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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하지만 대부분 신경쓰지 않는 일
-통일을 다룬 <통일을 보는 눈>(이종석)을 읽고 나눈 책 대화 최종 보고서
김지윤 / 광동고 (rlawldbs08@naver.com)
전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가인 한국, 그 유일한 국가에서 사는 우리들의 일상에서 통일은 큰 문제로 여겨지지 않는다. 실제로 우리 반 학급에서도 사회적인 것으로 가장 많이 신경 썼던 문제는 다름 아닌 미세먼지였다. 유일한 분단국이자 휴전 상태인 국가 속에서 살면서, 우리의 사회는 통일이 그다지 중요한 문제로 제기되지 않고 있었다. 전쟁이 일어난 지 불과 1세기도 지나지 않았는데 말이다. 우리는 이 토론을 통해, 지금까지 우리가 통일에 대한 관심이 정말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또한 통일이 주요한 사회적 문제로 직면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수용하였고 좀 더 진지한 자세로 한국을 바라보게 되었다.
우리의 시작은 서툴렀다
우리 조의 첫 시작은 좋지 않았다. 어색함이라는 이유 때문인지 대화가 별로 없었기에 토론의 시작조차 어려워 보였다. 그러나 나는 우리 조가 같은 배를 탄 동료라는 생각이 들었고, 우리 조 뿐 아니라 다른 조도 별반 다를 것 없이 어색함에 파묻혀 대화를 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러고 나니 아이들과 대화를 시도해 볼 용기가 생겨났다. 우선 주제를 정해야 했기에 조원들에게 현재 우리의 사회에서 가장 큰 문제가 뭘까? 라는 질문을 던져보았다. 사실 그 당시 내 머릿속에는 여성 차별 문제로 토론하고 싶다는 의견이 매우 크게 대두되고 있었다, 그래서 주제도 그것으로 하고 싶었는데, 대화를 나누던 도중 현민이가 통일에 대해서 얘기해보자는 얘기를 하였다. 다른 아이들이 찬성하였고, 여성차별 문제만 생각하던 나는 평소 통일 문제에 대해 신경을 안 쓰고 있었고. 통일이 매우 중요한 사회적 문제라는 사실을 인식하였다. 진지한 고민 끝에 우리는 통일에 대해 토론하자고 결정하게 되었다.
주제를 정한 뒤 우리는 읽어야 할 공동 책과 개인 책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우리가 읽고 토론해야 할 책이니만큼 신중을 가해 책을 찾던 도중, 선생님이 작년 선배들이 읽으셨던 책 목록을 보여주셨다. 그 목록 안에는 내가 미리 마음속으로 선정해 놓은 후보들 중 하나가 들어있었다. 그 책은 <통일을 보는 눈>이었고, 목차나 소개를 보니 그 책은 통일의 필요성이나 장점에 대해 이따금씩 얘기하는 책이었다. 우리는 책의 내용이 쉽게 읽고 토론하기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고, 공동 책을 <통일을 보는 눈>으로 하기로 결정했다. 개인 책을 정하는 과정은 순탄했다. 나는 사실 정우의 <조난자들>이라는 책이 읽고 싶었지만 <리얼 노스 코리아>라는 책도 어렵지만 괜찮아 보여서 이 책으로 결정했다. 원래는 내가 한꺼번에 주문하고 싶었으나 집이 상당히 먼 관계로 순욱이가 주문하기로 하였다. 다 같이 돈을 걷어 순욱이에게 주었고, 책은 예상 외로 빨리 도착했다.
책을 정하고 주문을 했을 때, 내 머릿속엔 고민이 많이 떠올랐다. 내가 정한 <리얼 노스 코리아>라는 책은 전문가의 입장에서 북한의 향후 미래와 북한의 외교 방식 등 북한에 대한 자세한 정보들이 적혀 있는 책이다. 그러나 나는 북한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고, 우리나라의 외교나 국제 정세에 대한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이 책을 이해하기 매우 어려울 거라는 걱정이 생겼다. 허나 이 책을 읽으면 북한에 관련된 많은 지식들을 습득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 지식들이 우리가 하게 될 토론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기에 어려운 점은 감수하고 읽어야겠다는 다짐이 생겼고, 그 다짐은 내가 책을 읽도록 해주는 원동력이 돼주었다.
시작 뿐 아니라 토론도,
우리 조는 시작이 서툴렀을 뿐 아니라 토론 과정도 많이 서툴렀다. 토론을 시작하기 전, 우리는 서로의 역할을 정하기 시작했고, 순탄하게 역할이 배정되었다. 처음 나에게 주어진 역할은 편집이었다. 모둠 점수를 책임지는 만큼 막중한 책임감이 느껴지는 역할이었고, 그 책임감에 힘입어 토론을 열심히 해야겠다는 다짐이 생겼다.
책이 도착하고 우리는 첫 토론을 준비하기 위해 서로 책을 읽어 와야 했다. 공동 책은 내 생각과 다르게 읽어 내려가는 데 문제가 없었는데, 개인 책은 아무리 노력하려고 해도 정치, 외교에 관한 기본 배경지식이 없는 나에게는 너무나 어려운 내용이었다. 그래서 난 공동 책에 수록되어 있는 내용을 기반으로 내 주장을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첫 토론이 시작되고 선생님이 기획이 해야 할 역할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주셨다. 기획은 토론을 원활한 방향으로 이끌어나가는 역할이었다. 그 당시 나의 역할은 편집이었기에 편집이 해야 할 일에만 집중하고 있었는데, 기획을 맡은 친구가 자신은 편집 역할이 잘 맞을 것 같다는 얘기를 하며 나와 역할을 바꾸고 싶다고 말했다. 나는 대화를 좋아하고 토론을 이끌어나가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을 가졌기에 성급하게 역할을 바꾸는 것에 살짝 걱정이 되었지만 서로의 역할을 바꿨다. 얼떨결에 기획이 된 나는 일단 토론을 진행해야 했기에, 선생님의 지시대로 서로의 질문을 모으기 시작하였다. 우리는 각자 썼던 보고서의 내용 중에 기억에 남거나 중요한 질문들을 모아 적었고, 10개 정도의 질문이 나왔다. 그 뒤 10개의 질문들 중에서 먼저 토론할 순서를 정하기 시작했는데, 제일 폭 넓고 대화할 것이 많은 주제를 처음으로 얘기하기로 하였다.
처음으로 우리가 정한 질문은 “통일을 왜 해야 할까?”였는데, 매우 추상적인 질문이라 토론 진행이 어렵지 않을까? 라는 의문이 들었다. 질문을 제기하고 침묵이 몇 초 지속되다가, 정우가 통일을 꼭 해야 할까? 라는 질문을 던지며 우리의 토론은 시작되었다. 정우의 의견은 내 의견과 너무 상반되었기 때문에 서로 대화해야 할 주장들이 많았다. 서로 대립되는 주장이었기에 약간은 날카로운 대화가 있었지만, 그 대화의 과정들은 우리의 토론을 풍부하게 만들어주었다. 토론이 시작되고 얼마 안 돼서 의견의 충돌이 일어났다. 나는 통일을 하면 우리 사회에 이득이 많아질 것이라는 주장이었고, 정우는 통일을 하여도 사회적으론 혼란이 일어날 것이고 결국 개인이 얻는 이득은 많지 않을 거라는 주장을 펼쳤다. 서로의 얘기를 하며 열띤 토론을 나누던 도중 선생님이 우리 조의 대화를 듣고 공동체의 변화는 개인에게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말씀을 해 주셨다. 또한 통일을 위해 사용되는 비용에 대해 얘기해보는 것은 어떻겠냐는 의견을 주셨다. 우리는 선생님의 의견을 받아들이며 자신들의 생각을 다시 정리하게 되었다.
그 후 통일 관련된 비용에 대한 토론을 하며, 통일을 위해 사용하는 비용과 분단국가에서 사용하는 비용을 비교하며 서로의 의견을 얘기했다. 그러나 아이들 모두 생각이 정리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토론이 진행됐고, 우리는 그저 자신의 주장만 내세우는 시간을 보냈다. 또한 서로 얘기를 하면서 다른 주제로 새어가기도 하는 등 내가 예상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흘러가기도 하였다. 말하는 친구만 말을 하고, 말을 하지 않는 친구는 계속 조용히 있는 사단이 발생하였다. 그렇게 우리의 첫 토론은 다소 불완전하고 어지럽게 끝이 났다.
경청의 중요성
첫 토론을 겪고 생각해보니, 우리의 토론은 많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 이유가 무엇일지 곰곰이 고민해 보았는데, 첫 번째 토론을 떠올리며 내 머릿속에는 우리가 너무 자신의 말에만 집중하는 문제점이 있다는 결과가 도출됐다. 일단 나부터도 너무 내 의견을 아이들에게 얘기하는 것에만 집중하여 다른 아이들의 말은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았다. 그래서 다음 토론 시간에는 무조건 경청하는 자세를 지녀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두 번째 토론이 시작되었고, 우리는 첫 토론 시간에 정했던 질문 10가지 중 남은 것들에 대해 얘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시간이 지날수록, 차차 입을 다물던 친구도 입을 열어 자신의 생각을 꺼내기 시작하였다. 나 또한 토론이 진행되며 아이들에게 의견을 묻는 것이 익숙해졌고, 그 결과 우리는 자유롭게 자신의 생각을 터놓을 수 있게 되었다.
이번 토론에서는 첫 번째 토론에서 제대로 하지 못했던 얘기들을 다시 짚어가는 시간을 가졌다. 그 주제들 중에는 ‘우리가 통일을 위해 가져야 할 의식’, 이나 ‘통일을 해야 하는 이유’ 등등 통일에 관련해서 꼭 해야 하는 얘기들을 나누었다. 하지만 여전히 통일의 필요성에 대해 의구심을 갖는 친구가 있었기에 우리는 또 다시 서로의 의견을 얘기했다. 그러나 첫 번째 토론과는 다르게 우리는 서로의 의견을 듣고 이해하며 자신의 의견을 논리정연하게 설명할 수 있었다. 두 번째 토론을 하며, 우리에겐 해결해야 할 문제가 생겼다. ‘통일을 원치 않는 사람들’에게 통일을 설득시키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 에 대한 것이었다. 생각해 보니 우리 조 내에서도 통일을 원치 않는 사람이 있는데, 하물며 사회는 얼마나 그런 사람들이 많을 것인가? 우리는 통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그런 사람들의 마음을 설득시켜서 많은 사람들이 통일을 추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고차원적인 토론
두 번째 토론에서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통일을 원치 않는 입장과 통일을 해야 한다는 입장으로 나뉘어 서로의 주장과 근거를 설명하기로 하였다. 그렇게 하면 통일을 반대하는 입장과 찬성하는 입장 모두의 생각을 이해할 수 있고, 그로 인하여 통일을 해결할 더욱 좋은 해결방안이 생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서로의 의견에 대해 근거를 들며 반론을 하며 더욱 심도 깊은 얘기를 할 수 있었다. 토론 도중 정우가 한 질문은 우리의 토론이 조금 더 전문적인 주제를 다루도록 해 주었다. 그것은 실업과 경제에 대한 얘기였는데, 통일을 하고 나면 사람이 늘어나 지금도 힘든 취업이 더욱 힘들어지지 않을까? 라는 질문이었다, 이 때 선생님이 우리에게 도움을 주셨는데, 선생님은 통일 후 오히려 일자리가 일시적으로 늘어날 것이라는 얘기를 해 주셨다. 그 뒤로도 많은 말씀을 해 주셨는데, 우리는 정우의 질문과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지금까지 해왔던 얘기가 아닌 조금 더 사회적이고 경제적인 해결방안에 대해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토론을 하며 한 가지 문제가 발생하였는데, 질문 10가지 중 대부분을 하고 나니 남은 질문들의 내용이 다 비슷하다는 문제였다. 우리는 다시 한 번 머리를 맞대어 질문을 쥐어 짜냈다. 4명의 생각이 뭉치니 제법 괜찮은 질문이 나왔고, 나는 우리가 상당히 수준 높은 토론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 너무나 기뻤다. ‘첫 토론은 많이 미숙했는데, 어느새 이렇게 수준 높은 얘기를 다 같이 하게 되었네!’ 하는 생각이 들며 모두가 성장했다는 점이 너무나 뿌듯했다. 우리는 첫 번째와 두 번째, 그리고 세 번째 토론을 통해, 선생님의 도움을 받았으나 그 도움을 발판 삼아 더욱 성장해가며 더욱 좋은 토론을 할 수 있었다.
그 후 우리는 논문을 찾는 시간을 가졌다. 통일에 관련된 논문은 많았으나, 우리가 활용할 만한 논문은 보이지 않았다. 논문을 찾던 도중 나는 ‘북한이탈주민 심리적 적응’ 이라는 논문을 발견하였고 정독하였다. 나는 북한에 대해 더 많은 이해를 하면 우리의 토론이 발전할 것이라는 생각을 했고 조원들에게도 이 논문을 보내주었다. 그렇게 마지막 토론이 되었는데, 정우가 많이 아파서 마지막 토론에 불참하게 되었다. 우리는 정우가 없는 만큼 더욱 열심히 토론을 하려고 했고, 초반에 말이 없었던 순욱이도 선생님의 도움을 받으며 우리의 토론에 더욱 참여하려는 자세를 보였다. 마지막 토론에서 우리는 실질적인 해결 방안을 제시해보려는 활동을 했다. 그동안 우리는 통일의 장단점이나 경제적인 이득과 손실 등에 대해서만 얘기했지, 실질적으로 통일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는 얘기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우리는 마지막 토론을 하며, 실질적인 해결 방안에 대해 얘기했다. 일단 통일이 된다면 먼저 해결해야 할 우선순위에 대해서 정하고, 그것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얘기해 보았다. 일단 우리가 읽었던 논문에서도 나왔듯, 북한 주민들의 심리적인 불안감이나, 주민들의 남한 적응을 어떻게 도와줘야 할지에 대해 토론했다. 우리 셋 다 실현 가능할 만한 괜찮은 해결 방안에 대해 얘기했고, 언제부턴가 처음과 달리 사뭇 진지한 태도로 토론에 임하고 있었다. 우리는 그렇게 아쉽지만 후련한 토론을 끝냈다.
한 편의 성장 드라마?
사실 난 처음에 걱정이 많이 되었었다. 처음에 조가 배정되었을 때 나는 장난꾸러기 같이 보였던 현민이, 별로 말을 하지 않았던 정우, 순욱이와 함께 과연 많은 토론을 할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이 들었었다. 나의 편견이었지만 아이들이 왠지 열심히 참여하지 않을 것이라는 느낌이 들어 불안했었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착각이었다. 토론의 첫 시작이 많이 미숙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토론을 처음 시작했을 때는 걱정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나 또한 미숙했기에 ‘기획으로써 토론을 제대로 이끌어가지 못하면 어떡하지?’라는 걱정도 들었고, 앞으로의 토론을 어떻게 해야 할 지 막막했었다. 그러나 토론이 거듭됨에 따라, 우리는 토론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비록 어떤 얘기를 나누든 서로의 의견이 안 맞을 수는 있지만, 상대방의 의견이 안 맞을수록 더욱 경청해야 한다는 점을 몸소 느꼈고, 자신의 의견을 친구들과 논리정연하게 설명할 수 있는 노하우를 터득했다. 토론을 하며 우리가 평소 진지하게 얘기해본 적 없던 주제인 통일에 대해 다루면서, 사회적인 견문이 넓어지고 생각의 폭이 확장될 수 있었다. 또한 처음에는 말이 없던 친구도 시간이 갈수록 마음을 열고 자신의 생각을 얘기하는 점에서 큰 기쁨을 받았다. 마지막에는 말하지 않는 조원이 없었기에 서로의 의견을 다 같이 나눌 수 있었다. 나는 지금까지의 우리의 토론을 생각해 보면서, 우리의 토론 과정은 마치 한 편의 성장 드라마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드라마 속 성장하는 아이들처럼, 우리의 처음은 너무나도 미숙했고, 미숙했던 만큼 더욱 눈에 띄는 발전을 이뤄낼 수 있었다. 처음부터 완벽했더라면 우리는 이런 성장을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제목을 ‘중요하지만 대부분 신경쓰지 않은 일‘이라고 지은 이유는, 통일을 중요하게 여겨야 하는 나라에서 사는 우리가, 해결이 시급한 문제인데도 불구하고 통일을 신경 쓰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하고 경각심을 심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사실 나 또한 지금까지 그래왔기에 많은 반성을 했다. 이번 토론을 통해 ‘통일’이라는 주제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되었고, 앞으로 내가 통일을 위해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할지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