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재 85회 “마일스톤”에 대한 추억
아마도 내가 중학생 때였지 싶다. 우리 모두 잘 아는 사실이지만 그땐 어느 학교이고 간에 “문학의 밤”
행사가 있었다. 당시엔 문학소년, 소녀가 참 많았는데 요즈음엔 중- 고등학생들이 대학축제를 모방하여
다양한 유형의 소비 지향적 축제 프로그램을 운영하지 않는가 싶다. 아무튼 85회 형들이 아직 고교생
시절이었으니 내가 중학생이었을 테고 정동의 배재학당 강당에서도 “문학의 밤” 행사가 열렸다.
“문학의 밤”이었으니 당연히 시낭송 및 문학관련 프로그램이 있어졌을 것이다. 그러나 나에게 뚜렷이
남아 있는 그날의 기억은 문학이 아니라 음악이었다.
시민회관에서 열렸던 배재 창립 85주년 음악회 합창사진
문학발표 중간에 기타를 앞으로 맨 85회 4중창 팀이 무대 위로 올라왔고 박목월 님(1916~1978)의 시
<나그네>에 곡을 붙여 “강나루건너서 밀밭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남도 삼백리/
술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 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하며 화음에 맞춰 노래를 하는데
나는 그 곡이 너무 마음에 들어 그 자리에서 바로 음을 암기할 수 있었으며 지금도 가끔 웅얼거린다.
이 그룹의 당시 명칭은 “Boy's Voice”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발표된 문학작품의 시상을 위해
심사평을 하는 자리에서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마침 우연히도 심사위원으로 오셨던 박목월 님께서 작가의
허락도 없이 자신의 시구에 노래를 붙였다고 야단을 치셨다. 하긴 그때야 저작권이 뭔지 제대로 알려져
있지도 않았고 또한 고등학생이 그런 문제를 알리는 더더욱 없었을 테니 잠시 훈계로 받는 것으로 끝났다.
이 형들이 나중에 “마일스톤(Milestone)”이란 이름으로 대학시절까지 연주회를 열곤 했는데 기량과
수준이 워낙 높았던지라 여고생은 물론 대학생들의 인기가 높았다. 내가 고교시절엔 연세대학교 강당에서
연주회를 했었는데 그 넓은 장소에 관객이 가득 찼었다. 당시에 우리들이 즐겨 듣던 컨츄리송과 팝송이
연주곡의 주류를 이루었었다. 아마 방송출연 제의도 받았을 것임에 틀림없다. 내가 네 분의 존함을 제대로
기억하고 있는지 걱정이 되지만 85회 규대, 광엽, 태영, 청배 형이었을 것이다. 규대 형은 이미 이른 시기에
혼성듀엣을 결성 독립하여 방송에서 자주 뵐 수 있었다. 그래서 나중엔 그 형님 대신에 대광고 출신의
동호씨가 제1테너로 활약했었다. 마일스톤은 우리 88회가 졸업하고 대학에 입학했던 해에 정동 WCC회관에서
있었던 배재 글리클럽 연주회 때 찬조출연 해주시기도 했다.
글리클럽 연주회에 찬조 출연한 "마일스톤". 동호 씨, 광엽 형, 태영 형, 청배 형 (사진 왼쪽부터)
나의 대학 초기생활은 “마일스톤” 형님들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형님들은 1학년 시절부터 도서관
생활을 하는 내가 마음에 드셨던지 옆의 E여대 행사에 나를 데리고 다니기 시작하셨고 그 덕택에 나의
대학생활은 우리 동기 대부분과는 문화 및 삶의 경험 측면에서 확연히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E여대 무용과
Y교수님으로부터 당시로는 최첨단의 춤 “허슬”을 배웠는가 하면 몇몇 선발된 여대생들과 수유리 아카데미
하우스에서의 댄스코스, 조선호텔 볼룸에서의 식사예법 및 댄스파티, 무박4일(無泊四日)의 내설악 여행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을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당시엔 여학생들이 3, 4년 연상의 남성에게 눈길을 주던
때였음에도 오히려 나는 연상의 여인들에게서 관심과 배려를 얻곤 했었다. 이제 다시 생각하면 아련한 옛
추억에 불과하지만 그러한 체험들이 지금의 나를 형성하는 데 중요한 자양분이 되었음에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