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의 글쓰기 39ㅡ
김장 욕심 (맛을 찾아라! 1) (사소)
생청각을 사려고 벌써 시장을 두 번째 돌았는데 지난주에 벌써 다 들어가 버렸다. 어쩔 수 없이 건청각을 되도록이면 정체를 알 수 없게 다져야 한다. 딸이 초록색 형체를 발견하면 기겁을 하기 때문이다. 김치는 청각을 넣어야 시원하다. 생청각은 더 향긋해서 되도록 꼭 넣고 싶은데 12월이면 들어가 버려서 구하려면 내년엔 11월에 김장을 하는 게 맞다. 그런데 속이 꽉 찬 해남 배추로 담그려면 눈이 오는 12월 가까워야 나오니 두 가지를 다 맞추는 것은 매년 어려운 문제다. 포기할 수 없는 해남 배추는 한 포기가 어찌나 큰지 어린아이만하고, 노오란 배춧속은 사각사각하고 다디달다.
지난해에는 절여주는 배추가 믿을 수 없어서, 해남 배추를 도매상에서 공수해오고 간수 내린 소금도 한 가마니 사서 집에서 직접 절였다. 아들한테 부탁해서 계단으로 나른 후, 밤새 뒤집고 씻고 그렇게 며칠을 정성을 들이다 보니 몸살이 났었다. 그래서 올해는 아파트로 이사도 왔고, 식구도 단출해 절임 배추 두박스로 평소보다 적게 시켰다. 그런데 김장 전날 시장에 가니 배추 욕심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청각이니 생강이니 파니 재료들을 사면서, 결국에는 해남 배추를 세 포기 더 사고야 말았다.
1차 김장은 보조를 했는데 이모는 나를 '시다'라 부르시면서, 이날만은 함께해서 좋다고 하신다. 12년째 김장을 같이하면서 나는 늘 심부름꾼이 되고 간맞추는 사람 (이게 포인트라고 말씀하심)이 된다. 김장을 하면서 서로 어릴 때 얘기, 인생사 얘기 등 이런저런 얘길 나누며 웃음꽃을 피우며 힐링 타임이 된다. 끝날 때쯤 삶아낸 수육과 싱싱한 굴, 갓 지은 밥을 함께 먹는 꿀맛의 시간을 즐길 수 있다.
그런데 이번에도 김장을 다하고 정리를 하면서 재료가 많이 남아 아깝다는 생각이 들면서 다시 슬그머니 배추 욕심이 또 나는 거다. 어릴 때 엄마나 할머니가 늘 그러셨다. 식구 많은 집에 김장은, 하다 보면 2차 3차 김장으로 한 동이씩 더 늘어나기 마련이고, 나중에는 넣을 곳이 없어서 바케스에 더 해놓곤 하셨다. 결국, 이모님은 얼른 배추를 네 포기를 더 사 오셨고 절여 놓고 가셨다. 이렇게 우리의 김장은 기필코 점점 많아지는 거다.
그래서 2차 김장을 솜사탕님이 올려놓은 잔잔한 음악을 들으며 밤 1시에 했다. 아들, 딸이 다른 곳에 있어 거의 독거이지만 자꾸 배추 욕심을 내는 건 이유가 있다. 아이들이 오면 묵은지찜이나 김치 요리를 잘먹고, 더 큰 이유는 학원 샘들 때문이다. 샘들은 원장 김치는 치유의 음식이라거나, 김치 때문에 장기 근속을 한다거나 하면서 좋아하기 때문이다. 김장날 김치를 삼겹살 수육을 두껍게 썬 배와 굴 무침과 곁들여 내는 날은 학원 잔칫날이다.
하나둘씩 발전소에 모여들어 서로 쌈을 주고받고 챙겨주는 떠들썩한 풍경은 마음을 포만감으로 가득히 채워준다. 이런 표정을 보면 김장을 더 안 할 수가 없고, 김치가 넉넉하면 예전의 엄마나 할머니처럼 냉장고에 보물을 쟁여 놓은 것처럼 든든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