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덕항산~두타산~청옥산 구간을 2박 3일 동안

[雲峰]

<2017년 10월 9일 두타산 정상>

2017년 10월 8일부터 10일까지 2박 3일에 걸쳐 진행한 산행으로 기억이 사라지기 전에 기록으로 남긴다. 1년도 안 된 시간이지만 매주 산을 다녀 몇 주만 지나도 기억이 혼재되는 만큼 사실과 다른 내용이 있을 수도 있다. 다만 카메라가 기록한 시각과 위치는 믿을 수 있으니 이를 위주로 기억을 더듬어 작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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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항산[德項山]

높이: 1,073m

위치: 강원도 삼척시 하장면

덕항산은 삼척시 신기면 대이리 있으며, 약 12Km 길이의 무릉천이 이 산에서 동으로 계곡을 따라 흘러 오십천에 합친다. 덕항산은 산보다도 "환선굴"로 더 유명하며 수많은 사람이 환선굴을 찾는다. 그러나 덕항산은 산세 또한 수려하다. 동남으로 펼쳐지는 병풍암, 거대한 암벽, 칼로 벤 듯한 암면, 하늘을 받치고 있는 듯한 우뚝 솟은 촛대봉 등 산세도 수려하고 특이한 절경을 이루고 있다.

덕항산은 능선으로 지극산과 나란히 하고 있다. 주차장에서 올려다보면 왼쪽이 덕항산, 오른쪽이 지극산이며, 이 가운데 해발 840m에 환선굴이 있다.

환선굴은 ５억 3천만 년 전부터 생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종유석의 아름다움보다도 규모가 크고 웅대하다. 환선굴은 총연장 6.5km, 높이 30m, 폭 100m로 동양 최대를 자랑한다.

동굴 안에는 크고 작은 동굴 호수 10여 개와 폭포 ６개가 있어 우렁찬 폭포 소리와 함께 동굴을 관람한다. 둘레가 40ｍ인 중앙 광장의 옥좌대와 동굴 어귀의 만리장성, 그리고 지옥굴 안의 버섯형 종유폭포는 환선굴만의 독특한 구경거리다.

거대한 벽면을 뒤덮은 종유석들이 얼어붙은 폭포처럼 쏟아져 내리는가 싶으면 넓은 광장이 펼쳐져 있고, 산호, 영지버섯, 만리장성에 달걀 프라이 모양까지 천태만상이다.

환선굴은 '97년 10월에 일반인에게 개방되었다. 총연장 6.5km 주굴 3.2km로 6개의 동굴군 중 가장 규모가 큰 굴로 내부에는 기암괴석이 항아리, 호랑이, 소, 사람 등 다양한 형태의 석수와 종유석이 형성돼 있어 석회동굴의 아름다움을 고루 간직하고 있다. 그러나 동굴 내 지형지물과 동·식물 집단 서식지의 보호를 위해 전체 6.5km 구간 중 1.6km만 일반인에게 공개되어 있다.

환선굴은 '97년 10월 개방 이후 98년 말까지 14개월 동안 환선굴을 찾은 관광객 1백 40만 명, 입장 수익 50억 원을 올릴 만큼 많은 관광객이 찾는다.

주차장에서 덕항산 오르는 길옆에 물방아와 굴피집이 한 채 있다. 굴피집은 지붕에 나무판자 대신 굴피(참나무 껍질)를 덮은 집이다.

산 입구 도로 왼쪽에 있는 물방아는 "통방아", "벼락 방아" 라고도 부른다. 물통에 물이 담기면 그 무게로 공이(찧는 틀)가 올라가고 그 물이 쏟아지면 공이가 떨어져 방아를 찧게 된다.

두타산[頭陀山]

높이: 1,357m

위치: 강원도 동해시 삼화동, 삼척시 미로면

두타산은 청옥산과 한 산맥으로 산수가 아름다운 명산으로 사계절 등산 코스로 이름이 높아 많은 등산객이 찾는다. 깎아지른 암벽이 노송과 어울려 금세 무너질 듯 아슬아슬하게 물과 어울린 무릉계곡의 절경 골짜기는 비경이다. 동해와 불과 30리 거리에 있어 산과 바다를 함께 즐기려는 피서객에게는 이상적인 산이다.

산 이름인 두타는 속세의 번뇌를 버리고 불도 수행을 닦는다는 뜻이다. 두타산에는 두타산성, 사원터, 오십정 등이 있으며 계곡에는 수백 명이 함께 놀 수 있는 단석이 많아 별유천지를 이루고 있다. 두타산의 중심계곡인 무릉반석을 비롯한 금란정, 삼화사, 관음사, 학소대, 관음폭포, 옥류동, 두타산성, 쌍폭, 용추폭포 등의 아름다운 명소와 유서 어린 고적이 많다.

동북능 하산길 678고지 부분에 있는 이 오십정은 둥글게 패인 바위 위에 크고 작은 50개의 구멍이 있는데 이를 쉰우물, 오십정이라 한다.

두타산(1,352)과 4km 거리를 두고 청옥산(1,404)과 이어져 있어 두 산을 합쳐 두타산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두 산을 연계하여 종주 산행을 할 수도 있다.

청옥산

높이: 1,404m

위치: 강원도 동해시 삼화동

동해시의 남서쪽, 삼척과의 경계를 이루는 곳에는 두타산, 청옥산, 고적대로 이어지는 산줄기와 북동쪽으로 쉰움산이 있다. 청옥산은 두타산 서쪽 3km 떨어진 능선에 위치한 산으로 높이는 두타산보다 51m 높은 1,403.7m로 이 산 중 가장 높은 산이다.

두타산과 청옥산은 해발 1,300여m로 동해안에 가까이 솟아 있는 관계로 등반 고도차가 무려 1,200m나 되기 때문에 쉽게 오를 수 있는 산은 아니다.

청옥산과 두타산 산 아래 펼쳐진 국민 관광지 1호 무릉계곡은 100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무릉반석과 학소대, 선녀탕 그리고 계곡 양편에 깎아지른 듯한 병풍바위 등 웅장한 절경을 안고 있다.

산행기점인 무릉반석의 바로 아래 상가마을까지 동해시에서 수시로 운행하는 삼화사행 시내버스가 있다. 그러나 산행시간만 9시간 정도 소요되는 높고 험한 산이므로 1박 2일 코스로 하는 것이 좋다. - 한국의 산하

다시 산행을 시작하면서 학창시절에 사용하던 장비를 찾아보았으나 다 없어져 텐트를 비롯한 모든 장비를 다시 사야 했다. 그런데 텐트를 가지고 다니는 것에 부담을 느껴 대안을 찾다가 비박을 알게 되어 필요한 침낭 커버 침낭 내피 등을 준비했다. 16년 9월 설악산에서 처음 시도해서 만족했고 이번에는 2박을 하는 만큼 초경량 비상용 텐트를 준비하기로 했다. 무엇보다 2박 3일 동안 먹고 마실 식량과 음료 때문에 텐트를 짊어질 형편이 아니었다.

또 하나 백두대간이라는 것이 능선을 따라 계속 움직이는 길이라 물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 그렇다고 2박 3일 쓸 물을 짊어지고 다닐 수는 없다. 해서 가능한 샘터 주변에 숙소를 마련했다. 그렇다고 숙소와 샘터가 바로 붙어 있는 것이 아니라 짧으면 300m, 길면 500m가량 계곡을 내려가 물을 구해 와야 한다. 해서 물을 저장해 옮길 수 있는 대용량이지만 대단히 가벼운 물주머니를 하나 마련했다. 그리고 평소 발포매트를 사용하던 봉은 긴급히 부피가 작은 에어매트를 하나 샀다.

애초 토요일인 7일부터 2박 3일을 산에서 보낼 예정이었으나 사정상 일요일인 8일부터 2박 3일로 변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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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량리역에서 정동진행 첫차인 7시 5분 무궁화를 타 신기에서 내리기로 했다. 난 청량리에서 탔고 봉 감독은 양평에서 타 접선을 했다. 이 글을 쓰기 위해 당시 열차표 구매명세를 확인해보니 구매 이력이 없었다. 그럼 둘 중 하난데 기차가 아닌 다른 수단을 이용했거나 봉 감독이 다 샀거나. 분명 신기역을 기억하고 있는 거로 봐선 봉 감독이 오가는 기차표를 다 구매했다는 얘긴데 올 때는 동해역이었고. 

그런데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신기 다음 역이 동해니 기차역 하나를 가기 위해 2박 3일이 걸렸다는 얘기다.

신기역에 12시 7분에 도착했다. 7시 5분에 출발했으니 5시간이 더 걸렸다. KTX면 서울·부산 왕복 시간이다. 둘 다 초행이라 방향을 알 수 없어 역무원에게 환선굴 가는 버스를 탈 수 있는 정류장 위치를 물어 찾아갔다. 대략 역에서 300m 정도 떨어진 곳으로 기억된다. 버스 정류장이 마트 겸 휴게소 옆에 있었는데 마침 마트에 식사 메뉴가 있어 주문하니 식당은 안 한다는 답이 돌아왔다.

휴게소 앞 의자에 앉아 버스를 기다리다 먼저 와서 노닥거리던 택시 기사와 봉 감독이 몇 마디 주고받더니 택시를 타고 가자는 것이다. 그래서 바로 택시를 타고 환선굴로 향해 주차장에서 내렸는데 요금이 만원이었던 거로 기억한다. 마침 점심시간도 되어 주차장 조금 위에 있는 '이주일 식당'에서 청국장으로 밥을 먹었다. 혹시 기회가 있으면 꼭 맛보기를 권한다. 최고의 청국장이었음.

애초 당일 비박은 자암재에서 할 예정이라 덕항산을 가지 않고 환선굴만 볼 생각이었던 봉 감독과 달리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덕항산을 그냥 지나친다는 것은 내겐 용납이 되지 않았다. 그깟 굴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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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선굴을 거쳐 덕항산을 오르면 우리의 숙소 자암재로 다시 돌아와야 하는 사태가 발생해 환선굴을 버리고 '골말'에서 시작해 '동산 고뎅이('고뎅이'는 삼척 사투리로 '경사가 급한 언덕'을 뜻한다고 함)→ 환선굴 전망대 → 장암목 → 쉼터(갈림길) → 덕항산 → 쉼터 → 환선봉(지각산) → 자암재'로 끝나는 5.3km 코스로 움직이기로 했다. 환선굴 오르기 전에 계곡을 건너는 다리가 나오고 그 다리를 건너면 골말로 바로 덕항산으로 치고 올라갈 수 있다. 우리가 골말에 도착해 산행을 시작한 시간이 대략 오후 1시 10분경이었다.

등산로 중에 고뎅이라는 지명이 있듯이 1,071m 산을 바로 치고 올라가는 것은 내리 깔딱이라는 얘기다. 계단도 많고 경사도 급한 중에 전날 비가 왔는지 길 상태도 좋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오르다 보면 나타나는 환선굴 전망대는 멀리서 환선굴과 주변을 조망할 수 있어 좋았다. 힘겹게 쉼터에 도착해 400m 떨어진 덕항산을 갔다 오기 위해 배낭을 벗어 두고 봉 감독이 애지중지하는 삼각대는 잘 감춰두고 카메라만 들고 갔다.

마침내 덕항산에 도착한 시간이 3시 34분으로 골말에서 덕항산까지 대략 2시간 30분 정도 걸렸다. 400m, 왕복 800m에 불과하지만, 쉼터(갈림길)에 배낭을 두고 왔음에도…. 2박 3일의 의식주로 20kg이 넘는 배낭에 봉 감독은 무거운 삼각대까지 들고 있어 아무래도 늦어질 수밖에 없었다. 다시 쉼터로 돌아가 배낭을 챙겨 1km 떨어진 환선봉을 향했다.

해발 1,085m로 해발 1,070m인 덕항산보다 높고 원명은 지각산이었으나 다른 유명한 지각산에 이름을 넘겨주고 환선굴 위에 있어 환선봉으로 개명한 봉우리에 도착한 시각이 4시 22분이다. 정상석을 배경으로 인증과 주변 사진을 찍고 1.5km 거리의 숙소 자암재를 향해 출발했다.

자암재에 도착해 배낭을 벗어두고 물주머니와 빈 물통을 들고 오늘 저녁과 내일 하루를 책임질 물을 확보하러 샘터로 내려갔다. 자암재에서 샘터까지는 500m 정도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 길은 거의 수직 하강으로 주변에 어설프게 설치된 줄을 잡고 오르내려야 했다. 특히 그날은 전날 내린 비로 길이 미끄러워 오가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미끄러져 넘어지지 않게 조심스럽게 내려가 누군가 붙여준 '사이다 약수'에 도착해 가져간 물통을 채웠다. 물은 시원하고 맛있었고 전날 비 때문인지 수량도 풍부했다. 자암재를 지나며 물 걱정은 안 해도 될 거 같다. 오랜 가뭄이 기간이 아니라면... 물을 채우고 다시 험로를 지나 숙소를 향한 시각이 5시 29분이었다.

숙소에 도착해 둘 다 스틱을 사용하지 않아 봉 감독의 삼각대를 폴로 사용해 비상용 텐트를 쳤다. 텐트가 삼각형을 유지할 수 있도록 양쪽을 돌로 고정하고 안에 매트를 깔고 그 위에 침낭을 깔았다. 배낭의 무게를 줄이기 위해 자연에서 구할 수 있는 것을 활용하자는 주의라 나무와 돌 등 주변에 보이는 지형지물을 많이 이용했다. 住를 해결하고 나서 옷을 갈아입어 衣를 해결했다. 그리고 봉이 가져온 쌀과 반찬, 술, 내가 디팩 냉장고에 가져간 삼겹살과 반찬, 술 등을 꺼내 밥을 하고 삼겹살을 구워 食을 해결했다. 사실 우리가 이번 산행에서 해결해야 할 5~6끼 중 첫 끼를 해결한 것이다. 국도 끓였었나? 삼겹살 안주로 저녁 늦은 8시까지 술을 마시며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잠이 들었다.

해가 지니 바람이 강하게 불어 양쪽이 펑 뚫린 우리 집 사이를 바람이 지나다니고 나무의 흔들리는 소리, 바람 소리에 자다 깨기를 반복해야 했다. 이것에 대비해 집을 세울 때 바람 방향으로 벽이 향하도록 했음에도 어쩔 수 없었다. 외풍을 차단하기는커녕 바람이 통과하도록 지어진 집이라 춥기도 했다. 그렇게 자고 눈을 뜨니 5시 50분으로 동쪽에서 붉게 여명이 밝아오고 있었다. 주변의 울창한 나무에 일출을 제대로 볼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지만 구름이 많이 끼어 사람들이 원하는 일출도 아니었다. 아침을 먹고 - 뭘 먹었는지 기억이 없는데, 아마 저녁에 남은 밥과 아침에 끓인 국이 아닐까? - 커피를 내려 한잔했다. 집을 철거하고 주변을 깨끗이 정리한 후 다음 숙소를 향해 출발한 시간이 7시 55분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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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가 정한 숙소는 두타산 정상으로 '자암재 → 고랭지 채소단지 → 큰재 → 황장산 → 댓재 → 햇댓등 → 934봉 → 1028봉 → 1021봉 → 통골재 → 두타산 정상'의 15km 코스다. 사실 하루 코스로는 짧은 7시간 정도 소요될 것으로 생각되었다. 따라서 별로 급할 게 없었다. 억새밭을 지나면 억새를 찍고, 주변에 야생화가 있으면 야생화를 찍고, 도시에서 볼 수 없는 풍경이 있으면 그것을 찍으며 유유자적 숙소를 향해 갔다.

그러다 고랭지 채소단지(귀네미마을)를 지나는데, 이미 수확이 끝나 버려진 찌꺼기만 남아 있었다. 갑자기 봉이 채소밭으로 들어가 밭 여기저기 남아 있는 버려진 배추 중 하나로 다가갔다. 그리고 하나를 뽑아 주변의 잎을 버리고 속만 가지고 나왔다. 저녁에 쌈으로 먹자는 것이다. 그것을 배낭에 잘 갈무리하고 다시 길을 떠났다.

귀네미마을 통과하기까지는 시멘트 포장의 찻길이라 산행의 재미가 없었지만 오래지 않아 경운기가 다녔을 만한 풀숲길에 도착했다. 대간꾼 외에는 잘 다니지 않는 길이라 풀이 길 쪽으로 우거져 길을 덮고 있었다. 9시가 가까운 시간임에도 아직 해가 중천이 아니라서 그런지 풀이 이슬을 머금고 있었다. 그 이슬을 우리의 옷과 신발에 고스란히 넘겨 바지 무릎 아래와 신발은 마치 비를 맞은 것처럼 흥건히 젖었다.

대간꾼에 의해 닦인 것으로 보이는 잘 다듬어진 길을 따라 유유자적 가다 보니 어느새 황장산에 도착했다. 그 시간이 11시 15분이었다. 정상석 하나 없이 국토지리원 안내문에 누군가 써 놓은 글을 보고 정상임을 알 수 있는 산이다. 혹시 우리가 정상석을 찾지 못한 것이 아닌지 궁금해 구글링을 해보니 문경 황장산만 나올 뿐이었다. 백두대간 지도 안내판을 배경으로 인증 사진을 잔뜩 찍고 댓재를 향해 내려갔다.

11시 47분에 댓재에 도착해 봉이 휴게소로 내려가 식혜와 캔 맥주를 샀고 그동안 나는 점심으로 벤치에 앉아 이것저것 때려 넣은 라면을 끓였다. 일회용 접시에 김치 등을 덜어 점심을 먹는데 바람이 강해 접시가 날아가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접시를 고정하기 위해 산행 시 옆에 차고 다니는 칼을 꺼내 접시를 벤치에 고정하고 먹어야 했다. 맥주 한잔하며 라면을 배부르게 먹고 다음 목적지인 햇댓등을 향해 출발한 시간이 12시 20분경이다.

자암재에서 댓재에 이르는 8.4km는 자암재(912m), 황장산(975m), 댓재(810m) 등 해발 100여 미터를 하산하는 평탄한 길이었다면, 댓재에서 두타산(1,353m) 오르는 6.6km는 해발 540여 미터를 대여섯 개의 봉우리를 오르내리며 올라야 하는 가파른 길이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는 얘기다.

오늘 산행 중 처음으로 헉헉대며 900m를 올라가 갈림길에서 쉬고 있는데 길이 없어 보이는 숲속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누군지 기다려 보니 부부로 보이는 남녀가 나타났다. 우리가 그 날 만나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황당하게 우리에게 길을 물어보는 것이다. 대충 우리가 아는 만큼 길을 알려주고 몇 마디 대화를 해보니 삼척 오지 마을의 약초꾼 부부로 길로 다닐 일이 없어 길을 잘 모른다고 했다. 그리고 10시간 동안 당귀 두 뿌리 캔 것이 다라고 했다. 서로 인사를 나누고 각자의 길을 떠나 우리가 통골재에 도착한 시각이 2시 53분이다.

통골재에서 두타산은 2.1km로 우리에게는 한 시간 거리였지만 굳이 서둘 이유가 없어 갓 물들기 시작한 단풍이나 기이한 형태의 나무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며 느릿느릿 정상을 향해 올라갔다. 10월 초였지만 정상 부근에는 단풍이 들어 울긋불긋 경치가 좋았다.

그리고 4시 42분에 두타산 정상에 도착했다. 통골재를 떠난 지 1시간 50분 만이다.

30여 미터 떨어진 두타샘으로 내려가 식수를 챙긴 후 정상의 평지에 집을 지었다. 지난 자암재의 경험을 토대로 이번에는 한쪽을 돌로 눌러 바람이 통하지 않도록 만들었다.

역시 고가의 봉 감독 삼각대가 기둥 역할을 했다. 그리고 어제와 같이 매트를 깔고 침낭을 깔아 잠자리 준비를 끝냈다. 봉 감독은 석양의 장관을 촬영하느라 정신이 없었고 나도 나름 사진을 찍었다.

밥을 짓고 미역국을 끓이고 햄을 굽고, 남은 반찬을 다 꺼내고 고랭지 채소단지에서 주워온 배춧속을 쌈으로 남은 소주를 반주로 저녁을 배부를 게 먹었다. 산에서 먹은 밥 중 현재까지 최고로 기억하고 있다. 이후 안주와 소주를 들고 자리를 집안으로 옮겨 추억의 노래를 들으며 이런저런 얘기 하며 남은 소주를 비웠다. 매 끼니 술을 마셨으니 아마 물보다 술이 더 무거웠을 거다.

그리고 늦은 저녁 8시경 잠이 들었다. 주위의 환경은 그나마 나무가 바람을 막아줬던 자암재와 달리 정상의 허허벌판에 만든 집이라 바람은 더 강했지만, 바람이 통하지 않게 집을 지어 오히려 내부에 습기가 가득해 침낭이 젖는 사태가 발생했다. 침낭에 들어가면 덥고 나오면 추운 상황이 반복되는 밤이었다. 그리고 눈을 떠 정신을 차리니 5시 50분으로 하늘에는 샛별이 반짝였다.

먼저 뜨거운 모닝커피를 한잔하고 침낭을 꺼내 목책에 널어 습기를 말렸다. 그리고 해가 뜨기를 기다렸다. 

6시 24분경 동해에서 해가 얼굴을 내밀기 시작해 6시 27분에 완전한 모습을 나타냈다. 물론 봉 감독은 그 모든 과정을 동영상으로 남겼다. 해가 뜨는 반대편의 구름에 어른거리는 본인의 그림자를 찍기 위해 천천히 손을 휘젓기도 했다. 모든 촬영을 마치고 아침을 먹었는데 뭘 먹었는지 기억에 없다. 늘 하듯이 전날 남긴 밥에 국을 끓여 말아 먹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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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정도 침낭이 마르길 기다려 모든 짐을 정리하고 주변을 깨끗이 치우고 두타산 정상을 떠난 시간이 8시 8분이다. 오늘 가야 할 거리는 10.3km로 '두타산 정상 → 박달재 → 문바위 → 청옥산 → 연칠성령 → 칠성 폭포 → 사원터 →학등 입구 → 문간재 →학소대 계곡 → 무릉 매표소'의 하산 코스로 대략 4시간 거리다. 그럼 12시면 매표소에 도착하니 이 코스 또한 서두를 이유는 없었다.

주변의 경치에 팔려 사진을 찍다 8시 57분에 박달재에 도착했다. 그러나 좀 지나니 이미 익숙한 단풍이나 경치가 반복되 새롭게 찍을 사진도 없어 앞만 - 모든 산이 같다. 오를 때는 새로운 것에 신기해 사진 찍느라 정신이 없는데, 내려올 때는 딱히 새로운 것이 보이지 않는 - 보고 걸어 청옥산 약수터에 도착한 시간이 9시 56분이다. 딱히 식수가 필요한 상황이 아니라 물맛만 보고 정상에 올랐다. 그리고 10시 4분에 청옥산 정상에 도착했다. 인증 사진을 몇 장 찍고 연칠성령을 향해 출발했다.

연칠성령에 도착하니 비안개가 끼며 날이 어두워지고 시야가 10m 정도로 좁아졌다. 연칠성령에서 잠깐 휴식을 하고 11시경 무릉계곡을 향해 하산을 시작했다. 연칠성령부터 칠성 폭포에 이르는 2km의 하산 길은 거의 수직 하강으로 평소에도 힘들어 보이는 코스였는데 오늘은 비안개로 시야가 좁고 길이 미끄러워 더욱 힘들었다. 그렇게 칠성 폭포에 도착한 시간이 11시 52분이었다. 소리는 요란한데 가까이 다가가지 않으면 폭포가 보이지 않는 은밀한 곳에 칠성 폭포가 있었다. 그리고 가까이 다가가면 마치 용이나 이무기가 튀어나올 것 같은 풍경으로 그 또한 나름의 절경이었다. 무릉계곡에 많은 폭포가 있겠지만 이것이 최고가 아닐까 하는 게 내 생가이다. 이것을 보기 위해 여기까지 오는 수고로움의 가치는 보는 자의 몫이지만…. 안개가 서서히 비로 바뀌는 가운데 길을 재촉해 12시 6분에 사원터에 도착했다.

안개에 젖고 비에 젖은 무릉계곡의 바위가 미끄러워 평소보다 더욱 조심하며 내려갔다.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하는 비를 맞으며 마침내 무릉 매표소에 도착한 시간이 1시 35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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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를 맞으며 내려가다 식당에서 점심을 먹기로 하고 바로 보이는 영진회관이라는 곳에 들어가 씻고 옷도 갈아입었다. 이후 파전, 제육볶음, 된장찌개를 시켜 점심을 먹으며 이슬이로 반주를 했다. 그리고 동해발 청량리행 열차 시간에 맞춰 택시를 불렀다. 동해역에 도착해 기차를 타는 것으로 이번 산행을 마감했다.

이번 산행은 총 30여 킬로미터의 산길을 걸었고 두 번 비박하고 5끼의 밥을 산 중에서 먹었다. 물론 매 끼니 반주도 겸했다. 백두대간의 한 구간으로 대간꾼이 아니면 거의 찾지 않는 가을 산에서 무엇인가 찍을 만한 것이 있지 않겠냐는 봉 감독의 바람으로 실행된 산행이다. 내가 늘 하는 말 "남들이 가는 길을 가서 어떻게 산삼을 찾겠는가?"의 일환이다.

내 개인적으로는 미지의 산에 올라 좋았지만 어쩌다 한 번 찾을 만한 산으로 생각되었다. 특히 대간이니 정맥이니 하는 것에 미련을 두지 않아 더욱…. 그러나 이 산행기를 쓰는 지금에는 다시 가 보고 싶은 코스이기도 하다. 환선굴이 있는 덕항산을 지나 용추폭포가 있는 무릉계곡에 오기까지 사람이라고는 햇댓등 아래에서 길을 잃은 심마니 부부를 만난 것이 유일해 더욱 좋았다.

2박 3일간 하기에는 코스가 너무 짧아 촬영이 목적이 아니면 1박 2일로 가능한 코스지만, 굳이 이 코스를 반복할 이유는 없다. 그보다는 두타산과 청옥산, 고적대를 묶어 박달재에서 1박 하는 단풍 시기 원점회귀 산행 또는 구룡골에서 통골로 하산 또는 역으로 하는 산행으로 계곡이 험하고 우천 시 위험함으로 소수 정예를 위한 한여름 알탕 산행이 괜찮아 보인다.

고민을 해봐야….

[雲峰]

취침 시각과 기상 시각이 동일하다는 사실에 놀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