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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관의 변화
야고보서 1:9-11
9 낮은 형제는 자기의 높음을 자랑하고
10 부한 자는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할지니 이는 그가 풀의 꽃과 같이 지나감이라
11 해가 돋고 뜨거운 바람이 불어 풀을 말리면 꽃이 떨어져 그 모양의 아름다움이 없어지나니 부한 자도 그 행하는 일에 이와 같이 쇠잔하리라.
야보고서 1장은 그리스도인들이 바른 가치관을 가질 때에만 시련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시련이라는 문맥에서 볼 때 만일 바른 가치관을 소유하지 못하면 그들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시련에 대하여 이를 갈며 하나님을 원망하고 대항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사도 야고보는 믿음이란 것은 고난이 올때 그 믿음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를 드러낸다고 말합니다. 고난 앞에서 도망을 하면 가짜 믿음이지만 고난을 향하여 인내하면 진짜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난은 어떤 사람의 믿음이 참믿음인지 거짓 믿음인지를 구분하는 시금석입니다.
실제로 참된 믿음을 가진 사람은 고난을 당할 때 믿음의 열매를 맺고 영적으로 성장하여 더욱 온전하여 부족함이 없는 그리스도인으로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도, 무엇이 바른 믿음인가를 가르쳐 주는 가장 핵심적인 부분중에 하나입니다. 그것은 한 단어로 ‘가치관’입니다.
그러면 가치관이란 무엇입니까?
다음과 같은 질문으로 여러분의 가치관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위하여 삽니까?
무엇이 세상에서 제일 좋습니까?
무엇으로 행복해 합니까?
무엇을 자랑합니까?
이 모든 질문은 당신의 가치관은 무엇입니까? 라는 질문으로 요약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어떤 존재라는 것은 가치관과 아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봅시다.
돼지에게 좋은 진주 보화와 썩은 사과를 그 앞에 두었다고 합시다. 이때 돼지는 진주와 보화는 발로 밟고 썩은 사과를 먹느라 정신이 없을 것입니다.
돼지가 왜 그렇게 행동합니까? 그 답은 다르게 말할 수 없고, 돼지이기 때문입니다. 곧 어떤 존재와 그 존재의 가치관은 연결되어 있다는 말씀입니다.
사람이란 존재는 신기하게도 사람들마다 가치관이 많이 다릅니다.
특히 나이에 따라 가치관이 크게 변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2살 짜리 꼬마 앞에 1000만원짜리 수표와 사탕 하나를 갖다 놓으면 무엇을 집을까요? 예. 물론 사탕을 집습니다. 아직 1000만원짜리 수표의 가치를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약 10살 이후, 돈의 가치를 알고 나면 사탕보다는 돈을 선택합니다. 그 돈으로 얼마든지 사탕을 살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즉, 가치를 좀 더 제대로 평가할 줄 아는 능력이 생기면서 가치관이 바뀐 것입니다.
또한 어른들을 보면 사람마다 가치관이 다른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 명예가 가치관인 사람이 있습니다. 공부를 하는 사람 중에는 많은 사람이 명예 때문에 박사학위를 얻으려 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박사 학위에 도전합니다.
또는 자신의 이름을 세상에 내기 위하여 선행 및 좋은 일을 쌓기도 합니다.
이들은 자신의 명예를 세우는 일이라면 어떤 희생이라도 감수합니다. 그러므로 만일 자녀들이 어디가서 못된 짓을 하여 자신의 명예와 가문의 명예를 떨어 뜨리면 다른 때는 잘 참아도 이것만은 참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용서하기보다는 호적에서 이름을 빼 버리는 것이지요. 이는 명예가 그의 가치관인 셈입니다. 즉, 이들에게는 자존심이 인생의 전부인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자존심을 인생의 전부로 알고 산 사람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사무엘하 17장을 보면 다윗의 아들 압살롬이 다윗에게 반란을 일으키고 무력으로 왕위에 앉게 됩니다. 이때 압살롬에게 두 사람의 자문 위원이 있었습니다. 그 이름은 아히도벨과 후새입니다.
이때 압살롬이 이 두 자문 위원에게 물어봅니다.
“도망가는 다윗에 대하여 어떻게 하는 것이 다윗을 망하게 하는 것인가?”
이에 대하여 아히도벨이 대답합니다. “당장 오늘 밤에 공격하셔야 합니다.”
그러나 다윗과 내통하는 후새가 말합니다.
“압살롬 왕이시여. 안됩니다. 다윗은 전쟁의 용사이니 더 많은 사람을 모아서 공격하셔야 합니다.”
결국 이 두 의견 중에 압살롬은 후새의 의견을 선택합니다.
그러자 아히도벨은 자존심이 너무나 상하여서 자기 고향에 내려 가 목메달아 죽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아히도벨이란 사람의 가치관을 보는데 바로 명예요 자존심이 이 사람의 생명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 또한 권력이 가치관인 사람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이 사람들은 사람 대접을 엄청나게 잘합니다. 부인들도 음식 해 먹이는데 전문가들입니다. 권력을 잡기까지는 아주 기가 막히게 겸손합니다. 그러나 이들은 상황에 따라 쉽게 친구들을 바꿉니다. 상대가 모르는 사이에 남의 등을 칩니다.
예를 들어, 사사기 9장을 보면 기드온의 아들 아비멜렉이 등장하는데 그는 권력을 가치관으로 삼고 살던 사람이었습니다. 아비멜렉은 처음에는 친절과 베풂으로 친척들의 환심을 삽니다. 그러나 어느 정도 권력을 잡게 되자 완전하게 권력을 잡기 위하여 자신의 형제 69명을 한 자리에서 죽여버립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권력을 추구하는 자들은 위험한 사람들입니다. 권력을 가치관으로 삼은 자들이 얼마나 무서운 만행을 저지르는지 우리는 역사를 통해 자세히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인기가 가치관인 사람들이 있습니다. 종종 연예인들, 예술가들이 이러한 가치관으로 살아갑니다. 이들은 군중들에게 인정을 받지 못하면 쉽게 좌절합니다. 자신보다 더 인기를 누리는 자를 향해 증오심이 불타오릅니다. 인기를 얻지 못하면 술을 퍼마시며 끝없이 방황합니다.
일반적으로 인기가 가치관인 사람은 질투가 아주 심하며 정신병에 잘 걸립니다.
예를 들어, 사울 왕은 인기가 가치관이던 사람이었습니다. 따라서 다윗의 인기가 자신의 인기보다 더 좋아지자 미칠 지경이 되어 버렸습니다. 사울은 당장 다윗을 미워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의 인생은 다윗을 죽이기 위하여 왕권을 사용하다 망한 것이 전부입니다. 하지만 이 세상에서 인기만큼 하늘의 구름처럼 허망한 것은 없을 것입니다.
* 어떤 이는 돈과 재물이 인생의 목표인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돈을 사랑합니다. 이들은 돈이 가치관인지라 돈 때문에 사람 죽이고, 돈 때문에 신의를 져 버리고 돈 때문에 거짓을 말하며 진실을 잃어 갑니다. 아이러니한 것은 돈이 우상이기에 쌓을 줄만 알지 돈을 바르게 사용할 줄 모른다는 점입니다. 성경의 예로는 돈을 사랑하던 가롯 유다가 있겠습니다.
* 또한 쾌락이 가치관인 사람이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은 돈만 있으면 그 돈으로 쾌락을 추구하느라 탕진합니다. 또는 시간만 나면 쾌락을 추구합니다. 쾌락적인 영화를 추구하고 여자와 술을 좋아하고 춤이나 카바레, 심지어 마약을 추구합니다. 그들은 가정이 파괴되고 가산을 잃고 심지어 건강을 잃어 죽을 수 있ㄷ나는 것을 알면서도 기회만 닿으면 쾌락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나중에 회개를 하긴 했지만 삼손이 있고 또한 솔로몬이 있습니다. 그리고 누가복음 15장의 돌아온 탕자가 여기에 해당합니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세상에 속한 것들 말고
* 하나님의 나라가 가치관인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영원한 나라에 영원한 목적을 둔 사람들입니다. 성경은 이들을 그리스도인들이라고 합니다. 이들의 존재는 하나님의 자녀이며 이들의 가치관은 하나님의 나라와 거룩입니다. 즉, 주 예수 그리스도를 닮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그리스도인입니까? 구원 받은 자들입니까? 진짜 구원 받으셨나요?
성경은 구원의 조건을 회개라고 합니다. 따라서 회개 없는 구원이란 있을 수가 없습니다.
세례 요한이 외쳤습니다. “회개하라. 회개치 않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천국이 가까왔으니 회개하라.”
그러면 회개가 무엇입니까?
회개에 대하여 들은 많은 사람들은 회개란 눈물 흘린 경험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때 그 설교를 들을 때 나는 많은 눈물을 흘렸지. 내가 지은 죄악에 대해 참으로 많은 눈물이 나더군. 아마 그 때 회개하였나봐.”
여러분! 회개를 죄 때문에 눈물 흘린 사건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온전한 깨달음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가롯 유다는 예수님을 배반한 후에 심히 통탄하였습니다. 너무나 양심에 고통이 와서 결국 목메달고 자살하였습니다. 그는 분명히 자신이 지은 죄에 대하여 통탄했습니다. 가슴이 터지도록 울었습니다. 그러가 그가 구원 받았습니까?
주님은 분명히 그를 향하여 말씀하시길, “네가 나지 않았으면 더 좋을 뻔하였다”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그가 구원 받지 못하였음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회개에는 물론 죄악에 대한 통회가 포함됩니다. 그러나 통회와 자백만으로 회개를 온전히 이루지 못합니다.
그러면 참된 회개란 무엇입니까?
성경에서 말하는 참된 회개란 죄에 대한 인식을 가지고 하나님의 용서와 자비를 얻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필요로 하는 것, 그것이 회개입니다.
그런데 이때, 참된 회개를 통하여 예수를 만나게 되면서 놀라운 결과가 한가지 분명하게 나타납니다.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가치관의 변화입니다.
우리는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나 구원을 얻은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때 바울에게 어떤 변화가 나타났습니까? 무엇보다 그의 가치관이 바뀌는 것을 분명히 보게 됩니다.
바울은 하늘의 기쁨을 알게 되고 하나님의 경륜을 깨닫게 되면서, 특히 예수 그리스도의 무한한 사랑과 그분의 구속의 무한한 깨달아 알게 되면서 간절히 고백합니다.
“그러나 나도 육체를 신뢰할 만하며 만일 누구든지 다른 이가 육체를 신뢰할 것이 있는 줄로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하리니 나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빌 3:4-9).
바울은 엄청난 가문과 자랑스러운 명예의 사람이었습니다. 부유한 집안이었습니다. 정직한 사람이었으며 율법적으로 거의 흠이 없는 삶을 살았습니다. 심지어 그 당시 최고의 수학자인 가말리엘에게 수제자로 배운 학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나아가 젊은 공회원으로서 권력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그는 세상적으로는 아무에게도 뒤지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되면서 그의 가치관이 바뀝니다. 어떻게 바뀌었습니까? 그 동안 귀중하게 여겼던 모든 것들이 배설물로 여겨지더란 말씀입니다. 한 마디로 바울의 가치관이 변화한 것입니다.
오늘 야고보서의 본문은 가치관의 변화를 의미합니다.
가난한 자들에게 말합니다.
세상적인 가치관으로 보면, 돈이 없는 것이 서럽고 가난한 것이 부끄럽지만,
그러나 만일 너희가 그리스도를 얻었으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는 모든 것을 소유한 가장 큰 부자라는 것입니다.
또한 신분도 이미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따라서 예수 안에서 “자기의 높음”, 곧 하나님의 아들이 된 점을 자랑하고 긍지를 가지라는 것입니다
반면에, 세상에서 부요하고, 권력이 있고, 인기가 있는 자들!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의 것에 비하면, 이 땅의 모든 영광과 자랑은 잠깐 있다 없어지는 안개와 같다는 사실을 깨달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것을 어리석게 자랑하거나, 세상의 것을 의지하지 말고,
하늘 나라의 보화 앞에서 자신 소유가 별 것 아니다라는 생각을 하며 겸손하게 살라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러한 바른 가치관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야고보서 1장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영원한 하늘 나라의 면류관을 주시기 위하여 우리에게 허락되는 시험을 우리는 결단코 이해할 수 없게 됩니다. 우리의 가치관이 하늘 나라에 속한 것들이 아닐 때, 우리는 우리에게 닦치는 고난에 대하여 바르게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 의하여 천국의 가치관을 가지게 된 사람들은, 그제서야 고난으로 인하여 얻게 될 천국의 축복들, 곧, 인내의 열매, 나아가 주님을 닮아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사람이 되는 영광을 보게 되면서, 고난과 가난 속에서도 즐거워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높아짐에 대하여 자랑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3장에는 천국 비유가 많은데 그 중 한 비유도 천국을 발견한 구원 받은 자들에 관한 뚜렷한 가치관의 변화를 증거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13장 44-46절을 봅시다.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발견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사느니라.”
이 세상에서 자신의 모든 것들을 투자하여 천국의 진주를 샀다는 말씀입니다. 이들이 바로 천국을 발견한 자들이요 구원받는 자들인 것입니다.
이렇게 가치관이 변한 자들을 성경은 그리스도인들이요, 참 믿음을 소유한 사람들이라고 말합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나라를 발견하고 만지고 체험한 사람들! 그들은 사도 바울처럼, 더 이상 이 세상이 목표가 아닙니다. 그 대신 하나님의 영원한 나라와 거룩한 영생이 목표가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경은 그리스도인들임에도 불구하고 가치관이 다시 세상으로 돌아갈 수 있음을 경고합니다. 그래서 그들의 가치관이 천국과 주님이 아니라 다시 자꾸 세상 가치관을 따르려 할 때, 성경은 이를 우상 숭배라고 경고하며 심지어 영적 음행이라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간음한 여인들아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됨을 알지 못하느냐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이니라”(약 4:4).
그러므로 조심하며 경계하며 깨어있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가치관이 바뀌지 않은 상태에서의 신앙 생활은 기가 막히게 간교한 우상 숭배이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가치관이 바뀌지 않은 가운데 기도를 열심히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열심히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치관이 변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여전히 세상에 속한 것을 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단지 자신의 간교한 욕심을 위하여 하나님의 도움과 능력이 필요한 뿐입니다. 즉, 가치관이 바뀌지 않는 자는 자신도 모르게 이 땅에 속한 것들, 썩어질 것들을 더 많이 갖기 위하여 주님을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마치 아라비안 나이트의 소년이 마왕 지니를 필요로 하는 것처럼, 가치관이 바뀌지 않는 교인들은 하나님을 찾되 마왕 지니처럼 자신의 부하가 되어 이 세상의 좋은 것들을 늘 제공할 전능자를 찾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신앙 생활은 참일 수 없습니다. 이들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요구대로 해 주지 않고 오히려 고난을 주시면 그때 신앙을 저버리게 되는 거짓 믿음의 사람들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 7:23).
바울이 선포합니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갈 6:7-8).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세상적 가치관을 갖고 살아간 인생을 말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삶의 종말은, 자기의 우상을 위하여 사는 삶으로서 그 모든 결과는 허무함이요, 부끄러움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세상적 가치관으로 사는 삶은 썩을 것을 거둘 것이요 그 인생이 헛수고가 될 것을 경고하는 내용입니다.
그러나 영생을 알고, 영원한 나라를 목표로 주님을 위하여 산 결과는 영생이요, 영광이요, 썩지 아니하는 영원한 것으로 거둘 것입니다. 곧, 성령의 열매입니다. 이는 하나님 나라의 가치관을 갖고 살아간 인생의 종말인 것입니다.
주께서 말씀하십니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요일 2:15-17).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의 자랑이 무엇입니까?
자랑과 사랑은 함께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곧, 어떤 사람이 자랑하고 있는 것은 바로 그 사람의 가치관이요 그것을 사랑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따라서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이란 주님을 사랑하고 자랑하는 자들입니다.
“기록된 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라”(고전 1:31).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갈 6:14).
주 안에서 바른 신앙적 가치관을 소유하길 축원합니다. 주 예수님은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값을 치르기까지 사랑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독생하신 아들까지 우리에게 다 주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그분들이 누구입니까? 이 우주의 창조주시며 영원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주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사 영원한 지옥 심판에서 구원하신 것입니다.
더불어 감사한 것은, 하나님께서는 진정으로 가치관이 바뀐 자들에게 세상에 있는 많은 축복들도 덤으로 더하신다는 사실입니다. 마치 솔로몬이 하나님께 자신들의 백성의 공의를 위하여 지혜를 구하였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지혜 뿐만 아니라 명예와 재물과 권세를 주셨던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참된 하늘의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는 자들에게 이 세상에서 필요한 모든 것들을 충만하게 제공하시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8장은 우리 좋으신 예수님의 약속이 담겨 있습니다.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집이나 아내나 형제나 부모나 자녀를 버린 자는 현세에 여러 배를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하시니라”(눅 18:29-30).
“현세에 여러 배를 받고…”.
사랑하는 여러분!
바른 가치관을 소유한 자에게 인생의 고난은 이제 즐거움입니다. 왜냐하면 영원하신 주님을 더욱 찾고 소유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주님을 소유하면 이 우주의 가장 좋은 것들을 다 소유한 것이 됩니다. 그 이유는 가장 선하고 아름답고 좋은 것들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다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지혜, 지식, 공의, 은혜, 평강, 그리고 모든 선한 것들의 풍요함이 다 예수님 안에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우리의 믿음의 눈이 열려 주님의 나라의 가치를 발견하고, 우리의 삶의 가치관이 변화되길 바랍니다. 그래서 낮은 형제는 자기의 높음을 자랑하고, 부한 형제는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하는, 진정한 그리스도의 삶이 되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스데반 황
(그리스도의 보혈 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