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기세덱이신 예수 / 잠 3:13-18, 히 4:14-5:10
예수님의 직무와 롼련하여 예수님이 누구인가 하는데 대하여 교회는 전통적으로 세가지 직위를 말해오고 있다. 곧 왕과 예언자와 제사장이 바로 그것이다. 이 세가지 직위는 적어도 종교의 세계, 특히 성서의 세계에서 볼 때 인간사회를 다스리는 가장 으뜸되는 직분이다. 그러데 이 직분들을 예수님께 돌린 것은, 단순히 신학자들이 일부러 완전수인 ‘3’에 갖다 맞춘 것은 아니고, 복음서와 서신서들을 통해서 나타난 바와 같이 예수님이 이 세가지 직분을 행사하셨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왕이신 것은 그가 메시야요 주님으로서 온 인류와 세상을 다스리시는 정치적 우두머리라는 것이다. 복음서, 특히 성탄절 이야기를 따르면 예수님은 유대인의 ‘왕’으로, 또 평화의 ‘왕’으로 오셨다고 말한다. 다음으로 예수님이 예언자이신 것은, 그가 하나님 나라의 선포자요 설교자로서 하나님의 뜻을 인간들에게 대언하시고, 하나님의 계시를 전달하고, 하나님의 뜻을 교훈 형식으로 주신 직무와 관련되어 있다. 그래서 그는 ‘나사렛에서 오신 예언자’라고 널리 불리워진 것이다. 마지막으로 예수님이 제사장이신 것은 인간의 죄를 하나님 앞에 고하고, 그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희생제물을 하나님께 바치는 제주를 의미한다. 이 세가지 직분은 서로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데, 특히 예언자 직분과 제사장 직분은 더욱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역사적으로 보면, 대체로 제사장과 예언자는 서로 대립하는 위치에 있었다. 제사장 종교가 제 본분을 벗어나 타락하고 제도화되어 생동력을 상실하면 사회적 위기가 초래되었다. 이렇게 되면 예언자들이 역사의 전면에 나나나 활동하는 경우가 보통이었다. 곧 제사장에 의해 주도되는 종교가 정치세력과 야합하여 타락, 어용화되면서 민중들로부터 멀어져 마침내 지배계층을 위한 종교가 되는 반면, 예언자들이 내세우는 종교는 타락한 제사장 종교에 대한 비판과 반대세력으로 나타나고, 지배체제에 반대하여 민중을 편들고 옹호하는 종교가 된다는 말이다. 쉽게 말하면 제사장과 예언자는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보는 여당과 야당, 또는 제도권과 제야의 관계에 있었던 것이다.
본문은 먼저 대제사장이 어떤 분인가 하는데 대하여 세가지를 말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제사장에 대해서 말하는 것은 오늘날의 목회자에게도 적용되는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
1. 제사장은 사람을 대신하여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맡고 있다.
이 말을 원어에 충실하게 번역한다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사람을 대신하여 행동하는 것’을 말하는데, 다시 말하면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중재한다는 뜻이다. 이렇듯 제사장이 하나님과 사람을 중재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은, 모세의 장인인 이드로가 모세에게 ‘그대는 하나님 앞에서 사람들을 대표하고 사람들의 문제를 하나님께 가지고 가거라’라고 말한데서도 드러난다. 제사장 또는 목회자의 직무가 어려운 점은, 그가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중재하는 이중적인 직분과 역할을 맡았다는 사실에 있다. 곧 그들이 사람을 대표하면서 동시에 하나님의 뜻을 사람들에게 전한다고 하는 직무가 어떻게 보면 서로 상충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제사장이 사람들의 뜻을 수립하여 하나님 앞에 나아가 간구할 때 하나님이 그것을 불쾌히 여기시고 거절할 때가 있으며, 반대로 하나님의 뜻을 받아 사람들에게 전달할 때 사람들이 그대로 순종하지 않고 거부할 때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사장직이나 목회자직은 아마도 불가능한 사명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2. 제사장은 ‘사람들 중에서 뿝힌’ 자로서 ‘연약함에 싸여 있는’ 자이다.
제사장은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는 물론이지만 ‘자기 자신을 위해서도 속죄의 제사를 드려야 한다’고 했다. 우리나라에는 권위주의적인 목사가 많은 것 같은데, 사실 오늘의 제사장인 목회자들은 자신들 역시 연약함에 싸인 인간이란 사실을 인정하는 편이 더 나을 것이다. 놀랍게도 히브리서 저자는, 제사장이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연약하다는 사실을 약점이 아니라 제사장에게 요구되는 필수적인 자격요건으로 보고 있다. 곧 제사장이 연약한 인간이기에 같은 연약한 인간들을 잘 이해하고 동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속된 말로 목회자가 ‘목에 힘주고’ 거룩하고 완전한 존재로서 하나님의 전권대리자처럼 행동하는 것은 교회 타락의 징조에 다름이 아니다.
3. 제사장의 직위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서’ 임명되는 자이다.
하나님이 제사장 제도를 창설하시는 출애굽기의 부분을 보면 하나님이 아론과 그의 자손들을 제사장으로 임명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제사장이나 목회자는 인간이 초빙하거나 임명하는 것이 아니고, 또 스스로 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하나님께서 임명하여 임직되는 것임을 볼 수 있다. 제사장이 하나님에 의해 임명되었다는 말씀은 매우 중요한 사실을 말하고 있다. 곧 제사장은 궁극적으로 자기가 위해서 일하는 사람들에 의해 자기의 직무를 간섭받거나 규정, 심판받는 것이 아니고, 또 그들에게 책임을 지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이다. 다만 그를 보내신 분에게 궁극적으로 책임을 지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역시 로마에 있는 기독교인들에게 자기를 소개할 때 자신을 ‘그리스도 예수의 종이며 부르심을 받은 사도’라고 했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았다’고 했다.
제가 여러분의 목사와 제사장으로서 소명을 받았다는 사실, 따라서 부르심을 받은 자가 부르신 분에게 궁극적으로 책임을 진다는 사실은 매우 자명한 것임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이 말은 목사가 초법적인 지위에 있다거나 절대적인 존재라는 뜻은 아니다. 저는 그런 생각을 불쾌하게 여기고 거기에 저항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목사는 하나님께 궁극적으로 책임진다는 사실을 얼마나 인정하고 존중하느냐, 목회자들이 이를 얼마나 두렵게 생각하느냐 하는데에 오늘날 교회가 당면하는 많은 문제들의 해결이 있다고 할 것이다.
히브리서 저자는 예수님이 이러한 세가지 요건을 모두 갖춘 제사장이라고 말한다. 곧 인간의 범죄로 인해 관계가 단절되었던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교량을 놓아 화해와 중재의 역할을 하신 분이 예수님이고, 모든 신적인 권위를 버리고 인간의 연약함을 몸에 지니고 이 땅에 오셔서 인간의 연약함을 이해하고 동정하셔서 눈물을 흘리시고 그들의 반역죄를 지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며,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는 하늘의 음성에서 보듯이 유대교 당국이나 민중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 보내진 메시야가 바로 예수님이라는 것이다.
4. 예수님은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른 영원한 제사장이다.
마지막으로 히브리서는 예수님이 이 모든 제사장의 요건을 갖추었기에 보통 제사장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른 영원한 제사장이라고 말하고 있다. 멜기세덱은 창세기에 나오는 신비한 존재로서, 그는 부모도 조상도 없이 끝도 없는 존재인데, 그가 처음 역사에 등장하는 때는 족장 아브라함이 그돌라오멜과 동방의 다른 왕들을 쳐부순 후 전리품을 가지고 돌아오는 길에 아브라함에게 나타난 때이다. 이때 멜기세덱은 아브라함에게 빵과 포도주를 주고 축복을 한다. 그러자 아브라함은 전리품의 십일조를 멜기세덱에게 바친다. 유대인들은 이 멜기세덱을 이상적인 제사장이자 왕으로 믿고 있었다. 멜기세덱이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인데, 그 이름은 ‘의의 왕, 평화의 왕’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우리의 주목을 끄는 점은, 히브리서 저자가 멜기세덱의 서열을 잇는 ‘영원한 제사장’이란 시 110:4절을 예수님께 적용한 사실이다. 죄스러운 인간적 존재가 아니고 부모도 출생도 없는 존재, 시작도 끝도 없고 죽음도 없는 영원한 존재, 어떤 선임자에게 임명받지 않고 직접 하나님으로부터 온 신적인 존재인 멜기세덱은 위에서 보았던 일반 제사장과는 다른 존재이다. 그가 아론의 후계자인 보통 제사장과 다른 점은, 그가 ‘의의 제사장’이라는 것과 ‘평화의 제사장’이라는 것, 그리고 왕의 직분을 겸한 제사장이라는 것이다. 예수님은 바로 이 멜기세덱의 제사장으로서 하늘로 올라가신 위대한 대제사장이다. 그리고 그분은 지금도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와 하나님 사이를 중재하며 우리를 위해 의와 평화의 제사장직을 감당하교 계신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바로 이 예수님이 우리들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거’가 된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는 이러한이유로 우리 멸망할 죄인들이 그분에 대한 신앙을 굳게 잡고 도움을 받기 위하여 담대하게 은혜의 보좌로 나아가자고 권고하고 있다.
우리가 비록 이 세상에서 고난과 슬픔 가운데 살고 있지만, 우리의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우리를 위해 중재의 기도를 하고 계신 영원한 대제사장, 의와 평화의 왕이 되시는 멜기세덱 예수님께 용감하게 나아가는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
(1995-044)