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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로의 귀환과 나라의 재건
이 모든 땅이 폐허가 되어 놀랄 일이 될 것이며 이 민족들은 칠십년 동안 바벨론의 왕을 섬기리라(렘 25:10)
메대 족속 아하수에로의 아들 다리오가 갈대아 나라 왕으로 세움을 받던 첫 해 곧 그 통치 원년에 나 다니엘이 책을 통해 여호와께서 말씀으로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알려 주신 그 연수를 깨달았나니 곧 예루살렘의 황폐함이 칠십 년만에 그치리라 하신 것이니라(단 9:1,2)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레미야의 예언대로 바벨론 포로 생활 70년이 차서 풀려납니다. 바벨론이 페르시아에게 망하고, 고레스 칙령이 발표된 해가 다리오 왕 2년, 곧 주전 537년입니다. 예레미야의 예언은 이스라엘 민족이 바벨론 왕을 70년간 섬긴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주전 605년에 잡혀가서 바벨론의 패망으로 처음 귀환이 시작된 해는 주전 537년입니다.
70년 포로 기간은 포로로 잡혀간 주전 605년부터 스룰바벨 성전을 짓기 시작한 536년까지 70년으로 보기도 하고, 예루살렘 성전이 불타버린 주전 586년부터 스룹바벨 성전이 완공된 주전 516년까지 70년을 보기도 합니다. 예레미야서 25:10에서 바벨론을 70년간 섬긴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70년 포로의 기간은 주전 605년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게 잡혀가기 시작하여 바벨론이 패망한 주전 537년까지 약 70년이 더 정확할 것 같습니다. 그 이후 바벨론은 페르시아 왕이 통치를 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어느 기간을 말하든, 그 기간의 정확성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벨론으로 잡혀간 이유와 70년이라는 포로 기간의 구속사적 의미입니다. 70년 포로기의 이유와 기간은 7의 주기를 가진 안식년과 희년을 지키지 않아서 당한 징계입니다(대하 36:21). 곧 70 안식년과 10회 희년인 490년의 기간 동안 안식년을 70회 위반한 대가입니다. 정확하게는 주전 1102년 7회 희년 다음부터 주전 612년 17회 희년까지의 기간입니다. 안식년은 희년보다 1년 앞에 있으므로 주전 606년이 안식년이며, 다음 해인 주전 605년부터 포로로 잡혀가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알 신을 섬겨서 여호와의 계명인 안식법과 희년법을 어긴 대가를 이렇게 70년이란 기간의 의미를 부여하여 포로 생활을 하게 하고, 그 중요성을 가르쳐 줍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징계과 교육의 기간이 지나자 다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은혜를 베풀어 회복의 기회를 주십니다.
이로써 이스라엘 백성들이 70년을 채운 귀환의 역사는 고레스 칙령으로 풀려난 1차 귀환이 주전 537년, 2차가 주전 458년, 3차가 주전 445/444년이었습니다. 그들은 바벨론 포로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불타버린 솔로몬 성전부터 새로 짓고, 패망한 나라를 다시 세우게 됩니다.
여기서 1차 귀환의 지도자는 앞에서 살펴본 스룹바벨과 예수아(여호수아) 입니다(학 1:1). 스룹바벨은 끊어져 있는 다윗의 왕가와 사가의 족보와 기업을 이어받아 다시 새로운 계보를 세우고, 이어준 사람입니다. 2차 포로 귀환의 지도자는 에스라이며, 3차 귀환의 지도자는 느헤미야입니다.
그러므로 포로 귀환과 나라의 재건 시기에는 이스라엘에서 왕이 없는 사회이므로 세 사람의 지도자가 주축이 되어서 백성들의 영적인 지도와 행정적인 사무를 담당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스룹바벨과 예수아는 선지자 학계와 함께 20여 년간 성전을 지었고, 에스라는 지은 성전에서 율법 교육을 담당했습니다. 마지막 귀환자 느헤미야는 성전을 지켜줄 성벽을 재건하고, 행정과 경제를 개혁했습니다. 그리고 이 포로 귀환과 성전 재건의 시기의 선지자는 학개, 스가랴, 말라기가 활동을 했습니다. 이들의 활동은 침묵의 기간이라고 말하는 신구약 중간기, 주전 400년경까지 계속됩니다.
그리고 포로의 귀환과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한 역사는 희년법이 정해 놓은 희년 주기와 다니엘의 70 이레가 예정한 구속사를 따라 진행되고 있는데, 그 기간이 어떻게 성취되어 가고 있는지를 살펴보고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스룹바벨 성전의 건축과 학개의 독려
바사 왕 고레스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을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게 하시려고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그가 온 나라에 공포도 하고 조서도 내려 이르되(스 1:1)
여호와께서 스알디엘의 아들 유다 총독 스룹바벨의 마음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마음과 남은 모든 백성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학 1:14)
주전 537년 고레스 칙령으로 1차 귀환한 스룹바벨은 성전부터 짓습니다. 귀환 목적이 성전을 건축하는 것이었습니다. 무너진 공동체를 다시 세우는 것은 먼저 하나님께 나아가야 하고, 그러려면 성전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이 일에 앞장 선 지도자가 스룹바벨과 예수아(여호수아) 입니다. 스룹바벨은 총독으로 행정을 맡고, 예수아는 제사장으로서 자기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포로로 잡혀간 사람들은 이스라엘에서 태어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은 죄와 직접 관련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성전을 짓는 데 쓰임을 받은 지도자들은 포로로 잡혀간 사람들이 아니고, 바벨론에 태어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포로시대 이후 새로운 시대는 포로기 2세대인 새 사람을 불러서 성전을 짓습니다. 하나님은 포로시대 초기부터 스룹바벨에게는 “바벨론에서 태어난 사람”으로 이름을 지어주고 준비해 오셨습니다. 출애굽 당시 약속의 땅 진입에도 구세대가 아닌 광야 2세대가 들어간 것과 맥락이 비슷합니다. 1차 포로 귀환의 인솔자 예수아도 가나안 진입 당시의 지도자 여호수아와 이름이 같습니다
그런데 성전 건축은 사마리아인들의 방해로 쉽지가 않습니다(스 4:4~6). 북이스라엘 사마리아인들은 나라가 분열된 이후에도 외세의 의존하여 혼합주의로 나아갔고, 이것이 성전 건축에도 방해 요소가 되었습니다. 성전 건축은 공사를 시작하여 16년이나 중단되고 말았습니다. 이때 하나님은 선지자 학개를 보내어 백성들에게 회개하게 합니다(학 1:9). 그리고 백성들을 위로합니다. 이에는 선지자 스가랴도 함께 예언 활동을 하며 도왔습니다.
학개의 회개와 위로를 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시 일어나서 성전 건축을 재개하였고, 이로써 성전은 착공된 지 20년 후, 주전 616년에 완공되었습니다.
에스라의 율법 교육과 느헤미야의 성벽 재건과 개혁
에스라가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 준행하며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하였었더라(스 7:8)
주전 458년 포로 2차 귀환에서 지도자는 학사 에스라입니다(스 7:7). 이 연도는 종교력(니산 기준)으로 계산하면 주전 457년이 되고, 생활력(티스리 기준)으로 계산하면 주전 458년이 됩니다. 에스라는 제사장 스라야(왕하 25:18)의 아들이며, 새로 지은 스룹바벨 성전에서 백성들에게 영성과 생활에 필요한 율법을 가르쳤습니다(스 7:10). 에스라는 제사장이므로 백성들에게 기도로써 죄를 자백하게 하고(스 10:1), 율법의 준행을 가르치고, 신앙생활에 필요한 종교개혁을 했습니다.
주전 445/444년 포로 3차로 귀환한 느헤미야는 하가랴의 아들이며, 총독으로 성벽을 건축했습니다. 성벽 공사에도 도비야와 같은 방해꾼이 있었지만, 총독으로서 탁월한 행정과 조직, 역활 분담으로 난공사이었던 성벽 재건을 52일만에 완성했습니다. 그는 애국심이 강했고, 경건과 겸손을 겸비한 지도자였습니다. 느헤미야는 행정가로서 건축을 담당하고, 율법 교육은 제사장 아들인 에스라가 맡습니다. 그러므로 에스라는 지은 스룹바벨 성전을 중심으로 하여 율법을 가르쳤고, 느헤미야는 스루바벨 성전의 마무리 공사에 해당하는 성벽을 재건했습니다.
이렇게 돌아온 백성들이 율법을 공부하여 영성 훈련이 되어가는 중이며, 성벽 공사도 마쳤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살아야 할 생업에는 여전히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느헤미야는 총독으로서 해야 할 경제를 개혁합니다. 어쩌면 이 개혁은 느헤미야에게 성벽을 쌓는 공사나 당면한 종교개혁보다 더 어려운 과제일 수 있습니다. 경제개혁은 물질 문제로 서로 이해관계가 얽혀있어서 종교개혁보다 더 강한 조직 내부의 갈등과 저항이 따르기 때문입니다.
그런즉 너희는 오늘이라도 그 밭과 포도원과 감람원과 집이며 취한 바 돈이나 곡식이나 새 포도주나 기름의 백분의 일을 돌려보내라 하였더니(느 5:11)
백성들은 토지를 가졌어도 가뭄으로 양식이 부족했고, 페르시아에 바칠 조공(세금)을 내기 위해서도 토지를 저당잡혀야 했습니다. 이미 자녀들이 종으로 팔려갔고, 밭과 포도원도 팔리어서(저당잡혀서) 남의 수중에 있지만, 속량할 힘이 없습니다(느 5:6). 느헤미야는 백성들의 이런 부르짖음을 듣고, 크게 노하며 귀인과 민장들을 꾸짖습니다. 그리고 백성들을 모아서 집회를 열고, 그 집회에서 형제들을 풀어주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민장들은 다스리는 자를 말하고, 귀인은 유다의 백성들, 곧 동족의 몸과 땅을 저당잡고 돈을 빌려준 부자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느헤미야는 그들에게 이방인에게 팔렸을 때 힘을 다하여 속량을 하였거늘 너희들은 동족을 팔고자 하며, 더구나 우리 손에 팔리게 하느냐고 말합니다. 그들은 이런 말에 즉각 응답하지 않습니다. 그러자 느헤미야의 더 강한 요청을 하게 되고, 결국 민장과 귀인들이 응할 수밖에 없어서 경제개혁은 시작되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포도주와 기름의 100분의 1은 매달 내는 1%나 연간 12%에 상당하는 이자를 말합니다.
느헤미야는 백성들과 언약을 맺습니다. 아들과 딸을 종으로 부리지 말고, 안식년은 땅을 쉬게 하며, 빚은 탕감하여 여호와의 계명과 율례를 지키는 맹세를 하게 됩니다(느 9:38, 10:1,29~31).
그리고 느헤미야는 백성들에게 자신의 삶을 보여줍니다. 유다 총독으로 12년간 총독의 직분을 수행해도 녹을 먹지 않았고, 요구하지도 않았습니다. 느헤미야는 남의 땅을 취하지도 않았습니다(느 5:16). 자기 가족들은 모두 성벽 공사에 함께 했습니다. 이처럼 느헤미야는 자기의 지위를 이용하여 부를 취하지 않았고, 물질과 경제생활에서도 하나님께 충성된 삶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러한 생활을 하여 백성들에게 본을 보여주었기에 어려운 경제개혁까지 단행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느헤미야의 개혁에서 늘 종교 부분만 보거나 말합니다. 느헤미야가 행한 개혁에는 유대인과 이방인을 분리한 것, 제사장 직무를 정비한 것, 안식일 준수, 이방인과의 혼인 금지 등을 말합니다. 그런데 느헤미야에 대하여 이렇게만 보면, 느헤미야가 행한 개혁은 반만 알고, 반은 모르거나 덮어두는 것과 같습니다. 느헤미야가 행한 경제개혁 부문은 다루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에스라가 맡은 율법 교육도 다른 제사장들과는 달라 보입니다. 그 당시 백성들은 자기들이 가진 성경이 없습니다. 그래서 제사장들이 가르쳐주는 말씀만, 성경 말씀으로 알게 됩니다. 그런데 제사장들은 백성들에게 율법을 잘 가르치지 않거니와 가르쳐도 제사나 종교(신앙)에 관련된 부분만 골라서 가르칩니다. 그러나 에스라의 율법 교육은 백성들 전체를 직접 상대하여 시행하였고, 가르친 내용도 신앙에 관한 것은 물론이고, 생활에 필요한 것까지 모두 알려줍니다. 이런 율법 교육은 신앙에 관한 부분만 골라서 가르치는 오늘날의 성경 공부와도 다른 것입니다.
7월 절기와 말씀 집회
이스라엘 자손이 그 본성에 거하였너니 칠 월에 리르러 ... 모세의 율법책을 가져오기를 청하며(느 8:1) 하나님의 율법책을 낭독하고 그 뜻을 해석하여 백성으로 그 낭독하는 것 다 깨닫게 하니(느 8:8)
율법 교육은 백성들이 모두 모이는 7월 절기에 집중되는 데 이때는 안식년에 하게되는 신명기 31:10,11의 면제년 규례에 관련된 내용을 반드시 읽어야 합니다. 에스라는 7월 절기 집회에서 율법을 읽고 해석하여 깨닫게 하였는 데, 이 구절을 따라서 백성들에게 생활 문제를 해결하는 안식법과 희년법을 자세하게 알려주고 그 준행을 가르쳤을 것입니다(느 8:5~9). 백성들이 율법을 배우며 울었습니다(느 8:9).
그래서 이 안식년과 면제년 법을 어긴 자는 마음에서 찔림을 받았고, 피해자들은 말씀에서 감동을 받았을 것입니다. 또 느헤미야서 5:14~19에서 보듯이 느헤미야의 충성된 삶과 백성들을 위해 헌신한 내용들이 알려져서 자신들의 삶과 비교가 되었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바벨론에서의 70년 포로 생활이 7의 주기로 돌아오는 면제년, 안식년, 희년을 지키지 않아서 받은 징계라는 사실을 에스라의 율법 해석으로 깨달아 알았습니다(느 8:8). 그래서 7월 절기 말씀 집회는 모두가 울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에스라의 율법 교육은 사무엘이 백성들과 함께한 것과 같이 백성들이 함께하는 대중성을 가졌습니다. 이처럼 7월 절기의 집회는 백성들이 함께하여 율법을 읽고, 해석하여 전하고, 울고, 웃으며 여호와의 말씀을 배웠습니다(느 8:3,5~9).
그러나 우리는 느헤미야서를 읽더라도 그 책에 있는 종교 부분만 보거나 말하고, 에스라가 백성들과 함께했던 율법 교육과 느헤미야가 그 율법의 가르침을 따라 백성들의 생활에 필요한 경제개혁을 한 것은 전하지를 않습니다. 70년 포로기는 이런 경제 부분이 들어있는 안식년 법을 어겨서 받은 징벌임에도, 포로에서 귀환한 자들의 활동을 말하면서 종교는 강조하여 말하고, 경제는 깊게 다루지 않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접해도 경제가 나오면, 그 부분은 신앙생활과 관련이 없다면서 눈여겨보지 않습니다. 그러면 믿음이 좋아도 경제 부분은 무지하게 됩니다. 경제 부문의 무지는 시간이 가면 성경이 가르쳐 주는 희년법과 경제 관련법은 멀어지거나 잊어버리고, 사람의 탐욕을 채우기가 쉬운 바알 제도로 빠져들게 되는 것입니다.
포로 귀환기, 지도자의 활동과 7월 절기
스룹바벨의 7월 절기와 성전 공사의 준비
이스라엘 자손이 각자의 성읍에 살았더니 일곱째 달에 이르러 일제히 예루살렘에 모인지라
요사닥의 아들 예수아와 그의 형제 제사장들과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과 그의 형제들이 다 일어나...(스 3:1,2)
스룹바벨은 성전을 짓기 위해 바벨론에서 돌아온 귀환 1세대 지도자입니다. 스룹바벨이 예수아(여호수아)와 함께 백성들을 소집한 시기는 7월 절기입니다. 백성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으나 각자 자기 고향으로 가서 살았기에 스룹바벨은 7월 절기에 흩어져 있는 백성들을 불러 모읍니다. 이것은 7월 절기가 초막절 제사와 절기를 지키기 위해서이지만, 스룹바벨 성전의 공사를 위한 준비는 이때부터 시작되고 있습니다.
성경은 달력이 두 개입니다. 하나는 유월절이 들어있는 달을 1월로 하는 종교력이 있고, 다른 하나는 7월을 신년으로 하는 생활력이 있습니다. 7월 절기는 나팔절, 속량절(속죄일+속하는 날), 초막절이라는 세 가지 절기가 있습니다. 특히 7월 절기에는 안식년과 희년법을 따라 땅과 몸을 자유하게 하는 경제 의식이 있어야 하는 달입니다.
7월 절기는 원래 한 해의 농사를 다 짓고, 백성들이 함께 모여서 초막절을 지키는 안식의 시기입니다(레 23:39~44). 초막절은 하나님께 제사도 드리고, 함께 말씀도 배우고(신 31:10~13), 일주일 동안 지킵니다. 이 기간은 7일간 초막살이를 하면서 선조들이 땅이 없는 광야시대에 당해야 했던 생활의 고통을 직접 체험하는 기간입니다.
스룹바벨은 백성들을 소집할 때 유월절을 두고, 왜 초막절에 소집을 했을까요? 그 이유는 바벨론 포로의 귀환 시기와 관련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고레스 왕 2년 1월 1일 바벨론을 출발하여 예루살렘까지 오는 기간이 4개월 정도 걸리는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전을 짓는 데 필요한 인력 동원이라는 현실적 문제가 관련이 컸을 것입니다. 7월 절기는 한 해 농사가 끝이 나는 시기입니다. 그러므로 이때 초막절 행사로 모인 백성들이 성전 짓는 작업을 시작했을 것입니다(스 3:6,7).
백성들은 7월 절기부터 약 반년 동안 레바논에서 목재를 운반해 오고, 재료 준비를 마친 다음 해 2월부터 성전을 짓기 시작했습니다(스 2:8). 성전 기초석을 놓고 백성들은 예를 올렸는데 이때 젊은 층은 기뻐서 웃었고, 노년층은 솔로몬 성전을 비교하며 보잘 것 없는 성전 터를 보면서 울었습니다(스 8:12,13). 이와 같이 스룹바벨은 성전을 짓는 공사에도 백성들의 생업을 염두에 두고 소집하고, 성전을 건축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솔로몬 성전 건축은 왕이 백성들을 노역에 동원하여 이것이 남북 분단의 원인이 되기도 했습니다.
에스라와 느헤미야의 7월 절기
일곱째 달 초하루에 제사장 에스라가 율법책을 가지고 회중 앞 곧 남자나 여자나 알아들을 만한 모든 사람 앞에 이르러(느 8:2)
백성이 율법의 말씀을 듣고 다 우는지라 총독 느헤미야와 제사장 겸 학사 에스라와 백성을 가르치는 레위 사람들이 모든 백성에게 이르기를 오늘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성일이니 슬퍼하지 말며 울지 말라 하고(느 8:8,9) ... 제 칠년마다 땅을 쉬게 하고 빚을 탕감하라 하였고(느 10:31)
에스라의 7월 절기와 율법 강론
바벨론에서 귀환한 느헤미야는 학사 에스라와 함께 7월 절기에 백성들에게 말씀을 알려주는 집회를 열었습니다(느 8장 전체). 7월 절기에 남녀노소, 모든 백성이 다 수문 앞에 모여있고, 학사 에스라는 모세의 율법 책을 가져오게 합니다. 에스라가 책을 펼 때 백성들은 일어서서 말씀에 경의를 표합니다. 에스라는 백성들에게 책을 읽고, 그 뜻을 풀어서 백성들이 말씀을 듣고 깨닫게 합니다. 그러자 백성들은 이 말씀을 듣고, 뜻을 깨닫고, 감격하며 울었습니다. 그러나 느헤미야와 지도자들이 오늘은 성일이므로 울지 말라고 합니다.
이렇게 말씀 교육과 함께 초막절 행사로 초막을 짓고 일주일을 지킵니다. 성경 공부도 일주일 동안 그치지 않고 계속합니다. 이 초막절 행사를 하면서 모두 즐거워하였습니다. 특히 이런 초막절 행사는 눈의 아들 여호수아의 때부터 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백성들이 크게 즐거워했다고 합니다(느 8:17). 여호수아 때부터 이런 초막절 행사가 없었다는 말은 무슨 뜻이겠습니까?
여호수아 때는 가나안 땅 진입 초기입니다. 그러므로 초막절은 사사시대 초기부터 지키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이게 무슨 뜻일까요? 초마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반드시 지키게 되어있는 3대 명절 중에 하나입니다. 그런데 이 초막절을 지키지 않았다는 것입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초막절 절기를 지키지 않았나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러므로 초막절을 지키지 않았다는 것은 사사시대 초기부터 바벨론 포로가 귀환한 지금까지 초막절 절기를 위해서 해야 할 각종 경제 규례를 지키지 않았다는 뜻으로 보아야 합니다.
이에 대하여 모세의 율법은 신명기 31장 9절 이하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또 모세가 이 율법을 써서 여호와의 언약궤를 메는 레위 자손 제사장들과 이스라엘 모든 장로에게 주고(신 31:9)
모세가 그들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매 칠 년 끝 해 곧 면제년의 초막절에(10) 온 이스라엘이 네 하나님 여호와 앞 그가 택하신 곳에 모일 때에 이 율법을 낭독하여 온 이스라엘에게 듣게 할지니(11)
곧 백성의 남녀와 어린이와 네 성읍 안에 거류하는 타국인을 모으고 그들에게 듣고 배우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지켜 행하게 하고(12) 또 너희가 요단을 건너가서 차지할 땅에 거주할 동안에 이 말씀을 알지 못하는 그들의 자녀에게 듣고 네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게 할지니라(13)
율법을 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준 것은 백성들에게 율법을 가르치라고 준 것입니다. 그리고 이 칠년 끝 면제년은 언제입니까? 바로 7년마다 돌아오는 안식년을 말합니다. 안식년과 면제년은 성경의 생활 달력으로 새해인 7월 절기에 시작합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7월 10일 "속하는 날(속죄일, 욤 키푸림)"입니다. 신명기 15:1은 매년 7년 끝에 면제년을 지키라고 합니다. 이렇게 속하는 행사를 마치고 전국 거민에게 경제적 자유가 돌아와서 즐기며, 지키는 절기가 초막절입니다.
속하는 날은 대제사장이 1년에 한 번 지성소에 들어가서 백성들의 죄를 사하는 제사를 드립니다(레 16:15~17). 백성들은 금식하며 회개를 합니다(레 23:27). 이날은 두 마리의 염소 중 제비뽑기로 한 마리는 하나님께 제물로 드리고, 다른 한 마리는 산 채로 들판(광야)에서 자유하게 놓아줍니다(레 16:9,22). 죽은 염소는 우리가 지은 과거의 죄를 사하기 위해 희생됩니다. 그리고 다른 한 마리는 들판에서 야생으로 돌아가서 미래의 삶을 준비합니다. 나병 환자가 병에서 나을 때도 두 마리의 새를 선택하여 한 마리는 죄를 씻어내는 제물로, 다른 한 마리는 산 채로 날려 보내어 자유롭게 살게 합니다(레 14:50,53).
주) 간혹, 아사셀 염소는 절벽에서 떨어뜨려 죽게 하는 속죄의식을 치른다고 보는 자도 있으나, 두 마리 중 제비뽑기로 한 마리가 제물로 죽었으므로 다시 죽게 할 필요가 없다. 염소가 백성들의 불의를 짊어지고 간다고 하니 제물이 또 죽어야 한다는 선입감을 가질 수는 있으나 나병 환자의 정결의식에서도 한 마리는 죽고, 다른 한 마리는 살려서 자유하게 하는 것을 보면, 이것은 희생 제물로 인한 결과로 얻게 되는 자유함을 나타내는 의식이다. 과거의 죄에 대한 희생 제사는 한 번으로 족하고, 두 번 죽어야 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죄를 속한 다음 백성들은 성전을 나와서 ‘속하는 날’, 경제적으로 바로잡아야 할 의식들을 행합니다(레 25:9). 곧 ‘속하는 날(욤 키푸림)’은 경제적 안식을 주는 희년법을 준행하는 날입니다. 이 '속하는 날' 빚과 몸과 땅을 속하는(무르기 하는) 경제 의식, 곧 안식년법과 희년법의 준행을 위한 의식은 매년 돌아옵니다. 조금 더 길게는 7년마다 돌아오는 안식년이고, 더 길게는 7 안식년마다 돌아오는 49년과 50년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매년 돌아오는 이날은 기업을 무르고, 종을 자유하게 하고, 안식년과 희년은 땅을 쉬게 하고, 그 땅은 본래의 상속자에게 돌아오게 합니다.
안식년 아닌 경작년에도 땅과 몸을 팔고 사거나 무르기를 하는 계약의 기준일자도 바로 '속하는 날', 이날입니다(레 25:15,16,50). 생활 달력으로 한 해는 7월 1일부터 시작되지만, 경제적 궁핍에서 해방과 자유가 회복되는 안식과 희년의 새해는 매년 7월 10일, 이 '속하는 날'부터 시작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에스라의 7월 절기 율법 교육은 이러한 면제년과 초막절에 읽어야 하고 준행해야 할 말씀을 백성들과 함께 읽고, 들었습니다.
느헤미야의 7월 절기와 경제개혁
이스라엘 총독 느헤미야는 이날 하게 되는 율법을 따라서 백성들에게 필요한 경제적 개혁을 단행했습니다. 그리고 백성들과는 안식일 지키고, 7년마다 돌아오는 안식년은 땅을 쉬게 하고, 빚을 탕감하는 언약을 세웠습니다(느 10:28~31). 그러므로 에스라와 느헤미야가 포로에서 돌아와서 새로 시작한 활동은 제사나 종교만 개혁한 것이 아닙니다. 백성들이 배고프지 않고, 각자 자기 집에서 편히 잠이 들 수 있도록 생활에 필요한 경제를 개혁했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개혁입니다. 개혁에서 종교개혁은 먼저 해야하는 것을 맞지만, 그것은 시작에 불과합니다. 개혁은 경제개혁이 있어야 시작한 개혁이 완성되게 됩니다.
이와 같이 느헤미야는 백성들의 지도자로서 백성들을 포로가 되게 한 역대의 왕들과는 다릅니다. 왕정시대 왕들은 거의 모두 자기 탐욕을 억제하지 못하고, 권력을 이용(악용)하여 탐욕을 채워주는 바알법을 선택합니다. 그래서 왕들은 백성들의 삶을 돌아보지 않고, 오히려 안식법과 희년법을 어기며, 백성들의 삶을 수탈합니다(삼상 8:11~18, 왕상 21:16, 렘 34:11). 그래서 이스라엘은 70년의 포로 생활, 실제는 140년이 넘도록 징계를 받았습니다.
에스라와 느헤미야가 행한 초막절 집회에서 백성들이 율법을 읽고, 에스라의 해석을 들으며, 울었던 이유가 바로 성경에 이런 내용이 있었다는 것을 그제서야 알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에스라의 율법 교육과 느헤미야의 경제개혁이 들어있는 초막절 행사는 거의 모르고 살고 있습니다. 경제에 관심이 없으면, 3대 절기를 보더라도 종교와 관련되는 유월절만 보이고, 경제를 다루는 속량절, 속하는 날과 초막절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보아도 에스라와 느헤미야가 이방인과 분리하고 그들과 통혼을 금했다는 것만 알고, 경제와 관련되는 안식년과 희년법은 덮어두고 있습니다. 경제로만 보면 지금의 우리도 희년법을 지키지 않아서 포로기를 맞아야 했던 왕들의 사고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학개의 7월 절기와 성전 완공
라디오 왕 제이 년 여섯째 달 곧 그 달 초하루에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로 말미암아 스알디엘의 아들 유다 총독 스룹바벨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학 1:1)
일곱째 달 곧 그 달 이십일일에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너는 스알디엘의 아들 유다 총독 스룹바벨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와 남은 백성에게 말하여 이르라(학 2:1,2)
학개는 이름의 뜻이 절기 또 축제입니다. 학개는 주전 520년경 하나님이 불러 세운 선지자입니다. 바벨론 포로기 이후 최초의 선지자입니다. 스룹바벨 성전은 기초석만 놓고 사마리인들의 방해로 16간 중지된 상태에서 하나님이 그를 보내어 성전 건축을 재개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학개서는 총독인 스룹바벨과 제사장인 예수아에게 전한 예언입니다. 스룹바벨 성전은 학개의 독려로 재개되어 4년 후인 주전 516년 완공되었습니다.
그런데 학개의 활동은 성전만 지은 것이 아닙니다. 그는 스룹바벨 성전 건축을 통하여 참 성전으로 오실 메시아를 예언했습니다. 특히 이 예언에는 7월 절기가 들어있고, 예언이 7월 절기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그것도 예언이 상징적인 내용이 아니고, 날짜가 들어있어서 구체적입니다. 7월 절기는 기업 무르기와 같은 희년법을 지켜야 하는 절기입니다. 그래서 학개의 7월 절기에 집중된 예언은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에 직접 관련되어 있습니다.
먼저 학개가 부름을 받은 때는 6월 1일입니다(학 1:1). 6월 1일부터 40일(39일)일이 지나면, 7월 10일 속하는 날이 됩니다. 지도자와 백성들이 이때부터 기도하며 성전 짓기를 게을리한 것을 회개합니다. 모세가 성막을 짓기 전에 시내산에 올라가서 40일 금식하며 기도한 시기와 기간도 이때입니다.
그다음 7월 21일 여호와의 말씀이 학개에게 임했습니다(학 2:1). 7월 21일은 7일간 지키는 7월 절기 초막절 마지막 날입니다(레 23:34). 초막절은 7월 10일 빚을 속하고, 몸을 속하고, 기업을 속하여 모든 경제적 궁핍이 해소되고 즐기는 축제의 절기입니다. 이날 학개는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조금 있으면 하늘과 땅과 바다가 진동할 것이요, 만국의 보배가 이르러 내 전에 충만할 것”이라는 예언을 합니다. 이것은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오실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다음 예언은 9월 24일입니다. 학개의 독려로 성전 건축을 시작한 지 3개월 되는 날입니다. 이때는 이스라엘에서 밭을 갈아서 밀, 보리를 파종하는 시기입니다. 이스라엘 농지는 하늘에서 내리는 비로 농사를 지어야 하는 천수답이 많습니다. 이스라엘에서 9월, 10월에 내리는 비를 “이른 비”라고 하고, 3, 4월에 내리는 비를 “늦은 비”라고 합니다(신 11:4, 약 5:7). 특히 9월은 우기이며, 이때 비가 많이 내려야 풍년이 오게 됩니다.
하나님은 학개에게 9월 24일 이전, 곧 성전 기초석을 놓기 전을 기억하라고 합니다. 그때는 창고에 뿌릴 씨앗이 없었고, 7월에 수확 철을 맞는 포도, 무화과, 석류, 올리브에 열매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9월 24일부터는 복을 주어 그 열매가 풍성하게 주겠다고 하십니다(학 2:19). 성전을 지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9월 24일부터 40주, 280일을 지나면 다음 해 7월 10일, '속하는 날(욤 키푸림)'이 되돌아옵니다. 이튿날인 9월 25일은 성전을 회복한 수전절(修殿節) 입니다(요 10:22,23). 수리아가 예루살렘을 점령하여 우상의 제물로 더럽혀진 성전을 주전 164년 마카비 혁명으로 되찾은 날입니다. 이날은 성전에 켜놓은 촛불이 기름이 떨어져도 8일 간 끄지지 않은 것을 기리는 절기입니다.
특히 9월 24일부터 다음 해 7월 10일 속하는 날까지 40주와 280일은 사람의 임신기간과 관련이 있습니다. 아직 확실한 것은 아니지만, 이날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이나 수태와 관련된 기간일 것으로 보입니다. 필자는 아기 예수의 탄생 시기를 7월 절기 또는 초막 전후 시기로 봅니다. 그러므로 9월 24일은 예수 그리스도가 마리아의 몸을 빌려 잉태되는 것과 관련이 있는 예언으로 보고 있습니다. 물론, 이에 대해 성경 달력을 양력으로 복원한 성경연대기의 저자 반성호 장로는 아기 예수 탄생 시기를 수전절이라고 하므로, 아직 확실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는 사가랴의 제사장 직무일을 추정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일로 수전절로 보았으나, 사가랴의 제사장 직무일이 아직 획실하게 밝혀진 것이 없습니다. 아무튼, 두 주장은 날짜가 다르긴 하지만, 9월 24일에 대한 학개의 예언은 성전의 완성자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수태나 출생과 관련된 큰 예언으로 보입니다.
초막절과 아기 예수의 탄생은 아래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기업 무르기로(또는 초막에서) 태어나신 예수 그리스도(2) - Daum 카페
여기에 9월 24일은 한번 더 예언이 주어졌습니다. 하나님이 성전을 짓는 데 쓰임을 받은 스룹바벨에게 “그날에 내가 너를 세우고, 너를 인장으로 삼으리니 내가 너를 택하였다”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스룹바벨의 조부인 여호야긴(여고냐)에서 빼어버린 인장 반지를(렘 22:24), 다시 스룹바벨에게 이어준다는 뜻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성전을 지은 스룹바벨를 통하여 끊어진 유다 지파의 족보를 다시 잇고, 이스라엘에 대한 구속사를 잇겠다는 여호와의 뜻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곧 스룹바벨의 족보를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난다는 예언입니다. 이렇게 9월 24일의 예언은 하루에 두 번에 걸쳐서 이루어졌습니다. 그만큼 9월 24일은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 더 구체적으로는 수태나 출생과 관련된 예언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학개의 예언을 정리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제1예언 : 6월 1일(학 1:1~11), 다리오 제2년(주전 520년) => 40(39)일 후 7월 절기 속하는 날
제2예언 : 7월 21일(학 2:1~9), 다리오 제2년(주전 520년) => 7월 절기 초막절 행사 7일째 날
제3예언 : 9월 24일(학 2:10~19), 다리오 제2년(주전 520년) => 40주, 280일 후 7월 절기 속하는 날
제4예언 : 9월 24일(학 2:20~23), 다리오 제2년(주전 520년) => 40주, 280일 후 7월 절기 속하는 날
스가랴의 7월 절기와 초막절의 초림·재림
예루살렘을 치러 왔던 이방 나라들 중에 남은 자가 해마다 올라와서 그 왕 만군의 여호와께 경배하며 초막절을 지킬 것이라 땅에 있는 족속들 중에 그 왕 만군의 여호와께 경배하러 예루살렘에 올라오지 아니하는 자들에게는 비를 내리지 아니하실 것인즉(슥 14:16,17)
스가랴는 학개와 동시대에 활동한 선지자입니다. 스가랴의 예언도 짓고 있는 스룹바벨이 성전이 완공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슥 4:9). 학개는 성전 건축과 관련된 현재의 관심사를 가지고 예언을 하였고, 스가랴는 주로 환상을 통하여 성전과 관련된 미래의 관심사를 예언했습니다. 스가랴의 예언은 1장부터 8장까지가 메시아의 초림에 관한 것이고, 9장부터 14장은 재림에 관한 내용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반드시 그렇게 나눌 수는 없겠습니다.
예를 들어서 스가랴서 11:12,13에서 노예의 몸값인 은 삼십을 토기장이에게 주는 예언이 있습니다. 그런데 은 30은 예수 그리스의 몸값으로 성취가 되었으므로(마 27:9,10),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에 관련된 예언입니다.
스가랴 선지자에서 7월 절기를 찾아보면 초막절에 관한 것입니다. 본문은 예루살렘을 치러왔던 이방 나라들 중 남은 자가 해마다 올라와서 초막절을 지킬 것이라고 말합니다. 애굽 사람이든, 이방 사람이든, 초막절을 지키지 않으면 비를 내리지 않으며 재앙을 내릴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초막절이 세계적 명절이 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초막절은 예사롭지 않은 명절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필자는 초막절이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한 성탄절로 보고 있습니다. 우리는 3대 명절 중에 유월절과 칠칠절(맥추절, 오순절)은 알아도, 마지막 명절인 초막절에 대하여 아는 것이 거의 없습니다. 알아도 유대인들이 지키던 구약의 3대 명절 중에 하나라고 하거나, 아니면 추수감사절 예배 시간에 스쳐서 지나가는 말로 잠깐 언급할 뿐입니다.
그러나 초막절은 그렇게 구약의 명절로만 생각하면 큰일 날 수 있을 것입니다. 본문 말씀을 보면 초막절은 천하 열국이 모두 지키는 세계적 명절이며, 이를 지키지 않으면 재앙을 내린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구체적인 날짜까지 명기되어 있습니다.
천한 만민이 모두 지켜야 하는 세계적 명절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한 성탄절이거나 미래의 어느 한 날, 이 두 가지 조건뿐입니다. 아니면 두 가지 사건이 함께 겹치게 되는 날입니다. 그리고 본문에서 보듯이 이 명절은 "남은 자"만이 이 명절을 지키게 됩니다.
구약의 3대 절기는 유월절, 칠칠절, 그리고 초막절입니다. 그런데 첫 명절 유월절은 신약시대에 부활절로 성취가 되었습니다. 중간 명절 칠칠절은 신약시대에 오순절과 성령감림절로 성취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명절 초막절은 신약시대에 와서 성취가 되었는지 안되었는지 잘 모릅니다. 모르는 것보다 아예 생각이 없습니다. 3대 절기 중에 첫 명절과 중간 명절이 신약시대에 날짜와 내용에서 완벽하게 성취가 되었으면, 마지막 명절도 그렇게 완벽하게, 그리고 틀림이 없이 성취가 될 것입니다. 그래서 그 날짜나 절기를 추적해 보면, 성탄절이 이 날짜에 가장 부합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추정은 앞에서 본 대로 아직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이에 대해서 초막절은 미래에 마지막 때에 성취될 명절이므로, 지금은 성취된 적이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마지막 시기에 대해 우리가 그 때를 모른다고 하십니다(마 24:14,36). 그런데 초막절은 날짜가 7월 15일로 확정된 날짜가 있으므로, 우리가 초막절을 미래에 성취될 명절이라고 하면, 문제가 있습니다. 초막절 확정 일자와 날짜를 모른다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과는 서로 상충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초막절은 신약시대에 성취가 되었으면 성탄절이 가장 적합하고, 성취가 되지 않았으면 미래에 있을 명절이긴 하지만, 그 초막절이 세상에 마지막 종말은 아닌 어느 한때입니다. 곧 미래에 도래할 천년왕국이 될 것입니다. 그러면 천년왕국은 그 시기와 구체적 공간이 분명하게 존재하는 가시적, 현실적 나라입니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는 학설들이 다양하고, 어느 것 하나로도 확언하기는 어려운 부분입니다.
아무튼, 초막절이 성탄절로 성취가 되었든, 미래에 천년왕국의 때에 성취가 될 명절이 되든, 구분 없이 초막절이 성취되기 이전에 먼저 이루어져야 할 필수적 구비 조건이 있습니다. 그것은 초막절 명절이 있기 전에 해야 하는 7월 절기 무르기, 곧 희년법이 요구하는 속량의 절차를 밟아야 합니다. 초막절 행사는 룻과 보아스와 같이 기업 무르기와 같은 희년법을 준행하고, 지켜야 하는 명절입니다. 이런 순종이 없이 명절에 드리는 제사만 올리거나 유대인들처럼 초막살이 행사만 치르고 초막절을 지켰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에 대한 이해가 둔하며, 준행 여부는 모두 관심이 없습니다.
유대교는 종교적 절기인 유월절은 잘 지켰으나 경제적 절기인 속하는 날과 초막절은 제사와 행사만 치르고 내용적 요건인 경제적 준행은 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지금 우리도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3대 절기 중 첫 명절과 중간 명절은 알고 있지만, 초막절은 날짜가 언제인지도 모르거나 관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감사만 있고 추수(경제)는 내용이 거의 없는 서양식 추수감사절을 지키고 있습니다.
초막절은 모든 민족이 함께 지킬 명절입니다. 그러나 초막절은 마지막 명절로 "남은 자"가 지키는 명절입니다. 초막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과 관련된 명절이면 지금 지켜야 할 명절일 수 있고, 미래의 어느 한때의 큰 명절이기도 합니다. 유월절은 과거의 명절이고 종교적 명절이지만, 초막절은 희년이 완성되고 즐기는 미래의 명절이며 경제적 명절입니다. 초막절 "남은 자"는 7월 절기에 속하는 ‘속하는 날(욤 키푸림)’의 각종 무르기와 희년법까지 준행하는 자가 될 것입니다. 여기서 “남은 자”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만 하면, ‘믿는 자’가 될 것이고, 희년법까지 준행을 하는 자가 “남은 자”에 해당할 것입니다. 초막절과 성탄절에 대한 것은 저의 다른 글을 참고하시기 바라며, 상세한 내용은 다음 책에서 다루겠습니다.
말라기의 7월 절기와 십일조
그리고 땅의 십분의 일 곧 땅의 곡식이나 나무의 열매는 그 십분의 일은 여호와의 것이니 여호와께 성물이라(레 27:30)
매 삼 년 끝에 그 해 소산의 십분의 일을 다 내어 네 성읍에 저축하여 너희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레위인과 네 성중에 거류하는 객과 및 고아와 과부들이 와서 먹고 배부르게 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범사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신 14:28)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말 3:10)
말라기는 구약시대 마지막 선지자입니다. 그는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에게 필요한 훈계와 예언을 했습니다(말 1:6, 2:1,4, 3:3). 십일조는 물질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드리는 소득의 10%를 말합니다. 십일조는 100%를 주신 하나님에 대한 신앙고백으로 10%를 드린다고도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소득의 100%와 10%는 경제에 관련된 것입니다.
복음시대에도 구약의 경제법 하나를 유일하게 지키는 제도가 하나 있는데 이것이 십일조입니다. 전통 유대교인들도 십일조만은 박하와 채소의 뿌리까지 세면서 철저하게 드렸습니다. 경제적으로 보면, 십일조는 한 나라의 세금처럼 공동체의 존립과 안정을 위해서 필요한 수단입니다. 공동체에서 필요한 재원 조달 목적을 가졌다는 뜻입니다. 다만, 여기서 말하는 공동체는 신앙 공동체에 한정된 것인지, 생활공동체인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까지 포함하는 것인지는 생각을 해 보아야 할 주제입니다. 십일조는 신앙과 생활(정치)을 구분하지 않는 신정정치 시대에 필요한 경비이었으므로, 두 가지 공동체가 모두 해당한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유럽에서는 교회에 내는 십일조 대신 국가에서 2%, 3% 정도의 종교세를 부담하는 나라가 많습니다. 요셉은 애굽에서 20%의 정액성(비용 공제 없는 수입 총액 단순 비례) 토지임료를 징수했습니다.
십일조의 의미와 용도
십일조는 레위기 경제법 제일 마지막 부분인 27:30에서 나옵니다. 땅의 십분의 일, 곡식이나 나무나 가축들로 땅이 내는 소득으로, 토지 소산의 10%를 말합니다. 첫 곡식 보릿단 한 단은 초실절에 드리고(레 23:10~12), 밀과 보리 추수의 십일조는 맥추절에 드립니다(민 28:26). 그리고 포도와 석류 등 과일 추수의 십일조는 7월 절기 수장절에 드립니다(출 23:16).
구약에서 십일조는 보통 세 가지로 나눕니다. 첫째, 종교와 제사를 전담하는 레위인, 기업이 없는 레위인들의 생활비를 위한 십일조입니다(민 18:21~23). 둘째는 절기에 나누는 음식을 위한 십일조입니다(신 14:22,23). 세 번째로 삼년 끝에 드리는 구제년 십일조입니다. 7월 절기 십일조는 지역사회에서 가난하 자를 구제하기 위해 정한 구제년 십일조를 말합니다. 구제년은 7년마다 돌아오는 면제년 사이, 3년 말과 4년 초에 있는데 이때가 달력으로 7월 절기입니다. 가난하여 몸이 팔리고 빚을 진 사람들이 면제년까지 기다리려면, 생활이 어려룰 수 있으므로 7 안식년 중간기에 이런 구제년을 두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세밀하십니다.
그런데 이 세 가지 십일조를 각각 분리하여 세 번 내어야 한다면, 총액은 소득의 23.3%입니다. 레위인의 생활비 10%, 절기에 내는 10%, 그리고 3년 소득의 10%이므로 매년 3.3%, 그래서 십일조 총계가 23,3%입니다. 100에 십일조가 아니라 100에 23.3일조(租)입니다. 십일조 전액이 레위인의 생활비로 보면 이 비중이 얼마나 될까요?
출애굽 당신 총인구는 성인 남성만 60만 3,550명이었습니다. 레위인은 어린 아이를 포함하여 2만 3천명입니다(미 26:62). 어린아이를 성인 한 명 몫으로 쳐도 레위인은 2만/60만으로 3.3% 비중입니다. 60만 명이 십일조를 내어서 3.3% 인구에게 주게 되면, 레위인의 산술적 수입은 다른 지파에 비하여 3배(300%)가 됩니다. 그래서 레위인을 위한 십일조를 문자적으로만 지키면 레위인들은 다른 지파들보다 3배의 재산을 소유하며 부자로 살게 됩니다.
물론, 십일조를 60만 명이 다 내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1개월 이상 어린 아이까지 십일조의 수혜자로 넣은 비중임을 고려하면, 다른 지파의 평균 소득에 비하여 300% 크기의 수입을 갖는 것은 확실합니다. 여기에 레위인이 담당하는 성전 관리에 따른 비용은 모든 성인이 1년에 반세겔씩 내는 성전세가 따로 있습니다(출 30:14).
그러므로 십일조는 레위기 27:30,31에서 말하는 소득의 10%가 기본으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민수기가 말하는 십일조는 그 십일조의 징수권과 집행권, 그리고 십일조의 우선적인 용도에 대한 규정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민수기가 말하는 십일조는 레위인의 생활비로 우선 충당해야 하는 원칙을 말합니다(민 18:19~24). 그러나 십일조 전액이 레위인들의 사유재산이 될 수는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십일조는 공동체에서 필요한 공경비 성격을 가지며, 여기서 성직과 공무를 수행하는 레위인들에게는 생활비를 우선적으로 지급하여 예우를 하고, 기본적인 생활을 보장하려는 제도라고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신명기가 말하는 절기의 음식과 3년째 구제년 십일조도 레위기 27장이 말하는 첫째 십일조와는 관련이 없는지를 생각해 볼 주제입니다. 특히 신명기가 말하는 두번째 십일조, 곧 절기의 십일조는 내용적 이해가 어렵습니다. 먼저 신명기 14:22의 십일조는 레위기 27:30,31이 말하는 첫째 십일조를 반복하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14:23에서 십일조란 언급은 용어 자체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이 규정은 절기 행사로 모인 사람들이 먹어야 할 식사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을 말하고 있습니다. 신명기에는 이 음식물은 운반이 어려우면, 돈을 가지고 가서 음식을 구입할 수 있도록 편의를 주고 있습니다.
한번 낸 첫째 십일조만으로도 총인구 3%에 불과한 제사장이나 레위인들의 생활비를 충당하고, 약 70%가 남습니다. 그러므로 절기에 필요한 음식은 남은 70%의 잔여분에서 충당해도 충분합니다. 절기는 1년에 세번 돌아오는데 그 절기에 먹을 음식을 위해 소득의 십일조를 낸다면, 가져온 음식은 10%도 먹지를 못하고 남는다는 산술적 계산이 나옵니다. 그러므로 신명기 14:23의 십일조는 절기에 먹을 음식물 전부로 보기가 어렵습니다.
농업시대에 농산물은 절기를 따라 생산되고, 그래서 레위기 규례를 따라 내는 십일조도 절기를 따라서 내게 됩니다. 보리와 밀의 추수는 맥추절에 마치므로, 곡식의 십일조는 맥추절에 냅니다. 포도와 석류, 올리브 기름은 추수와 수장을 마친 7월 절기에 냅니다. 그러나 유월절은 추수기가 아니므로 십일조를 내는 시기가 아닙니다. 이때는 가축의 십일조를 낼 수는 있습니다.
그래서 신명기의 음식물 규정은 이 절기에 내는 십일조를 내면서 먹어야 할 음식물을 추가로 언급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절기에 먹은 음식은 내는 십일조 중에서 일부가 지출되거나 아니면 먹을 음식은 별도로 지출하는 것이지, 이것이 소득의 10%를 한번 더 내는 십일조는 아니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절기가 되면 십일조의 2배인 십이조를 가져 와야 합니다.
신명기 절기의 십일조는 절기가 임박한 시기에 생산된 농산물 중의 일부(십일조)로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그러면 유월절 시기는 아직 보리 추수를 하기 전, 춘궁기이므로 농산물이 거의 없는데 무엇으로 십일조를 낼 수 있는지도 의문입니다. 농사를 짓는 농민은 농산물 자체가 수입의 전부입니다.
그러므로 민수기에서 말하는 십일조는 그 징수권과 집행권이 레위인에게 있음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오늘날 공동체가 필요한 세금의 징수와 집행도 그 권한은 공직자가 가지는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그러므로 민수기가 말하는 십일조, 신명기가 말하는 십일조, 3년마다 있는 구제년 십일조는 모두 레위인에게 낸 첫째 십일조에서 지출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야 12지파 전체가 수입에서 어느 정도 형평성을 유지할 수가 있겠습니다.
그러면 레위기나 민수기에 언급한 십일조를 왜 다시 신명기 14:22에서 언급하느냐 하는 의문입니다. 그것은 십계명이 출애굽기에 있지만, 신명기에서 다시 언급하는 것과 같습니다. 두번, 세번 언급한 것은 공직을 수행하는 제사장과 레위인들을 우대하고, 기업이 없는 레위인의 생활비를 우선적으로 충당해야 하는 점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공경비 사용에서 레위인 또는 공무 수행자에 대한 우선원칙을 밝힌 것입니다. 그래서 절기의 십일조와 구제년 십일조를 언급하면서도 항상 레위인을 함께 언급하고 있습니다(신 14:27,29). 그렇지 않으면 3배나 높은 소득 혜택을 누리는 레위인들을 구절구절마다 배려하라고 하는 언급은 불합리하고 어색합니다.
이렇게 볼 경우 레위기 십일조는 레위인에게 낸 십일조가 기업이 없는 레위인에게 우선하여 충당하고, 그 다음은 기업이 있어도 팔려서 생계가 어려운 자, 기업과 별개로 생활이 어려운 고아나 과부, 그리고 타국인들에게 그 300%(레위인들 손에 들어간 3배 징수액)의 십일조를 공동체가 함께 사용하라는 것이 십일조의 대원칙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실일조에 대하여 레위기는 공경비의 크기를 말하고, 민수기는 십일조애 대한 사무적 권한과 우선적 집행 순서, 신명기의 십일조는 십일조는 내는 절기에 먹어야 할 음식물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십일조에 대한 전체의 의미입니다.
* 십일조에 대한 총량과 종류, 그리고 용도에 대해서 생각이 다르시면 의견을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유대인 율법에서 신명기가 말하는 절기의 십일조에 대한 자료가 있으면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헌물의 봉헌과 신앙
말라기 선지자는 드리는 봉헌물에 대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희생으로 드리는 제물이 어찌 저는 것, 병든 것을 제단에 드리느냐고 질책합니다(말 1:7,8). 그런데 제사장들은 원래 저는 것과 병든 것을 제단에 바치지 않기 위해 철저합니다. 그래서 제물은 제사장들이 자기들이 분배 받은 목초지에서 직접 기른 가축으로 제물을 드리게 했습니다. 여기서 가난한 자가 드리는 비둘기 한 마리도 비싼 값을 받아서 예수님에게 "강도의 소굴"이라고 큰 꾸중을 듣습니다(마 21:12).
전통 유대인들은 병든 제물을 여호와께 드리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말라기 선지자는 왜 이렇게 눈먼 희생 제물을 드린다고 했을까요? 그것은 두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10%를 바치는 백성들의 100%, 곧 경제생활이 하나님 앞에 거룩하지 못한 것이 문제입니다. 다른 하나는 이 백성들의 제물을 제단에 올리는 제사장들의 믿음이 하나님께 향해 있지 않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말라기가 제사장들에게 회개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므로, 후자일 가능성이 더 큽니다. 말라기 선지자는 제사장들이 하나님을 멸시한다고 했습니다(말 1:6). 그러므로 제단에 드리는 제물이 더러운 것이 아니고, 제단에 제물을 드리는 자의 마음이 더럽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7월) 절기에 드리는 희생 제물은 똥처럼 더러웠습니다(말 2:3).
그리고 하나님은 레위 자손들에게 때가 되면 사자를 보내어 의로운 제물이 들여질 것이라고 합니다(말 3:3). 그때는 지금처럼 간음과 술수, 거짓 맹세, 품삯에 대한 억울함, 고아와 과부에 대한 압제, 나그네의 억울함이 없는 온전한 세상을 말합니다. 이처럼 제물은 제물 그 자체보다 이를 드리는 자의 마음과 그 중심을 보고 계십니다.
십일조와 봉헌물의 도둑들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둑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둑질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봉헌물이라(말 3:8)
그날에 사람을 세워 곳간을 맡기고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에게 돌릴 것 곧 율법에 정한 대로 거제물과 처음 익은 것과 십일조를 모든 성읍 밭에서 거두어 이 곳간에 쌓게 하였노니 이는 유다 사람이 섬기는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로 말미암아 즐거워하기 때문이라(느 12:44)
하나님께 바친 십일조에도 도둑들이 있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둑질하였나이까 하니 이는 곧 십일조와 봉헌물"이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것을 훔친 것은 십일조와 봉헌물입니다. 그런데 이 구절에 해석에는 두 가지 견해가 있습니다.
그 하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십일조와 봉헌물을 내지 않은 것을 말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공경비 재원으로 내는 것은 성전세 외에 특별한 것이 없습니다. 아마도 솔로몬이 성전을 지을 때처럼 노역이나 세금을 부과한 때도 있기는 하지만, 율법에서 십일조 외에 정해진 세금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십일조는 신정정치를 하는 한 나라에서 공경비를 위해 반드시 있어야 하는 공공부담에 속합니다. 그런데 이런 세금과도 같은 성격인 세금을 내지 않았다면, 그것은 오늘날 조세 포탈범과도 같습니다.
물론, 십일조는 하나님이 주신 물질적 축복에 대하여 내가 감사의 표시로 내는 자발적 헌금으로 볼 수도 있고,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되돌려 드린다는 신앙고백적 측면도 있습니다. 아무튼, 도둑질은 백성들이 내어야 할 십일조를 내지 않은 것을 말 할 수가 있습니다. 특히 포로기와 귀환 초기의 경제적 여건을 감안하면 흩어진 백성들이 내어야 할 십일조를 내지 않아서 레위인들의 생활이 어려울 수 있었습니다(느 13:10).
그리고 다른 하나의 견해는 십일조와 헌물에 대한 도둑은 백성들이 내는 십일조를 내지 않았다는 말이 아니고, 이미 백성들이 낸 십일조와 헌물이 창고에서 사적으로 유용된 것을 말한다고 보는 견해입니다. 여기서 본문이 말하는 창고는 곡물과 같은 십일조를 받아서 쌓아두는 장소를 말합니다. 이것을 성전 창고지기가 백성들이 낸 십일조와 각종 헌물을 창고에서 사적으로 빼돌려서 유용했다는 말로 보는 것입니다. 이를 뒷받침하는 것이 느헤미야서에서 종교개혁으로서 나타납니다.
스룹바벨과 느헤미야의 때에는 성벽을 짓고 거제물과 첫 곡식과 십일조를 거두어 곳간에 쌓게 했습니다(느 10:38, 12:44). 그리고 그 헌물은 백성들을 섬기는 제사장과 레위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느 12:47). 그런데 느헤미야가 12년간 수행한 총독의 임기가 만료되어 아닥사스다 왕에게 재임 허가를 받으려고(주전 432년) 바벨론으로 간 사이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바로 엘리아십과 도비야가 규합하여 하나님의 전에 악한 방을 별도로 만들었습니다(느 13:7). 이것은 백성들이 바친 십일조나 헌물을 사적으로 빼돌릴 목적으로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바벨론에서 돌아온 느헤미야는 크게 노하여 곳간의 세간을 밖으로 던져버리고 청소를 했습니다. 예수님이 행하신 성전 청소와 비슷합니다(막 11:15).
느헤미야서 12:44의 십일조를 받아서 쌓아두는 "곳간"과 말라기서 3:10의 십일조를 두는 "창고"는 히브리어 '오짜르'로 이름이 같습니다. 그러므로 말라기 선지자가 말하는 도둑이란 받혀진 헌물을 곳간에서 빼내어 사적으로 유용한 것에 대한 표현으로 봅니다. 성전에 받혀진 십일조, 성경 말씀 그대로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 한 것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두 가지 견해가 있는데, 말라기서는 제사장과 레위인들에게 하는 교훈이 주요 내용이므로, 아마도 후자의 견해가 더 타당할 것으로 볼 수 있겠습니다. 말라기는 처음부터 이 당시 드린 봉헌물에 대하여 제사장들을 강하게 질타하면서 시작합니다(말 1:7,8, 2:3,). 이것을 볼 때 헌금을 드리는 백성들이든, 드리는 헌물을 하나님께 올리며 제사를 드리는 제사장이든, 보관된 헌물을 관리하고 나누어주는 관리자이든, 모두 십일조와 희생 제물에 대해서는 심령이 깨끗하지 못한 상태이었습니다. 말라기 선지자는 이런 신앙과 행동을 꾸짖은 것으로 보아야 하겠습니다.
십일조의 희년법 원리와 복음적 적용
십일조는 신정정치 시대에 모세의 율법으로 정해진 것입니다. 그래서 신약시대에도 구약시대에 낸 십일조를 내어야 하는지, 아닌지를 두고 생각이 다를 수 있습니다. 필자는 이에 대해 이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공동체의 존립에는 공경비가 있어야 하고, 그 공경비의 조달 수단으로써 십일조와 같은 안정적 재정 수입은 필요합니다. 또 구약의 제사장이나 레위인들처럼 신약시대에도 성직이나 공직을 수행하려면, 오늘날의 공무원들처럼 예우하고 생활비를 지급해야 합니다. 예수님도 전도하는 사역자는 그에 상응하는 삯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고 하십니다(마 10:10, 눅 10:7).
한편으로, 십일조는 기업이 없는 사람들, 곧 레위인, 독자적인 생활이 어려운 고아나 과부, 외국인 등의 생계비나 생활비 충당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것은 크게 보면 한 가정에서 가난으로 인하여 분배된 기업이 팔리면, 친족이 무르기를 해서라도 생존권을 되찾아 주는 희년법과 원리가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기업이 없는 자의 생활비를 위한 십일조 제도와 기업이 팔려나간(잡혀있는) 자의 생존권을 찾아주기 위한 무르기나 희년법의 경제원리는 신약시대에도 살아 있고 계속 유지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경우라도 신약시대는 구약시대처럼 문자적 준수만을 고집할 이유는 없습니다. 필자는 구약의 희년법은 신약시대에 와서도 도로교통법을 지키듯이 지켜야 할 제도라고 말하지만, 그것은 레위기 희년법을 문자적으로 순종하자는 의미는 아닙니다. 구약의 희년법을 복음시대에 맞추어서 시장원리에 부합하게 합리적으로 개선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이와 같이 십일조 제도는 신약시대에도 그 원리는 지켜가는 것이 원칙이지만, 형식은 필요를 따라 복음적으로 개선할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예수님이 바리새인들에게 십일조에 잡착하고, 십일조보다 더 소중한 정의와 긍휼과 믿음(신뢰)은 버린 것에 대해서 강하게 꾸짖고 있습니다(마 23:23). 말라기 선지자가 하나님께 드린 십일조와 제물에 대한 질책도 이와 유사합니다(말 2:3, 3:5,8,9). 유대교는 레위기가 말하는 십일조는 지켜도 같은 레위기가 말하는 희년법과 경제 규례는 지키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질책은 복음시대에 와서도 구약시대의 십일조와 헌금을 내고, 징수하고, 집행하는 우리가 자성해야 할 부분입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말씀 사역자가 받을 보상을 말하고 있고(고전 9:7~10), 성도들의 생활에 대해서는 연보를 말하고 있습니다(고후 8:2,3). 연보는 공동체에서 부족한 것을 서로 보충하여 균등하게 하려는 것이라고, 헌금의 목적을 밝히고 있습니다(고후 8:13, 9:6). 연보는 억지로 하거나 인색하지 말고 마음에 정한 대로 하라고 합니다.
말라기 선지자는 이렇게 성전에 드리는 봉헌물과 십일조를 가지고 제사장과 레위인들에게 훈계하고, 미래에 오실 메시아에 대해 예언합니다. "보라, 내가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예비할 것이요, 너희가 구하는 주가 갑자기 성전에 임할 것"이라고 합니다(말 3:1). 이는 메시아가 오심을 말합니다. 그리고 시내산에 모세에게 명한 율례와 법도를 기억하고,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엘리야를 보내겠다고 했습니다(말 4:4,5). 말라기 선지자의 예언은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기 전에 세례 요한을 먼저 보내겠다는 말입니다. 이 예언은 신약에서 예수님보다 세례 요한이 먼저 와서 메시아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면서 성취가 되었습니다(눅 3:3,16).
포로 귀환기의 족보와 구속사
포로 귀환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관련된 인간 역사와 함께한 하나님의 구속사를 정리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마태복음 족보> 스룹바벨 -> 아비훗(마 1:13)
<누가복음 족보> ①스룹바벨 -> ②레사 -> ③요아난 -> ④요다 -> ⑤요섹 -> ⑥서머인 -> ⑦맛다디아(눅 3:26)
<스룹바벨 후손> ①스룹바벨 -> ②하나냐 -> ③스가냐 -> ④스마야 -> ⑤느아라 -> ⑥에로에네-> ⑦호다위야(대상 3:19~24)
<예수아의 후손> ①예수아 -> ②요아김 -> ③엘리아십 -> ④요야다 -> ⑤요나단 -> ⑥dit두dk(느 10,11)
<포로 귀환기의 공식 지도자> 스룹바벨과 예수아(여호수아), 에스라와 느해미야
<포로 귀환기의 선지자> 학개, 스가랴, 말라기
포로 귀환 | 인솔자 | 선지자 | 주요사역 | 관련 구절 |
1차 (주전 538년) | 총독 스룹바벨, 제사장 예수아 | 학개, 스가랴 | 성전재건 7월 절기 | 스 1~4장 |
2차 (주전 458년) | 제사장 에스라 | 율법교육 종교개혁, 7월 절기 | 스7:7~9장 | |
3차 (주전 445년) | 총독 느헤미야 | 말라기 (주전 430년 이후) | 성벽재건, 경제개혁, 7월 절기 | 느 2장, 5장, 10장 |
포로 귀환 시기는 1차 포로 귀환 시기인 주전 538년에서 3차 귀환 시기인 주전 445/444년까지입니다.
스룹바벨과 예수아는 1차 귀환으로 성전을 짓고 총독의 업무를 수행했습니다. 에스라는 2차 포로 귀환 시기인 주전 458년에 귀환하여 지은 성전을 기초로 백성들에게 율법을 가르쳤습니다. 스룹바벨은 성전의 건물을 지었고, 에스라는 지은 성전의 제사와 삶에서 필요한 율법을 가르쳤습니다. 성전은 율법이 있어야 지은 성전이 제 기능을 할 수 있으므로, 에스라의 율법 교육은 성전의 내적 요건을 충족시키는 사역이었습니다. 그래서 다니엘이 예언한 70 이레의 구속사는 에스라의 율법 교육과 함께 시작되고 있습니다.
느헤미야는 포로 3차 귀환기인 주전 445/444년에 돌아와서 성전을 둘러싸고 있는 성벽을 건립했습니다. 성벽이 있어야 성전은 외부 침입에서도 보호를 받게 되므로 성전은 그때 비로소 완성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느헤미야는 총독으로서 백성들에게 경제적 삶의 질을 개선하는 경제 분야를 개혁했습니다. 여기서 주전 445년과 주전 444년은 달력에서 종교력(니산) 기준으로 보면 해가 바뀌어 주전 444년이고, 생활력(티스리) 기준으로 보면, 아직 해가 바뀌지 않았으므로 주전 445년이 되기 때문에 복수로 표현했습니다. 그래 관련 연도는 연구자들도 1년씩 차가 나고 있습니다.
이 시기에 활동한 선지자들은 학개, 스가랴, 말라기 등입니다. 이들은 주로 성전의 재건과 관련된 사역을 했으며, 희년이나 경제와 관련이 있는 7월 절기를 따라서 예언 활동을 했습니다. 중단된 성전의 재건과 초림, 초막절에 성취될 초림과 재림에 대한 예언 활동, 제사를 드리는 제사장의 삶과 관련된 봉헌물이나 십일조 관리에 대한 질책과 조언도 했습니다. 말라기는 엘리야가 세례 요한의 신분으로 먼저 오는 것(말 4:5)과 그에 따른 메시아의 탄생까지 예언했습니다(말 4:2).
그러나 같은 시대에 왕족의 족보, 곧 왕의 후손으로 나라를 이끌어가야 할 책임자들인 왕가의 족보는 어떻습니까? 왕들의 후손으로, 또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를 잇는 구속사의 주역이 되려면, 포로 귀환기에도 활동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왕족의 족보는 스룹바벨 한 사람만이 보이고, 그가 여호야긴 왕족의 족보를 겨우 이어가는 초라한 모습입니다(학 3:23). 아마도 유다 지파에서 왕족은 족보를 이을 혈통이 없거나 있었어도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사람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에스라서에 나오는 귀환자의 명단에도 대표자 11명이 나오지만, 그 대표가 속한 지파는 소개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유다 지파에서 귀환자는 스룹바벨 외에 없었다는 포로 귀환자의 명단에서 유추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포로 귀환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는 왕가의 후손이 단절되어 버립니다. 역대기에서 스룹바벨의 후손은 6대를 거쳐서 내려오지만, 왕족의 계보인 마태복음 족보는 스룹바벨의 친혈통 계보를 바로 잇지는 못했습니다. 다만, 스룹바벨의 7대손인 호다위야가 아비훗이라는 이름으로 왕족의 계보를 대신 이어준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역대기 족보의 호다위야는 히브리식 이름이고, 마태복음 족보에서 아비훗은 헬라식 이름인데 뜻은 ‘하나님의 영광’ 또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비슷합니다. 그러면 마태복음 족보는 포로 귀환기에도 5대 정도가 이름이 빠져 있습니다.
그러나 누가복음 족보는 이 시기에 한 대도 끊어지지는 않고 이어지고 있습니다. 오히려 왕들 끊어진 계보를 스룹바벨의 친혈통으로 7대손 호다위야가 이어주고 있습니다(추정합니다). 그 방법은 나와 있지 않지만, 성경의 방식대로 계대결혼이나 여성 상속법에 따른 족보 잇기를 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스룹바벨은 성전을 지었을 뿐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를 잇는데도 큰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스룹바벨이라는 이름은 포로 귀환 초기인 주전 538년부터 후기인 느헤미야서까지 기록이 있을 정도로 그의 활동은 길었습니다(느 12:47). 그러나 유다 지파에서 왕들의 족보는 포로 귀환기에도 역대기 족보나 누가복음 족보에서 빌려온(성경적 족보 잇기로) 이름으로 겨우 그 명맥만 유지하고 있습니다.
백성들이 왕을 원할 때부터 하나님은 군주제도를 원하지 않았으며, 그러한 왕들이 역사를 이어오며 바알을 섬기고, 여호와의 계명을 버렸습니다. 그래서 포로 귀환기에 끊어진 족보는 그 대가입니다. 특히 희년법을 어긴 결과가 이렇게도 족보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은 이 다윗의 후손을 아주 멸하지는 않으시고, 다윗에게 약속한 은혜로써 그 족보를 이어오고는 있습니다(삼하 7:13~16). 그 대신 바벨론에서 새로 태어난 자들, 말씀을 가르치고, 전하고, 준행하는 자들를 불러서 백성들을 지도하고, 역사를 잇게 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남은 자"를 통한 하나님의 구속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