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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한1.
역사 속 군주와 책사의 공격과 수비등 전술은
장기 말의 이동에 대입될 수 있다
기원전 206년
역사의 장기판에서 대국을 펼친 이들은
27세의 항우와 51세의 유방이었다.
항우는 초나라의 상장군이었고
유방은 관중의 새 주인이었다.
항우는 진의 주력부대를 섬멸한 용맹한 장수였고
유방은 진나라 조정을 전복시켰다.
둘 다 초 회왕의 명령을 따르는 입장이었으나
공공의 적 진나라가 멸망하자 서로 대립하게 된다.
송의가 제와 결탁해 초를 배반하려 했기에
초왕이 내게 그를 죽이라는 밀명을 내렸다
신은 장군과 함께 진을 공격했습니다
서안 패하
려산 서남쪽 패하의 서편에 있는 패상에는
유방이 이끄는 초나라군 10만이 있었다
항우는 왜 그토록 관중에 들어 가려 했을까?
관동의 반군 진영에서 무슨 일이 있었기에
유방과 항우의 사이가 틀어졌을까?
제1화 홍문연
기원전 206년 12월
관중 려산 자락에 있는 서안 홍문에는
항우가 통솔하던 40만 제후 연합군이 있었고
려산 서남쪽 패하의 서편에 있는 패상에는
유방이 이끄는 초나라군 10만이 있었다.
양군의 거리는 겨우 40리로
날이 밝을 때면 상대의 깃발과 검이 보일 정도였다.
어느날 마차에 탄 사람은 패공 유방과
그가 가장 신임한 책사 장량이었다.
항우의 초대에 모두가 불안한 상태였다.
항우는 왜 그토록 관중에 들어가려고 했을까?
유방은 왜 일촉즉발의 상황에 항우를 찾아갔을까?
모두 2년 전 초 회왕이 했던 약속 때문이었다.
기원전 210년 7월
50세였던 진시황이 순행 중 사망하자
호해가 진의 2대 황제로 등극한다.
9월. 초 회황은 약속을 한다
초나라는 맹주가 되어
폭정을 일삼는 진나라를 전복하고 6국을 재건할 것이며
먼저 관중에 입성하는 자가 진을 다스릴 거란 내용이었다.
경력과 성향이 완전히 다른 난세의 영웅,
항우와 유방은 이렇게 4년에 달하는 각축전을 시작한다
웅심(초 회왕)은 항씨 가문을 견제했어요.
그래서 관중에 군사를 보낼 때
항우가 먼저 가서 진왕이 될까 봐 걱정했죠
회황이 볼 때 항우는 너무 난폭했거든요
하지만 유방은 겸손하고 온유해서
유방을 이용해 항우를 견제했어요
이렇게 초 회왕과 항우 사이에 갈등의 골이 생기죠
훗날 초 회왕(의제)이 항우 손에 죽는데
이게 그 복선인 셈이에요
진나라가 5백여 년을 바친 중국 통일의 꿈이
겨우 10여 년 만에 막을 내린 것이다
51세 유방에게 이것은 하늘에서 떨어진 떡과 같았다.
전엔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다
유방은 솔직히 농촌의 건달이었어요
유방은 평민의 이름인 거죠
유방은 평민 출신이라 무뢰배 성향을 드러내곤 했어요
하지만 나름의 장점이 있었죠
작은 데 연연하지 않고 자유로웠어요
뭐에 얽매이지 않았죠
그 때문에 친구를 많이 사귀었어요
기원전 212년
유방은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한 바 있다
그해 순행을 나선 진시황의 행렬은 함양 거리를 유유히 지나갔다
길에서 참배하는 사람 중엔
45세의 유방도 있었다
바로 그날
유방은 그 말을 내뱉는다
'사내대장부라면 저렇게 살아야 하는데'
엄청난 권력 앞에서 느낀 전율 때문에
유방은 저런 사람이 되겠다는
정치적인 목표를 갖게 되요
인생의 목표가 생긴 거죠 그리고 마침 유방에게
이 목표를 실현할 만한 특징이 있었어요
목표를 이루기까지 포기하지 않는 끈기나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리는 무뢰배 성향이죠
불과 6년 만에 과거의 한탄이 현실이 되었다
진 황궁의 화려함과 산처럼 쌓인 보물들은
출신이 한미한 유방을 뒤흔들기에 충분했다
그는 당장 승리의 결실을 맛보고 싶어 했다
그때 한 사람이 나타나 그의 생각을 바꾼다
한초삼걸 중 하나인 장량이다
한나라 멸망 후 가산을 전부 팔아
천하를 떠돌며 용사를 물색했고
박랑사에서 진시화을 시해하려다 실패한다
이후 유방을 만나 그의 휘하에서 가장 유명한 책사가 된다
장량이 유방을 말려요 진나라가 멸망한 이유는
폭정을 행하고 부패한 탓이다
진은 향락을 추구하다 멸망했다.
향락을 즐기면 걸왕과 같은 폭군이 된다
장량의 말에 유방은 바로 정신을 차린다
유방은 바로 진 황궁을 떠나기로 결심하며
곳간을 봉쇄하고 패상으로 회군한다
민심을 잡기 위해 유방은 진나라의 법을 폐지하고
진의 주민들과 약법삼장을 수립한다
살인한 자는 죽이고 상해나 절도는 벌한다
여기서 평민 출신인 유방의 정치적 지혜를 엿볼 수 있다
유방은 관중에 들어간 후
약속대로 자신이 관중왕이 될 줄 알아요
그래서 진나라 백성의 민심을 사기 위해
약법삼장을 선포해요.
진의 가혹한 법부터 바꾸죠
그리고 진의 관리는 원래대로 일하게 해요
그럼 진나라 사람들은 생각하겠죠
황제가 바뀌어도 내 삶은 그대로구나
그렇게 유방은 진 백성의 옹호를 받아요
하지만 유방은 한가지 실수를 범한다
진나라 동쪽의 문호인 함곡관을 봉쇄한 것이다
함곡관은 지금의 하남성 삼문협시로
섬서와 하남의 경계선에 있는 관문이지
동쪽에서 함양으로 가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곳이다
기원전 206년 11월
항우의 대군이 함곡관에 당도한다
하지만 예전에 알던 선배와 동료는 보이지 않고
유방이 자신을 맞는 게 아닌가?
게다가 함곡관은 안에서 굳게 잠긴 채
전투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항우는 유방이 진나라군을 재편하고 패상에 주둔하며
관중에 들어가는 통로를 봉쇄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화가 난 항우는 대장군 영포 등을 보내
함곡관을 공격한다
12월, 항우는 연합군을 이끌고
패상과 인접한 희수에 주둔한다
거록대전의 승리로
항우의 정치적 지위는 크게 향상되었다
항우는 자신이 진 말기 반군 중
최고의 공신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항우는 함께 전투에 참여했던 유방이
자신을 거부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기고만장했던 항우로서는 절대 용인할 수 없는 일이었다
바로 그때
항우에게 전달된 서찰은 그의 분노에 불을 지폈다
서찰을 쓴 사람은 유방의 좌사마 조무상이었다
그는 서찰에서 유방이 관중왕이 되길 원하며
자영을 승상으로 삼을 거라고 썼다
진나라를 향한 항우의 태도는 일관돼요
무조건 부정하죠 진나라에 원한이 많았거든요.
나중엔 자영도 죽여버리잖아요
그런데 유방이 왕이 되고
자영을 재상으로 삼는다니
항우로서 받아들이기 힘든 얘기였죠
당시 항우의 부대에는
줄곧 유방을 경계한 사람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항우의 책사인 범증이다
당시 범증은 70세가 넘었기에
항우는 그를 어른 대접하며 '아부'라는 존칭을 썼다
범증은 유방이 항우의 최대 적수가 될 것을 알았기에
항우를 설득했다
재물과 여색을 밝히는 유방이
진 황실의 재물과 여인에게 손도 대지 않았으니
분명 뭔가 노리는 게 있는 것이라며
이 기회에 없애라고 한 것이다
이 말에 항우는
출병 의지를 굳히며
다음날 새벽 바로 출정하기로 한다
병력만 보면 항우가 절대적으로 우세했어요
40만 명이었지만 백만 대군이라고 했거든요
하지만 유방군은 20만이었어요
비율상 안 맞죠
게다가 유방의 병력 중1/3은
진나라군에서 투항해 온 자들이에요
전투력이 한참 부족했죠
항우가 전투 명령을 내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말 한 마리가 항우 진영에서 몰래 빠져나간다
말에 탄 사람은 항우의 숙부인 향백이었다
그로 인해 당시 상황뿐 아니라
역사의 향방까지 바뀌게 된다
항백은 장량을 구하려고 찾아온 것이었다
향백이 하비에서 사람을 죽였을 때
장량의 도움으로 체포 위기를 모면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일 전쟁이 나면 장량이 죽을 수도 있다.
그래서 항백은 장량에게 자신과 함께 떠나자고 한다
신은 한왕을 대신해 패공을 이리 모셨는데
위기가 닥쳤다고 도망치면 불의한 짓입니다
(장량은 의리가 있는 사람이었어요
한왕의 명으로 유방의 관중입성을 돕고
진을 전복한 것이거든요
그런데 상황이 위태로워졌다고
항우가 와서 전쟁이 일촉즉발이라고 해서
자신이 도망치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불의한 짓이라고 본거죠)
장량이 가지고 온 소식은
유방에겐 청천벽력과도 같았다
유방은 자신의 실력이 항우에 못 미치는 것을 알았다
항백은 항우의 집안 어른이었기 때문에
유방은 그가 자신을 구할 인물임을 바로 알아본다
어찌할 바를 모르던 유방은 이내 평정을 찾는다
유방은 항백과 대화가 잘 통하자
바로 자식들을 혼인시켜 사돈을 맺자고 한다
(유방이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정세와 사람을 꿰뚫어 봤기 때문이에요
사람마다 약점이 있잖아요
유방은 항백의 약점을 눈치챘어요
그래서 항백과 의형제를 맺고 다른 약속을 많이 해주죠
항백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유방에게 호감을 갖도록요)
유방에게 설득당한 항백은
홍문으로 돌아가 바로 항우를 찾아간다
자신이 볼 때 유방이 먼저 관중에 쳐들어간 것은
큰 공을 세운 것인데 상을 주기는커녕 섬멸한다면
불의한 짓이며 유방이 신하가 되겠다고 스스로 몸을 낮췄으니 그에게 사죄할 기회를 줘서 잘 대해주라고 충고한다 패주로서의 지위를 인정받자
항우 역시 유방과의 회담을 받아들이기로 한다
이때 범증은 유방의 전술을 역이용할 생각을 한다
연회에서 유방을 죽이자고 한 것이다
하지만 항우는 망설이며 상황을 보자고만 한다
다음날 유방은 장량 등 수행원과 함께
항우의 군영으로 들어간다
항우를 만나자 유방은 모두가 잘 아는 말을 한다
[ 신은 장군과 함께 진을 공격했습니다
장군께선 하북에서 싸우셨고
신은 하남에서 싸웠지요
하지만 본의 아니게 먼저 관중에 들어와 진을 쳐부수고
이곳에서 장군을 뵙게 됐습니다
한데 소인배들의 말 때문에
장군과 신 사이에 틈이 생겼습니다 ]
(유방이 한 말은 두 가지 의미에요
먼저 당신과 나는 전우라는 거죠
장군은 조를 구하러 가서 거록에서 진과 대치했고
나는 관중에 들어왔다
난 여기 와서 진나라를 멸망시켰다
분업이었다는 점을 강조하죠
다음으로 강조한 것은
소인배가 우리를 이간질한다는 거였어요
이때 소인배에 대해 말하긴 했지만
제 생각에 유방은
조무상이 서찰을 보낸 건 몰랐을 겁니다)
전우였던 유방의 겸손하고도 비굴한 말을 들으며
항우의 자존심도 크게 회복된다
항우는 자기 실력에 유방이 굴복했다고 믿고
경계를 풀며 조무상이 밀고한 사실을 알려준다
( 나도 조무상 좌사마에게 들은 거다
항우는 바로 조무상을 팔아요)
이렇게 항우가 유방을 후대하기로 하면서
중국 역사상 가장 유명한 연회인 홍문면이 시작된다
사마천의 기록을 보면
항우는 상석인 서쪽에 앉았고
범증은 차석인 북쪽에 앉아 있었다
유방은 3순위인 남쪽으로 안내되었고
장량은 동쪽, 막사의 입구를 등지는 말석에 앉았다
( 진한 시기에는 오른쪽을 좋아했어요
오른쪽이 높은 거였죠
서쪽이 오른쪽이잖아요
서쪽에 앉으면 상석이었죠
손님을 접대하는 사람의 자리니 항우는 서쪽에 앉았어요
항우 스스로 영수라고 생각하고
유방을 우습게 본 거죠 )
연회에서 술이 석 잔 돌며 환담이 오고 갔다
항우는 유방을 몰아세울 의지가 전혀 없어 보였다
이 때문에 범증은 더욱 긴장했다
그는 몇 번이나 옥결을 들어 항우에게 공격 신호를 보냈지만 항우는 못 본 척했다
( 옥결은 고대 남자의 장신구로 중간에 틈이 있어요
'순자'를 보면 거절할 땐 옥결을 준다고 했어요
다른 사람과 관계를 끊을 때 주는 거죠
범증은 연회에서 그걸 꺼내요
빨리 유방과 결별하란 거죠 )
연회가 절반을 지나자 범증은 조급해진다
그는 항우의 사촌 동생인 항장을 불러 술을 올리게 한다
검무를 추는 척하며 유방을 죽일 계획이었다
연회가 지루해졌기에 항우도 항장이 검무로
흥을 돋우는 것을 허락한다
항장의 출현으로 연회의 분위기가 미묘해진다
유방은 항장의 의도를 알아도 손을 쓸 수가 없었고
범증은 항장의 다음 동작을 초조하게 기다렸다
항우는 눈치챈 듯했으나 딱히 저지하지 않았다
이렇게 홍문연은 절정으로 치닫는다
( 항백이 나선 이유는
유방이 쏟은 시간과 정성 때문일 거예요
그도 유방의 안전을 약속했을 수도 있죠
그런데 범증이 항우한테 그러잖아요
연회에서 유방을 죽이라고요
항백으로선 받아들일 수 없었죠
자기 원칙에 어긋나니까요 )
하지만 막사 안의 상황은 매우 위태로웠다.
항백과 항장 모두 멈출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때 홍문연에서 예상치 못한 변수가 등장한다
모두의 시선이 항백과 항장에게 집중되어 있을 때
몰래 빠져나간 장량은 번쾌를 찾아간다
그는 번쾌에게 막사 안의 위급한 상황을 전하며
빨리 유방을 보호하라고 한다
위급한 순간 번쾌는 검과 방패를 들고
막사 안으로 쳐들어온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막사 안은 정적이 흐른다
눈을 부릅뜬 침입자의 등장에 항우의 낯빛이 굳는다
침입자가 유방의 호위인 번쾌라는 말을 듣자
항우는 그 용맹함을 칭찬하며 고기와 술을 하사한다
번쾌의 용맹함에 항우도 동질감을 느낀 것이다
바로 이때 번쾌가 내뱉은 한 마디로
홍문연도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 번쾌는 들어와서 항우에게 부당하다고 따져요
유방이 포악한 진을 멸망시키려고
이러이러한 공을 세웠다면서
유방에게 상을 줘야 마땅하다고 하죠
그런데 어떻게 죽일 생각을 하느냐
처음엔 항우를 치커세운 다음에
항우의 귀족 신분을 이용해 자극합니다
귀족은 도의나 체면을 중시하잖아요
당신은 귀족이자 대장군이고
풍운을 일으킨 위대한 영웅이면서
어떻게 죄가 없는 사람을 죽이냐)
일개 장수인 번쾌에게 그런 말을 듣자
항우는 사념에 잠긴다
그는 아무 대답도 못 한다
막사 안 분위기는 완화되었지만
유방은 바늘방석에 앉은 기분이었다
홍문연은 변화무쌍하니
언제든 죽음의 위기가 닥칠 수 있었다
이에 유방이 측간에 간 틈에
장량과 번쾌는 유방에게 진영으로 돌아가라고 설득한다
( 유방은 떠나면서도 주저했어요
인사도 안하고 가려니 찝칩한 거죠
그러자 누군가 그래요
우리는 지금 아주 위험한 상황이다
작별 인사 하려다 죽을 수도 있다
그래서 유방은 장량만 남기고 가요
장량한테 바로 들어가지 말고
그들이 패상에 도착하면 들어가라고 하죠
추격해 오면 곤란하니까요
패상에서 홍문까지는 40리 길이에요
지름길로 가면 20리고요
말을 타고 가면 20리는 금방이죠)
장량은 옥벽과 옥두를 들고 막사로 들어가
항우와 범증에게 예물로 바친다
그리곤 패공이 취기를 이기지 못한 데다
대왕께서 유방을 책망할 거라는 말을 듣고
인사도 못 하고 돌아갔다며
대신 사과의 뜻으로 예물을 남겼다고 전한다
항우는 찔리는 것이 있었기에 더는 캐묻지 않고
옥벽을 받는다
[ 어린애와 일을 도모하는게 아닌데
패공은 필경 항왕의 천하를 차지할 것이니
우리는 그의 포로가 될 겁니다 ]
이렇게 항우는 유방을 죽일 절호의 기회를 놓친다
후대에선 항우가 용맹하지만 지략이 부족한 증거로
홍문연을 거론한다
그런데 이 말은 정녕 사실일까?
( 홍문연으로 유방과 항우는 각자 자기 목표를 달성해요
유방의 목표는 뭐였을까요?
자기 목숨을 보존하는 거였고 목표를 달성했죠
항우의 목표는 뭐죠?
유방을 관중에서 내쫓는 거였어요
병사를 움직이지 않고 전략적 목표를 달성했잖아요
그러니 항우도 완전히 실패한 건 아니에요
그때 항우는 몰랐을 뿐입니다
유방이 자신의 적수가 될 줄 몰랐죠 )
호운연 이후 군대를 이끌고 함양에 쳐들어간 항우는
먼저 진왕 자영을 포함한 영씨 종친들을 처결한다
이어 진나라 황실의 재물과 아녀자를 전부 약탈한 뒤
아방궁, 진시황릉 및 궁의 성루를 모두 불태운다
역사서를 보면
항우군이 피운 불길이 석 달이나 지속됐다고 한다
진나라 사람들은 전쟁터에서 항우에게 살해됐고
고향에서 다시 한번 중상을 입었다
결국 그들은 유방의 후덕함을 그리워하게 된다
동시에 항우에 대한 증오는 더 커진다
( 항우는 진에 원한을 품고 있었어요
하지만 명심할 게 있어요
성숙한 정치가는 정치적인 결단을 내릴 때
개인의 감정을 최대한 배제하죠
하지만 항우는 분풀이를 해요
그래서 진나라 백성의 미움을 사죠 )
항우가 홍문연에서 유방을 보내줬다고
마음속 응어리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먼저 관중에 들어가는 자를 왕으로 삼겠다는
회황의 약속으로 인해 항우는 마음이 불편했다
유방은 항우와 진의 장군 장한이 대치하는 틈을 타
먼저 관중을 함락함으로서 은연중에
항우의 공을 가로챘다
또한, 장한이 항우에게 투항했을 때
항우는 그에게 관중을 주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무엇보다 유방이 먼저 관중의 제후왕으로 책봉되면
항우는 초 회왕 밑에 있는 부장에 머물러야 한다
두 사람의 지위가 뒤바뀌는 것이다
항우는 초 회왕에게 사자를 보내 보고한다
진을 멸하는 대업을 달성했으니
항우가 장한과 약조한 대로
관중 지역을 장한 등에게 나눠주라고 하면서
유방 등에겐 따로 상을 주라고 한다
즉 회왕의 약속을 폐기하고
항우가 전후의 일을 맡도록 그 지위를 인정하란 뜻이었다
하지만 초 회왕의 답은 두 마디였다
'약속대로 한다'
전쟁 전의 약속대로
유방을 관중의 왕으로 삼는다는 의미였다
( 초 회왕의 입장에서 보면 항우의 세력이 너무 강했어요
회왕이 항우를 적당히 제어하지 못하면
자기 지위까지 위협받거든요
그래서 유방을 이용해 항우를 제어해요
유방을 관중왕으로 세운 거죠)
기원전 206년 정월
항우는 회왕의 약속을 저버리기로 한다
진을 멸한 최대 공신으로서
모든 질서는 자신이 수립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어 초 회왕을 의제로 추대하고
진나라의 군현제를 근거로 제후들을 다시 세운다
그렇다면 회왕의 약속으로 관중왕이 돼야 했을 유방은
어디로 분봉되었을까?
항우의 희수 진영에서는
항우, 범증, 항백 등이 모여
공에 따라 땅을 분할하는 문제를 논의한다
항우는 유방의 사과와 화친 제안을 받아들여
유방을 왕으로 삼고자 했지만
그에 대한 경계심은 여전했기 때문에
유방에게 관중을 주진 않았다
대신 관중을 셋으로 나눠
함양 서편은 옹왕 장한에게 주었고
함양 동쪽은 새왕 사마흔에게 주었으며
관중 북쪽은 적왕 동예에게 주었다
이렇게 '삼진'이 탄생한다
유방에게는 범증의 제안대로 파촉 땅을 준다
이는 유방에게 엄청난 충격이었다
파촉은 전국시대에 진나라가 정복한 진의 영토이다
이 사실은 항우에게 변명거리를 제공한다
파촉도 진의 영토이므로
유방 역시 진의 왕으로 분봉된 것이라며
회왕의 약속이 지켜졌다고 주장한 것이다
게다가 파촉 지역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군대가 이동하기에 불편했다
유방을 가둘 천혜의 새장이었던 셈이다
패상의 군영에서
유방은 자신이 먼 타향으로 보내질 거란 소식을 듣는다
홍문연에서 고개를 조아리며 항우에게 성의를 보일 땐
관중을 봉토로 받을 거란 기대가 있었다
하지만 모든 공이 허사가 된 것이다
유방은 당혹감과 실망, 수치심 분노 등의 감정에 휩싸여
즉시 모든 장수를 모으고 항우를 습격하라고 명한다
이때 장량은 유방을 말리며 한 가지 제안을 한다
항백을 시켜 항우를 설득하고
한중군을 분봉 받자는 것이었다
( 한중은 관중에서 더 가까웠거든요
한중군은 파촉보다는 가까웠죠
그러니까 한중을 받으면
실제적으로는 유방의 영역이 넓어져요
유방의 통치 범위가요
유방이 관중으로 돌아오기도 편리하고요 )
( 항백은 항우의 숙부예요
항우는 대단한 귀족 가문이었잖아요
가족이란 개념이 매우 강했죠
장량은 그 점을 노렸어요
항백이 하는 말이라면 항우도 웬만해선 따르겠죠
그렇게 파촉과 한중 땅이 유방 것이 돼요
3개 군을 갖게 된 거죠)
기원전 206년 4월
항우는 스스로 서초패왕이 되어
19명의 제후왕을 분봉한다
그는 제후들의 맹주로서
제후들에게 즉시 관중을 떠나 봉토로 가라는 명을 내린다
역사는 이를 두고 '희수의 회군' 이라 부른다
홍문연에서의 힘겨루기로
항우는 유방과의 대결에서 우위를 선점한다
유방은 한중 남정에 도읍을 정하고 한왕이 된다
하지만 이는 유방의 타협을 의미하지 않는다
홍문연은 그저 이 이야기의 서막에 불과하다
그와 항우 사이의 진정한 힘겨루기는
이제부터 시작이기 때문이다
( 온갖 술수가 난무하는 장기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