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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여
잡초가 무성한 들판인 것은 아닌지
메마른 모래땅 사막인 것은 아닌지
외로이 떠있는 바다의 섬은 아닌지
그대, 가슴에게 물어본 적이 있는가
황량한 길의 끝에 서서
차라리 내밀한 기운이 숨쉬는 순천땅 아름다운 지구의 정원
아니 내마음의 정원을 만나러 떠나보지 않으려는가
혹여 우리가 잃어버렸던 소중한 꿈을 그 길 위에서 찾을 수 있을지...
햇볕의 온도가 만만치않은 초여름
자연과 하늘의 순리에 순응하며 사는 소박한 사람들의 땅
인구 28만명의 작은 도시 순천에서 열리는 순천만 국제정원박람회장으로 가기 위해 길을 나섰다.
'지구의 정원,순천만'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4월 20일부터 10월 20일까지 184일 동안 펼쳐지는 꽃과 나무의 향연에 마음은 벌써 순천으로 달려갔다.
박람회장 입구인 빛의 서문으로 들어선다
이름 그대로 터널을 지나는데 양 사방에서 반사빛이 물결쳐 카메라 프레임에 들어오는 풍경이 몽환적이다
박람회장에는 빛의 서문 말고도 꿈의 남문,지구동문 등이 더 있었다.
순천시 풍덕동 오천동 일대 총면적 111만 2000제곱미터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박람회장은
크게 주제관인 국제습지센터,주박람회장,수목원 등으로 나뉜다
우선 습지센터부터 들어가보기로 했다.
내부로 들어서니 천장에는 이번 박람회의 마스코트인 흑두루미들이 날고 있다
박람회의 주제관인 이 습지센터는 세계적 가치를 지닌 순천만의 생태적 중요성을 홍보하는 종합전시관인데
생태도시관과 생태체험관으로 나뉘어 있었다.
여러가지가 볼 만 하였지만
주제영상관인 그린시어터에서 상영한 3D 애니메이션 '달의 정원'은 우리에게 던지는 메세지가 강렬했다
순천만의 소녀 꽃비와 짱뚱어와의 우정과 교감을 그린 16분짜리 이 영화는
순천만이 달과 지구의 사랑으로 만들어진 풍요로운 갯벌이라는 의미를 가르치고 있었다.
"꽃비야,고마워...잘가...또 놀러와..."
습지센터 생명의 나무를 보고 밖으로 나오니
오른쪽으로 습지구역이 있고 왼편으로는 순천시를 가로지르는 동천이 흐르고 있다
이제 어디로 갈까...그래 꿈의 다리로 가자.
습지구역과 주박람회장을 연결하는 꿈의 다리는
박람회가 자랑하는 또 하나의 상징물로 세계적인 설치미술가 강익중과 순천시민이
2013년 순천만 국제정원박람회를 위해 만든 세계 최초로 물위에 떠있는 미술관이다.
길이 175미터,폭 7.3미터의 외벽은 강익중의 글 '내가 아는 것'중에서 발췌한
오방색의 한글 유리타일 일만여점으로 구성되어 있다.
30개의 빈 컨테이너들을 두줄로 설치한 후 실내에 여러개의 작은 창틀을 내고
우리나라 전통 한옥의 구조처럼 대청을 통해 마당과 안채가 하나의 공간으로 만나도록 설계했다.
내벽에는 전 세계와 우리나라에서 모인 어린이 그림14만 여점으로 꾸며져 있다
알록달록 유리타일의 섬세함과 기발함과 대단한 기획력과 공력에 한동안 난 경이로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아이들의 꿈이 무럭무럭 자라는 그림들을 보고 있으니 마음 한구석 흐뭇함이 밀려왔다
우리 아이들의 꿈은 우리 지구의 미래이기도 할테니 말이다.
순천만의 꿈은 지구의 꿈이니...
찰떡궁합이라는 글자 앞에서 기어이 커플사진을 찍겠다는 연인들을 보면서
이 대단한 공력 미술관에 마음으로부터 힘찬 박수를 보냈다.
생태도시의 완성을 위하여 노력하는 순천만의 꿈이여,순천만의 미래여,영원하여라.
꿈결같고 감동적이었던 꿈의 다리를 건너 주박람회장으로 들어서니 꽃의 향연이 시작된다
알싸한 꽃내음에 정신마저 아득해진다
초여름 더위 때문인가 어쩜 꿈의 다리의 긴 여운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꽃길 옆에서 세계의 정원 중 맨 처음으로 중국정원을 만났다.
맞은편에 있는 한방체험관과 레스토랑을 마다하고 중국정원으로 들어서니
아름다운 흰 조각품이 한눈에 들어온다
중국판 로미오와 줄리엣이라는 가난한 양산백과 부잣집 딸 축영대의 이룰 수 없는 사랑이야기가
정원 가득 애수를 자아낸다.
중국정원 옆에는 화려하면서도 질서정연하게 나무를 깎아 만든 프랑스 정원이 있었다
루이 14세가 꿈과 소망을 담아 유럽문화의 중심으로 꽃피우고자 했던 베르사이유 궁전에 있는 정원을
모델로 만든 작은 정원이다
프랑스 여행에서 보았던 황금빛으로 빛나던 궁전과 후원에 있던 실제 정원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축소판이긴 하지만 실제와 많이 닮은 프랑스 정원에서 호수쪽으로 바라보다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니,저게 뭐지...무슨 광경이지...?
호수위에 엄마의 젖무덤처럼 봉긋하니 솟은 봉화언덕과
흡사 탑돌이를 하는 듯 언덕을 따라 나선형으로 돌고 있는 사람들은 참으로 경이롭고 신비로운 풍경이다.
여섯개의 언덕과 호수로 이루어진 호수정원의 중심에 있는 봉화언덕(16미터)을 가기위해
순천의 젖줄 동천을 보고 디자인했다는 부드러운 곡선의 나무데크를 건너간다.
호수정원은 세계적인 정원 디자이너인 영국의 찰스챙스가 순천에 머무르면서
순천 시내에 있는 봉화산과 난봉산,인제산,해룡산,앵무산,순천만 언덕을 형상화 했다고.
나도 사람들 따라 봉화언덕을 천천히 걸어가본다
걷는 걸음에 따라 풍경이 조금씩 달라진다 .
당연한 것임에도 마음과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세상의 행복이란 아주 사소한 것에도 숨어있는 법이니.
맑은 호수와 5개의 푸른 바람언덕에서 행복한 바람이 연신 불어오고 있었다.
정화된 듯한 마음으로 별로 힘들이지 않고 봉화언덕 정상에 올랐다
여기가 봉화산이란 말이지
순천에 있는 봉화산(356미터)에 오르면 굽이치는 순천만의 갈대숲이 한눈에 보일 것이다
꽃이 피는 포구인 화포와 내륙습지인 안풍습지,대대포구와 와온해변이 손에 잡힐 듯 눈으로 달려올 것이다
몇년전에 갔었던 순천만 갈대숲과 갈대숲에 살던 게들이 눈에 아른거렸다
숨이 턱턱 막히던 용산전망대에서 바라보던 순천만의 낙조는 얼마나 신비스럽고 경이로왔으며 환상적이었던가
대자연이 빚어낸 마법과도 같은 거대한 예술품에 한동안 입을 다물지 못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생각난다.
가히 세계 5대 습지안에 들어갈 만한 장관이 아니었던가
호수정원은 이 정원박람회의 랜드마크라 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여섯개의 둔덕은 조금씩 다른 개성과 표정으로 관람객들을 유혹했다.
어떤 것은 토성으로,어떤 것은 선사유적으로 또 어떤 언덕은 산성과 함께 두개의 멋있는 나무로
정상을 가늠하고 있었다.
호수정원에 취해 이리저리 배회하다 만난 귀염둥이 아기 천사들
아빠는 유모차 손잡이에 손을 댔다 뗐다 하며 아이들과 장난을 쳤다
까르르 까르르 터지는 웃음소리가 온 호수정원에 맑은 종소리처럼 울러퍼졌다
맑은 가운이 내 어깨에도 마음에도 내려앉았다.
호수정원 바람언덕에서 정신없이 바람만 맞다가 화들짝 밑으로 내려와 다시 정원 탐색에 나섰다
해설사가 해설을 곁들이고 있는 관람차가 지나가는 것을 보니 문득 뜨거운 발의 온도가 감지되었다.
그래도 이 화사한 네덜란드의 정원 앞에서 어찌 발의 온도를 운운하랴
튜울립과 풍차의 정원은 화사하다 못해 화려하다.
실물크기의 풍차는 바람을 따라 돌고 내 마음도 봄인 듯 돌고...
네덜란드 정원에는 우리들의 영웅 히딩크의 희망나무가 식재되어 있었다
'나는 아직도 승리에 배고프다'던 히딩크.
히딩크나무는 유럽의 오랜 과실나무인 호두나무였다.
꾸밈없는 자연 그대로인 듯 거친 야생화와 화초가 커다란 토분과 함께 어우러진 독일정원
너무 소박하다 못해 들판에 온 듯한 느낌이 든다
포츠담의 칼 푀르스터 썬큰 정원을 모델로 한 독일정원은
성실하고 근면한 독일 민족성을 나타대고 있는 것 같다.
태국의 사원정원이란다
토템이즘 같은 사원의 분위기는 다분히 이국적이다
옆으로 남미 안데스에서 온 듯한 인디언이 구슬픈 음색의 전통악기인 께나를 불며 사람의 눈길을 끌고 있었다.
단정하고 단아한 영국정원은 그들이 사랑한 장미만큼 아름답다.
시간이 많으면 편안히 벤치에 앉아 사색을 해도 좋으련만.
영국에 있던 타워브릿지와 빅벤을 떠올리면서....
우리들의 영원한 혈맹인 터어키 정원
손님을 맞이하는 현지인이 있어 의아해했더니 그는 자부심이 대단했다
다음에 열리는 국제정원박람회는 2016년 터어키 안탈리아에서라고.
문득 터어키 남부에 있다는 안탈리아가 궁금해졌다
터어키에는 가 보았지만 안탈리아는 가보질 못했으므로.
세계의 정원에는 지금껏 둘러본 중국,프랑스,네덜란드.독일,영국,터어키정원 말고도
미국,일본,이탈리아,태국,스페인 정원 등이 있었다.
이제 참여정원으로 가 보자
어울림정원이라고도 하는 참여정원이란
국내 외 도시나 기업들이 디자인한 공간으로 어떤 주제를 가진 정원이다
'서울,꽃으로 피다' 서울정원을 비롯하여 부산정원도 눈에 띄었다.
하얀 빛깔의 광안대교가 흡사 흰 돛단배의 느낌이 나는 부산정원은
다리 아래 하얀 조약돌마저 파도소리를 품고 있는 듯 하다
순천에서 만난 내고장 부산은 애틋하고 자랑스럽고 사랑스럽다.
현대 그룹에서 지원한 현대 하이스코 희망정원 희망나무가 이채롭다
스틸 구조물 사이에서 다양한 화초가 피어나는데
철 안에서 인간과 자연,문화가 함께 어우러지는 염원을 담았다고.
철도의 역사에 관한 사진과 그림들을 빨강과 파랑의 기차 조형물을 통해 보여주고 있는 코레일 정원
주변에 남북한 기후 특성에 맞게 오죽과 자작나무를 심어 놓았는데
남북한의 철로가 막힘없이 소통되는 염원이 담겨 있단다.
박람회장 안쪽 깊숙한 곳에는 이벤트성 구조물과 포토존이 많이 설치되어 있었다
일본 신사에서 흔히 볼수 있는 광경도 보인다
나무조각에 소원을 적은 명패들이 질서정연하게 줄지어 색다른 풍경을 연출한다.
멋있는 남자에게 프로포즈를 받거나 꽃다발을 받으면 얼마나 좋을까
착시를 일으키는 포토존과 여심을 자극하는 설치물은 이것 말고도 많이 설치되어 있어
괜히 내 마음까지 설레인다.
여기저기 무작정 걷다보니 동문 근처까지 왔나 보다
이제 박람회를 거의 돌아본 것 같기도 하고...반환점인 것 같기도 하고
잔디에 앉아 잠시 지친 몸을 쉬어보며 정원에 대해서 생각했다
일정한 테두리 안에서 사람의 손길을 거쳐 탄생하는 자연의 공간이 정원이리니
일정한 공간인 내 마음자리도 잘만 가꾸면 아름다운 자연의 정원이 될 수 있음에야....
와...아직도 정원은 끝없이 계속된다
미녀와 야수에 나오는 장미화원을 상상하며 만들었다는 야수의 장미정원에는
장미 수만송이들이 자태를 뽐내며 향기를 퍼뜨리고 있다
골든프러쉬,바닐라퍼퓸,시에스타 같은 30여종의 희고 노랗고 빨간,그리고 핑크빛의 장미들.
연인들의 포토존으로도 인기가 높은 장미정원 옆에는 재활용 정원도 설치되어 있어 눈길을 끈다
강인한 자연의 힘을 느끼게 하는 바위정원에는 30톤이 넘는 바위들이 사용되었다는데
그 바위들은 목포~순천간 고속도로 공사때 발생된 버릴려고 했던 돌이라고 한다
바위정원의 중앙에는
하얀 솟대숲과 장승들의 호위를 받으며 600살 먹은 팽나무 할아버지가 멋있는 풍채를 자랑하고 있다
오랫동안 제주도 암반지역에서 살았는데 3년전 개인주택 정원으로 옮겨 살다가
15억을 줉테니 팔아라는 어떤 기업의 회유도 뿌리친채 이곳에 기증되어 자리잡은 팽나무.
그 기개는 주위의 경관을 압도한다.
이제 마지막 남은 한곳을 보기 위해 주박람회장을 나서 꿈의 다리를 건느고 수목원으로 돌아온다
세계정원 중 유일하게 수목원의 경사진 언덕에 자리잡고 있는 한국정원은
멀리서 보아도 다정함과 익숙함으로 친밀감이 몰려온다
3시간이 아니 4시간 정도 정신없이 걸은 상태라 몸은 한정없이 지치고 있었지만.
밝은 빛으로 맞이한다는 연휘문이 학이 불로초를 물고 있는 모습으로 나그네들을 맞이하고 있다
한국정원은
화계(계단상으로 된 화단)와 불로문이 있는 창덕궁 후원을 모델로 한 궁궐정원과
담양 소쇄원을 모델로 한 선비들의 정원인 군자정원으로 나눌 수 있다
보지는 못했지만 자세히 찾아보면 조선시대 서민의 정원인 소망정원도 있었다고 한다.
4시간동안 발에 불이 나도록 걷고 또 걸으며
각각의 얼굴과 표정이 다른 83개의 정원들을 찬찬히 혹은 스치듯 둘러보았다
다리가 아프면 터어키아저씨가 파는 쫀득쫀득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앉아 쉬기도 하면서.
시간이 모자라 '갯지렁이 다니는 길'이나 야생동물원,실내정원은 스쳐지나갔지만
웬만한 것은 거의 다 본 것 같다
줄서 기다리지 않아 좋았고 환경이 쾌적하여 그리 힘들지 않았다.
1851년 영국 런던 만국박람회에서 처음 시작된 정원박람회가 150년을 지나오는 동안
지금은 유럽 같은데서는 보편화가 되었다고는 하지만
우리나라 순천에서 열렸다는 게 자랑스럽기 그지없다.
꿈의 다리도 감동적이었지만 정원박람회의 백미는 역시 호수정원이었다
인생이 아프고 사랑이 아픈 이여
이곳 호수정원을 걷고 또 걸어볼 일이다
아집과 욕심과 번뇌로 흔들리는 가슴벌판에서 잠시 걸어나와 만난 호수정원은
어느새 내 안으로 들어와 내 마음의 정원이 되었다.
오랫동안 잃어버렸던 아니, 잊고 살았던
아니다, 조금은 힘들어 팽개쳐 버렸던 소중한 꿈 조각들을 난 주섬주섬 챙겨들었다.
내 마음의 정원에 심고 가꾸고 싶은 꿈.....
첫댓글 사진도 좋고 글솜씨도 좋고 같은곳을 보았어도 다른느낌!? 잘 보았습니다.
사진, 글 감명깊게 잘 보고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