로 교묘하게 짜여져 있다. 따라서 큰것부터 작은 것까지 유심히 뜯어서 읽고 그다음에 재구성하라 제대로 읽지도 못하고서 어떻게 그대로 쓸수 있겠는가?
질러가는자는 항상 놓치고 가기 마련이다.
다음 사항을 놓치지 말자.우선 여백을 보라. 가로띄우기와 세로 띄우기를 비교하라.한자를 쓰더라도 위 아래 옆의 글자에 맞추어서 쓰라.
때문에 초학자의 경우 칸을 접어서 쓰는 버릇을 미덕으로 삼아야 한다.
글자의 형태를 보라. 이글자의 뼈대는 무엇인가.
어느 획을 기준으로 다른 획이 붙어 있는가? 획끼리의 간격을 살펴라.
굵기에는 어떤 변화가 있는가.
기울기는 어느정도인가? 굴곡은 구분되는가?
아무래도 이것만으로 부족한것 같다.
그러나 대개 이정도도 읽지않고 막무가내로 쓰고 있으니 우리는 너무 성급한 버릇에 젖어 있다.
굶주린 자가 밥을 먹듯이 해서는 안된다.다시한번 말하지만 예술을 하고 도를 하라.
요컨대 깊이 생각하라. 인생을 그렇게 대하라.생각은 버릇을 만들고 행동을 만들고 끝내는 운명을 낳는다.
* 견학과 감상에 대하여
견학은 앞에서 언급한 체본을 받을 때와 같이 하고 감상은 교본을 뜯어 읽는 방법으로 하면 된다.
그런데 감상과 교본 독서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감상은 주로 작품으로 부터 아름다움을 한꺼번에 받아 들이는 활동이며 교본 독서는 아름다움에 대한 근원을 찾아내는 작업이다.
그런데 견학과 감상에 대한 가치를 등한시 해서는 안된다.
견학과 감상을 통하여 눈을 길러야 한다.안목은 손재주와 다른 속성을 갖고 있다.처음에는 손재주를 통하여 안목이 길러지지만 어느선에 도달하여서는 안목이 손재주를 앞서간다.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의 작품에 만족하다가도 나중엔 혹평을 뇌까리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그리하여 항상 불만을 가득 품고 끊임없이 먹을 가는 바로 그가 곧 진정한 서도인이며 또한 그는 모든일에 원기왕성하고 진취적이다.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
이명제는 결코 좌절도 불가능도 아니다.
영원한 도전이며 궁극적으로 인간성의 추구이다.
그러하기에 우리는 끊임없이 노력하고 자기자신을 일깨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