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준 ‘동의보감’ (이철호 저)을 읽고/박혜숙
입동이 지나니 단풍 빛깔이 더욱 곱다. 하늘하늘 떨어지는 낙엽을 쫓아가는 나에게, 할머니 뭐하느냐고 해서 이걸 잡아 정원이 볼거리 빨리 낫게 해달라고 빌면 소원이 이루어진대서. 정원도 뛰어다녀보지만 쉽게 잡히지 않는다. 항아리 손님이라고 부르던, 잉크 빛깔로 턱수염을 두른 아이들이 학급에 반이 되었던 그 전염병 때문에 나와 일주일 동안 어린이집도 못 가고 고생 중이다.
오후가 되자 귀가 아프다고 울고 목이 부어서 음식도 잘 못 삼킨다. 약 먹어야 하니까 조금 먹자고 달래며 병에 대한 상식이 부족한 내가 답답하다. 얼마 전 『허준 동의보감』 3권을 읽었다. 이철호 저자의 장편다큐멘터리로 한의학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사람, 한의학도, 교수들, 나처럼 의학상식이 부족한 일반인들을 위해 평생 한의사를 지낸 명의인 그가 심혈을 기울여 쓴 책이다.
오래 전에 이은성의 소설 『동의보감』을 읽었고, 그를 바탕으로 한 MBC 전광렬이 허준으로 나온 드라마와, KBS 서인석이 주인공으로 나온 드라마를 보며 감명을 받았는데 그곳엔 허구가 많았다. 이제 이철호 작가가 쓴 『태양인 이제마』처럼 사실에 입각한 드라마가 나오고, 많은 독자가 보아야 편견을 고칠 수 있다.
동양의학의 경전, 국제적 의서인 『동의보감』이 이철호 한의사가 국보로 지정된 『동의보감』과 《선조실록》 《광해군일기》 등 수많은 자료와 신문기사 등을 수없이 읽고 비교 검토한 후 필자의 판단과 한의학 지식, 오랜 임상경험 등을 더하여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근거를 밝혀가며 쓴 책이다.
허준이 서자로 태어나 선조와 광해군의 수의가 되기까지 겪었던 고초는 이루 말할 수 없었는데, 그가 양반 가문에서 천민으로 전락한 이유에 대해선 이 책을 통해 처음 알았다. 단종복위운동을 하다 사육신이 된 이개의 매부인 허조는 허준 선조로 거사 동지로 체포되게 되자 자결했고, 유성원, 이개, 허조 등의 땅은 공신이며 도승지였던 한명회에게 준다는 기록이 《세조실록》에 나와 있다.
허준의 집안은 하루아침에 노비로 전락하여 비참한 생활을 하면서도 꿈을 잃지 않고 훌륭한 의술을 정진시켰고 의서를 많이 썼다. 그의 후손 허임도 《침구경험방》을 쓰며 일생동안 고심한 것을 적어 병을 고치고 생명을 살리는데 보탬이 되고자 했는데 모든 의서를 쓴 필자들의 한결같은 마음이다.
가을이 깊어가고 있던 1598년(선조 31년) 9월 22일, 선조가 임진왜란으로 상심이 심해 소화불량, 눈, 귀, 허리, 다리 등 온몸이 아프고 피로했다. 가을의 한랭한 기운은 예나 지금이나 몸을 부실하게 만든다. 임금을 위해 최고의 의사들이 포진하여 치료를 해도 온몸 안 아픈 데가 없었던 선조를 생각하며 우리를 돌아본다.
가을에서 겨울로 들어서는 환절기로 손녀의 볼거리를 비롯해 아픈 사람들이 많다. 남편도 허리 협착증이 심해 시술로 막힌 곳을 뚫고 물리, 충격파, 견인치료 등을 받지만 개운치가 않아 아프면 진통제 먹어가며 그럭저럭 살아가고 있다. 내가 하는 아쿠아 바이크도 1시간을 물속에서 자전거를 타는 것인데, 치료 목적으로 나온 것을 운동으로 접목했다. 다들 허리 무릎이 아파 운동한다.
드디어 1598년 11월 이순신이 이끄는 조선 수군이 벌인 노량해전을 마지막으로 7년의 왜란은 조국과 백성을 위해 목숨을 바쳐 종지부를 찍는다. 이순신은 정1품 우의정으로 1등공신이 되었고, 인조는 충무(忠武)란 시호를 내린다. 그 후 신분질서에도 변화가 생겨 재정적으로 어려워 돈이나 곡식을 받고 서얼 상민들의 신분을 상승시켜 그 수가 급격히 줄었다.
난세에 영웅이 난다고 전쟁을 예지했던 이율곡, 전쟁 당시 유성룡, 이항복, 이덕형 이공기 등의 충성심으로 임진왜란 정유재란은 승리한 전쟁이 되었고 국방의 중요성과 애국심도 고취되었다. 세상사는 최악의 상황에서도 건져 올린 것들이 존재함을 보며 그래서 세상은 살만하고 아무리 어려움이 닥쳐도 이겨낼 수 있음을 깨닫는다.
그 후, 선조는 의인왕후 박 씨를 잃고 우울해 허준에게 궁궐을 떠나 어디론가 다녀오고 싶다고 말한다. 허준은 가을은 여름 내내 한껏 올라왔던 기운이 땅으로 돌아가는 때, 양인 남자에게서 음인 여자에게로 돌아가는 남자의 계절이다. 서늘한 기운은 봄과 여름에 솟은 양기를 수령 저장해둔다며 산양산삼을 주재료로 탕약을 올린다.
여성들도 부끄러움이 아픔보다 커 진찰을 못 받고 죽어가던 병폐를 없애려 중종 땐 어 의녀로 대장금이 왕후와 비빈들 진찰을 했다. 1600년 수의로 오랫동안 선조를 지키던 양예수가 병으로 세상을 떠난다. 드라마에선 그를 부정적으로 그렸는데 허구적 기법이 사람들에겐 부정적으로 강하게 남아 있어 다큐멘터리로 사실적 접근이 되길 바란다.
그를 이어 수의가 된 허준은 선조 34년 정헌대부 지충추부사에 이른다. 광해군의 두창을 치료하며 어의가 된 그는 광해군 때까지 의술을 펼치며 왕의 가족까지 돌보았고, 전염병이 창궐하면 현장에 가서 지휘하고 여러 의술을 꾀하여 백성들을 병마로부터 지켜냈다.
손녀가 귀가 아프다고 비명을 지를 때 내가 할 수 있었던 것은 인터넷에서 볼거리 증상을 찾아 목과 귀가 아프고 붓는데 1~2일이면 가라안기 시작한다는 말을 보며 병원에서 준 약을 먹이는 것이었다. 허준 동의보감 3권은 의학 상식을 넓히고 건강을 돌보는데 기여한 바가 크다.
많은 사람들이 읽으며 고전 『동의보감』을 사실대로 이해하고 삶의 자양분으로 쓰면 좋겠다. 『태양인 이제마』처럼 이 책도 방영되어 허 준의 출생지가 산청이 아닌 것도, 과거를 보지 않고 특채된 것, 유의태가 스승이 아닌 것 등 허구적 구성으로 사실로 잘못 각인된 부분들이 제대로 정비되어 동의보감이 우리들의 건강을 책임지는 자양분으로 이어가길 고대한다.
<참고> 이철호 『허준 동의보감』 3권
향미 한의원 한의사 ‘내가 한의사가 된 이유 - 소설 동의보감을 읽고’
이철호 ‘체질대로 삽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