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텔에서 또 울다
공광규
시골 모텔에서 또 울었습니다. 지난 8월20일 충남시인협회 총회가 서천 춘장대해수욕장에서 1박2일간 있었습니다. 여기저기 흩어져 사는 충청도 시인들이 한해 한 번씩 하는 모임입니다. 해수욕을 하는 모래밭과 사람이 사는 상가 주택 사이에 해당화가 피는 아름다운 곳이었습니다.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화력발전소 강당에서 행사를 하고, 바닷가 횟집에서 저녁을 먹으며 한산 소곡주에 취했습니다. 한산 소곡주는 앉은뱅이술입니다. 맛이 좋아 취하는 줄 모르고 마시다가는 취해서 문 밖을 나가지 못하고 도로 주저앉는다고 해서 붙여진 것입니다.
식당에서 나와 숙소 큰 방에 둘러앉아 형제자매처럼 웃고 떠들고 노래하다가 저는 청양으로 와야 했습니다. 다음날 벌초가 있어서요.
마침 보령에서 온 문상재 선배의 승용차를 타고 청양 시골집에 와서 불을 켜고 잠자리를 만들려니 방바닥에 먼지와 함께 죽은 노래기 등 곤충들이 널려있었습니다. 그것도 죽은 지 오래 되어 팔다리가 떨어져있었습니다.
불을 넣은 지가 오래된 방바닥도 눅눅했습니다. 방에서 잠을 자다가 천정을 기어가던 벌레가 얼굴로 떨어지고, 오랜만에 편 이불에서도 벌레가 기어서 나올 것만 같았습니다. 휘어져 벌어진 문지방과 문틈으로 뱀이 들어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골집에서 잠자기를 포기하고 집에서 가까운 부여군 외산면 무량사 아래로 잠자리를 찾아갔습니다. 겨우 찾아낸 숙소는 백운모텔이었습니다. 주인이 안내하는 대로 모텔 출입구와 가까운 1층에 방을 잡고 잠을 청하는데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이제 시골에 와도 시골집에서 잘 수 없다는 것에 대한 슬픔 같은 것이 밀려왔습니다. 혼자라는 것이 참 적막하고 무섭다는 것을 새삼 느꼈습니다. 외로움이 인간에게 큰 공포라는 실감을 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풀벌레 소리가 들렸습니다. 여치도 울고 또 다른 이름 모르는 벌레도 울었습니다. 풀벌레 우는 소리를 들으니 옛날 생각이 더욱 났습니다.이제 고향에 아무도 남아 있지 않다는 것 자체가 인생의 무상감을 주어 잠을 못 이루게 하였습니다.
아버지는 폐암으로 젊어서 고향에서 돌아가시고, 그 다음에 할머니가 구십이 넘어서 인천 치매요양원에 있다가 돌아가시고, 그런지 두세 해 후에 어머니마저 내가 사는 일산 병원에서 위암으로 돌아가신 일이 떠올랐습니다.
여동생들도 다 크고 작은 도시에 가서 흩어져 살고 있고, 그 가운데 이혼해서 혼자 사는 여동생이 떠올라 가엾고 불쌍하다는 생각에 목이 메었습니다.
잠이 안와서 별의 별 생각을 하다가 어떻게 잤는지 말았는지 아침이 되자 더 난감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아침밥을 먹을 데가 없었습니다. 전날 술을 마시고 난 다음이라 시원한 국물을 먹고 싶은데 해결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여기저기 돌아다녔으나 시골이라서 식당 문을 아침부터 여는 집이 없었습니다. 아침을 거르지 않는 습관 때문에 배가 고파오기 시작했습니다. 오전 9시에 집안이 모여서 벌초를 해야 하는데, 밥을 안 먹으면 점심시간 까지 버틸 재주도 없었습니다. 일가 중에서 젊은 축에 드는 제가 예초기를 지고 다니며 풀을 깎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겨우 아침부터 정리하느라 문을 열어놓은 식당에 무조건 들어가서 남아 있는 밥이라도 달라고 하여 끼니를 때웠습니다. 식당주인은 제대로 차린 밥상이 아니라며 밥값을 반만 받았습니다. 아무튼 고향에 벌초하러 내려가서 겪은 이러한 경험을 시로 정리하여 계간 <서정시학>이라는 잡지에 보냈습니다.
벌초하러 고향에 내려갔다가
먼지와 벌레가 주인이 되어 버린 빈집을 나와
무량사 앞 한적한 모텔에 들었다
왠지 호젓하여 글이나 써볼까 하는데
쓸쓸쓸쓸 여치가 운다
젊은 나이에 병들어 울면서 돌아가신 아버지도 생각나고
늙어서 불경을 외우다 돌아가신 어머니도 생각난다
이혼한 여동생을 생각하다가 목이 메는데
이름을 알 수 없는 풀벌레가 또 운다
- 졸작 <백운모텔> 전문
이렇게 고향에 내려가서 인생의 무상감에 사로잡혀 슬퍼하고 마음이 운 것은 이번만이 아닙니다. 지나간 겨울에 그랬습니다. 충청남도 교육청이 지원하는 중학교 겨울방학 행사가 있어서 고향 중학교에 내려갔었습니다.
제가 후배들에게 시 이야기를 하는 자리였습니다. 기상청에서는 수십 년 만에 며칠째 내리는 폭설이라고 하였습니다. 폭설에 길이 막혀서 대중교통조차 다니기 힘들었지만 꼭 내려가야 했습니다. 길도 집도 학교 운동장도 들도 산도 전부 하얀 눈으로 덮여 있었습니다.
학교 행사를 마치고 교감선생님과 청양 읍내에서 고향에 사는 동창들을 모아 저녁을 먹었습니다. 김일배라는 동창이 하는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밤이 깊어지자 참으로 난감했습니다. 친구들은 집으로 돌아가는데 저는 잠을 잘 곳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시골집은 어머니가 돌아가시고부터 사람이 살지 않아 보일러가 터진지가 오래되었습니다.
불을 때서 방을 덥히도록 온돌을 남겨놓은 사랑방은 방고래가 무너지고, 쥐구멍으로 불이 들어와 집을 태울지 모르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친구들 앞에서 읍내 모텔에서 잔다고 하면, 자기 집으로 끌고 가거나 밤새 술로 못살게 굴 것도 같아 고민이 되었습니다.
운곡에 사시는 고모님 댁으로 가서 잘 거라고 하면서 친구들과 밤늦게 헤어졌습니다. 그리고는 친구들이 안보는 사이에 모텔에 들어가서 잤습니다.
이때도 정말 외로움과 무상감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잠이 안와서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며 그럴 만한 프로그램을 보려고 했으나 그럴만한 게 없었습니다. 불교방송과 기독교방송을 돌리며 법문과 설교를 들었는데 밤이 깊어지자 그것도 방송을 마감하였습니다.
이때의 서정적 충동을 시로 써서 계간 <시인시각>이라는 잡지에 발표한 것이 <모텔에서 울다>라는 시입니다.
시골집을 지척에 두고 읍내 모텔에서 울었습니다
젊어서 폐암 진단을 받은 아버지처럼
첫사랑을 잃은 칠순의 시인처럼
이젠 고향이 여행지라는 생각을 하면서
얼굴을 베개에 묻지도 않고 울었습니다
오래전 보일러가 터지고 수도가 끊긴
텅 빈 시골집 같은 몸을 거울에 비춰보다가
폭설에 지붕이 내려앉고
눅눅하고 벌레가 들끓어 사람이 살 수 없는
쭈그러진 몸을 내려보다가
아, 내가 이 세상에 온 것도
수십 년을 가방에 구겨 넣고 온 여행이라는 생각을 하다가
이런 생각을 지우려고
자정이 넘도록 텔레비전 화면을 뒤적거리다가
체온 없는 침대 위에서 울었습니다
어지럽게 내리는 창밖의 흰 눈을 생각하다가
사랑이 빠져나간 늙은 유곽 같은 몸을 후회하다가
불 땐 기억이 오래된
컴컴한 아궁이에 걸린 녹슨 옛날 솥의 몸을
침대 위에 던져놓고 울었습니다
- 졸작 <모텔에서 울다> 전문
지난번 시집을 내면서 이제 고향을 그만 우려먹어야지 하는 작심을 했는데, 이렇게 또 고향을 시로 썼습니다. 그것도 비슷한 체험과 상상력의 시여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할 수 없는 일인 것 같습니다.
자기를 바꾸기가 어려운 일이니 이렇게 쓰면서 나이를 먹는 수밖에요. 제 삶이 지금 이런 지경에 와 있다는 신호이기도 합니다. 무너져가는 시골 흙집처럼 나이를 먹으면서 인생의 무상감을 느끼고 외롭고 쓸쓸하다는 심정이 들어와 있는 것이겠지요.
1950년 전쟁이 나던 해 여름에 비에 무너져서, 무너진 자리에 다시 지었다는 시골집은 저보다 나이가 꼭 열 살이 더 많습니다. 이제 늙은 시골집은 늙어가는 저를 받아주질 않습니다.
다음날 아침에 작업복을 꺼내려고 사랑방에 들어가는데 큰 벌집을 방문 앞에 매달아놓고는 집에 들어올 생각을 하지 말라고 위협하였습니다. 하는 수 없이 재당숙네 집에다가 가방을 풀어야 했습니다.
시골에 내려가서 묵으면서도 잘 곳이 없어 모텔을 전전하니, 이제는 시골이 고향이 아니고 여행지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저나 오래된 흙집이나 한번 왔다가 가는 여행객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여행지에 와 있을 동안에 마주치는 운명들과 좀 더 진실하고 열심히 사랑하다가 알 수 없는 곳으로 가는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작은 것이 아름답다> 2011.11월호)
첫댓글 지난번 강의때 듣던 내용인것 같은데 이렇게 글로 다시 읽게되니 새롭게 와닿습니다
세심한 글내용때문에 훨씬 친근함으로 다가옵니다
좋은글 잘 읽고 갑니다
참 지난 강의때 사찰에 얽힌 사연들 넘 재미있게 들었습니다 그중에 여수 향일암을 가보고 싶은데 진짜로 뚱뚱한 사람은 못들어가는지 보고싶답니다 지가 뚱뚱하거든요~~~
고향에 관한 서정적인 감성이 넘 섬세하게 와닿네요 눈오는날 흠뻑 서정에 취해 보고 갑니다..그래도 시인님은 가볼 고향이 있어 행복합니다 대다수는 마음속의 고향만 있답니다
외롭고 쓸쓸하고 고독한 고향마을 풍경과 시심!~~~짠하게 눈시울이 젖어옵니다...
좋은 시와 글 널리 알리고 싶어 퍼갑니다.
얼마전 돌아가신 친정 아버지 장례 날, 팔순을 바라보는 당숙모께서 거동이 불편해 돌보고 계신 당숙도 못오신다는 소식을 들었던 생각이 납니다. 어릴적 고향에 살 땐 엄마보다 더 정다웠던 당숙모님이었는데 돌아가시기 전에 꼭 찾아 뵈어야 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