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향해 빛나는 별 /최정림
만 60세가 되어 오래 몸담았던 직장을 그만두던 날, 나는 가족들을 불러 모은 자리에서 폭탄 선언을 해버렸다. 인생 구십이라 치자. 나는 초반 3분의 1, 30년은 오로지 !부모님 뜻을 따라 살았고, 다음 30년은 가족들을 위해 살았다. 이제부터 남은 인생은 나 자신을 위해 살겠으니 그리 알아라!
그로부터 일 년이면 서너 달씩 나 홀로 떠나는 여행 벽이 시작되었다. 대부분 거의 오지에 가까운 곳을, 산티아고 순례길 가듯 걷고 또 걷는 여행이었으니…. 사서 고생 고행길이었다.
자타가 공인하는 인간 모범생으로 살아온 내가 무슨 특별히 참회할 게 많아서 그랬던 건 아니다. 무작정 걷다 보면 고통의 절정을 넘어 ‘러너스 하이’가 오는 순간이 있는데, 그 짜릿함의 마약 같은 중독성에 빠지고 만 것일 뿐. 처음엔 입이 댓발이나 나왔던 마누라도 어느듯 나를 칭송하게 되었다. 딴 여자들은 삼식이할배 땜에 골 아프다는데, 우리 남편님은 일 년에 서너 달은 아예 ‘영식님’이시라네.
예고된 가출 경력 십 년째가 되던 해, 문득 이번엔 일본 올레길 여행이나 해 볼까? 하는 생각이 들어 규슈로 떠난 것이 대형 사고(?!)의 발단이 될 줄이야! 길에서 만난 도보 여행자 일본 젊은이들과 이 말 저 말 섞다 보니 내 첫사랑 얘기까지 나왔지 뭔가? 하필 또 나의 첫사랑이 일본 처자였으니, 그 애들 눈이 빛날 수밖에. 반세기 전 고등학교 입학하던 해, 펜팔로 알게 된 그녀와 꼬박 만 3년을 영어로 편지 교환을 했었지. 교복 입고 찍은 사진도 보내고, 책갈피에 넣을 고운 단풍잎도 보내고. 편지의 내용도 점입가경 달달해지다가 마침내 뜨거워졌는데, 아아 목석같은 나에게도 그런 사랑꾼 시절이 있었구나!
대학에 입학하던 해 한일회담 반대 데모가 났다. 한일관계는 악화하고, 그녀가 나를 만나러 서울에 오겠다던 약속도 물거품이 되었다. 아직도 그녀의 마지막 편지 말미에 쓰였던 글귀가 또렷이 떠오른다. 비행기에서 내리면 당신의 목을 끌어안고 뜨거운 키스를 하겠어요! 그때 심쿵심쿵했던 기억이 되살아나니 얼굴이 붉어진다. 그래도 어쩌냐? 시절이 그러했던 만큼, 내 마음의 하얀 등대불은 꺼지고 걷히지 않을 어둠이 내려 버린 걸. 내가 떠나온 것도 아니고, 떠나보낸 것도 아닌데. 그런데 이 이야기를 들은 일본 처자들 반응이 어땠냐고? 눈물이 글썽글썽할 정도로 열광적인 감동의 도가니였지.
망각의 바다에서 건져 올린 추억 한 토막에 그런 폭풍 리액션이 돌아올 줄이야!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다음날 ‘아사히’ 신문에 ‘무려 50년의 순애보!’라는 제목으로 대문짝만하게 내 스토리가 실린 것이다. 물론 달콤한 조미료를 잔뜩 첨가해서. 맙소사! 미칠 노릇이었다. 게다가 내가 부탁한 것도 아닌데, 신문사 측에서 내 첫사랑 미찌꼬를 기어코 찾아내서 만나게 해 주겠단다. 내가 아직도 미찌꼬의 주소를 기억하고 있다고 말한 게 화근이었다. 나도 참 이상하다! 그녀를 미치게 죽도록 사랑한 것까지는 아닌 것 같은데? 어떻게 그 오랜 세월 주소를 까먹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내가 암기력 하나는 비상한 편인데, 오로지 그 때문이었을까?
더 미치는 사건이 일어났다. 신문사에서 수소문해 보니, 50년이 지난 지금도! 미찌꼬가 그 주소지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드디어 세기의 재회가…. 어쩌고저쩌고…. 기사는 한층 더 부풀려졌다. 내가 한평생 그녀를 찾아 삼만 리를 헤맨 것처럼. TV에서 만남을 생중계하겠다고 난리가 났다. 제발 그것만은 극구 사양한다고 손이야 발이야 빌어서 겨우 진정을 시키고, 그녀를 만나러 도쿄로 행하는데…. 갑자기 길섶에서 웬 호호백발 쪼글쪼글한 노파가 튀어나오더니 나를 덥석 껴안고 눈물까지 흘려가며 긴상 감사하무니다, 긴상 감사하무니다, 연방 볼을 비비는 것이다. 아니 그럼 이 호호 노파가 설마 설마 미찌꼬? 에쿠... 휴우, 다행히 ‘나의 미찌꼬’는 아니었다!
현실에 이런 러브스토리가 존재한다는 게 감동이라는 일본 할머니의 격한 환영 해프닝이었던 것. 그 뒤로 이런 해프닝이 몇 번이나 되풀이되었고. 급기야 나의 호칭은 ‘긴상’에서, ‘욘사마’와 동급인 ‘긴사마’로 공식 승격되기에 이르렀다.
‘아사히’ 신문사에서 만나기로 약속된 그 전날 밤, 거울 속의 나를 바라보았다. 반세기 전 사진 속의 준수한 고등학생은 어디로 가고, 머리 벗겨진 늙은이 하나가…. ‘아니야 이건 아니야!’ 얼른 바깥으로 나가서 거금을 주고 멋진 모자를 하나 샀다. 그녀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미리 가 그녀를 기다리는 동안, 내 옆에는 사진 기자를 비롯한 신문사 사람들이 북적북적 진을 치고 있었으나 아무래도 좋았다. 다가오는 모든 발자욱 소리가 내 가슴에 쿵쿵거렸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미찌꼬였다, 미찌꼬일 것이었다…. 문이 닫혔다. 또다시 문이 열리고 마침내 그녀가 들어섰다.
나이를 가늠할 수 없게, 한 떨기 수선화 같은 그녀. 무용을 전공했고, 무용수를 하다가 지금은 선생님이 되었다고…. 그러고 보니 우리가 헤어진 지 너무 오래서 나는 그녀가 어떤 인생을 살았는지 까맣게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여기서 또 한 번 미치게 놀라운 일은 반세기 전 내가 보냈던 편지들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가 가져온 것이었다. 한시도 나를 잊은 적이 없었다고…. 아아!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지고, 나는 그만 정신이 혼미해져서 그 시간이 어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세기의 러브 스토리라고 대서특필된 그다음 날의 기사는 언급하지 않겠다. 우리는 조촐한 만남을 딱 한 번 더 가졌다.
그녀가 마지막 편지에 썼던 대로 ‘뜨거운 키스’를 했는지? 안 했는지? 그건 그대들 상상에 맡긴다. 다만 그녀와 둘이서 처음으로 또 마지막으로 바라본 밤하늘의 별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겠다.
해도 하나 달도 하나. 하지만 별은 인생의 곡절처럼 하나가 아니라서 더 좋은 것 같다. 수많은 별 중에 나를 향해 유난히 빛나는 별 하나. 나에 관한 추억을 반세기씩이나 고이 간직해 준 내 첫사랑 미찌꼬, 고마운 사람.
그녀가 있어 내 청춘이 빛났었음을 내가 몰랐었구나!
*** 지인이 카톡으로 보내온 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