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곡폭포에서.. 2019.7.6.토.
문배마을에 핀 원추리꽃
2019.7.5.금~6.토
둘이 떠난 1박2일 기행
춘천기행2- 등선폭포ㆍ구곡폭포ㆍ문배마을
7.6.토
전날 남이섬 관광을 마치고
우리 애마는 다음날 일정으로 잡은 강촌 구곡폭포를 향해 내달렸다.
구곡폭포 주차장 바로아래 숙소부터 잡아두고 저녁 식사전에
그 인근 거리(5km)에 있는 등선폭포부터 다녀 온 뒤에 저녁식사 예정이었다.
그 때가 오후 5시경이지만 낮이 길어 훤해 다녀 오는데 무리가 없었다.
어디를 가든 오랜 가뭄으로 계곡에 물이 말라 기대는 하지않고
그냥 다녀오기로 했다.
등선폭포 주차장엔 주차요원이 퇴근한 시간이라 주차비 없이 주차시켰다.
등선폭포는 주차장 초입에서 15분정도 도보로 협곡을 지나 오를 수 있어
어둡기 전에 여유롭게 다녀올 수 있었다. 그 광경들을 볼까요?
저 앞으로 등선폭포 안내판 화살표가 보인다.
삼악산 등선 폭포는 강촌역에서 5km의 근거리에 있고,
길에서 약 15분정도 협곡을 지나 철계단으로 오르면 된다.
등선폭포
삼악산 성지..잘 안보여 옮김
이 산 정상 능선을 따라 옛 산성이 있다. 삼국시대 이전에 맥국이 쌓은 성지라
하기도 하고, 한때 철원에 도읍을 정하고 이 일대에 세력을 뻗치던 후삼국시대의
궁예가 쌓은 성이라고 전하기도 한다.
뒤로 북한강의 거친 물결이 놓이고, 앞에는 서울로 통하는 석파령 고개길이
놓인 교통의 요충지대로 삼악산의 험준한 지형을 이용한 이 산성은 삼악산의
험준한 봉우리와 봉우리를 연결하는 능선을 따라 동서로 길게 놓여 있다.
유래는 알 수 없으나 아득한 먼 옛날, 이 고장 삶의 터전을 지키려는
의지가 담긴 고산성(古山城)이 위치한 이 산록에 이 비를 세운다.
1984. 8. 1 춘성군수
등선폭포 입구
등선폭 기념비(1957년)
登仙瀑 紀念碑(등선폭 기념비)
春州는 東都之瀛洲也라 探諸萬古에 以若秦皇漢武之權威로도
皆能熱狂求仙而嘗不能遇焉이온 況復登仙者乎아 然則吾知神仙이
不在物外而在乎山水하니 山水之勝이 常爲天地之秘藏而不自現하고
必待人借仙而著焉하나니 昔에 成侯義國- 沈侯義謙之邀仙과 嚴侯愰之仙夢이
皆堂於鳳儀昭陽之間者- 良有以也라 自春州로 西出門巖하야 渡虹橋하고
挾三山하야 轉入金剛窟則塵埃- 阻絶하고 烟霞照耀라 芙蓉이 削出하고
氷霤倒垂하니 別有天地요 果非人間也라 磵行六七里이 或鐵索石棧이고
或石+皆石層級而纔通하니 漸涾潺潺之聲하야 忽入渺渺之中則玉臺虛明하고
銀河飛落이라 接應不暇하야 登臨者- 擬如天上人而灑落之氣自不覺羽化而登하니
此乃登仙瀑也리라 昔에 道伯李圭完과 壽庭李鶴圭- 肇錫佳名하고 厥後에 李伯範益이
頗有修繕之功하고 現知事金長興이 架壑而樓하고 憑虛而閣하야 益加潤色하고
崔署長蘭洙- 又發現鐵索石棧架設하야 神秘於登仙之上者- 曰乘鶴 曰白練 曰珠簾
曰玉女 曰飛龍 凡五瀑을 謂之內登仙也-니 諸瀑之絶勝과 群仙之遊樂을 不可同日而語矣라
州之人士贊成諸公之志而刻爲紀念일세 屬善山人松隱金泳河而名且記之여널 辭不獲己하야
遂書顚末云爾
檀紀四千二百九十年丁酉 開天節(단기 4290년, 서기 1957년, 10월 3일)
發起人 高大興 口口益 梁河一 吉七峰 具仁書
* 한자
霤(낙숫물 류), 涾(솟아 넘칠 답), 潺潺(잔잔, 물흐르는 소리), 阻(험할 조),
石+皆(옥 같은 검은 돌 개)
(해석문)
춘주는 관동의 도읍들 가운데서도 영주이다.
이를 머나먼 옛날에서 뒤져보건대 진의 시황이나 한의 무제와 같은 권력과
위세로도 모두 선인(仙人)을 찾는 데 열광하기는 하였으나 만나볼 수는
없었던 것이니, 하물며 다시 등선한다는 것은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리하여 나는 신선이 물외(物外)에 있지 아니하며 산수에 있고, 산수의
승지(勝地)는 언제나 천지의 비장(秘藏)이라 저절로 나타나지 않고 반드시
사람을 기다리고 신선을 빌려서야 드러나게 됨을 알게 되었다. 예전 성의국,
심의겸이란 분들의 요선당과 엄황이란 분의 선몽당(仙夢堂)이 모두
봉의산과 소양강 사이에 당으로 지어졌던 것도 확실히 까닭이 있었던 것이다.
춘주로부터 서쪽으로 문암(門巖)을 나와 홍교(虹橋)를 건너고 세 개의
산을 끼고 돌아 금강굴로 들어가면, 세상의 띠끌과 먼지가 막혀 끊기고
연하(烟霞)가 밝게 비치며 빛난다. 부용이 깎아놓은 듯 출현하고 얼음처럼
찬 물방울이 거꾸로 드리우니, 딴 세상에 와 있는 듯 과연 인간의 세상이 아니다.
산골짝의 좁은 길을 육칠 리 가노라면 간혹 쇠줄에 돌 벼랑길이요, 혹은 개석
(石+皆石: 옥 같은 검은 돌)이 층급을 이루고 있어 가까스로 통할 정도이다.
점차 물 흐르는 소리가 넘쳐날 듯 들려오며 문득 아득해지는 지경으로
들어가게 되니, 옥대(玉臺)는 텅 비어 밝은데 은하가 날리며 떨어진다.
마주하며 응대할 겨를조차 내지 못하는 가운데, 올라와 자리한 자는 짐짓
천상인처럼 쇄락한 기운에 스스로 우화(羽化)하여 올라가는 듯함을 깨달지
못하니, 이것이 곧 등선폭이다.
예전 도백이던 이규완과 수정 이학규가 처음으로 가명(佳名)을 지어주었고,
그 뒤로 도백 이범익에게도 자못 수선(修繕)한 공로가 있었으며,
현재의 지사 김장흥이 골짜기를 건너질러 루(樓)를 짓고 허공에 기대 각(閣)을
지으며 더욱 윤색을 더하였고 서장 최난수가 또 쇠줄과 돌 벼랑길을
가설하는 성과를 보였다.
등선 윗쪽에 신비롭게 비장되어 있는 것들을 '승학'이라 하고, '백련'이라 하며,
'주렴'이라 하고, '옥녀'라 하며, '비룡'이라 일컫는데, 모두 다섯인 폭포들을 일러
'내등선(內登仙)'이라 하였다.
여러 폭포들의 비할 데 없는 승경(勝景)과 뭇 신선들이 노닐며 즐김은 같은 날에
다 말하지 못하겠다. 춘주의 인사들이 여러 공들의 뜻을 도와 보태며 이를 새겨서
기념이 되게 함에 선산(善山) 사람 송은 김영하(松隱 金泳河)에게 위촉하여
그 이름을 적고 또 기문을 지으라고 하거늘, 사양하였으나 말이 받아들여지지 않아
마침내 전말(顚末)을 쓴다 하였다.
단기 4290년(1957) 정유 개천절에
발기인 고대흥, 口口익, 양하일, 길칠봉, 구인서
참고
옥대(玉臺,하늘,옥황상제), 이규완(1862~1946, 강원도관찰사),
이학규(강원도참여관), 이범익(1883~?,강원도지사),
김장흥(1909~1958,경찰서장, 강원도지사), 최난수(경찰서장),
김영하(1879~?,춘천의 명승지 시문을 많이 남김, 壽春誌 편저)
* 원문과 해석문은 (사)춘천역사문화연구회에서 인용하였습니다.
등선폭포 입구에서 등선폭포까지를 금강굴이라 한다.
등선 제1폭포
물이 없어 긴가민가 했는데 등선 제1폭포 맞다고 한다.
그 요란했던 폭포수가 가뭄으로 말라 초라한 폭포가 되어 버렸군!
등선 제2폭포
계단 더 오르지 않고 다시 발길 돌려 하산이다.
'내등선(內登仙) 폭포' 글자가 바위에 새겨져 있다.
등선 윗쪽에 신비롭게 비장되어 있는 것들을 '승학'이라 하고, '백련'이라 하며,
'주렴'이라 하고, '옥녀'라 하며, '비룡'이라 일컫는데, 모두 다섯인 폭포들을 일러
'내등선(內登仙)'이라 하였다.
하루 관람을 마치고 강촌 식당에 들리니 아기자기한 꽃들이 우릴 영접한다.
실내에서 바라 본 창밖 뷰가 참 예쁘고 시골스럽고 시원하다.
명태해장국으로 간단히 석식을 해결하고 나오니 건너편에서
해바라기 한 송이가 보기좋은 환한 얼굴로 제 곁으로 오라한다.
올해 처음 보는 키가 훌쩍 큰 잘난 해바라기이다.
이렇게 식사후 해바라기와 놀다가 예약해 둔 숙소로 이동 하룻밤 잘 보낸다.
숙소는 아래에 많지만 혹여 구곡폭포 부근엔 없을까 가보니 바로 주차장아래
모텔과 민박 두 군데가 있었다. 주차장까지 도보 5분이면 닿아 구곡폭포 오를때
차를 두고 그냥 걸어가면 주차비 2,000냥은 아길 수 있었다.
바로 보이는 하얀 건물이 모텔이고, 그 앞 좁은 계곡 건너가 민박이다.
산행을 할땐 이렇게 스틱을 이용하면 넘어짐을 방지할 수 있고 힘도 덜 들어
늘 애용하는 20년도 더 된 나의 산행 애장품인 것을.
구곡폭포 주차장
계곡에 물이 말라 마른 계곡 보기만 해도 내 목이 말라진다.
여기서 구곡폭포까진 970m 15분 소요이고, 문배마을까진 1840m 로 40분 소요이다.
구곡혼(九曲魂)
꿈,끼,꾀,깡,꾼,꼴,깔,끝 의 쌍기역(ㄲ)
아홉가지 구곡혼(九曲魂)을 구곡폭포에서 담아 가실 수 있답니다.
추억의 음식점이다. 예전 함께 한 셋, 절친했던 직장동료이자 동무였던
옥영, 그리고 후배 명자 그때 그 그림이 아스라이 떠 오른다.
그 땐 겨울이었지. 오리털 코트를 걸치고 기차를 타고 와 하얀 구곡폭포 빙벽을
보고나서 마주 앉은 그 식당이지. 지금은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젊은 그때가
모두가 그리움이다. 소담소담 카페
첫번째 '꿈' 희망을 찾아서
구곡폭포까지 계곡을 끼고 걷는 편안한 길, 계곡에 물이 좀 있군!
두번째 끼..재능의 발견
세번째 '꾀' 일을 잘 해결하는 지혜
네번째 '깡' 마음에서 솟구치는 용기
다섯번째 '꾼' 한 분야의 최고봉
여섯번째 '끈' 삶속에서 맺어지는 관계
일곱번째 '꼴' 누군가에게 보여지는 모습
솟대
솟대는 마을 사람들이 복을 비는 자연물 가운데 하나로,
마을의 안전과 풍년을 기원하는 뜻으로 세우는 긴 장대를 말한다.
‘ 솟대’라는 이름은 삼한 시대의 ‘소도’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하는데 소도는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신성한 지역으로, 죄인이 이곳에 도망쳐오면 그를
돌려보내거나 잡아갈 수 없었다고 한다.
신성한 지역을 표시하던 솟대는
언제부터인가 풍요를 기원하는 상징물로 세워지기 시작했다.
솟대의 끝에는 오리나 기러기 등이 오르는데, 오리나 기러기 등은 물을 좋아하는
새이므로 물이 풍족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고 한다. 우리 조상들이 벼농사를
주로 지었기 때문에 이러한 소망을 담은 것이다.
새들이 신의 심부름꾼이라는 생각도 있었다. 높은 장대 위에 있는 새들이
인간 세상을 살펴보고 그들의 어려움을 신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 다음백과에서 옮김
여덟번째 '깔' 빛깔이나 맵시가 곱고 산뜻함
구곡폭포
가물어서 실비처럼 폭포가 내려 안스럽다.
오랜 가뭄으로 폭포가 제 구실을 못하고 있다.
아홉번째 '끝' 여정의 끝은 새로운 시작
구곡폭포에서 하산이다.
문배마을로 산길을 오른다.
저 위로 초로의 부부한팀이 앞서 오른다.
문배마을 초입 식당에서 같이 식사를 하게 된 분들이다.
춘천에서 토요일 요시간에 와서 동료부부와 만나 아침식사를 한다고
주인장이 우리에게 살짝 귀띔이다. 직접 기른 채소가 신선해서 좋다며..
헐떡 헐떡 숨을 몰아쉬며 오른다. 땀이 뒤범벅이다. 쉬어가면 되니까 그래도 좋았다.
구곡폭포에서 500m 올라왔는데, 문배마을까진 산 오름길로 650m 남았다.
어! 웬 까치수염꽃 한송이가..
내 발목을 잡는다. 그덕에 호흡을 정리하며 잠깐 쉼이다.
휴우~ 고지까지 다 올라왔다. 이젠 문배마을까지는 내리막 길이다.
마을로 내려가면서 자빠진 썩은 나무도 만난다. 결국 흙이 될 썩은 나무다.
원추리꽃
달맞이꽃
우측으로 마을을 접어 들면서 첫집이다. 아침식사를 여기서 하기로 하곤
마을을 둘러보기 위해 지나친다.
아기똥풀꽃
금잔화 한송이 보기좋게 피어 있다.
금계국
백일홍
예쁜 접시꽃
아잘리아꽃
붓꽃
베츄니아꽃
소금잠자리에 날아 오더니 포즈를 취해 준다. 그리곤 휙 어디론가 날아가 버렸다.
문배마을 첫째 식당으로 와서 산채 비빔밥을 아침으로 해결한다.
전국이 폭염특보가 내려진 날임에도 여긴 얼마나 시원한지 한참 있으니 몸이 추웠다.
불루베리
산딸기
여긴 족구장 저 아래가 식당이다.
나비도 포즈를 취해 주었다.
관리사무소까지 2.6km를 내려가야 한다.
내리막길은 헐떡숨이 오지 않아 신속하게 내려갈 수 있었다.
오를때보다 반정도의 시간이 단축이다. 20여분.
내려 오다가 그네가 있어 잠시 숨을 돌린다.
구곡폭포 오르는 둘쨋날은
새벽일찍 6시30분 숙소에서 출발하니 문배마을에서 아침식사를 할 수가 있었다.
무공해 채소의 비빔밥을 맛있게 먹곤 한참 쉬다가 다시 구곡폭포 주차장으로
내려와 서울 홈으로 내쳐 달리니 오후 1시30분 대낮에 홈 도착이다.
.
새벽 일찍 출발로 구곡폭포, 문배마을까지 산행 왕복 6km여를 충분히
즐기다 보니 몸은 기진맥진되어 다른관광지 모두 접고 곧바로 왔다.
폭염인 줄도 모르고 또 흘쩍 떠난 1박 기행이었다.
스마트폰에서 폭염 경보를 알게 되었으나 가는 곳마다 숲이 우거져
폭염을 모르고 시원히 잘 지내고 왔다.
다만 가는 곳 마다 오랜 가뭄으로 계곡의 물과 폭포수가 신통치 않아
시원한 원형의 모습을 만끽하지 못함이 아쉬움이랄까
올 여름 비가 많이 내리면 그때 다시 구곡폭포를 다녀오고 싶단 생각을 했다.
그 뜨거운 아스팔트를 달리며 막힘없이 내달려 와 좋았던 기행 마무리다.
함께 나눌 수 있는 기쁨이 있습니다.
쉬어 가세요. 감사합니다.
용문사 약수 낑낑 짊어지고 왔지요.
약숫물 한바가지로 더위 식히세요.
자아~ 요기요.
사진ㆍ글
찬란한 빛/김영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