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업대에서 2005. 여름 어느날
2003년 겨울 진도를 가고 싶었다. 진도의 남도석성을 둘러본 후 이순신 장군이 기적의 명량해전 대승을 이끈 전초기지 벽파진으로 향했다. 벽파진과 울돌목(명량의 우리말)은 그렇게 나를 오라고 불렀다.
2005년 여름 속리산의 경업대가 울돌목처럼 나를 부른다. 배낭을 메고 길을 나선다. 길에서 우연히 만난 괴산이 고향인 은퇴한 버스기사 아저씨가 같이 가자고 한다.
기사 출신이라, 아저씨는 지도보다 더 잘 충북지리를 잘 안다. 속리산도 방안 보듯 한다.
아저씨가 상주군 화북에서 오르면 문장대에 훨씬 빨리 오를 수 있다고 해서 화북행 버스를 탔다. 오송폭포와 성불사를 지나 문장대에 오르니 비가오는 평일이라 그런지 사람이 없다.
안개가 자욱한데 상주 화북면의 마을들이 어렴풋이 보인다. 신선대를 돌아 드디어 목적지인 경업대에 도착했다. 조선의 명장인 임경업 장군이 스승인 독보대사와 7년간 수련을 했다는 곳이다.
멀리 산들이 굽이굽이 병풍처럼 겹겹이 펼쳐져 있는 장관. 뒤쪽으로는 묘한 입석대와 신선대가 버티고 있다. 경업대의 앞은 펼쳐진 산들이 있고, 뒤로는 호위병처럼 입석대와 신선대가 놓여 있었다.
경업대에 앉아 있다. 누워서 하늘을 본다. 장군~~~ 하고 마음으로 임 장군을 불러본다.
청나라도 두려워 그가 지키고 있던 백마산성을 피해서 갔다는 이야기. 5000의 군사만 있으면 능히 그들을 막을 수 있다고 청병을 하였으나 끝내 청병은 보내지지 않았다. 그리고 조선은 삼전도의 수모를 겪게 되었다. 그리고 장군도 청나라로 끌려갔다. 김자점 일파의 역모라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죽어야 했던 조선의 명장 임경업 장군. 적국 청태종도 살려 보내준 장군을 조선이 죽었다. 그것도 매에 맞아서 돌아가신(杖殺) 그분을 생각하니 슬프기도 하고 울화가 치밀기도 한다.
조선은 훌륭한 장수들과 인물들을 계속해서 죽였다. 패륜아 세조에게 죽임을 당한 충신 김종서, 유자광 등의 모함으로 죽임을 당한 남이장군, 백의종군을 하고 의문의 전사를 한 이순신 장군, 의병을 모아 왜군을 용감히 무찔렀음에도 역적으로 몰려 서른의 젊은 나이에 죽임을 당한 의병장 김덕령 장군, 그리고 임경업 장군. 이성계가 무력으로 정권을 잡아서 그랬는지 조선은 기개가 넘치는 장수들을 제거했다.
어디 장수뿐인가? 고려 말 정몽주의 암살로부터 시작된 참 사람에 대한 박해, 사육신이 그러했고, 무오사화 때 부관참시 당한 김종직 선생과 죽임을 당한 그의 많은 제자들, 기묘사화 때 처형당한 조광조 선생이 그러했다.
위의 인물들이 그 후 모두 복권되었음을 볼 때 이들의 죽음은 부당한 것이었다.
조선은 그렇게 인물들을 죽이고, 비굴한 자, 약삭빠른 자, 자신의 보신만을 생각하는 자들이 권세를 잡게 되었고 뜻있는 사람들은 죽임을 당하거나 은둔해 버렸다.
좋은 인물들은 사장되고 쪼다들이 권력을 좌지우지 하게 되었으니 나라가 왜놈들에게 집어 삼켜 버린 것은 당연하다 할 것이다. 조선을 삼킨 것은 왜놈도 서양세력도 아닌 조선의 썩어빠진 정신이었다. 인물을 죽이는 나라가 잘 될 수는 없는 법이다. 지도층이 약삭빠른 보신주의와 이기주의에 빠져있는 나라가 잘 될 수는 없다.
나라가 환란에 처했을 때 나라를 지킨 것은 언제나 이름 없는 백성들과 몇몇 뜻있는 사람들이었지 권력자들이 아니었다.
이러한 못난 전통은 대한민국까지 내려온 것이고 아직도 그 흔적은 강하게 남아있다.
독립운동가의 후손들은 만주에서 중앙아시에서 한국의 외국인 노동자로 고생하며 살고 있고, 왜놈들에게, 이승만에게, 박정희에게, 전두환에게 주인을 바꿔가며 생존한 자들은 부귀영화를 누리고 있는 것이다.
해방 60년이 다 된 지금도 반민족 행위자 처벌에 대해 왈가왈부하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도산 안창호 선생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대가 진정 나라를 걱정한다면 훌륭한 인격을 갖도록 노력하시오. 인물이 없다고 탓하는 그대는 왜 인물이 될려고 하지 않소?”
7월말에 만나게 될 노량의 물결은, 충무공 이순신은 또 나에게 어떤 말을 할지 사뭇 기다려진다. 가슴이 쓰라리다.
“어서 죽기만을 바랄 뿐이다” (정유년 난중일기 4월 19일)라고 탄식하던 장군. 어머니의 탈상도 하지 못하고 자신을 내친 전장으로 발걸음을 놓아야 했던 장군. 아들을 전장에서 먼저 잃어야 했던 장군.
아! 충무공이시여. 당신은 임 장군과 같은 화를 면하기 위해서 일부러 적 사병의 총탄에 몸을 내어 주셨군요. 장군이시여. 당신의 충정과 고뇌와 기개와 지혜를 이 민족은 영원히 기억할 것입니다.
임 장군님이 수련을 하던 경업대에서 억울한 누명을 쓰고 돌아가신 훌륭한 우리의 선조들을 떠올려 본다. 이 바위 위에서 임장군께서 명상도 하고 수련도 했을 것이다 생각하니 슬픔이 안개처럼 가슴에 밀려든다.
三尺龍泉萬卷書 석 자 되는 용천 검에 만 권 되는 책이로다
皇天生我意何如 하늘이 다 냈으니 그 뜻이 무엇이랴
山東宰相山西將 산동에 재상나고 산서에 장 수 난다는
彼丈夫兮我丈夫 너희가 사내라며 나도 또한 사내로다.
- 忠愍公 임경업 장군의 칼에 새겨져 있던 시 -
함석헌 선생의 - 뜻으로 본 한국역사 - 중에서
역사에 충실하고자 하는 자는 고생할 각오를 하라.
참에 살고자 하는 자는 참패로 삶을 마칠 각오를 하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을 원망치 않을 작정을 하라.
그러기 싫다면 그만두라. 역사를 논하지 말며, 참을 논하지 말라.
우리의 역사가 참된 자에게 하는 대접을 보고 당연히 해야 할 각오를 하라.
첫번째 사진 경업대 앞에 펼쳐진 산들
두번째 사진 경업대 입구
세번째 사진 경업대에서 바라본 신선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